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 1985년 드래프트에 대해 스포츠

지난 포스팅에 이어 오늘은 1985년 NBA 드래프트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984년 드래프트에서 올라주원, 조단, 바클리, 스탁턴이라는 훗날 레전드가 될 위대한 선수들과 오티스 도프, 앨빈 로버트슨, 샘 퍼킨스, 케빈 윌리스 등 훗날 리그에서 안정적인 커리어를 보내게 되는 다수의 선수들이 배출되었었죠......

1985년 역시 그 무게감에 있어서 1984년 드래프트에 비해 절대 뒤쳐지지 않는 멤버들이 드래프트를 통해 NBA 무대를 밟게 됩니다.

우선 1985년 드래프트 상위 픽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팀명-선수명-출신대학
1 NY Patrick Ewing Georgetown
2 Ind Wayman Tisdale Oklahoma
3 LAC Benoit Benjamin Creighton
4 Sea Xavier McDaniel Wichita State
5 Atl Jon Koncak Southern Methodist
6 Sac Joe Kleine Arkansas
7 GS Chris Mullin St. John's
8 Dall Detlef Schrempf Washington
9 Clev Charles Oakley Virginia Union
10 Phoe Ed PinckneyVillanova
11 Chi Keith Lee Memphis State
12 Wash Kenny Green Wake Forest
13 Utah Karl MaloneLouisiana Tech
14 SA Alfredrick Hughes Loyola (IL)
15 Den Blair Rasmussen Oregon 
16 Dall Bill Wennington St. John's
17 Dall Uwe Blab Indiana
18 Det Joe Dumars McNeese State
19 Hous Steve Harris Tulsa
20 Bos Sam Vincent Michigan State

1라운드 20위까지를 끊어놓고 보면 눈에 띔과 동시에 기억에 남을 만한 선수들은 대략 여섯명......세명은 레전드 반열에 오른 선수들이고 나머지 세명은 레전드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 성공적인 커리어를 경험한 선수들입니다.......

자아 그럼 이 여섯명을 중심으로 이들의 루키 시즌 성적과 통산 성적들을 한번 살펴보도록 하죠......

1라운드 1번은 뉴욕 닉스에 지명된 패트릭 유잉입니다.



1984년 드래프트때까지만 하더라도 1라운드 1번 픽은 동부와 서부 컨퍼런스 최하위팀들이 동전을 던져 1번 픽과 2번 픽을 나누어가졌습니다. 그러다가 1985년 드래프트와 함께 오늘날과 같은 로터리 제도가 도입되었죠. 그 결과 동부 컨퍼런스 최하위팀이 아니었던 뉴욕 닉스가 1라운드 1번 픽을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선택은 당연히 당시 대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명임과 동시에 당장 NBA의 골밑에서도 통할 기량을 갖춘 조지 타운 대학의 명센터 패트릭 유잉이었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해 유잉은 뉴욕에서 보낸 커리어 15년 동안 뉴욕을 상징하는 가장 위대한 선수이자 팀의 중심으로 제 역할을 충분히 했지만 MVP 수상 경력도 없고, 동시에 팀을 우승으로 이끄는데는 실패하였죠. 물론 유잉보다는 뒤에 지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리그 MVP 2회 수상에 통산 득점 랭킹 2위에 올라있는 칼 말론, 그리고 말론보다도 뒤에 지명되었지만 두개의 챔피언 반지와 1번의 파이널 MVP 경력이 있는 조 듀마스가 있기에 과연 뉴욕이 유잉을 1번으로 지명한 것이 최선이었을까라는 논쟁도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결과론적인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닉스의 센터였던 빌 카트라이트는 이미 골밑에서의 한계를 명확히 보이고 있었고 그런 상황에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센터로 성장할 수 있는 팀의 기둥을 선택한 것은 당시로서는 최고의 선택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리고 루키 시즌.....유잉은 부상으로 전 경기에 출장하지는 못하였지만 50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35.4분을 플레이하며 평균 20.0 득점, 9.0 리바운드, 2.0 어시스트, 1.1 스틸, 2.1 블락슛을 기록하며 올해의 신인상을 수상하며 팀의 기대에 부응하였으며 두번째 시즌부터 리그를 대표하는 센터이자 닉스의 기둥으로 뉴욕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슈퍼 스타로 성장하게 됩니다.......

