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때의 포스를 NBA까지 끌어내지 못한 Christian Laettner....... 스포츠



네.....오랜만의 농구 관련 포스팅입니다......

최근 드래프트 관련 포스팅들을 쭉 보면서 역대 드래프트 상위 픽 지명 선수 중 대학 때의 포스를 결국 보여주지 못하고 사라져간 선수가 누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한번 해보게 되었습니다......대학 때 슈퍼 플레이어의 모습을 보여주다 결국 프로에서는 그저 그런 선수로 있다가 사라진 선수들은 상당히 많이 있었습니다......

이번 드래프트에서 상위 픽 지명 선수들은 그들을 지명한 팀들의 미래로 주목 받으며 NBA에 입성하겠지만 과연 그들 중 몇명이 몇 년 뒤 실제 NBA의 미래가 되어 리그를 호령하고 있을까요....(직접 보기 전에는 모르겠습니다.....네 모르겠어요....^^)

뭐 그래서 이런 저런 선수들을 떠올리다가 불현듯 오늘 이 선수가 떠올랐습니다........

80년대말~90년대 초 대학 농구 최고의 스타 플레이어로 NCAA를 호령하며 4년 동안 듀크 대학을 2번이나 우승으로 이끌었던 선수......그리고 1992년 바로셀로나 올림픽에 출전한 미국의 농구 대표팀(지금도 전 이 팀이야 말로 진정한 드림이었다고 생각합니다)에 유일하게 선발된 대학생 선수.......

네.....바로 크리스찬 레이트너입니다.......바로셀로나 올림픽에서 플레이하는 모습을 처음 봤을때 그리 대단하게 다가오지는 않았지만 유일한 대학 선수로서 어쩌구하는 해설자들의 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지요. 그리고 눈에 띄는 활약을 많이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쟁쟁한 프로 최고의 선수들과 호흡을 맞추며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플레이를 보여주는 이 선수는 당시 꽤나 제게 흥미를 주는 선수였습니다.......

레이트너는 1992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3번 픽으로 당시 약체였던 미네소타에 지명되었습니다. 그해 1라운드 1번 픽은 다들 알고 있듯이 지금도 리그 탑 클래스 빅맨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샤킬 오닐(올랜도 지명)이었고 1라운드 2번 픽은 센터의 명가 조지 타운 대학 출신의 투사 알론조 모닝(샬롯 지명)이었죠. 그리고 3번 째 픽을 가지고 있었던 미네소타는 주저없이 2m 10cm, 106kg의 탄탄 체격과 함께 다양한 공격 루트, 그리고 4번과 5번 포지션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크리스찬 레이트너를 선택하였습니다......

오닐이나 모닝에 비해 프로에서의 임팩트가 약해 그리 주목받지는 못했지만 대학 시절 레이트너의 성적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일단 대학 시절 성적을 한번 살펴보죠......

신입생이었던 88-89시즌 레이트너는 36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16.9분을 플레이하며 필드골 성공률 72.3%, 평균 8.9득점, 4.7리바운드를 기록하였고, 두번째 해인 89-90시즌에는 38경기 출장, 평균 29.9분을 플레이하며 필드골 성공률 51.1% 3점슛 성공률 50%, 평균 16.3 득점에 9.6리바운드를 기록하였습니다. 3학년 때는 39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30.2분을 플레이하며 필드골 성공률 57.5%, 평균 19.8득점, 8.7 리바운드, 4학년 시절에는 평균 32.2분을 플레이하며 필드골 성공률 57.5%, 21.5득점에 7.9리바운드를 기록하였습니다. 대학 4년 간 그는 총 148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16.6득점, 7.8리바운드를 기록하였고 필드골 성공률 57.4%, 3점슛 성공률 48.5%, 자유투 성공률 80.6%를 기록하였죠.......오닐과 모닝이라는 불세출의 센터들이 드래프트에 나오지 않았다면 1번으로 지명되어도 부족하지 않을 성적을 대학 4년간 남겼습니다.

1992년 바로셀로나 올림픽에서 드림팀의 일원으로 금메달을 획득한 레이트너는 92-93시즌 드디어 대망의 NBA 데뷔 시즌을 맞이하게 됩니다. 당시 전력이 약했던 미네소타는 이 백인 루키를 첫 시즌부터 주전으로 기용하였습니다. 레이트너는 81경기에 선발로 출장하여 평균 34.9분을 플레이하며 필드골 성공률 47.4%를 기록하며 평균 18.2득점, 8.7리바운드, 2.8 어시스트라는 준수한 성적으로 자신의 데뷔 첫해를 성공적으로 보내게 됩니다.

