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 1986년 드래프트...... 스포츠

오랜만에 포스팅을 합니다......

지난 번 포스팅에서 1985년 드래프트에 대해 살펴보았으니 오늘은 1986년 드래프트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죠.......

레전드 급 선수들이 쏟아져나온 84, 85년 드래프트와 달리 86년 드래프트에서는 레전드 급이다라고 벌떡 일어날 만큼의 플레이어들은 그리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길던 짧던 리그에 한획을 그은 훌륭한 플레이어들은 86년 드래프트에서도 다수 쏟아져나왔고 그 중에서는 팬들의 기억 속에 오랫동안 각인될 멋진 기록을 남긴 선수들이 많습니다......

동시에 1986년 드래프트를 통해 리그에 데뷔한 당시의 유망주들 중 유독 안타깝고 가슴 아픈 사연을 겪은 선수들도 많기에 86년 드래프트는 84, 85년 드래프트와는 조금 다른 측면에서 기억에 남을 드래프트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자아.....그럼 우선 86년 드래프트에 지명된 선수들을 살펴보죠......

1 Clev Brad Daugherty North Carolina
2 Bos Len Bias Maryland
3 GS Chris Washburn North Carolina State
4 Ind Chuck Person Auburn
5 NY Kenny Walker Kentucky
6 Phoe William Bedford Memphis State
7 Dall Roy TarpleyMichigan
8 Clev Ron Harper Miami (OH)
9 Chi Brad Sellers Ohio State
10 SA Johnny Dawkins Duke
11 Det John SalleyGeorgia Tech
12 Wash John Williams Louisiana State
13 NJ Dwayne Washington Syracuse
14 Port Walter Berry St. John's
15 Utah Dell Curry Virginia Tech
24 Port Arvidas Sabonis None (Soviet Union)

그리고 1라운드에 뽑히진 못했지만 2라운드 1순위(전체 25번)으로 마크 프라이스가 댈러스에, 그리고 2라운드 3번(전체 27번)으로 데니스 로드맨이 디트로이트에, 그리고 현재 포틀랜드의 감독으로 암흑의 시기를 보낸 포틀랜드를 정상 궤도로 올려놓으며 명감독으로 평가받는 네이트 맥밀란이 2라운드 6번(전체 30번)으로 시애틀에, 2라운드 22번(전체 46번)으로 제프 호너섹이 피닉스에 지명되어 상위 픽은 아니지만 하위 픽에서 괜찮은 선수들이 쏟아져나오기도 했습니다......

자아 그럼 일단 1라운드에 지명된 선수들 중 훌륭한 커리어를 보낸 선수들의 모습들을 기록을 토대로 간략히 알아보도록 하죠.

1라운드 1번 Brad Daugherty


지금이야 클리블랜드 하면 르브론의 팀이지요.....르브론이 등장하기 이전 2000년대의 클리블랜드는 하위권을 전전하던 암흑의 팀이었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 이전.....그러니까 대략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까지의 클리블랜드는 우승은 몰라도 매년 플옵에는 오를만한 전력을 갖춘 상당히 탄탄한 팀이었고(물론 조던에 철저히 눌리면서 플옵 초반에 탈락을 했지만) 그 중심에는 1986년 드래프트 전체 1번으로 클리블랜드에 지명된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출신의 명센터 도허티가 있었습니다.......

오닐 등장 이전 리그를 호령했던 4대 센터를 꼽으라고 한다면 90년대 초반까지는 유잉, 올라주원, 로빈슨에 도허티까지 포함될 정도로 그의 능력은 출중했습니다.....15점 이상의 득점과 10개 전후의 리바운드 능력,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선수의 장점은 센터로서 그 패싱 능력 만큼은 특급이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부상으로 커리어가 지나치게 빨리 끝나버려 안타까움이 남는 선수입니다. 부상없이 오랫동안 커리어를 지속할 수만 있었다면 나름 레전드 급으로까지 인정받을 수 있었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해봅니다.....

