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1990년 드래프트에서 지명된 선수들..... 스포츠

오랜만에 다시보는 드래프트에 대한 포스팅을 쓰네요......

주로 NBA를 즐겨봤던 시기가 고등학교~대학교 시절(대략 90년대 초반~후반)로 한정되다보니 90년대 초중반 리그를 지배했던 레전드들(그러니까 대략 80년대 드래프트에서 지명된 선수들)에 대한 기억이 강하게 남아있는지라 89년 드래프트 관련 포스팅 이후 1990년 관련 포스팅은 한동안 미루어왔네요.....(네....솔직히 말하면 본인의 게으름도 하나의 원인이었습니다....쩝.....)

최근 이래 저래 일터에서 바쁜 일도 있었고......오늘 잠시 여유가 생겨 오랜만에 드래프트 관련 포스팅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네요......자아.....그럼 잡설은 이쯤하고 1990년 드래프트 순위부터 살펴보죠.
(드래프트 순위 자료 출처는 http://www.nbadraft.net 입니다)

먼저 1라운드입니다.
First
Round
Player College
1. New Jersey Derrick Coleman Syracuse
2. Seattle Gary Payton Oregon State
3. Denver (from
Miami)
Chris Jackson Louisiana State
4. Orlando Dennis Scott Georgia Tech
5. Charlotte Kendall Gill Illinois
6. Minnesota Felton Spencer Louisville
7. SacramentoLionel Simmons La Salle
8. LA Clippers Bo Kimble Loyola Marymount
9. Miami (from
Washington)
Willie Burton Minnesota
10. Atlanta (from
Golden State)
Rumeal Robinson Michigan
11. Golden State
(from Atlanta)
Tyrone Hill Xavier (Ohio)
12. Houston (a) Alec Kessler Georgia
13. LA Clippers
(from Cleveland)
Loy Vaught Michigan
14. Sacramento
(from Indiana)
Travis Mays Texas
15. Miami (from
Denver) (a)
Dave Jamerson Ohio
16. Milwaukee Terry Mills Michigan
17. New York Jerrod Mustaf Maryland
18. Sacramento
(from Dallas)
Duane Causwell Temple
19. Boston Dee Brown Jacksonville
20. Minnesota
(from Philadelphia)
Gerald Glass Mississippi
21. Phoenix Jayson Williams St. John's
22. New Jersey
(from Chicago)
Tate George Connecticut
23. Sacramento
(from Utah)
Anthony Bonner St. Louis
24. San Antonio Dwayne Schintzius Florida
25. Portland Alaa Abdelnaby Duke
26. Detroit Lance Banks Texas
27. LA Lakers Elden Campbell Clemson

다음은 2라운드 순위입니다.
First
Round
Player College
28.
Golden State
Les
Jepsen
Iowa
29.
Chicago
Tony
Kukoc
(Yugoslavia)
30.
Houston
Carl
Herrera
Houston
31.
Phoenix
Negele
Knight
Dayton
32.
Philadelphia
Brian
Oliver
Georgia
Tech
33.
Utah
Walter
Palmer
Dartmouth
34.
Golden State
Kevin
Pritchard
Kansas
35.
Washington
Greg
Foster
UTEP
36.
Atlanta
Trevor
Wilson
UCLA
37.
Washington
A.J.
English
Virginia
Union
38.
New Jersey
Jud
Buechler
Arizona
39.
Charlotte
Steve
Scheffler
Purdue
40.
Miami
Bimbo
Coles
Virginia
Tech
41.
Atlanta
Steve
Bardo
Illinois
42.
Denver
Marcus
Liberty
Illinois
43.
San Antonio
Tony
Massenburg
Maryland
44.
Milwaukee
Steve
Henson
Kansas
State
45.
Indiana
Antonio DavisUTEP
46.
Indiana
Kenny
Williams
Elizabeth
City State
47.
Philadelphia
Derek
Strong
Xavier
48.
Phoenix
Cedric Ceballos Cal
State Fullerton
49.
Dallas
Phil
Henderson
Duke
50.
Cleveland
Milos
Babic
Tennessee
Tech
51.
LA Lakers
Tony
Smith
Marquette
52.
Phoenix
Stefano
Rusconi
(Italy)
53.
Seattle
Abdul
Shamsid-Deen
Providence
54.
San Antonio
Sean
Higgins
Michigan

