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피닉스 선즈의 'Thunder' Dan Majerle 스포츠



요즘들어 계속 바쁜 일들이 툭툭 떨어져서 NBA 관련 포스팅을 가급적 자제하였습니다......그러나 왠일로 오늘 예정되어 있던 일정이 급작스럽게 취소되어 때아닌 저녁 시간의 여유가 주어져 생각난 김에 오랜만에 추억의 NBA 선수 포스팅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드디어......

오늘 살펴볼 선수는 90년대 초반 리그를 대표했던 강팀인 피닉스 선즈의 외곽을 책임졌던 백인 슈팅 가드 댄 멀리입니다......

고등학교 시절 처음 이 선수의 이름을 보았을때......'흐음 저거 발음을 어떻게'라고 하며 친구와 당황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냥 가장 많이 쓰이는 댄 멀리로 부르도록 하죠^^

댄 멀리는 1965년 생으로 Central Michigan 대학 출신의 슈팅가드입니다. 198cm, 100.7kg의 단단한 신체 조건과 외곽슛 능력, 그리고 강력한 1:1 디펜스 능력 및 속공 가담, 그리고 포스트업까지 해내는 선수로 대학 시절에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은 선수였다죠.

대학 4년간 성적은 평균 21.8 득점에 8.9 리바운드를 기록하였고, 특히 4학년 시절에는 평균 23.7득점, 10.8 리바운드, 52.2%의 정확한 야투 성공률을 기록하며 88 서울 올림픽 미국 농구 대표로 선발되기도 하였습니다.

화려한 대학 시절을 마무리한 댄 멀리는 1988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14위로 피닉스 선즈에 지명되며 NBA에서의 커리어를 시작합니다. 커리어 초반에는 주전 보다는 주로 팀에 활력을 불어넣는 식스맨으로 활약하였습니다.

루키 시즌인 88-89 시즌 댄 멀리는 54경기 출장(5경기 선발), 평균 25.1분을 플레이하며, 야투 성공률 41.9%, 3점슛 성공률 32.9%, 평균 8.8 득점에 3.9 리바운드, 2.4 어시스트, 1.3 스틸을 기록하며 식스맨으로서 쏠쏠한 활약을 펼칩니다. 그 다음 시즌인 89-90 시즌 댄 멀리는 73경기 출장(23경기 선발), 평균 30.7분을 플레이하며 야투 성공률 42.4%, 3점슛 성공률(23.8% - 어이 당신 외곽슛터인데 이 무슨), 평균 11.1 득점, 5.9 리바운드, 2.6 어시스트, 1.4 스틸을 기록하며 커리어 첫 시즌에 비해 거의 모든 부분에서 향상된 기량을 선보이며 선즈의 핵심 식스맨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90-91시즌과 91-92 시즌에도 댄 멀리는 선발 라인업 보다는 게임 중간 투입되는 식스맨으로의 역할을 수행하였지만 이 두 시즌 동안 평균 플레이 타임이 30분을 상회하며 실질적인 선즈의 주전 슈팅 가드로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특히 91-92 시즌에는 82경기 출장(이중 선발 15경기), 평균 34.8 분을 플레이하며 야투 성공률 47.8%, 3점슛 성공률 38.2%, 평균 17.3득점(커리어 하이), 5.9 리바운드, 3.3 어시스트, 1.6 스틸을 기록하며 선즈의 주 공격 옵션으로까지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드디어 운명의 92-93시즌.....피닉스는 염원의 우승을 위해 동부 컨퍼런스에 속해 있는 필라델피아로부터 찰스 바클리를 받아오는 트레이드를 단행하였고, 이 시즌 드디어 댄 멀리는 선즈의 주전 슈팅 가드로 완전히 자리를 굳히게 됩니다. 이 시즌 댄 멀리는 82경기 출장(82경기 선발), 평균 39.0분을 플레이하며 필드골 성공률 46.5%, 3점슛 성공률 38.1%, 16.9 득점, 4.7리바운드, 3.8 어시스트, 1.7 스틸을 기록하며 선즈의 돌격대장 케빈 존슨, 그리고 말이 필요없는 골밑의 폭군 찰스 바클리와 함께 선즈를 62승 20패 리그 최고 승률로 이끌며 파이널에 진출, 조던의 불스와 맞서게 됩니다. 파이널에서 선즈는 바클리가 팔꿈치 부상에도 불구하고 그랜트와 피펜을 상대로 불스의 골밑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고 케빈 존슨과 댄 멀리 역시 조던을 마크함과 동시에 속공과 외곽슛으로 불스를 괴롭혔지만 결국 선즈는 시리즈 전적 2승 4패로 불스에 패하며 시즌을 마무리하게 됩니다.

