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 평범함 속에서의 꾸준함.....Utah의 영원한 14번 Jeff Hornacek 스포츠



NBA를 좋아하는....(특히 90년대의) 저는 90년대의 수많은 슈퍼 플레이어들의 경기를 고등학교 시절 보면서 놀라움과 감동을 느낀 적이 무지하게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난번 포스팅에서 언급했었던 마크 잭슨처럼 슈퍼 플레이어는 아니지만 자신의 영역에서 묵묵히 역할을 수행하며 팀에 소금과도 같은 역할을 해주는 선수들 역시 슈퍼 플레이어들 만큼의 감동과 즐거움을 주었었죠......

그래서 오늘은 마크 잭슨보다 어떻게 보면 더 평범한......외모에서 풍기는 분위기부터가 '저는 평범해요'라고 딱 써붙이고 플레이하신 영원한 Utah의 14번.....슈팅 가드 제프 호너섹에 대해 포스팅을 해보려고 합니다.......

호너섹의 농구 경력은 상당히 특이합니다. 아이오와 대학 출신인 그는 대부분의 선수들과는 달리 운동 특기생으로 대학에 진학한 선수가 아닙니다......그는 일반 학생들과 동일한 시험을 치루었고 그 시험을 패스하여 일반 학생으로 아이오와 대학에 진학을 합니다. 하지만 농구를 너무나 하고 싶었던 호너섹은 1학년 시절 아이오와 대학 농구부 코치를 찾아가 자신을 팀에 받아달라고 부탁을 하게 됩니다......여기서 잠시 호너섹의 신체 사이즈를 살펴볼까요.....그는 농구선수로서는 작은 193cm의 신장에 80kg대 정도의 호리호리한 신체 사이즈를 가지고 있었던 선수였습니다......운동 능력? 그 역시 거의 보잘것 없는 수준이었죠......이런 조건의 호너섹을 농구부 코치가 받아들여줄 리는 없었습니다. 농구부 코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구부에 들고 싶어하는 그의 열정을 높이 사서 호너섹에게 이런 제안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만약 코트의 어느 위치에서나 슛을 성공시킬 수 있다면 팀에 받아주겠다"라고 말이죠......

그로부터 1년 후.....호너섹은 다시 그 코치를 찾아가서 그의 눈 앞에서 코트의 모든 위치에서 슛을 성공시켜보입니다. 코치가 놀랐던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테지요.....결국 1년 동안 매일 수천번의 슛팅 연습으로 정확한 외곽슛 능력을 장착한 호너섹은 2학년 때 아이오와 대학의 농구부원이 됩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평범한 농구선수인 호너섹의 커리어가 시작되게 됩니다. 그는 정확한 슛팅력과 안정적인 리딩 능력을 인정받아 1986년 드래프트에서 비록 낮은 순위였지만(2라운드 46번) 피닉스 선즈에 지명받아 NBA 무대로 진출하는데 성공하게 됩니다.

루키 시즌......그는 팀의 백업 가드로서 80경기에 출장(이중 선발 출장 3경기), 평균 19.5분을 소화하며 5.3득점, 4.5 어시스트, 2.3 리바운드의.....루키로서는 괜찮은 성적으로 그의 커리어를 시작합니다.(루키 시즌 호너섹의 3점슛 성공률은 27.9%로 대학 시절 보여주었던 정교한 외곽슛 능력을 보여주지는 못했습니다. 참고로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그의 커리어 통산 3점슛 성공률은 40.3%입니다.)