어쨌건 86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1번 픽을 가지고 있었던 클리블랜드는 미련없이 이 뛰어난 센터를 지명하여 포스트의 강화를 모색하였고, 도허티는 팀의 기대에 부응하며 루키 시즌인 1986-87시즌 80경기에선발 출장하여, 평균 33.7분을 플레이하며 필드골 성공률 53.8%, 평균 15.7 득점, 8.1 리바운드, 0.8 블락슛, 자유투 성공률 69.6%, 3.8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루키로서는 훌륭한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브래드 도허티의 커리어 중 가장 화려했던 시기는 88-89시즌이었습니다. 이 시즌 클리블랜드는 마크 프라이스와 브래드 도허티의 원투 펀치를 앞세워 당시까지 팀 역사상 최다승인 57승을 거두었습니다(이중 홈 37승.....이것도 당시까지의 팀 기록.....). 이 시즌 브래드 도허티는 78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36.2분, 평균 18.9득점, 평균 9.2리바운드, 3.7 어시스트, 평균 0.5 블락슛을 기록하며 팀을 이끌었고.....클리블랜드는 팀 역사상 가장 훌륭한 성적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며 팬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게 됩니다. 하지만 그 다음 시즌 도허티는 부상에 시달리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90-91, 91-92, 93-93 시즌에는 모두 70경기 이상을 기록하며 20득점-10리바운드를 전후한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지만 결국 93-94 시즌이 종료된 이후 부상에 주저앉으며 은퇴를 선언함으로써 여덟시즌이라는 짧은 커리어를 마감하게 됩니다.

통산 성적은 커리어 여덟시즌 동안 총 548 경기에 출장하며 36.5분을 플레이하였고 필드골 성공률 53.2%, 평균 19.0 득점에, 9.5 리바운드와 3.7 어시스트를 기록하였습니다......커리어 통산 그가 기록한 총 득점은 10,389득점으로 르브론에 의해 깨어지기 전까지 팀 최다 득점 기록이었으며 그가 기록한 5,227리바운드 역시 팀 기록이었습니다. 이 선수의 커리어가 유잉이나 올라주원, 로빈슨 만큼 오래 유지되었다만 아마 90년대 중반 이후 리그의 판도는 상당히 재밌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그 역시 위대한 센터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하면 부상으로 인해 빨리 은퇴한 도허티가 너무나 아쉬울 뿐입니다.

1라운드 2번 Len Bias



86년 드래프트에서 2번 픽을 가지고 있었던 보스턴은 버드 이후에 팀의 미래를 책임질 차세대 에이스로 메릴랜드 대학의 스윙맨인 Bias를 지명하게 됩니다. 대학 시절 뛰어난 득점력과 슛팅력으로 레리 버드의 뒤를 이을 적임자로 평가받았던 그를 2번 픽을 가지고 있던 보스턴이 마다할 이유가 없었죠. 첨부한 영상을 보면 Bias는 버드보다는 오히려 조던의 플레이 스타일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상에서 보이는 폭발적인 운동 능력과 움직임은 그가 리그에 데뷔하여 기대만큼 성장해주었다면 아마 90년대 마이클 조단의 훌륭한 라이벌로 그의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 혹은 장애물 이상의 라이벌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네....포스팅 서두에서 언급하였듯이 86년 드래프트에 지명된 선수들 중 유독 가슴 아픈 사연의 선수들이 제법 있다고 했는데 그 중의 한명이 바로 Bias입니다. 1라운드 2번 픽으로 보스턴에 지명되어 데뷔를 준비하고 있었던 그는 지명된지 이틀만에 심장마비로 사망하여 데뷔전을 치르지 못하였습니다. 네.....이 선수를 지명한 것이 보스턴의 실수는 아니었지만 결국 불운한 사태로 인해 보스턴은 전체 2번 픽을 가지고서도 아무것도 얻지 못하였고 이것은 결국 90년대 초반 이후 보스턴의 전력이 약화되는 한 원인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Bias 개인과 그의 가족들에게는 너무나 슬픈 일이었고, 팬들의 아쉬움과 슬픔도 그만큼 컸던 그런 선수이지요.