통산 성적은 17시즌에 걸쳐 1183경기 출장(이중 선발 출장 1122), 평균 21.0득점(통산 24,815점), 9.8 리바운드(11,607 리바운드), 2.4 블락슛(2894 블락슛), 1.9 어시스트에 1.0 스틸을 기록했습니다.......17년 동안의 커리어 동안 총 14차례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으며 파이널에는 2회 진출하였지만 결국 챔피언 반지를 끼는데는 실패하고 결국 은퇴를 하게 됩니다. 아직까지 공격과 수비 주요 부분에 있어 닉스의 프랜차이즈 기록은 모두 유잉의 이름으로 채워져있습니다......(하아....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선수 중 한명이었는데 그 반지 하나 때문에......허어......)

그리고 1985년 드래프트에서는 또 한명의 레전드가 등장합니다. 1라운드 13번으로 유타에 지명된 루지아나 공대 출신의 파워 포워드 칼 말론이지요. 1984년 드래프트에서도 16번 픽을 가지고 존 스탁턴이라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포인트 가드를 건지는데 성공한 유타는 85년 드래프트에서도 불과 13번 픽으로 리그 역사상 가장 위대한 파워 포워드 중 한명이 말론을 데리고 오는데 성공합니다.(운도 운이지만 유타 앞의 12개의 팀이 말론을 선택하지 않고 넘겨버렸다는 점에서 유타 프론트의 선수 파악 능력은.....흐음....)



대략 18년 동안이라는 긴 시간 동안 유타 경기에서 해설자나 캐스터들이 가장 많이 한 말 중에 하나가 아마 Stockton to Malone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리그 역사상 가장 강력했었던 이 콤비는 비록 챔피언 반지를 획득하지는 못했지만(그런 점에서 03-04시즌 반지를 찾아 레이커스로 옮겼다가 결국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그의 커리어답지 않은 은퇴를 한 말론이 너무 아쉽습니다. 기왕 없는거 그냥 스탁턴과 함께 유타의 전설로서 명예롭게 은퇴를 했었다면....쩝) 그들은 정말 가장 위대한 콤비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스탁턴이라는 걸출한 가드가 있었지만 말론이 가지고 있는 탁월한 득점 센스와 리바운드 능력은 스탁턴이 없었다할지라도 극강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루키 시즌 성적은 81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30.6분을 플레이하였고 필드골 성공률 49.6%, 8.9 리바운드, 2.9 어시스트, 14.9 득점을 올리며 성공적인 데뷔 시즌을 치렀다는 평가를 충분히 들을만큼 좋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목하여야 할 것은 커리어 19년 동안 그가 평균 20득점을 넘기지 못한 시즌은 루키 시즌과 그의 마지막 시즌이었던 03-04시즌 뿐이었습니다(03-04 시즌 레이커스 소속으로 42경기 출장, 13.2 득점, 8.7 리바운드). 그리고 나머지 17시즌 동안 그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스탁턴의 패스를 득점으로 연결시키며 매시즌 평균 20득점 이상을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80경기 이상을 출장하지 못한 시즌은 단축 시즌으로 운영된 98-99시즌과 마지막 시즌이었던 03-04 시즌 밖에 없었습니다. 엄청난 꾸준함과 내구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통산 성적은 1476경기 출장(이중 선발 출장이 1471경기), 평균 37.2분을 플레이하며 필드골 성공률 51.6%, 10.1리바운드(14986리바운드), 3.6어시스트(5248어시스트), 평균 25 득점(36928)득점을 기록하였습니다. 통산 득점은 NBA 최고의 득점 기계라 불리우는 마이클 조단을 앞서는 기록이며 그의 머리 위에는 레전드 압둘 자바 만이 자리하고 있을 뿐입니다. 하아....문제는 단지 반지가 없다는 것.......

자아....그리고 85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18번이라는 어정쩡한 순위로 디트로이트에 지명된 조 듀마스가 있습니다.



자신보다 상위 픽에 지명되어 레전드로 선정된 유잉, 말론과 함께 조 듀마스 역시 리그의 레전드로 불리기에는 손색이 없는 선수이고 유잉, 말론과는 달리 그는 두개의 반지와 파이널 MVP에 1회 선정된 경험이 있다는 점에서 앞선 두명보다는 좀 더 행복한 커리어를 보낸 선수라고 할 수 있을듯 합니다.