두번째 시즌이었던 87-88시즌.....그는 피닉스에서 슈팅 가드와 포인트 가드를 번갈아 맡아보며 주전으로 출장하는 경기 수가 늘어나기 시작합니다.(87년 드래프트에서 피닉스는 피닉스 역사상 가장 훌륭했었던 포인트 가드인 케빈 존슨을 영입하는데 성공합니다.-물론 이 부분은 지극히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지금 현재 피닉스의 리더인 내쉬를 피닉스 역사상 가장 훌륭한 포인트 가드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개인적으로 케빈 존슨을 너무나 좋아하기에....쩝) 2년차 징크스 없이 그는 이 시즌에 82경기 출장(이중 49경기 선발), 평균 27.4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50.6%(여전히 3점슛 성공률은 29.3%에 불과했습니다), 9.5 득점, 6.6어시스트, 3.2 리바운드, 1.3 스틸을 기록하며 데뷔 시즌에 비해 모든 부분에서 한단계 더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며 성공적으로 리그와 팀에 안착하는데 성공하게 됩니다.

그리고 데뷔 3년차인 88-89 시즌......호너섹은 78경기에 출장(이중 선발 73경기)하여 평균 31.9분을 소화하며 13.5득점, 6.0어시스트, 3.4 리바운드, 1.6스틸을 기록하며 피닉스의 주전 가드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이 시즌 그는 데뷔 후 처음으로 3점 슛 성공률을 30%대로 끌어올리는데 성공하게 됩니다.(33.3%)

이후 세시즌 동안 호너섹의 평균 득점은 17.6 득점-->16.9득점-->20.1 득점으로 한 시즌 평균 16점 이상의 좋은 기록을 유지하며 팀의 리딩 스코어러로 자리잡았고, 어시스트 역시 평균 5개 이상, 스틸 역시 1.4개 이상을 꾸준히 유지하며 팀의 주전가드로는 부족함이 없는 성적을 꾸준히 유지하게 됩니다. 주목해야할 것은 이 세시즌 동안(그러니까 89-90시즌~91-92시즌) 그의 3점슛 성공률이 40.8%, 41.8%, 43.9%로 계속해서 40%대 이상의 높은 성공률을 유지하였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러한 좋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호너섹은 92-93시즌 시작과 함께 팀 동료인 팀 페리, 앤드류 랭과 함께 필라델피아의 에이스 바클리와 트레이드 되어 팀을 옮기게 됩니다. 92-93시즌을 시작하며  구단은 새로운 사령탑으로 폴 웨스트폴을 선택하였고, 피닉스의 단점으로 빈약한 로포스트를 꼽으며 로포스트 전력의 강화를 위해 리그를 대표하는 파워포워드인 필라델피아의 바클리를 영입하는 결단을 내리게 됩니다.(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피닉스의 이 결단은 92-93 시즌 바클리의 시즌 MVP 수상과 파이널 진출이라는 대박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물론 파이널에서는 조던의 불스에 2승 4패로 패퇴하며 챔피언 쉽을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호너섹은 92-93 시즌과 93-94 시즌의 후반까지 필라델피아에서 플레이합니다. 필라델피아 시절 그는 총 132경기에 출장하며(이중 선발 출장이 131경기이군요) 35분 이상의 플레이 타임을 소화하였고 평균 17점 이상의 득점과 4개 이상의 어시스트, 3개 이상의 리바운드를 잡아내며 팀의 주전 슈팅 가드로 제몫을 다했었습니다.
하지만 93-94시즌 후반 호너섹은 다시 유타 재즈로 팀을 옮기게 됩니다. 시즌 후반 유타 재즈에서 그는 총 27경기에 출장하였고(이중 선발 9경기), 30.6분을 소화화며 14.6득점, 3.9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필라델피아 시절에 비해서는 조금 하락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기량의 저하라기 보다는 유타의 스타일 자체가 스탁턴과 말론의 원투 펀치를 중심으로 하는 오펜스 전략을 핵심으로 하는 것이었고, 동시에 칼 말론이라는 리그 최고의 스코어러와 존 스탁턴이라는 최고의 포인트 가드가 있는 만큼 그의 득점과 어시스트  기록의 하향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시즌 후반의 27경기를 통해 유타에 적응한 호너섹은 94-95시즌 시작과 함께 팀의 주전 슈팅 가드로 자리잡게 됩니다. 81경기에 선발 출장한 그는 평균 33.3분을 소화하며 16.5득점, 4.3 어시스트, 2.6 어시스트를 기록하였습니다. 어찌보면 유타에서의 시간이 그에게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최고의 포인트 가드인 스탁턴의 어시스트와 모든 게임에서 상대의 더블팀을 당해야 했던 말론의 패싱 아웃은 리그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그의 부드러운 슛터치와 슛셀렉션과 멋진 하모니를 이루었고, 이러한 조화 속에서 호너섹의 중장거리 슛은 상대편의 림을 정확하게 갈라놓았었습니다.