이후 95-96시즌 중반 팀을 애틀란타로 옮기기 전까지 레이트너는 +15득점, +7리바운드 정도의 성적을 꾸준히 올리며 약체 미네소타를 떠받치며 리그에서 자신의 자리를 잡아갔지만 항상 플옵에서 탈락하는 약팀에 있어 그런지.....또한 데뷔 첫해부터 리그에 강력한 임펙트를 주었던 오닐과 모닝의 그늘에 가려서 그런 것인지 큰 주목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95-96시즌 중반 팀을 애틀란타로 옮기며 레이트너 역시 드디어 염원하던 강력한 팀 동료들을 얻게 되었고 플옵에 진출함과 동시에 올스타전에도 선발되는 등 드디어 탑 스타의 위치로 올라가는 듯 보였습니다.......애틀란타 시절(비록 두시즌 반 정도의 짧은 시기였지만) 레이트너의 팀 동료는 당시 정확한 삼점슛과 강력한 디펜스로 상대팀 포인트 가드들을 압박하였던 무키 블레이락(이 선수 커리어도 언제 한번은.....), 그리고 장신 슛팅 가드로 강력한 공격력을 보여주었던 스티브 스미스(이 선수도 언제 한번....샤프한 이미지와 함께 장신을 이용한 포스트 업을 이용하여 득점을 올리던 모습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고 센터에는 리그 최고의 수비형 센터인 무톰보 옹이었습니다. 이러한 동료들과 함께 레이트너는 96-97 시즌 82경기 모두를 선발 충장하여 평균 18.1득점, 8.8리바운드를 기록하며 동부 컨퍼런스를 대표하는 4번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그리고 당연히 팀은 플옵에 진출하였고 레이트너 역시 올스타에 선정되는 등 최고의 한해를 보내게 됩니다. 하지만 이듬해 레이트너는 출장 경기 수와 시간, 그리고 필드골 성공률과 득점, 리바운드 수치의 전반적인 하락을 겪게 되고(74경기 출장 중 49경기 선발, 플레이 타임은 30.8분, 13.8득점, 6.6 리바운드 기록) 그 시즌을 마지막으로 짧았지만 행복했던 애틀랜타 시절을 마감하고 디트로이트로 팀을 옮기게 됩니다.

디트로이트에서 맞이한 첫번째 시즌은 98-99시즌.....시작이 좋지 않았죠......부상으로 인해 16경기 밖에 출장하지 못하였고 플레이타임은 데뷔 이후 처음으로 20분대로 떨어지게 됩니다(21.1분). 그리고 득점 역시 처음으로 10점 미만으로 리바운드 역시 5개 미만으로 떨어지며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디트로이트에서 두번째 시즌에서는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와 82경기 모두를 선발 출장하며 평균 29.8분을 플레이하였고 득점은 평균 12. 2득점, 리바운드는 6.7개를 기록하며 회복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이 시즌이 레이트너의 풀타임 선발 출장 마지막 시즌이었지요. 이후 레이트너는 00-01 시즌에 댈러스로 팀을 옮겼다가 시즌 중 다시 워싱턴으로 팀을 이적하게 됩니다. 이후 03-04시즌까지 워싱턴에서 플레이한 레이트너의 모습에서 원조 드림팀의 유일한 대학생 멤버이자 NCAA 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중 한명의 모습은 더이상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워싱턴에서 플레이한 세시즌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그의 득점력은 해가 갈수록 하락하였고 리바운드 수치 역시 꾸준히 떨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워싱턴에서 플레이한 마지막 시즌인 03-04시즌의 레이트너의 기록은 48경기 중 18경기 선발 출장하여 평균 20.5분을 플레이하였고 5.9 득점에 4.8 리바운드를 올리는데 그쳤습니다.

결국 레이트너는 04-05시즌과 함께 동부의 강호인 마이애미로 팀을 옮겼지만 더 이상 과거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며 49경기 모두 교체로 출장하여 평균 15.1분 동안 플레이하는데 그치게 되고 5.3 득점, 2.7 리바운드라는 데뷔 이후 최악의 성적을 남긴채 은퇴를 선언하게 됩니다.

커리어 통산 13시즌 동안 그가 기록한 성적은 총 868경기 출장(이 중 선발 692경기), 평균 플레이 타임은 29.7분이었으며, 필드골 성공률 48%, 3점슛 성공률 26.1%, 평균 12.8 득점(총 11121점), 6.7 리바운드(총 5806 리바운드), 2.6 어시스트(총 2224어시스트)를 기록하였습니다. 13시즌 중 플레이오프에는 일곱번 모습을 드러냈지만 파이널 진출 경험은 없으며 올스타 선정은 딱 1차례이지요.