93-94시즌에도 댄 멀리는 출장한 80경기 중 76 경기를 주전으로 뛰며 평균 40.1분을 플레이하는 강철 체력을 선보였고, 평균 16.5득점, 4.4 리바운드, 3.4 어시스트, 1.6 스틸을 기록하며 선즈의 핵심 전력으로 변함없는 활약을 펼칩니다. 개인적으로 이 시즌까지가 댄 멀리의 전성기가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드네요.......

94-95 시즌 댄 멀리는 82경기에 출장했지만 선발 출전 경기수는 46경기로 전년도에 비해 30경기 정도 줄었습니다. 물론 플레이 타임은 37.7분으로 여전히 선즈의 핵심 전력이었기는 했지만.......이 시즌 멀리는 평균 15.6 득점, 4.6 리바운드, 4.1 어시스트, 1.2 스틸을 기록하며 이전 시즌들과 큰 차이가 없는 성적을 올렸지만......이 시즌부터 멀리는 스피드 부분에 있어서 점차 느려지는 모습을 보이며 그의 무기 중 하나였던 1:1 수비 능력에 서서히 한계를 보이기 시작하죠.

결국 피닉스는 94-95 시즌이 끝나고 댄 멀리를 클리블랜드로 트레이드 시켜버립니다. 클리블랜드에서 보낸 시즌은 단 한시즌이었지만 이 시기가 댄 멀리의 커리어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습니다. 클리블랜드는 당시 슈팅 가드 자리에 바비 필스, 스몰 포워드 자리에는 크리스 밀스라는 상당히 괜찮은 멤버를 보유하고 있었고 결국 멀리는 클리블랜드에서 벤치 멤버로 전락하고 맙니다. 이 시즌 댄 멀리는 82경기 출장(선발 15경기), 평균 28.9분을 소화화며 야투 성공률 40.4%, 3점슛 35.3%, 평균 10.6득점, 3.7 리바운드, 2.6 어시스트, 1.0 스틸을 기록하였다. 리바운드는 데뷔 이후 가장 줄었으며, 득점, 어시스트, 플레이타임, 스틸 모든 부분에서 댄 멀리의 성적은 하락하였습니다.