유타 시절의 호너섹은 분명 피닉스 시절의 그에 비해 득점 기록에서는 조금 부족하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에 대한 디펜스를 소홀히 할 팀이 없을 정도로 강력한 슈터였었죠. 그는 기세가 올랐을때 미칠듯이 폭발하는 슈터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항상 기복없는 슈팅력으로 상대팀을 괴롭혔으며 동시에 외곽슛을 봉쇄하기 위해 상대가 밀찰마크를 할 경우에는 드라이브 인을 통한 골밑 득점에도 능한 모습을 보여준 선수였습니다.

93-94시즌 후반 유타로 이적한 호너섹은 자신의 마지막 시즌이었던 99-00시즌까지 단 한번도 팀을 옮기지 않고 유타에서만 플레이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시즌까지도 그는 팀의 주전 가드로서 12득점 이상을 꾸준히 기록하였고 40%이상의 높은 3점 슛 성공률로 상대팀을 괴롭힌 우수한 공격수였습니다.(참고로 커리어 마지막 시즌이었던 99-00시즌 호너섹은 77경기에 주전으로 출장하여 평균 27.7분을 플레이하며 12.4득점을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마지막 시즌 그의 3점슛 성공률 47.8%였습니다.....)

포스팅 서두에서도 언급했듯이 그는 농구선수로서는 왜소한 체격을 가진 평범한 백인 선수였습니다. 그리고 옆집 아저씨처럼 평범한 그의 외모와 그리 뛰어나지 못한 운동 능력으로 그는 상대팀에게 공포감을 심어주기에도 힘든 선수였죠. 폭발적인 득점력도 탄성을 자아내는 어시스트나 드리블도 그에게는 없었습니다. 정확한 외곽슛을 제외하고 이 선수가 전면에 내세울 무기는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평범한 플레이를 기복없이 수행하며 결정적인 순간에 팀에 도움을.....상대에게는 괴로움을 안겨주는 훌륭한 공격수였다는 사실임에는 변함이 없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리그에서 비교적 짧은 13년 동안의 커리어 동안 그는 통산 1077경기에 출장(이중 910경기 선발 출장), 31.5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49.6%, 3점슛 성공률 40.3%, 자유투 성공률 87.7%를 기록하였습니다. 평균 14.5득점(15659득점), 4.9 어시스트(5281어시스트), 3.4 리바운드(3646리바운드), 1.4 스틸(1536 스틸)을 기록하였습니다. 눈여겨 볼 것은 그의 통산 실책과 파울 수인데요.  13시즌 동안 호너섹의 평균 실책은 1.83개이며 파울은 2.20개 였습니다. 슈팅 가드 포지션에서 이 정도의 실책 수를 기록했다는 것은 그가 평범하지만 얼마나 안정적인 플레이어였는지를 잘 보여주는 지표가 아닌가 싶습니다......

대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학교의 농구팀에 들어갈 수 있었고 드래프트에서도 하위 픽으로 간신히 프로에 진출한 호너섹.....올스타 출전은 1회 밖에 없지만 그는 커리어 13시즌 동안 12차례나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고 파이널에도 2번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2라운드 하위픽으로 비교적 짧은 커리어 13시즌 동안 그는 통산 15000득점 이상을 기록하는 성과도 남겼지요......

