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 추억의 선수...Euro-Magic Toni Kukoc.... 스포츠

오랜만에 추억의 선수 포스팅입니다.....

농구가 되었건 야구가 되었건 베스트 라인업에 포함되는 선수들....그러니까 소위 말하는 주전 선수들이 화려한 스포트 라이트와 함께 팬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팀 스포츠라의 특성상 강력한 주전들만 확보했다고 항상 그 팀이 강팀이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그러한 점에서 농구의 경우 결정적인 승부처에서 교체 투입되어 게임의 흐름을 바꾸거나 주전이 부진할 때 그 부진함을 잘 메꾸어줄 수 있는 강력한 식스맨의 존재는 강팀의 중요한 조건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평소에도 많이 해보곤 했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오늘은 90년대 시카고의 두번째 3연패 시기에 강력한 식스맨으로 불스 왕조의 한 축을 담당했던 바로 이 선수에 대해 포스팅하려 합니다......

네....바로 Euro-Magic 또는 The waiter라는 닉네임으로 불리기도 했던 크로아티아 출신의 토니 쿠코치가 오늘 포스팅의 주인공입니다.......

90년대 중반 시카고는 기존의 조던-피펜 듀오에 더해 멘탈이나 사생활적인 측면에서 문제는 있었지만 역사상 최강의 리바운더였던 데니스 로드맨, 그리고 클리블랜드와 클리퍼스 시절 팀의 주 득점원 역할을 하다 불스로 이적한 후 강력한 수비력을 보여준 론 하퍼, 호주 출신의 장신 센터인 룩 롱리로 베스트 라인업을 구성했었지요. 조던-피펜-로드맨으로 이어지는 이 강력한 트리오는 상대팀들에게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불스 왕조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 축이 바로 이 토니 쿠코치였습니다......

쿠코치에 대한 첫 기억은 92년 바로셀로나 올림픽 결승전이었습니다. 당시 드림팀1의 결승 상대는 크로아티아였지요. 그 크로아티아의 에이스는 211cm의 장신으로 가드와 포워드를 겸하고 있었던 토니 쿠코치였습니다. 전반 한때 드림팀 1을 상대로 2점을 리드하며 당시 대회 기간 중 미국이 처음이자 마지막 작전타임을 부르게했던 팀이었지요.....(물론 이후 연속 실점하며 바로 무너졌지만......) 드림팀 1은 크로아티아를 압도했지만 쿠코치의 경기력은 상당히 멋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유럽 농구 선수로는 구 소련(92년 올림픽 당시 리투아니아)의 명센터였던 사보니스 이외에는 아는 선수가 없었다지요. 그런 저에게 이 장신의 크로아티아 선수가 보여주었더 매끄러운 패스와 깔끔한 드리블......그리고 첫 스텝에서 시작하여 지그재그로 스텝을 밟아가며 공간을 만들어 득점을 함과 동시에 기습적인 외곽슛은 가히 충격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이미 이전부터 쿠코치는 유럽에서 가장 압도적인 농구 선수로 평가받고 있었지요......
그는 1990년과 1991년, 1993년 유로리그 파이널 포 MVP를 수상하였고, 1990년 세계 선수권에서도 MVP를 수상한 선수였습니다. 동시에 1990년, 91년, 92년, 96년에는 Mister Europa Player of the year를 수사하기도 한 선수였습니다. 그리고 1991년 유로피언 챔피언쉽 MVP도 수상하였지요.....대략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까지 쿠코치는 유럽 무대를 제압하고 압도했던 선수였습니다.