1라운드 4번 Chuck Person



그 다음으로 살펴볼 선수는 1라운드 4번으로 인디아나 페이서스에 지명된 척 펄슨입니다. 2m 3cm, 109.3kg이라는 탄탄한 체격의 이 선수는 The Rifle man이라 불리울 정도로 출중한 슛팅 능력을 갖춘 훌륭한 선수였지요.

루키 시즌은 86-87 시즌 척 펄슨은 82경기에 출장(이중 78경기 선발), 평균 36.0분을 플레이하며 필드골 성공률 46.8%, 3점슛 성공률 35.5%에 평균 18.8득점, 8.3리바운드, 3.6 어시스트, 1.1 스틸이라는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공수 전 부분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었고 신인왕에 선정되었습니다. 91-92시즌까지 인디아나에서 플레이하며 매 시즌 70경기 이상, 평균 35분 이상의 플레이타임을 소화하며 18~20득점, 평균 5~8리바운드, 3개 이상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레지밀러와 함께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까지 인디아나의 득점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 선수였지요.

하지만 92-93시즌 미네소타로 이적한 이후부터 급격한 하향세를 겪으며 식스맨으로 역할이 수정되었고 샌안토니오와 샬롯, 시애틀을 거쳐 99-00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하였습니다.

커리어 12년 통산 943경기(선발 622경기), 평균 30.7분을 플레이하였고, 필드골 성공률 45.8%, 3점슛 성공률 36.2%, 5.1 리바운드(4763리바운드), 2.8 어시스트(2645어시스트), 평균 14.7 득점(13858득점)라는 괜찮은 기록을 남겼습니다.

1라운드 8번 Ron Harper



86년 드래프트에서 가장 커다란 성공을 거둔 팀은 두말할 것도 없이 클리블랜드였습니다. 1라운드 1번 픽으로 대학 최고의 센터인 도허티를 지명하는데 성공한 클리블랜드는 1라운드 8번 픽으로 뛰어난 득점력과 농구 센스를 무장한 론 하퍼라는 훌륭한 가드를 지명하였습니다(이들 이외에도 2라운드에서 지명한 자니 뉴먼, 댈러스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영입한 마크 프라이스 등 클리블랜드는 86년 드래프트의 최대 수혜자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 선수는 많은 분들이 기억하고 계실테죠. 한때 20득점 이상의 득점력과 뛰어난 센스, 그리고 수비력으로 리그에서 각광을 받았던 훌륭한 선수였으며 조던이 야구 외도 후 복귀하여 96, 97, 98시즌을 3연패할때 불스에 이 론하퍼가 있었습니다. 그는 조던의 복귀와 함께 득점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뛰어난 수비수로 자신의 역할을 완벽히 수행하였으며, 이후 레이커스로 팀을 옮겨 2000년과 2001년에도 우승을 하였습니다.(챔피언 반지가 다섯개지요.....아....유잉, 말론, 바클리, 스탁턴이여......)

루키 시즌 성적은 82경기 출장(모두 선발), 평균 37.4분을 플레이하며 필드골 성공률 45.5%, 평균 22.9득점, 4.8리바운드, 4.8 어시스트, 2.6스틸, 1.0 블락슛을 기록하며 데뷔 첫해 리그 탑 클래스의 가드들이나 거둘 수 있는 성적을 올렸습니다. 89-90시즌 도중 클리퍼스로 트레이드되기까지 그는 클리블랜드에서 세 시즌+7경기를 소화하며 18득점 이상의 득점력과 4~6개 정도의 어시스트와 리바운드 2개 이상의 스틸을 기록하며 뛰어난 활약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89-90시즌 도중 클리퍼스로 트레이드되며 전형적인 약체팀의 에이스로 홀로 고군분투하는 힘겨운 나날들을 보내게 되지요.