96-97 시즌 댄 멀리는 팻 라일리가 감독으로 있는 마이애미 히트로 이적합니다. 당시 마이애미는 명장 팻 라일리를 중심으로 포인트 가드 팀 하더웨이, 센터 알론조 모닝을 중심으로 하는 재능있는 팀이었습니다. 당시 31세에 불과했던 댄 멀리를 영입하며 마이애미는 그가 알론조와 팀 하더웨이를 보좌해줄 팀의 핵심 공격 옵션이 되기를 바라게 되죠. 하지만 커리어에서 아주 중요했던 이 시점에서 댄 멀리는 부상을 당하게 되고 결국 마이애미에서의 첫 시즌에 멀리는 36경기 출장에 그치며 시즌 대부분을 결장하게 됩니다. 97-98시즌 72경기를 출장하며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이제 그에게 스피드와 터프함, 강력한 수비 능력은 거의 사라져버리게 되었고 32세라는 이른 나이에 그는 완연한 하락세를 보이게 되며 팬들을 안타깝게 합니다. 00-01 시즌을 마지막으로 그는 마이애미를 떠나 자신의 커리어가 시작되었던 곳.....바로 피닉스로 돌아옵니다. 그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던 피닉스의 팬들은 그를 환영하였고 그 역시 자신의 커리어가 출발했던 바로 그 곳에서 열심히 노력하였습니다. 이 시즌 멀리는 65경기 출장(1경기 선발) 평균 18.2분(데뷔 이후 그의 평균 플레이 타임이 20분 이하로 떨어진 최초의 시즌입니다)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34.3%, 3점슛 성공률 31.5%, 평균 5득점, 2.7리바운드, 1.4 어시스트, 0.7 스틸의 부진한 기록을 남겼고 더 이상 커리어를 이어갈 수 없다고 판단, 이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하게 됩니다.

댄 멀리의 경우 90년대 NBA를 보신분들이라면 일반적으로 정확한 외곽슛을 장착한 체격 좋은 백인 슛터 정도로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실제로 댄 멀리는 3점슛 성공수 1위를 2회 기록하였고(92-93, 93-94 시즌), 한 경기에 9개의 3점 슛을 폭발시킬 정도의 뛰어난 외곽 슛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커리어 통산 그의 3점슛 성공률 35.8%로 준수한 편입니다. 하지만 그가 아주 정밀한 3점 슈터라고 말하기에는 2% 부족한 것도 사실입니다. 전문 슈터라 이야기하지만 그는 커리어 통산 3점슛 성공률 40%를 넘긴 시즌이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커리어 2년 차에는 23.8%라는....슈터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부끄러운 성공률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성공률은 지나치게 3점슛을 시도 횟수가 많았다는 점에도 기인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마크 프라이스나 레지 밀러와 같은 위대한 슈터라고 부르기에는 조금은 부족해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선수는 비교적 정확한 외곽슛을 보유한 올라운드 플레이어를 봐야하지 않을까라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그는 정확한 3점슛을 주 공격 옵션으로 하였지만 빠른 스피드를 이용한 골밑 드라이브 인과 포스트 업을 통한 골밑 득점, 그리고 스피드라면 최고인 KJ와 함께 속공시 가장 앞서 달리며 속공을 마무리할 수 있는 능력도 가지고 있었던 전천후 공격수였습니다. 커리어 기간 동안 시즌별 평균 스틸수에서도 나타나듯이 1.0개 이상의 스틸을 매게임 해내는 디펜스 능력과 함께 코트를 보는 시야도 비교적 넓어서 3-5개 정도의 어시스트를 커리어 기간 동안 기록하였고, 리바운드 역시 3.5개-5개 정도를 매시즌 꾸준히 잡아주었습니다.

아주 현란한 드리블 기술을 가지고 있지 못했지만 그만큼 실책도 적었기 때문에 그의 플레이에는 어느 정도의 안정감까지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고요.(14시즌의 커리어 동안 그는 시즌 평균 2.0개 이상의 실책을 기록했던 적이 없습니다. 93-94 시즌에 기록한 1.71개의 실책이 그의 커리어 동안 기록된 가장 많은 실책이라는......)

지나치게 많이 3점슛을 시도하여 종종 난사라는 비난도 들었지만 결정적 국면에서 벼락처럼 꽂혀들어가는 그의 3점슛은 박빙의 게임 분위기를 한번에 자신의 팀으로 가지고 올만한 위력이 있었으며, 이러한 외곽슛 이외에도 다양한 공격 루트를 통해 그는 전성기 시절 레리버드 이후 등장한 백인 선수 중 가장 뛰어난 공격력을 지닌 선수로까지 평가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전성기 시절이 너무나 짧았고 동시에 기량의 하락이 너무나 빨리 찾아왔다는 점이.....너무나 아쉬운 선수.....바로 이 선수가 피닉스의 Thunder 댄 멀리가 아닌가 합니다.......

