르브론 이전 클리블랜드의 상징이었던 마크 프라이스 스포츠



르브론 제임스의 등장 이후 클리블랜드 캐버리어스는 동부 컨퍼런스를 대표하는 강팀으로 매년 강력한 플레이 오프 컨텐더에 그 팀명이 이야기되어진다.......

하지만 르브론 등장 이전......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까지의 클리블랜드는 매년 리그 하위권의 성적을 거두는 그런 약팀에 지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80년대 후반~90년대 중반까지 클리블랜드는 지금처럼 매년 플레이오프 컨텐더로 이야기가 될 정도로 강력한 전력을 유지하였었고.......그 중심엔는 단신 백인 포인트 가드를 이야기할때 항상 존 스탁턴과 비교되곤 했던 이 선수......바로 마크 프라이스가 있었다......

솔직히 데뷔 당시 마크 프라이스에 대한 기대치는 그리 크지 않았다......183cm, 77kg의 왜소한 체격의 1964년생인 이 백인의 단신 포인트 가드는 조지아 공대 시절 떨어지는 운동 능력과 스피드....그리고 포인트 가드로서는 지나치게 공격적 성향이 강했던 이 그저 그런 백인 포인트 가드를 눈여겨 본 팀은 그리 많지 않았었다.......

1986년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25순위로 댈러스 매버릭스에 지명되었고 지명 직후 바로 클리블랜드로 트레이드 되었던 이 백인 포인트 가드가 이후 10여년 동안 리그를 대표하는 포인트 가드로 성장할 것이라 예상한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데뷔 첫해였던 86-87시즌 프라이스는 67경기 모두 교체로만 출장하여 평균 18.2분을 플레이하며 필드골 성공률 40.8%, 3점슛 성공률 32.0%, 자유투 성공률 83.3%(예전에 포스팅했던 선수들과는 달리 프라이스의 경우 3점슛과 자유투 성공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평균 6.9득점에 3.0 어시스트, 1.7리바운드, 0.6 스틸을 기록하며 백업 가드로서 그의 역량을 어느 정도 펼쳐보여주었다.

데뷔 첫 시즌의 성과를 바탕으로 커리어 2년차부터 클리블랜드의 주전 포인트 가드로 활약하며 그의 기량을 사람들에게 선보이게 된다. 두번째 시즌이었던 87-88시즌 그는 80경기 출장(그 중 주전으로 79경기), 평균 32.8분을 소화하며 평균 16 득점, 6.0 어시스트, 2.3리바운드, 1.2 스틸을 기록하며 A급 가드의 성적을 올리게 된다. 두번째 시즌 그의 필드골 성공률은 50.6%, 3점슛 성공률은 48.6%, 자유투 성공률 87.7%를 기록하게 된다. 그의 3점슛과 자유투 성공률에 주목해야 하는 부분이 여기서부터 나온다......

그와 비슷한 신체 조건에 동일한 백인이었기에 그의 커리어 내내 비교 대상이었던  스탁턴과 비교했을때......분명 프라이스는 커리어 성적 등에 있어 2%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스탁턴이 NBA 역대 최다 어시스트와 스틸을 기록하며 레전드의 반열에 오른 반면 프라이스는 스탁턴에 비해 8년이나 짧은 커리어(스탁턴은 프로 19시즌, 프라이스는 11시즌), 그리고 커리어 마지막 시기 급격한 기량의 하락 등.......그를 레전드에 반열에 올려놓기에도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NBA 역사상 가장 위대한 50인에 선정된 스탁턴과 달리 그는 이 명단에 선정되지 못했다......) 하지만 전성기 시절을 기준으로 놓고 보았을때 그가 스탁턴보다 비교 우위에 설 수 있었던 것은 득점 능력과 슈팅 능력이다. 부드러운 손목 스냅에서 뿜어져 나오는 장거리 슛과 통산 자유투 성공률이 90%가 넘는 이 선수의 슈팅력은 스탁턴이 아닌 그 어떤 포인트 가드와 비교해도 너무나도 뛰어난 것이었다.

자아.....각설하고 88-89시즌부터 93-94시즌까지.....이 여섯 시즌 동안 마크 프라이스는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고 이 시기 팀은 오닐 등장 이전 4대 센터로 이야기되었던 브래드 도허티(언제 시간나면 이 선수에 대해서도 한번 포스팅을 할 예정이다), 무지막지한 신체 조건으로 조던을 비롯한 상대팀 에이스들을 봉쇄하였던 제럴드 윌킨스, 또 한명의 백인 가드였던 크레이그 이로.....그리고 정상급 포인트 가드로 올라선 마크 프라이스 등으로 팀이 구성되며 동부 컨퍼런스에서 시카고를 위협하는 대표적인 강팀으로 성장하게 된다......