올림픽에서 보여준 그의 역량은 NBA 스카우터들에게 그가 NBA에서도 통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춘 선수라는 확신을 주었지요. 그 결과 쿠코치는 1990년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2번(전체 29번)으로 시카고 불스에 지명되었고 3년 뒤인 93-94시즌 드디어 불스에서 데뷔 시즌을 맞이하게 됩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쿠코치는 커리어 13시즌 동안 유럽에서 보여준 압도적인 위력과 재능을 보여주지는 못하였습니다. 211cm, 106kg라는 사이즈는 스몰 포워드에서는 엄청난 경쟁력을 갖춘 것이었지만 불스의 주전 스몰 포워드는 이미 리그 최고의 올라운드 플레이어이자 수비수였던 피펜의 자리였지요......결국 시카고 시절 쿠코치는 주전보다는 식스맨의 역할을 담당했던 시즌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물론 그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120% 수행하였지요. 항상 팀의 에이스이자 키맨으로서의 역할만을 담당하였던 쿠코치에게는 낯선 자리였지만 쿠코치는 그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였습니다. 커리어 초반 그에 대해 가로 수비와 리바운드에 약점이 있다며 탐탁치 않게 그를 생각하였던 필 잭슨도 이후에는 쿠코치에 대해 스폰치가 물을 흡수하듯 보고 배우는 것에 대해서는 아주 강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라는 평가를 내렸었지요.......

자아...본론으로 돌아와서.....

쿠코치는 데뷔 시즌인 93-94시즌(첫번째 3연패 이후 조던이 떠난 불스가 맞이한 첫 시즌), 75경기에 출장(선발 8경기), 평균 24.1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43.1%, 3점슛 성공률 27.1%, 평균 10.9득점, 4.0 리바운드, 3.4어시스트, 1.1스틸, 0.4 블락슛을 기록하며 All Rookie Second Team에 선정되었습니다. 유럽 리그에서 그가 보여준 성과에 비하면 초라한 것이었지만 운동 능력과 사이즈 등에서 압도적인 리그에서 처음 맞이한 시즌 치고는 비교적 잘 적응하며 시간을 보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94-95시즌에는 교체보다는 주전으로 좀 더 많은 경기를 출장하게 됩니다. 이 시즌 쿠콫는 81경기 출장(선발 55경기), 평균 31.9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류 50.4%, 3점슛 성공률 31.3%, 평균 15.7득점, 5.4 리바운드, 4.6어시스트, 1.3 스틸을 기록하며 시즌 후반 조던이 복귀하기 전까지 피펜에 뒤를 든든하게 받쳐주었습니다.....잠시 다른 이야기를 하면 피펜과 쿠코치는 그리 좋은 관계는 아니었습니다. 어떤 경기에서 필 잭슨이 피펜이 아닌 쿠코치에게 마지막 슛을 던질 것을 지시하였을때 피펜은 제법 노골적으로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던 적도 있었다고 하네요......이 시즌 후반 컴백한 조던의 합류와 함께 불스는 플옵에 진출하였으나 경기 감각에 문제가 있었던 조던의 부진으로 인해 플옵에서는 올랜도 매직에 패배하며 파이널 진출에 실패하였습니다.....

그리고 불스의 두번째 3연패가 시작되었던 첫 시즌....바로 95-96시즌, 쿠코치는 리그 최강의 식스맨으로 자리잡게 되지요. 95-96시즌 쿠코치는 81경기에 출장(선발 20경기), 평균 26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49.0%, 3점 슛 성공률은 40.3%, 평균 13.1득점, 4.0 리바운드, 3.5 어시스트를 기록하였습니다. 당시 불스를 상대했던 팀들은 경기 감각을 완전히 회복한 조던과 그의 강력한 조력자인 피펜을 디펜스하는 것에 이미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었지요. 그런 상황에서 경기 중반에 투입된 211cm의 스몰 포워드는 불스의 상대팀들에게 매치업상 엄청난 부담을 주기에 충분하였습니다. 그리고 앞에서 잠시 언급하였듯이 쿠코치는 211cm의 사이즈에도 불구하고 가드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드리블과 돌파 능력, 그리고 미들 레인지에서의 점퍼와 40%를 상회하는 3점슛 능력을 갖춘 선수였습니다. 그리고 유럽 리그 시절부터 정평이 나있었던 그의 패싱 능력은 게임 중반 이후 상대팀들에게 엄청난 혼란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이었지요. 조던-피펜-로드맨에 식스맨으로서의 쿠코치가 조합된 불스는 쾌속 진군하며 우승을 하게 됩니다.......