1990년 드래프트 1라운드에 지명된 선수들을 보면 재능넘치는 선수들이 많이 보입니다. 1번으로 지명된 데릭 콜먼, 게리 페이튼, 크리스 잭슨, 데니스 스캇, 켄달 길, 펠튼 스펜서 등 제가 위에 굵은 글씨로 표시한 선수들은 모두 리그에서 자신의 역량을 제대로 보여준 훌륭한 선수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들 중 레전드 급의 선수로 확실하게 커리어를 마감한 선수는 2번으로 지명된 포인트 가드인 게리 페이튼 이외에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요. 90년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지명된 대부분의 선수들은 확실히 재능이 넘치는 선수들이었지만 거의 대부분이 전성기가 극히 짧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점에서 보면 참 안타까운 드래프트라는 생각도 드는군요.......

그러면 90년 드래프트에서 지명된 선수들 중 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대표적인 선수들의 커리어에 대해 간략하게 알아보도록 하죠.

1라운드 1번 Derrick Coleman
1990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1번픽을 확보한 뉴저지 네츠는 소중한 1번 픽을 시라큐스 대학 출신의 오니손잡이 파워 포워드인 데릭 콜먼에게 행사합니다. 콜먼의 대학 시절 성적은 총 143경기에 출장, 평균 32.8분을 소화하는 가운데, 필드골 성공률 68.4%, 평균 15.0득점, 10.7리바운드, 2.3 어시스트를 기록하였습니다.(3학년 시절에는 필드골 성공률 69.2%, 평균 16.9득점, 11.4리바운드, 2.9어시스트를, 4학년 시절에는 필드골 성공률 71.5%, 평균 17.9득점, 12.1리바운드, 2.9어시스트를 기록하였습니다). 팀의 골밑을 확실하게 책임질 수 있는 강력한 4번이 절실했던 네츠가 이런 콜먼을 마다할리 없겠지요. 그리고 콜먼은 데뷔 후 팀의 기대에 부응하였습니다.

90년대의 네츠하면 바로 데릭 콜먼이지요. 208cm, 122.5kg의 엄청난 사이즈를 바탕으로 왼손잡이라는 이점, 그리고 파워와 함께 골밑에서의 좋은 움직임을 통해 공격시에는 로포스트에서 확실한 득점을, 그리고 동시에 수비시에는 강력한 리바운더로서 90년대 초반 동부 컨퍼런스를 대표하는 골밑 플레이어였습니다. 조지 포먼을 연상시키는 외모, 짧은 목과 엄청난 덩치로 기억에 남는 선수인데 자신보다 한해 늦게 리그에 데뷔하는 케니 앤더슨과 함께 강력한 원투 펀치를 형성시키며 네츠를 플레이오프 컨덴더로 끌어올린 선수입니다.

루키시즌이었던 90-91시즌 콜먼은 74경기에 출장(선발 68경기), 평균 35.2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46.7%, 평균 18.4득점, 10.3리바운드, 2.2어시스트, 1.0스틸, 1.3 블락슛을 기록하며 단숨에 리그 탑클래스 급의 성적을 올리며 평생에 단 한번이라는 Rookie of the Year)에 선정되었습니다. 91-92시즌에는 65경기에 출장, 평균 34.0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50.4%, 평균 19.8득점, 9.5리바운드, 3.2어시스트, 0.8스틸, 1.5블락슛을 기록하며 성장세를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데뷔 3년차인 92-93시즌부터 콜먼은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 시즌 콜먼은 76경기에 출장(선발 73경기), 평균 36.3분, 필드골 성공률 46%, 평균 20.7득점, 11.2 리바운드, 3.6어시스트, 1.2 스틸, 1.7 블락슛을 기록하며 All-NBA Third Team에 선정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93-94시즌에도 콜먼은 77경기에 출장(콜먼의 커리어에서 한시즌 최다 출장), 평균 36.1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44.7%, 평균 20.2득점, 11.3리바운드, 3.4어시스트, 0.9스틸, 1.8 블락슛을 기록하며 전년도에 이어 다시 All-NBA First Team에 선정되었지요. 그리고 이 시즌 그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올스타에 선정되었습니다.