NBA에서 13년의 커리어를 디트로이트에서만 보낸 듀마스는 그 기간 동안 아이자이어 토마스와 함께 플레이오프 10회, 파이널 3회(이중 2회 우승), 올스타 6회 선정, 파이널 MVP1회, 4번의 디펜시브 퍼스트팀, 1번의 디펜시브 세컨드팀, all NBA  세컨드 팀 1회, 서드팀 2회에 선정되었으며, 1994년에는 드림팀 2의 일원으로 세계 선수권에 출전하여 미국을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정확한 슛팅을 기반으로 한 꾸준한 득점력과 함께 디펜시브 퍼스트 팀에 4회나 선정될만큼 강력한 수비력으로 상대 에이스들을 틀어막았던 또 한명의 레전드이지요. 2005년인가 2006년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습니다.(참고로 유잉은 2008년, 말론은 2009년에 각각 명예의 전당에 입성)

루키 시즌 성적은 82경기 출장(이중 선발 45경기), 평균 23.9분을 플레이하며 필드골 성공률 48.1%, 평균 9.4 득점, 1.5 리바운드, 4.8 어시스트, 0.8 스틸을 기록하였습니다. 유잉이나 말론에 비하면 조금 초라한 성적이지만 루키 시즌에 전경기에 출전하여 이 정도의 성적을 올린 것은 결코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통산 성적은 1018경기 출장, 평균 34.5분을 소화하였고, 필드골 성공률 46%, 3점슛 성공률 38.2%, 평균 16.1득점(16401득점), 2.2리바운드(2203리바운드), 4.5어시스트(4612어시스트), 0.9스틸(902스틸)을 기록하였습니다.

1984년 드래프트에서 이후 레전드 급으로 평가받는 마이클 조단, 올라주원, 바클리, 스탁턴이 배출되었다면 1985년 드래프트에서는 유잉, 말론, 듀마스라는 또다른 레전드들이 배출된 드래프트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 세명의 선수 이외에도 1985년 드래프트를 통해 NBA에 데뷔하여 이후 괜찮은 커리어를 보낸 선수들이 다수 있습니다.

상위 픽으로 지명된 선수들중에는 7,8,9번으로 지명된 크리스 멀린과, 슈렘프, 그리고 예전에 한번 포스팅에서 다루었던 찰스 오클리가 보이네요......

우선 1라운드 7번으로 지명된 크리스 멀린.....제 기억에는 드림팀 1의 멤버로 정확한 3점 슛 능력을 갖춘 준수한 포워드입니다. 당시 팀 하더웨이를 중심으로 빠르고 화려한 농구를 구사한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한 축이었지요.



커리어 16년 중 13년을 골든스테이트에서 플레이한 이 백인 슛터는 백인들의 영웅인 레리 버드에 가려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많이 알려진 선수는 아닙니다. 하지만 1985년 드래프트를 통해 리그에 모습을 드러낸 이 뛰어난 슛터는 16년이라는 긴 커리어 동안 뛰어난 성적을 남긴 훌륭한 선수입니다.

루키 시즌 성적은 55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25.3분을 플레이하였고, 평균 14.0 득점, 2.1 리바운드, 1.9 어시트라는 준수한 성적으로 데뷔시즌을 마무리하였습니다.(하지만 루키 시즌에는 3점슛 성공률이 18.5%에 불과하였다는 점이 조금......)

통산 성적은 986경기 출장, 평균 32.6분을 플레이하였고, 필드골 성공률 50.9%, 3점슛 성공률 38.4%, 18.2 득점, 4.1리바운드, 3.5 어시스트를 기록하였습니다. 플레이오프에는 8회 진출하였고, 파이널 1회 진출, 올스타 4회 선정되었습니다. 1992년 드림팀 1의 멤버로 올림픽 금메달도 손에 넣었습니다. 성적만 놓고 본다면 앞에서 언급한 듀마스에 비해 꿀릴 것이 없어 보입니다만 이 선수를 레전드 급으로 분류하기에는 뭔가 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지만 탑클래스의 선수였고 뛰어난 커리어를 보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1라운드 8번 지명권을 가지고 있었던 댈러스는 원조 독일 병정 데틀렘프 슈렘프를 지명하게 됩니다.