96-97시즌에는 부상으로 인해 25경기를 결장하며 57경기에 출장, 평균 28.2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47.1%, 3점슛 성공률 33.1%, 평균 13.2득점, 4.6리바운드, 4.5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불스의 우승에 공헌하였습니다......

그리고 97-98시즌에도 쿠코치는 13.3득점, 4.4리바운드, 4.2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조던과 피펜에 이은 불스의 제3 공격 옵션으로 그의 역할을 100% 수행하였지요......불스는 이 시즌까지 우승을 하며 90년대에만 3연패 두번, 토탈 여섯번의 우승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시즌을 끝으로 불스 왕조는 해체되게 되죠. 조던은 두번째 은퇴를 선언하였고, 시카고 황금 시기를 이끌었던 필 잭슨 역시 감독직에서 물러났으며,  피펜은 휴스턴으로 팀을 옮기게 됩니다. 그리고 로드맨도 팀을 떠나게 되면서 쿠코치는 팀의 든든한 식스맨에서 졸지에 팀의 에이스 자리를 맡아야 했지요. 무너져버린 왕조의 폐허 속에서 쿠코치는 98-99시즌, 자신의 커리어 하이 시즌을 만들게 됩니다. 이 시즌 44경기에 모두 선발로 출장한 쿠코치는 평균 37.6분을 소화하는 가운데 필드골 성공률 42%, 3점슛 성공률 28.5%, 평균 18.8득점, 7.0리바운드, 5.3어시스트, 1.1스틸을 기록하며 붕괴한 왕조의 폐허 속에서 고군분투하였습니다.

글고 99-00시즌, 쿠코치 역시 시즌 중반 불스를 떠나 필라델피아로 팀을 옮기게 되지요. 이 시즌 초반까지 불스에서 주전으로 플레이했던 쿠코치는 필라델피아로 팀을 옮긴 이후부터는 다시 식스맨으로 보직을 바꾸게됩니다. 불스와 필라델피아에서 모두 56경기에 출장한 쿠코치는 평균 31.9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40.8%, 3점슛 성공률 26.2%, 평균 14.8득점, 4.9리바운드, 4.7 어시스트, 1.4어시스트를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00-01시즌에는 시즌 후반 애틀랜타로 트레이드되며 팀을 옮기게 되지요. 이 시즌 쿠코치는 필라델피아와 애틀랜타에서 모두 65경기에 출장(선발 19경기), 평균 24.6분, 필드고 성공률 47.3%, 3점슛 성공률 44.6%(3점슛 성공률 부분 리그 6위), 평균 11.1득점, 4.0리바운드, 3.1 어시스트, 0.7 스틸을 기록하였습니다.(성적의 범위를 애틀랜타에서 플레이한 17경기로 좁히면 쿠코치는 필드골 성공률 49.1%, 3점슛 성공률 48.1%, 평균 19.7득점, 5.7리바운드, 6.2 어시스트를 기록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 필라델피아에서 보낸 시절이 쿠코치에게 가장 부진했던 시간들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드네요.....)

01-02시즌까지 애틀랜타에서 플레이한 쿠코치는 02-03시즌, 당시 베테랑 식스맨을 필요로 하고 있었던 밀워키 벅스로 팀을 옮기게 되고 이 팀에서 자신의 커리어를 마감하게 됩니다. 밀워키에서 네 시즌 동안 쿠코치는 04-05시즌 여섯 경기에 선발 출장을 한 것을 제외하면 모두 식스맨으로 출장하였고, 대략 평균 20분 정도를 소화하였습니다. 02-03시즌에는 11.6득점을 기록하며 두 자릿 수 이상의 득점력을 보여주었지만 03-04시즌부터 급격하게 기량이 쇠퇴하며 데뷔 후 처음으로 평균 두 자릿 수 득점에 실패하게 되지요. 그리고 04-05시즌 평균 5.6득점, 그리고 커리어 마지막 시즌이었던 05-06시즌에는 65경기에 모두 교체로 출장하여 평균 15.7분, 필드골 성공률 38.9%, 3점슛 성공률 30.6%, 평균 4.9득점, 2.3리바운드, 2.1어시스트라는 초라한 성적을 남긴채 은퇴를 선언하게 되지요.......