그리고 94-95시즌과 함께 불스로 팀을 옮긴 하퍼는 공격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철저히 수비 위주의 선수로 변신을 꾀하게 되고, 이러한 그의 변신은 조던의 복귀와 함께 역사상 가장 강력한 팀 중 하나로 평가받는 불스 왕조의 한 축으로 그의 자리를 확고히 하게 됩니다.

99-00시즌과 00-01시즌 레이커스의 2연패에 힘을 보탠 그는 커리어 마지막 해를 우승으로 장식하고 멋지게 은퇴를 선언하게 되지요. 불스로 이적한 이후 은퇴까지 그는 98-99시즌을 제외하고는 단 한번도 평균 10득점 이상을 기록하지 못하였지만 전반적인 게임 운영과 디펜스, 승부처에서의 과감한 플레이로 베테랑다운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통산 성적은 커리어 15년 동안 총 1009경기 출장(선발 967경기), 평균 30.9분을 플레이하며 필드골 성공률 44.6%, 평균 13.8득점(13910득점), 4.3 리바운드(4309리바운드), 3.9 어시스트(3916어시스트), 1.7 스틸(1716스틸)을 기록하였습니다. 15년의 선수 생활 중 플레이오프에는 10번 진출하였고 이 중 5번은 파이널까지 출전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출전한 다섯번의 파이널에서 모두 우승을 경험하는 독특한 경험도 가지고 있는 선수이지요........

1라운드 24번 Arvidas Sabonis



참으로 안타까운 선수 중의 한명으로 86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24번으로 포틀랜드에 지명된 사보니스가 있습니다. 아마 NBA가 미국이 아닌 유럽의 농구 선수에게 엄청난 충격을 받았던 것은 아마 이 선수가 최초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네요.......

NBA가 사보니스를 주목하게 된 것은 1982년이었습니다. 1982년 17세의 나이로 소련 국가대표로 처음 선발되었던 사보니스는 국가대표의 일원으로 난생 처음 미국을 방문하여 NCAA 올스타 팀과 총 12차례의 경기를 치루게 됩니다. 미국 언론은 NCAA 올스타팀의 우세를 점쳤지만 12차례의 경기중 소련은 9승을 쓸어담았고 그 중심에는 소련 팀내의 득점을 책임졌던 사보니스가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스카우터들은 아직 냉전 체제가 종식되지 않아 적대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련의 사보니스에 주목을 하게 되고 그가 20세의 나이에 1985년 팀을 유럽 선수권과 유니버시아드 대회 우승으로 이끌자 애틀랜타 호크스는 85년 드래프트에서 4라운드 77번으로 사보니스를 지명하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21세 드래프트 하한 규정으로 인해 없던 일이 되었죠.

그리고 1986년 21세가 된 사보니스는 세계 선수권 결승에서 미국과 상대하게 됩니다. 게임 결과는 87:85로 미국이 극적으로 승리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경기는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이후 묘한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게 되는 사보니스와 데이비드 로빈슨의 첫 만남이었다는 점에서 아주 의미있는 경기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 경기에서 사보니스는 16득점 11리바운드, 로빈슨은 20득점 4리바운드를 기록하였습니다. 사보니스는 당시 미국 대표팀 부동의 센터를 상대로 한치의 밀림도 없는 강력한 플레이를 펼쳤습니다만 결국 우승컵은 미국에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86년 드래프트에서 포틀랜드는 언제 NBA에 온다는 기약도 없는 사보니스를 1라운드 24번 픽으로 지명하였습니다. 포틀랜드는 그때가 언제가 되든지 기다릴 수 있다는 입장이었지요(하지만 그것이 10년이나 뒤가 될지는......). 그리고 사보니스는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이전에 당한 무릎 부상을 극복하고 컴백하여 4강전에서 미국을 만나게 됩니다. 당시 미국 대표는 데이비드 로빈슨, 대니 매닝, 미치 리치몬드, 댄 멀리 등 이후 NBA를 주름잡게될 강력한 선수들로 구성되었지만 사보니스는 로빈슨을 상대로 골밑에서 최고의 존재감을 보이며 13득점 13리바운드를 기록하며 미국을 격침시킨 이후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하게 됩니다.