88-89시즌 마크 프라이스는 75경기 출장에 평균 36.4분을 소화하는 강력한 체력을 선보였고, 그의 개인 성적은 평균 18.9득점, 8.4 어시스트, 3.0 리바운드, 1.5 스틸, 필드골 성공률 52.6%, 3점슛 성공률 44.1%, 자유투 성공률 90.1%였다. 주목할 것은 이 시즌 필드골 성공률 50% 이상, 3점슛 성공률 40%이상, 자유투 성공률 90% 이상을 동시에 달성했다는 것이다. 이 기록은 현재까지도 NBA에서 단 다섯 명의 선수들만이 가지고 있는 위대한 기록이다.(나머지 네명은 래리 버드, 레지 밀러, 스티브 내쉬, 덕 노비츠키)

그리고 89-90시즌과 91-92시즌.....프라이스는 그의 커리어 하이 시즌을 맞이하게 된다. 89-90시즌 프라이스는 평균 19.6득점, 9.1 어시스트, 3.4 리바운드, 1.6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을 플레이오프로 이끌었다. 하지만 팀은 조던의 불스에 막혀 플레이오프 1라운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90-91시즌....프라이스는 부상으로 대부분의 경기를 결장하며 시즌 16경기 출장에 그쳤다. 하지만 절치부심하며 기다렸던 91-92시즌.....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온 프라이스는 72경기를 출장하며 건재를 과시한다. 하지만 플레이 타임은 데뷔 첫해 이후 처음으로 30분 아래로 떨어지며 29.7분을 기록......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개인성적은 평균 17.3득점, 7.4 어시스트., 2.4 리바운드, 1.3 스틸, 필드골 성공률 48.8%, 3점슛 성공률 38.7%, 자유투 성공률 94.8%이었고, 플레이 타임 대비 최고의 성과를 거두게 된다......그리고 팀은 드디어 동부 컨퍼런스 결승까지 진출.....불스를 상대로 파이널을 향한 마지막 투지를 불태우게 되지만 결국 조던의 벽에 가로막혀 패배하게 된다.

92-93시즌.....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프라이스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스탁턴과의 경쟁에 승리하며 NBA first team에 선정되었다. 이 시즌 그의 성적은 평균 75경기 출장, 31.7분을 플레이하며 18.2 득점, 8.0 어시스트, 필드골 성공률 48.4%, 3점슛 성공률 41.6%, 자유투 성공률 94.8%를 기록하며 팀을 이끌었지만 역시 플레이오프에서는 탈락을 하게 된다. 93-94시즌에도 프라이스는 17.3득점, 7.8어시스트와 함께 정교한 슛팅으로 팀을 이끌었으며 1994년 세계 농구 선수권 대회에 드림팀 2의 멤버를 참가하여 우승을 차지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94-95시즌 부상으로 많은 경기를 결장하였고, 이 시기부터 그의 기량의 하락세도 급속하게 진행되기 시작하였다. 브래드 도허티는 이미 93-94시즌 부상으로 인해 짧은 그의 커리어를 마감하였고......프라이스의 기량 저하와 도허티의 은퇴로 클리블랜드는 더 이상 동부 컨퍼런스의 강팀의 이미지를 상실하였고 그저 그런 약팀으로 전락하게 된다......

결국 95-96시즌의 시작과 함께 팀은 한 시대를 풍미한 이 매력적인 포인트 가드를 워싱턴으로 트레이드하게 된다. 워싱턴으로의 트레이드 이후에도 프라이스는 부상으로 일곱 경기에만 출장하였고, 다음 시즌인 96-97시즌에는 팀을 골든 스테이트로 옮기게 된다. 그리고 다시 그 다음 시즌인 97-98시즌 그는 팀을 올랜도로 옮기게 되었고 이 마지막 시즌 63경기 출장(그 중 선발 출장 33경기), 평균 22.7분을 플레이하며 9.5득점, 4.7 어시스트를 기록한 후 은퇴를 선언하게 된다.

커리어 11시즌 동안 722경기 출장에 평균 29.9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47.2%, 3점슛 성공률 40.2%, 자유투 성공률 90.4%, 평균 15.2 득점에 6.7 어시스트, 2.6 리바운드, 1.2 스틸의 기록을 남기며 무대의 뒤로 사라진 것이다. 올스타에 통산 네 차례 선정되었고, NBA first team 1회, 세계 선수권 우승, 커리어 11시즌 동안 일곱 차례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지만 동부의 절대 강자 조던의 불스에 막혀 파이널에 진출하지는 못하였다.

그의 커리어는 레전드라 불리우기에는 너무나 짧으며 그리고 그 커리어 기간 동안 시즌 전 경기를 출장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는 점역시 하나의 한계이기도 하다. 그와 자주 비교되었던 스탁턴의 커리와 비교해봐도 프라이스의 커리어를 스탁턴의 커리어에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이다 싶을 정도로 많은 차이가 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짧은 전성기 동안 그가 보여준 플레이는 비슷한 백인 포인트 가드였던 스탁턴과는 또다른 매력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스탁턴보다 적극적이었던 그의 공격적 성향 때문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고등학교 시절 등번호 25번의 이 자그마한 백인 포인트 가드가 장신들이 우글대는 코트에서 허를 찌르는 정확한 3점슛과 적극적인 드라이브인으로 골밑 슛과 멋진 패스를 도허티에게 연결하는 장면은......너무나도 완벽한 재즈의 스탁턴-말론 콤비의 픽앤롤과는 분명히 다른 독특한 매력이 있었다.