통산 성적은 13시즌 동안, 846경기에 출장(선발 259경기), 평균 26.3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44.7%, 3점슛 성공률 33.5%, 평균 11.6득점(9810득점), 4.2리바운드(3555리바운드), 3.7 어시스트(3119어시스트), 1.0 스틸(817스틸)을 기록하였습니다. 커리어 13시즌 동안 플옵에는 10번 진출하였고, 3번의 우승을 경험한 선수이지요.

네....통산 성적만 놓고 본다면 그저 준수한 식스맨 정도구나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선수를 보면 안타까운 것이 쿠코치가 전성기를 보냈던 불스의 시스템이 쿠코치가 원하는 플레이 스타일과 일치하지 않으면서 그는 자신의 역량과 재능을 전성기 시절 폭발시키지 못하며 오히려 봉인해버리면서 유럽 리그 시절에 비해 기량이 퇴보한 선수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유럽 리그 시절 쿠코치는 커다란 사이즈임에도 불구하고 1~3번 포지션을 번갈아 볼 정도로 뛰어난 농구 센스를 보여준 선수였으며, 드리블, 돌파, 패싱, 슈팅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전천후 선수였습니다. 그가 보여준 재기 넘치는 어시스트 패스는 왜 그가 유럽에서 매직이라는 별명을 얻었는지 너무나 잘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가 NBA에서 데뷔한 팀....그리고 그에게 3개의 챔피언 반지를 얻게 해준 위대한 팀은 선수 1명의 창조적인 플레이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선수들의 유기적인 움직임 속에서 찬스를 만들어 공격하는 팀이었지요. 불스의 트라이앵글 오펜스는 당시 가장 위력적인 공격 전술이었지만 반대로 이 전술은 쿠코치의 재능을 억압하였다는 생각도 함께 해봅니다.....

통산 성적이 보잘 것 없다 할지라도 불스의 두번째 3연패 시절 코트에서 그가 보여준 플레이를 기억하시는 분들이라면 그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재능을 묵히며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 그의 모습이.....얼마나 프로페셔널하였으며, 그 와중에 그가 보여준 천재적인 플레이에 감동받으신 분들도 분명 많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유럽 출신의 NBA 선수들 중 가장 많이 회자되는 선수는 포틀랜드의 사보니스와 지금도 리그 탑 클래스의 득점원인 덕 노비츠키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거기에 토니 쿠코치까지 함께 언급하고 싶네요.....흐음......

물론 그는 자신의 재능을 봉인한 대가로 3개의 챔피언 반지를 획득한 선수가 되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사보니스나 지금까지도 맹활약하고 있는 덕 노비츠키에 비해서는 훨씬 더 행복한 커리어를 보낸 선수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자신이 가진 역량의 반 이상을 제대로 펼쳐보이지 못한 이 선수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더 크게 남아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쿠코치의 믹스 영상으로 포스팅을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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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바른손 2009/09/14 10:29 # 답글

    토니 쿠콕에 관한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저도 쿠콕에 관한 글은 언젠가 한 번 꼭 정리해보고 싶었어요.

    참 잘 읽었습니다.
  • 울프우드 2009/09/14 16:47 #

    바른손님 반갑습니다...
    이 선수의 커리어를 살펴보면....분병 불스 시절이 가장 잘 나갔던 시절임에는 분명하지만 불스의 시스템이 자신의 역량과 잘 맞지 않아 오히려 기량을 폭발시키지 못한 듯한 생각이 들어 항상 안타까운 생각도 드는 선수라지요......

    오늘도 부족한 글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바른손 2009/09/14 17:04 #

    네 불스 우승의 주역중 하나이긴 하지만 개인 커리어로 볼땐 2옵션 정도의 역할을 할 수 있는 팀을 만났다면 하는 아쉬움도 듭니다.
  • 울프우드 2009/09/14 19:41 #

    네....저도 동감입니다.....

    좀더 강렬한 커리어를 보낼 수 있었던 선수가 아니었나.....