아 이선수는 시애틀 시절이 가장 기억에 남아서 그런지 다른팀의 유니폼을 입은 모습이 조금.........

식스맨 상도 수상하였고 올스타에도 3회 선정되는 등 외국인으로는 상당히 훌륭한 커리어를 보낸 선수로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선수의 경우 댈러스에 지명된 것이 불운 아닌 불운이라 할까요. 2m 6cm의 괜찮은 신장에 준수한 리바운드 능력과 득점력을 보유한 슈렘프는 댈러스가 1984년 지명한 샘 퍼킨스에 밀려 댈러스에서 보낸 다섯 시즌 동안은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1988-89시즌 도중 인디애나 페이서스로 팀을 옮기게 되면서 이 선수는 리그에서 손꼽히는 식스맨이자 포워드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커리어 16년 동안의 통산 성적은 13.9 득점, 6.20 리바운드, 3.4 어시스트로 나쁘지 않았으며, 플레이오프에는 16년 간 14회 진출하였습니다.

약간 다른 이야기로 1984년과 1985년 드래프트에서 댈러스 프런트는 도대체 무슨 짓거리를 한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데, 퍼킨스와 슈렘프가 나쁜 선수들은 아니지만 댈러스는 이 둘을 얻기 위해 84년에는 바클리와 스탁턴을, 85년에는 말론과 듀마스를 놓치는 어처구니 없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85년 드래프트에서 댈러스는 1라운드에서만 세장의 지명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슈렘프도 슈렘프지만 16번, 17번 지명은.....웨닝턴과 블랩.....하아 참고로 빌 웨닝턴의 통산 성적은 커리어 12년 동안 4.6득점, 3.0 리바운드가 전부였고, 블랩은 6년이라는 짧은 커리어 동안 평균 2.1득점, 1.8리바운드라는 재앙과 같은 성적을 남기고 리그에서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다음으로 살펴볼 선수는 예전에 포스팅 주제로 다루었던 진정한 블루워커 찰스 오클리입니다.


이 선수의 커리어 대해서는 예전에 포스팅한 것이 있으니 참고로 하시면 됩니다.

클리블랜드에 지명되자마자 시카고로 팀을 옮긴 이 골밑의 전사는 18년이라는 긴 커리어 동안 전쟁터와 같은 골밑을 굳건히 지키며 궂은 일을 도맡아하였던 오클리는 루키 시즌 77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23분을 플레이하였고, 9.6득점, 8.7 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시카고의 골밑에 활기를 불어넣었고 코트 안팎에서 팀의 떠오르는 에이스 조단의 보디가드를 자처하며 팀의 구심점 역할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88-89시즌의 시작과 함께 그는 뉴욕 닉스로 팀을 옮겨 패트릭 유잉과 함께 뉴욕의 강력한 골밑을 구축하는데 한 축을 담당하였지요.

통산 성적은 커리어 18년 동안 1282경기 출장, 평균 31.4분을 플레이하며, 필드골 성공률 47.1%, 9.7득점(12417득점), 9.5리바운드(12205리바운드), 2.5 어시스트(3217어시스트)를 기록하였으며, 플레이오프에는 15회, 파이널에는 1회 진출하였고, 올스타에도 1번 선정되었습니다. 득점과 리바운드 숫자가 거의 비슷할 정도로 오클리의 보드 장악력은 강력하였고, 이러한 능력을 바탕으로 85년에 드래프트된 선수들 중에서도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낸 선수라고 할 수 있지요.