90년대의 유타는 명확하게 스탁턴과 말론의 팀이었습니다. 그들의 픽 앤 롤 하나만 가지고도 그들은 영원한 플레이오프 컨텐더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죠......하지만 그들의 옆에서 조용히 필요한 순간 득점과 어시스트를 하고 상대팀의 주득점원을 악착같은 수비하였던 호너섹과 같은 평범한 선수가 있었기에 그 시절 유타가 진정한 강팀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당연한 수순으로 그의 은퇴와 함께 구단은 그의 등번호 14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하였죠......화려한 슈퍼 플레이어는 아니지만 평범함과 꾸준함으로 리그에 자신의 족적을 뚜렷하게 남긴 호너섹과 같은 선수는 조던과 같은 선수들과는 또다른 위대함과 감동을 주지 않나 싶은 생각을 해봅니다.......

이상....제가 아는 선수중 가장 평범한 선수로 기억되지만 동시에 위대한 선수로 기억되는 호너섹에 대한 허접 포스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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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의 마지막까지 난 나로서 존재할 것이다 : [NBA] 1986년 드래프트...... 2009-07-20 20:13:21 #

    ... 포스팅이 있기에 링크로 대체할께요......마크 프라이스 커리어 : http://kaga4467.egloos.com/1356132제프 호너섹 커리어 : http://kaga4467.egloos.com/1475638자아...남은 선수는 드디어 문제의 데니스 로드맨이군요.......커리어와 성적만 놓고 본다면 이 선수는 2라운드에 지명된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명예 ... more

덧글

  • 바른손 2009/05/08 11:49 # 답글

    제프 호너섹.추억의 선수네요.
    동네아저씨 같은, 외모와 머리빗음과는 달리, 어떤 자세에서도 강철같이 단단했던 슛릴리스와 상체를 꼿꼿이 세우며 안정감이 있던 드리블이 기억이 나네요.길진 못하지만 짧고 정확했던 돌파후 시야도 좋았던 걸로 기억이 납니다.

    이번에도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NBA를 즐긴 시대가 비슷해서 좋네요.
  • 울프우드 2009/05/08 16:19 #

    바른손님 반갑습니다.....
    그렇지요....호너섹....정말 평범해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리그에 확실한 자신의 족적을 남긴 위대한 선수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서툰 글 항상 잘 읽어주셔서 감사하고요...확실히 바른손님과는 NBA를 즐긴 시대가 비슷한 것 같네요......^^
  • crdai 2009/08/14 20:27 # 답글

    90년대 초중반의 유타가 스탁턴-말론의 팀이었다면 호너섹이 가세한 90년후반에는 정확하게는 스탁턴 - 호너섹 - 말론의 팀이었다고 표현하는게 옳다고 주장하는 바입니다.(웃음)
    스탁턴 - 호너섹의 호리호리 비리비리 가드진(..)은 파워와 스피드로 가득찬 리그의 가장 큰 이단아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만큼 이 백인가드라인은 정교하기 그지없었지요. 패스면 패스, 슛이면 슛.
    수비도 첨 유기적이었던게 확연하게 1대1에서 밀리는데도 불구하고 이 두 비리비리 아저씨의 수비는 어느틈에 상대팀의 공을 훔쳐서 공격하고 있었으니까 말이지요. 수비는 머리로 하는거라는걸 확연하게 깨닫게 해준 거랄까..

    여담입니다만, 루키였던 제리 스택하우스에게 스트레이트 얻어맞으셨던 이야기가 나왔으면 했습니다. (웃음)
  • crdai 2009/08/14 20:32 # 답글

    그리고 개인적인 이야기 입니다만, 유타의 센터가 올든 폴리니스와 그랙오스터텍만 아니었어도 한번쯤은 우승할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해 봅니다. (웃음) 특히 오스터텍은...진짜...BQ가 딸려도 어쩜 이리 딸리나 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던 기억이 나는군요. 룩 롱리가 좋은 센터로 보일 정도였으니. orz..
  • 울프우드 2009/08/15 12:47 #

    룩 롱리는 멍청한 생김새와는 달리 제법 센스있는 플레이도 보여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crdai님 말씀대로 오스터 텍은.....사이즈 말고는 별로 보여준 것이 없었던.....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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