NBA에서 총 14시즌을 보냈고 플레이오프에는 13시즌 진출하였습니다. 파이널 1회 진출, 올스타 3회 선정, 1988년 서울 올림픽 미국 농구 대표, 1994년에는 드림팀 2의 일원으로 세계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여 우승을 하기도 했습니다.

통산 955경기에 출장(이중 선발 출장 454 경기)하였으며, 평균 31.6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43.1%, 3점슛 성공률 35.8%, 평균 11.4득점(10,925점), 4.5 리바운드(4265 리바운드), 2.9 어시스트(2,755 어시스트), 1.2 스틸(1,194 스틸) 기록하였습니다. 3점슛은 1360개를 성공시켰으며, 커리어 기간 동안 그가 기록한 실책 수는 1,116개(경기 당 1.17개)를 기록하였습니다.

뭐 역시 레전드로 기록될 선수는 아니지만......피닉스의 오래된 팬들이라면 아마 계속해서 기억될 선수일만큼 아주 매력적인 선수임에는 틀림없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내쉬를 중심으로 아마레와 샤크를 축으로 하는 지금의 피닉스도 강하고 매력적이지만 피닉스 선즈라는 팀이 가장 인상적이었던 시기는 아마 KJ와 댄 멀리, 바클리의 삼각 편대가 상대팀의 코트를 초토화시켰던 바로 그 시절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한번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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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crdai 2009/03/25 23:49 # 답글

    오오...댄 머저리..(야) 그시절이 그립군요. 개인적으로 그시절의 피닉스는 참 좋아했었는데....바클리가 우승을 할려면 그때 했었어야 하는데..하는 아쉬움이 참으로 많이 남아있기도 한 그런 시절이군요. 이당시 조던은 공공의 적이었던지라. (웃음)
    개인적으로 저당시 저 멤버중 제일 좋아햇던건 아이러니 하게도 데니 에인지 였지만 말입니다. (웃음)
  • 울프우드 2009/03/26 15:00 #

    crdai님 반갑습니다. 댄 머저리.....ㅋ....저도 이런 발음으로 처음에는 이 선수를 불렀던 기억이 나네요.....그렇죠 당시 조던은 너무나 강력했기에 거의 공공의 적 수준이었죠....

    아....지금 셀틱스의 단장인 데니 에인지......저같은 경우에는 포틀랜드 시절부터 좋아했었습니다. 불스와의 파이널에서 결정적 3점슛을 성공시키는 모습을 보며 무척이나 강렬한 인상을 받았던 선수라지요^^

    흐음 다음 포스팅 대상은 데니 에인지로 한번 해봐야겠어요^^
  • 바른손 2009/03/26 11:55 # 답글

    좋은 선수였죠.정말 제가 가장 nba에 열광하던 시절의 훌륭했던 팀의 팀원이라 더욱 기억이 애잔한거 같습니다.

    말씀대로 백인선수들은 조금 외곽슈터 이미지로 고착화 되는 성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렉스 채프먼도 그런 케이스인듯.
  • 울프우드 2009/03/26 14:45 #

    바른손님 말씀대로 아무래도 NBA에서 백인이라고 한다면 정확한 외곽 슛터의 이미지가 강하게 고정되어버리는 것 같습니다.....바른손님이 말씀하셨듯이 호네츠 최초의 프렌차이즈라 불릴만한 렉스 채프먼도 그렇고요......

    댄 멀리의 경우에는 저도 그 시절 피닉스 팬이었기 때문에(가장 좋아했던 팀은 드렉슬러가 있었던 포틀랜드였고요 그리고 그 다음이 피닉스와 뉴욕) 상당히 많은 기억이 남아있는 선수입니다......

    조금은 이른 나이에 은퇴한 것이 아쉽기도 하고......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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