11시즌이라는 비교적 짧은 커리어지만 그의 통산 성적에서 하나.....NBA 역사 전체에서도 최고인 기록이 있으니 아마 자유투에 관한 것 이 아닐까 싶다. 그의 통산 자유투 성공률 90.4%는 역대 1위의 기록이다(참고로 2362개 시도에 2135개 성공). 그리고 92-93시즌에 기록한 94.8%의 자유투 성공률 역시 역대 단일 시즌 자유투 성공률 1위의 기록이다. 어쨌건 자유투에 관한한 그의 기록은 역대 최고의 질을 자랑한다 해도 무방할 것이다. 3점슛 성공률은 통산 40.2%로 NBA 역대 공동 19위에 해당되는 기록이기도 하다.

짧은 커리어와 부상으로 인한 잦은 결장 등으로 그는 한 시대를 풍미한 그저 뛰어난 포인트 가드 정도라는 평가를 듣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슛팅 능력만을 놓고 따졌을 때 프라이스는 NBA의 그 어떠한 슛터들보다도 정확하고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의 커리어 마지막 시즌 마지막 경기를 마치고 퇴장하는 그에게 당시 중계진은 "이제 NBA에서 가장 위대한 슛터가 퇴장을 하고 있습니다"라는 말로 그의 커리어를 평가하였다.

어렸던 시절......클리블랜드의 파란색 원정 유니폼이 참 촌스럽다는 생각을 하였지만, 그 유니폼을 입고 조그마한 백인 포인트 가드가 그 장대숲을 해치며 적극적인 공격과 패스를 하던 모습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가능성도 100%라고 장담할 수 없는 그런 선수였지만.......공격적 성향의 포인트 가드를 생각하면 항상 떠오르는 이름 마크 프라이스........르브론의 클리블랜드는 너무나도 강하지만 도허티와 프라이스로 이루어진 그 시절의 클리블랜드 캐버리어스가 종종 그립기도 하다.......


핑백

  • 세상의 마지막까지 난 나로서 존재할 것이다 : [NBA] 1986년 드래프트...... 2009-07-20 20:13:21 #

    ... 드맨, 제프 호너섹이 그들인데요. 프라이스와 호너섹에 대해서는 예전에 썼던 포스팅이 있기에 링크로 대체할께요......마크 프라이스 커리어 : http://kaga4467.egloos.com/1356132제프 호너섹 커리어 : http://kaga4467.egloos.com/1475638자아...남은 선수는 드디어 문제의 데니스 로드맨이군요..... ... more

덧글

  • 바른손 2009/02/09 17:55 # 답글

    기억이 맞으실 겁니다.딱 한번 퍼스트팀선정 된게 맞을거에요.
    저도 이 시절 클리브랜드는 참 기억이 선합니다.커리어종료가 참 아쉬운 도허티도 물론이구요.

    좋은 추억의 글들 잘 챙겨보고 있습니다.
  • 울프우드 2009/02/09 18:04 #

    항상 글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시절 클리블랜드.....항상 안타까운 팀 중 하나였죠.....유잉의 닉스와 함께 말이죠...
  • 바른손 2009/02/09 19:27 #

    그렇죠.조던의 시대에 가장 비운의 팀 2팀일테죠.동부의 닉스와 캐브스.
  • 울프우드 2009/02/09 20:29 #

    하아....뭐 솔직히 90년대 대부분의 강팀들이 다 불운한 팀들이라는 생각 밖에는.....
    불스와 조던이 너무 강했던 거죠.....
  • 나야꼴통 2009/02/17 13:14 #

    동감 합니다...

    조던 과 불스 의 팀구성이 너무 강했습니다.

    배드보이즈 가 최후의 천적과도 같았는데..
    그마져 넘어서니.. 왠지 답이 안나올듯한.. 팀이었고

    마크 프라이스 와 패트릭 유잉 은 그 중에서도
    제일 서글픈 팀이었던것 같네요..

    묘하게 던지면 잘들어갈듯한 슛 은 아직도 기억에 많이 남는군요..
  • 울프우드 2009/02/17 14:09 #

    정말 동부의 클리블랜드와 뉴욕은......
    뭐 불운이라고 하며 넘어가기에도 너무 안타깝고 매력적인 팀들이었죠.....
  • 프라이스 2009/08/27 16:14 # 삭제 답글

    내가 아직까지 가장 좋아하는 두 선수.

    프라이스와 매직존슨..

    프라이스때문에 NBA를 봤고 그 때문에 매직존슨에 매료됐는데...

    이 두명 때문에 저는 언제나 가드를 제일 좋아하죠.
  • 밀러타임 2017/12/21 12:59 # 삭제 답글

    역시 레기밀러, 데니스스같, 샘 파킨스, 척 퍼슨 분들의 업적이란..ㅎㄷㄷ
댓글 입력 영역



통계 위젯 (블랙)

513
82
2593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