이후 사보니스와 로빈슨은 92년 바로셀로나 올림픽 4강에서도 맞붙게 됩니다. 소련의 해체로 리투아니아 대표로 출전한 사보니스는 드림팀 1의 압도적 화력을 맞아 고군분투하였지만 결국 50여점 차로 참패를 당하며 미국에 패배를 하게 되지요. 그리고 3년 뒤인 1995년 사보니스는 드디어 NBA 진출을 선언하며 10년 전에 자신을 지명한 포틀랜드와 계약, 리그에 데뷔하게 됩니다. 그의 나이 31세였지요.

늦은 나이에 데뷔한 관계로 NBA에서 그의 커리어는 7년으로 상당히 짧았습니다. 그리고 데뷔 당시 이미 무릎과 발목의 상태가 많이 좋지 못하였고 전성기 때에 비해 몸도 많이 불어 있어 지난 10년 동안 보여준 압도적 존재감을 리그에서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그는 7년이라는 짧은 커리어 동안 리그에서 손꼽히는 센터로 자신의 역할을 100% 수행하였습니다.

10년이라 늦게 이루어진 데뷔시즌인 95-96시즌 사보니스는, 그의 발목과 무릎 상태를 염려한 포틀랜드의 배려 속에 73경기에 출장(이중 선발 21경기), 평균 23.8분을 플레이하며 필드골 성공률 54.5%, 3점 슛 성공률 37.5%, 8.1개의 리바운드, 1.8개의 어시스트, 0.9개의 스틸, 1.1개의 블락슛, 그리고 평균 14.5득점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데뷔시즌을 보내게 됩니다. 이후 00-01시즌까지 평균 12득점에, 7-9개의 리바운드를 기록하며 포틀랜드의 기둥으로 활약하게 됩니다.(그의 성적이 의외로 부진하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지만 커리어 7년간 그의 평균 플레이타임이 24분 정도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훌륭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짧은 그의 커리어 기간 동안 최고의 시즌은 아마 선수 노조의 파업으로 인해 단축 시즌으로 운영된 98-99시즌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을 해봅니다. 50경기에 출장(이중 선발 48경기), 평균 27.0분을 플레이하며 평균 12.1득점, 7.9리바운드, 2.4어시스트, 1.3 블락슛을 기록한 그는 팀을 지구 1위로 이끌어 2번 시드로 플옵에 진출하여 1라운드에서 피닉스를 가볍게 스윕, 동시에 2라운드에서는 전년도 컨퍼런스 챔피언인 유타를 4승 2패로 제압하며 서부 컨퍼런스 결승까지 진출하는 기염을 토합니다. 그리고 결승에서 그의 일생의 라이벌인 로빈슨과 마지막 대결을 펼치게 되지요. 하지만 당시 샌안토이니오에는 로빈슨 이외에도 팀 던컨이 버티고 있었고 이미 30대 중반이 되었고 동시에 무릎과 발목에 부상을 안고 있어 풀타임을 소화할 수 없었던 사보니스가 이 트윈 타워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결국 서부 결승에서 포틀랜드는 4연패로 주저 앉으며 시즌을 마감하게 되지요. 그리고 사보니스는 두 시즌을 더 보낸 뒤 02-03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하게 됩니다.