그의 통산 성적을 쭉 보고 있으면 그리 나쁜 커리어를 쌓은 선수는 아니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백인 파워 포워드로서 13시즌 동안 통산 10000득점 이상, 5000리바운드 이상을 기록하였고, 평균 성적도 +12 득점, +6 리바운드라면 레전드는 아니지만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낸 선수 중 한명 정도로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이트너에 대한 팬들의 인식은 그리 좋지 못하죠. 대학 시절의 명성에 의해 과대포장된 선수라는 평도 있었고 역대 드래프트에서 지명된 상위 픽 선수 중 가장 실망스런 선수라는 평가도 있습니다.(물론 제가 생각하는 최악의 상위 픽은 1984년 1라운드 2번으로 포틀랜드에 지명된 그 샘 보위라는 빅맨이라지요.....)

하지만 그것은 그의 기량 문제도 있지만 그것만으로 원인을 삼기에는 그의 통산 성적이 그리 나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조금 의아하다는 생각도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결국 많은 분들이 지적하시는 것처럼 그의 드래프트 동기가.....1992년 드래프트의 1번과 2번이 바로 샤킬과 알론조였다는 점......데뷔 시즌부터 그들은 리그의 탑 클래스 센터들과 대등한 경기력을 보여주며 이후에도 리그를 주름잡는 선수들로 성장한 반면(특히 샤킬은 뭐.....이러니 저러니 해도 레전드 급 센터로 이젠 평가를 해야겠지요. 알론조 역시 뛰어난 투지와 스피드 경기력으로 좋은 활약을 펼쳤고 커리어 말년 악화된 건강에도 불구하고 골밑을 사수하던 그의 전사 이미지로 많은 팬들로 인정받았습니다.) 레이트너는 그저 평범한 주전 파워 포워드 정도의 성장에서 멈춰버린 점이 그를 지나치게 평가절하하고 동시에 폄하하는 이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즉.....대학 시절 레이트너는 분명 대단한......그리고 위대한 선수였습니다. NCAA 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를 꼽아보라면 분명 레이트너의 이름도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것이 그의 한계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딱 거기까지가 레이트너가 보여줄 수 있는 최상의 모습이었다는 것이지요. 반면 샤킬과 알론조는 대학 시절에 보여준 그 뛰어난 모습 이상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었고 그것을 NBA 데뷔 이후 멋지게 터뜨림으로써 레전드로 올라섰고 반면 그들과 1992년 드래프트 빅 3으로 꼽혔던 레이트너는 그 모습에서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였다는 것. 아마 이 차이가 그리 실패한 커리어로 선수 생활을 마감한 것이 아닌 레이트너를 지나치게 실패한 선수로 사람들이 기억하는 이유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제인가요? 올해 드래프트가 끝났지요. 올해 지명된 선수들이 다가올 새 시즌에 어떠한 모습으로 리그에 적응하고 또 어떠한 선수들이 10년 정도 뒤에 리그를 주름잡는 선수들로 성장할지 궁금해집니다.......

조만간 시간이 되면 80-90년대에 이루어진 드래프트에서 지명된 선수들 중 실패한 선수와 성공한 선수들을 중심으로 포스팅을 한번 해볼까 생각 중입니다.(생각만큼 쉬운 작업이 아니라 언제쯤 글이 마무리될지는 저도 모르겠지만......)








덧글

  • 바른손 2009/06/29 11:10 # 답글

    말미에서 언급하신, 시리즈는 꼭 기대해보겠습니다.저도 아는 선수가 , 아는 일담이 있다면 꼭 추가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릭 크리스천 레이트너는 저도 막 nba에 몰입하려던 시절에 드림팀에 유일하게 뽑인 대학생(그것도 백인) 이란 점에서 여러모로 기억에 오래 남아있는 선수입니다.

    사실, 성격적인 부분에서 각 팀에서 주축선수들과 트러블이 늘 있었던 부분이 안정적인 커리어를 잇지 못하게 한 또다른 이유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톰 구글리오타도 생각이 나네요.
  • 울프우드 2009/06/29 13:26 #

    바른손님 반갑습니다.

    아 성격적인 면을 제가 빠뜨렸네요.....그 강한 자존심......옳으신 지적입니다......

    그렇지요....톰 구글리오타도 언제 한번 슬쩍 정리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포스팅 말미에 제가 언급한 시리즈는.....구상중이긴 한데 그리 기대를 많이 하시지는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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