이외에도 1985년 드래프트에서 훗날 기억될만한 선수들이 더 있습니다. 1라운드 4번으로 지명된 자비에르 맥다니엘 역시 10년의 커리어 동안 평균 15.6 득점, 6.1 리바운드, 2.0 어시스트라는 괜찮은 성적을 남겼지요. 그리고 1라운드 23번으로 지명된 레이커스에 지명된 A.C 그린도 화려하진 않지만 튼실한 골밑 요원으로 16년의 커리어 동안 9.6득점, 7.4 리바운드라는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1라운드 24번으로는 90년대 초반 드렉슬러와 함께 포틀랜드의 서부의 강호로 이끌었던 테리 포터도 있었습니다(통산 12.2 득점, 5.6 어시스트, 3.0 리바운드). 그리고 3라운드에 지명되었지만 훗날 덴버에서 불꽃의 4년을 보낸 마이클 애덤스도 1985년 드래프트를 통해 리그에 발을 들이게 되죠(통산 성적은 평균 14.7득점, 6.4 어시스트, 2.9 리바운드였으며 90-91시즌에는 66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26.5득점, 10.5 어시스트, 2.2 스틸이라는 괴물과 같은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2라운드 마지막에 뉴욕에 지명된 제럴드 윌킨스(도미니크 윌킨스의 동생) 역시 평균 10득점 이상의 공격력과 조단의 전담 수비수로 괜찮은 커리어를 보낸 선수 중 한명이지요(통산 성적은 커리어 13년 동안 평균 13.0 득점, 3.0 어시스트, 2.9 리바운드).

1985년 드래프트에서 뉴욕 닉스는 이후 15년 동안 팀의 상징이자 기둥이요, 뉴욕 시민들의 자랑으로 성장하게 되는 패트릭 유잉을 지명하였고 2라운드에서도 조단을 제대로 디펜스 할 수 있는 사이즈를 갖춘 윌킨스를 지명하여 괜찮은 선택을 한 팀이었던 반면 댈러스는 84년에 이어 85년에도 1라운드 지명권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실패한 팀으로 남게 됩니다.(정말....2년 동안 드래프트에 나온 그 많은 선수들 중 어찌 한명을 못 건지는지.....)

아 길군요......하긴 선수 1명의 커리어를 정리하는 것만 해도 보통 일이 아닌데 이거 여러 명을 한꺼번에 정리하려니 보통 힘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왜 이런 주제로 포스팅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인지.....하아....)

이 정도로 1985년 드래프트에 대해서는 마무리하겠습니다. 조만간 86년 드래프트에 대해서도 간단하게 살펴보는 글을 올릴께요.....




덧글

  • 폭주천사 2009/07/14 10:47 # 삭제 답글

    안녕하세요. 바른손님 블로그 타고 넘어왔습니다.

    멋진 포스팅 잘 봤습니다. ^^ 페트릭 유잉. 저도 참 좋아하는 선수였는데 그놈의 반지가 뭔지..말년에 시애틀로 올랜도로 옮겨다닌 모습은 아쉬웠었지만 유잉은 여전히 뉴욕의 심장이죠.

    85년 상위픽이 좀 뻘픽이 많네요. 존 콘칵이나 조 클라인은 파울머신 백인 센터들로 기억하고 있는데 로터리 픽들.얼마전 암으로 세상을 떠난 웨이먼 티스데일의 이름도 보이네요. 티스데일은 은퇴후에 재즈 뮤지션으로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냈다고 하더군요.


    앞으로 즐겨 찾기 해놓고 자주 들르겠습니다. 86년 드래프트 관련 글도 기대하겠습니다. ^^
  • 울프우드 2009/07/14 14:51 #

    폭주천사님 반갑습니다.....
    부족한 글 잘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티스데일이 암으로 세상을 떠났군요....몰랐습니다.....허어.....

    폭주천사님 말씀대로 85년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뻘픽이 제법 있었는데 그 중심에는 아무래도 댈러스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86년 드래프트에 대한 글도 시간 여유가 될때 조만간 올리도록 할께요....^^
  • 바른손 2009/07/16 11:39 # 답글

    예비군 훈련탓에 좋은 글을 이제서야 봤네요.폭주천사님도 들르셨군요 *.*/

  • 바른손 2009/07/16 11:45 # 답글

    마이클 애덤스도 기억이 나네요.정말 불꽃같은 득점력을 보여줬었는데 말입니다.
    그외에도 이 해에도 참 좋은 선수들이 많았어요.tmc의 멀린,가장 강인했던 백인유럽선수중 하나인 슈렘프,조 두마스....참 좋은 선수들이 많았네요.
  • 울프우드 2009/07/16 16:51 #

    바른손님 반갑습니다......

    네...85년에도 확실한 레전드급들 선수들과 훌륭한 커리어를 보낸 선수들이 다수 있더라고요. 마이클 애덤스는 단신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짧고 굵게 덴버에서 불꽃을 태운 선수라......

    예비군 훈련 받느라 고생많으셨고 항상 부족한 글 잘 읽으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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