통산 성적은 커리어 7년 동안 470경기 출장(이중 314경기 선발), 평균 24.2분을 플레이하며 필드골 성공률 50%, 3점 슛 성공률 32.8%, 평균 7.3 리바운드(3436리바운드), 2.1 어시스트(964 어시스트), 1.0 블락슛(494블락슛), 12.0 득점(5629득점)을 기록하였습니다. 네....평범한 성적일 수도 있지만 만약 그가 건강하고 젊은 나이에 리그에 데뷔하였다면, 그리고 그가 평균 30-35분 정도를 플레이할 수 있었다면......그의 기록은 어마어마한 것일 수 있을 것입니다. 스카티 피펜은 그에 대해 가장 위대한 유럽의 농구 선수라는 평을 했었고, 포틀랜드가 배출한 최고의 센터인 빌 월튼은 사보니스에 대해 역사상 가장 위대한 패싱 센터라는 찬사를 보냈습니다. 그의 데뷔가 21세 때인 86-87시즌에 이루어졌다면이라는 생각을 해보면, 아마 그는 리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센터들의 명단에 그의 이름을 올렸을 것입니다.

이들을 제외하면 1라운드에 지명된 선수들 중 눈에 띄는 선수들은 그리 보이지 않습니다. 전체 3번과 6번으로 각각 골든스테이트와 피닉스에 지명된 크리스 워시본과 윌리엄 베드포드는 모두 2~3년 정도의 짧은 커리어 동안 평균 4득점 미만의 재앙과 같은 성적을 남기고 소리 소문없이 사라졌고(특히 위시번은 대학 시절부터 멘탈에 문제가 있어 심리치료를 받았던 전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2m10cm의 장신에 뛰어난 운동 능력을 갖춘 이 선수를 포기하기 힘들었던 골든스테이트는 3번 픽을 미련없이 그에게 던졌으나, 89년에 마약으로 워시번이 리그에서 퇴출되는 최악의 결과를 맛보게 됩니다.)

그리고 또 한명의 아쉬운 선수는 1라운드 7번으로 댈러스에 지명된 로이 타플레이입니다. 84년과 85년 드래프트에서 최악의 선택을 하였던 댈러스는 86년 1라운드 7번으로 타플레이를 지명하였고, 루키 시즌에 타플레이는 주로 식스맨으로 출장하여 평균 18.7분을 소화하며 7.5득점, 7.1득점의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고, 87-88시즌에는 81경기에 출장, 평균 28.5분을 플레이하며, 13.5득점, 11.8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식스맨 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90-91시즌 이후 코카인 복용으로 인해 NBA로부터 출장 정지를 받았고 94-95시즌에야 복귀하여 55경기에 출장, 평균 24.6분을 소화하며 12.6득점, 10.0리바운드의 좋은 활약을 보였지만 결국 이 시즌 이후 또다시 약물 복용으로 인해 리그에서 퇴출당하게 되었습니다. 선수의 약물 복용 문제야 꼭 구단의 책임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 해도 선수 관리에 분명 헛점은 있었으며, 오히려 86년 2라운드 1번으로 댈러스가 지명한 마크 프라이스를 클리블랜드로 트레이드 한 이후 프라이스의 훌륭한 활약을 보며 또 한차례 땅을 치며 후회하였던 것이 댈러스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1라운드에 지명되지 못하였지만 상위 픽 선수 못지 않은 커리어를 남긴 훌륭한 선수들도 있습니다. 바로 2라운드 1번과 3번, 22번으로 지명된 마크 프라이스, 데니스 로드맨,  제프 호너섹이 그들인데요. 프라이스와 호너섹에 대해서는 예전에 썼던 포스팅이 있기에 링크로 대체할께요......

마크 프라이스 커리어 : http://kaga4467.egloos.com/1356132
제프 호너섹 커리어 : http://kaga4467.egloos.com/1475638

자아...남은 선수는 드디어 문제의 데니스 로드맨이군요.......