    이런 생각을 하면 많은 아쉬움이 남는 선수입니다.....
  • crdai 2009/09/14 15:06 # 답글

    쿠코치는 기억상 드래프트자체는 빨랐던거로 기억합니다. 90년인가 91년인가. 단지 계약문제네 뭐네 해서 NBA에서 뛰게된게 늦어졌던거로 기억되는군요.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때는 이미 불스로 가는게 확정이된 상태였던걸로 기억됩니다.

    쿠코치에대해서 언제나 입이 좀 거칠거칠했던 피펜의 인터뷰가 몇개 기억이 나는데, 언제나 피펜은 쿠코치의 저질체력(야...)과 장신을 살리지 못하는 피지컬적인 면들을 문제 삼았지요. 1년 82경기에 플레이오프까지 다 뛸만한 체력이 없다...라고 말이지요.

    개인적으로 쿠코치는 어떤의미로 NBA에서 식스맨이라는 위치가 가장 잘 어울리는 선수였다고 생각됩니다. 전포지션을 소화할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어째 전 포지션에 딱 들어맞지도 않았던 선수였다랄까요..대신 비어있는 포지션을 잠시동안 맡기기에는 그만한 선수가 없었던것도 같습니다. 그부분은 솔직히 최면술사 필아저씨의 선택이 옳았다고 보는 입장이기도 하고.

    뭐 이선수에대한 개인적인 감상은 불스시절로 한정되어있기도 합니다만, 뭐랄까 상대팀에게 있어서 딱 산넘어 산...이라는 기분을 맞보게 해주는 스타일이었달까. MJ-피펜-로드맨이 벤치로 물러가서 좀 한숨 돌리자는 기분이 되었을때 뻥...하고 터트리는 그런 느낌이랄까요. 어떤면에서 확인사살용..안티 불스파로써는 정말 싫었던 선수중 하나였습니다. 네...orz.

    오늘도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러고보니 그당시 악의 제국일당들의 얼굴이 새록새록 떠오르는군요. 주전 5인방에 쿠코치, 랜디 브라운, 저드 부실러, 스티브커, 빌 웨닝턴...

    그러고보니까 로버트 패리쉬가 은퇴하기전에 1년정도 있었던걸로 기억되는군요.

    아아..여하튼 악의 제국. 쳇. (야..)
  • 울프우드 2009/09/14 16:52 #

    crdai님 반갑습니다.
    90년대의 불스는 너무나 강했지요.....정말 강력한 안티 불스셨던 모양이네요^^

    쿠코치의 경우에는 님 말씀처럼 식스맨으로 딱 들어맞는 선수라고 볼 수 있는 측면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의 기량이나 잠재력을 맘껏 펼치기에는 불스의 시스템과 잘 맞지 않는 측면도 있었기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 선수입니다......

    쿠코치 자신도 주전으로 많이 출전하며 자유로운 플레이를 하고 싶어했던 욕구가 있었지만 필 잭슨 감독이 인정을 안해 준 것이지요.....

    뭐 그래도 리그의 초강력 식스맨으로 반지를 세개로 장만했으니 그것만 해도 충분히 훌륭하다는 ㅋ......

    아...그리고 80년대 보스턴이 전성기를 구가하는데 한 축을 담당했던 로버트 패리쉬는 은퇴 시즌이었던 96-97시즌 불스에서 43경기에 출장했었네요. 평균 9.4분 정도를 소화하며 3.7득점, 2.1 리바운드를 기록했군요......

  • 천진천진.. 2009/09/16 19:02 # 삭제 답글

    간만에 쿠코치 봤네...ㅋㅋㅋ
    형, 잘 지내지??
  • 울프우드 2009/09/16 19:22 #

    잘 지낼까?
    그닥 잘 지내지는 못하지 훗.....

    그래도 덕분에 술은 안 마신다네....하하
  • 불스팬 2018/07/16 02:43 # 삭제 답글

    쿠코치 관련글 잘보고 갑니다. 월드컵에서 크로아티아가 준우승을해서 오랜만에 쿠코치가 생각나 검색하다 잘읽고 갑니다. 옛 추억이 새록새록 기억나는 좋은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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