커리어와 성적만 놓고 본다면 이 선수는 2라운드에 지명된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만큼의 뛰어난 활약을 펼친 선수입니다. 그는 다섯개의 챔피언 반지를 가지고 있으며, 2차례 올해의 수비상을 수상하였으며, 커리어 14년간 모두 7번이나 리바운드 1위를 차지한.....말 그대로 수비와 리바운드의 제왕이었지요.....하지만 비정상적으로까지 보이기도 하는 기행, 그리고 독특한 사고 방식과 외모 등으로 인해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선수였습니다......(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표현할 수가......)

하지만 그의 돌출 행동이나 독특한 정신 세계에 대한 옳고 그름은 뒤로 미룬다면 그가 커리어 11년 동안 이루어낸 성과는 실로 엄청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루키 시즌인 86-87시즌 로드맨은 77경기에 출장(이 중 선발은 1경기), 평균 15분을 플레이하며 6.5득점, 4.3리바운드라는 쏠쏠한 성적을 올리며 백업으로서 충실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그리고 87-88시즌에는 82경기(이중 선발 32경기), 평균 26.2분을 플레이하며 평균 11.6득점, 8.7리바운드를 기록하며 루키 시즌에 비해 일취월장한 기량을 선보이게 되죠......89-90시즌까지 평균 플레이 타임이 30분 미만이었던 로드맨이 폭발하게 되는 시즌은 90-91시즌입니다. 이 시즌부터 은퇴를 선언하게 되는 99-00시즌까지 로드맨의 리바운드 숫자는 단 한번도 10개 미만으로 떨어진 적이 없습니다.(물론 커리어 마지막 부분에 해당하는 98-99시즌에는 레이커스에서 23경기에만 출전하였습니다. 평균 리바운드는 11.2개였고, 99-00시즌에는 댈러스에서 12경기에 출장하여 14.3개의 평균 리바운드를 기록하였습니다.....)

리바운드에 관해서만큼은 이 선수만큼 강력한 선수는 두번 다시 나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90-91시즌부터 94-95시즌까지 그의 평균 리바운드는 평균 16개 미만으로 떨어진 적이 없습니다(18.7-18.3-17.3-16.8개를 기록하였고요. 참고로 95-96시즌에도 14.9개를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96-97시즌에는 다시 16.1개, 97-98시즌에는 15.0개를 기록하였지요.....)

물론 그의 득점력은 기록상 눈에 띄지 않습니다. 커리어 14년 동안 그가 평균 두자릿수 이상의 득점을 기록한 시즌은 87-88시즌의 11.6득점 단 한번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뛰어난 위치 선정과 리바운드 센스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였고 그의 리바운드 능력은 상대의 공격 의지를 무력화시키거나 팀에게는 두 세번의 공격기회를 더 부여하는 아주 강력한 무기였었습니다.

통산성적은 911경기 출장(선발 573경기), 평균 31.7분을 플레이하며, 필드골 성공률 52.1%, 평균 13.1개의 리바운드(11954리바운드, 이중 오펜스 리바운드 숫자는 4329개로 평균 4.8개입니다), 7.3득점(6683득점)을 기록하였습니다.

플레이오프에는 11번 출전하였고, 이중 여섯번을 파이널에 진출하였으며 그 중 다섯 차례의 파이널에서 팀 우승에 힘을 보탰습니다. 통제하기가 힘들고 워낙에 독특한 선수라 팀 조직력에 독이 된다는 평가도 있지만 코트 안에서의 열정과 파이팅은 그 어느 선수에도 뒤지지 않았던 진정한 근성의 선수 중 한명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하아....대충 정리가 마무리되었네요......세번째 쓰는 포스팅이지만 쓸때마다 너무 길어 헉헉 거립니다.......

조만간 시간이 나면 87년 드래프트에 대해서도 간략히 살펴보는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덧글

  • 바른손 2009/07/20 20:49 # 답글

    이 시리즈도 정말 괜찮은 시리즈입니다 울프우드님 *.*/

    리 바이어스란 선수는 이야기만 들었지 어떤 선수인지 전혀 몰랐는데 잘 알게 되었습니다.보스턴의 레지 루이스나 네츠의 페트로비치 이전에 죽은 선수라 저도 이름 정도만 알던 친구인데 말입니다.

    브래드 도허티는 정말 안타까운 선수입니다.센터가 지배하던 시절에 빅4를 위협할 수 있었던 또다른 슈퍼센터였는데 그 안타까운 캐리어가 참 두고두고 아쉽습니다.

    그리고 로이 타플리는 참 리바운드가 좋았던 선수로 뚜렷이 기억이 됩니다.
    타이론 힐이나 뽀빠이 존스,로이 보트 같은 리바운드가 좋았던 90년대 중반경의 파포들이 저도 기억이 나네요.

    척퍼슨은 웨슬리퍼슨과 더불어 90년대에 형제선수로 기억이 또 나네요.

    나머지 선수들은 다른 울프우드님의 포스팅에서도 언급된 선수네요 :)


  • 바른손 2009/07/20 20:51 # 답글

    사보니스는 참 정말로 아직도 "젊었을때 그가 nba에서 뛰었다면"이란 명제로 많은 격론을 불러 일으키는 선수이니 그만한 능력이 엿보입니다.

    데니스 로드맨과 론하퍼는 잘 알려진 선수이지만 또 정리를 참 잘해주셨네요.

    존윌리엄스는 핫로드윌리엄스 그 분인거 같고, 델 커리는 샤프슈터이자 스테픈커리의 아버지로 잘 알려져있죠.(아들이 아버지를 뛰어넘는 커리어를 이어 나갈지도 궁금합니다)

    좋은 글 너무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 울프우드 2009/07/20 23:55 #

    바른손님 반갑습니다.....

    이래저래 짬이 날때 집중해서 쓰는 포스팅이긴 한데 항상 놓치는 부분이 많은 부족한 포스팅을 잘 읽어주셔서 항상 감사하다지요...^^

    바이어스는 저도 이번 포스팅을 작성하면서 이래저래 자료를 알아보았는데 너무나 안타깝다는 생각이 드네요.......

    존 윌리엄스와 델 커리의 커리어를 빠뜨리는 우를 이번에도 또 범했군요......

    그리고 사보니스는 정말.....할말이 없는 센터입니다.....정말 정상적으로 리그에 데뷔하였다면 그가 보여주었을 폭발력이란.....흐음.....

    대충 지금 작성하고 있는 포스팅에서 놓친 선수들은 따로 한번 포스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재미있게 잘 읽어주셨다니 너무나 감사합니다....^^
  • 바른손 2009/07/21 10:44 #

    늘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이렇게 정리를 해주시니 저도 잘 몰랐던 선수를 알게 되고 기억하는 선수는 또 그 나름 좋네요.
    좋은 시리즈에 감사드립니다.
  • 폭주천사 2009/07/30 22:22 # 삭제 답글

    86년 드래프트에 대해서도 잘 봤습니다. ^^. 86년 드래프티들은 그들의 커리어보다 약물과 알콜때문에 약물관련 규정을 강화하는데 NBA 큰 영향을 줬네요.

    렌 바이어스와 레지 루이스가 사망하지 않고 버드 시대 이후의 보스턴을 책임졌다면 셀틱스가 그렇게 오랫동안 암흑기를 보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네요.

    제가 다음 카페 아이러브엔비에이에 86년 드래프티 관련 글을 해석해서 올렸던 것이 있습니다. 같이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주소는 http://cafe.daum.net/ilovenba/34Xn/88 입니다. ^^

    87년 드래프트 관련 글도 기대하겠습니다.
  • 울프우드 2009/07/31 01:38 #

    랜 바이어스는 이번에 글을 작성하며 이래 저래 알아보다가 대학 시절 하이라이트 필름을 보며 정말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87년 드래프트 관련글도 여유될때 작성하도록 할께요.....

    부족한 글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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