94-95시즌, 콜먼은 26경기에 결장하며 56경기에 출장, 평균 37.6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42.4%, 평균 20.5득점, 10.6리바운드, 3.3어시스트, 0.6스틸, 1.7 블락슛을 기록하며 세 시즌 연속 +20득점, +10리바운드 기록을 이어갔습니다.

데뷔 이후 꾸준한 성적은 보여주었지만 사람들은 서서히 콜먼에게 실망을 하게 되었습니다. 데뷔 이후 여섯 시즌을 플레이하는 동안 그는 풀타임 출장을 한 시즌이 한번도 없었고, 필드골 성공률 역시 91-92시즌을 제외하면 50% 미만을 기록하였지요. 그리고 뛰어난 재능과 역량에 비해 자기 관리에 부족한 면이 많았으며 그의 독불장군식의 성격은 팀 케미스트리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결국 단순한 플옵 진출이 아닌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기 위해 팀 재편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구단은 그를 필라델피아로 트레이드 시켜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콜먼의 전성기는 이것으로 마무리되게 됩니다. 물론 이후 96-97시즌에 18.1득점, 10.1리바운드를 기록하였고, 97-98시즌에도 17.6득점, 9.9리바운드를 기록하며 두 시즌 연속 더블-더블에 가까운 스탯은 찍어주었지만, 이 두시즌 동안 그가 60경기 이상 출장한 시즌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98-99시즌 그는 팀을 샬럿 호네츠로 옮겼습니다. 99-00시즌 콜먼은 샬럿에서 74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16.7득점, 8.5리바운드를 기록하였지만 이듬해 다시 부상으로 44경기를 결장하며 8.1득점, 5.4리바운드로 추락하게 됩니다. 그리고 01-02시즌 그는 다시 필라델필아로 복귀 58경기에 출장하여 15.1득점, 8.8리바운드로 살아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후부터 급속한 쇠락을 겪게 되지요.

결국 04-05시즌 디트로이트에서 다섯 경기에 출장하여 1.8득점, 3.0리바운드의 초라한 성적을 남긴채 커리어를 마감하게 됩니다.

이 선수에 대한 기억은 상당히 강하게 각인되어 있어 종종 생각하다보면 안타까운 선수들 중 한명으로 떠오르곤 합니다. 그는 강력한 하드웨어를 갖춘 선수였고 농구 센스 역시 나쁘지 않았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포스트에서 얼마든지 더블-더블 이상으 스탯은 찍어주며 포스트를 책임질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선수였지요. 하지만 멘탈적인 측면과 자기 관리에서 약점이 많은 선수였기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역량을 100%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큰 선수입니다.

14시즌이라는 긴 커리어를 이어갔지만 그가 출장한 경기 수는 781경기에 불과합니다. 필드골 성공률은 44.7%, 평균 16.5득점(12884득점), 9.3리바운드(7232리바운드), 2.5어시스트(1985어시스트)를 기록하였습니다. 기록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그가 조금만 더 강한 멘탈과 함께 자기 관리에 충실했다면 최소한 +15000득점, +10000리바운드 정도의 기록을 남기며 좀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2. 1라운드 2번 Gary Payton

다음으로 살펴볼 선수는 90년 드래프트에서 지명된 선수들 중 유일하게 레전드 급으로 성장한 선수인 게리 페이튼입니다.
이 선수는 너무나 잘 알려진 선수이지요. 그는 포인트 가드로서 안정적인 경기 운영과 함께 마음만 먹으면 +20득점을 해줄 수 있는 공격력을 갖춘 선수였습니다. 그리고 리그 포인트 가드들 중 가장 강력한 수비력으로 무장하여 매치업 상대들을 끊임없이 괴롭혔던 훌륭한 포인트 가드였습니다. 89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17번으로 숀 캠프라는 강력한 4번을 픽했던 시애틀은 90년 1라운드 2번 픽을 게리 페이튼에게 미련없이 행사합니다.

Oregon State 시절 페이튼은 대학 4년간 총 120경기에 출장하여 필드골 성공률 48.5%, 3점슛 성공률 36.9%, 평균 18.1득점, 4.0리바운드, 7.8어시스트를 거두었고, 특히 4학년 때에는 29경기에 출장, 필드골 성공률 50.4%, 3점슛 성공률 33.3%, 평균 25.7득점, 4.7리바운드, 8.1 어시스트라는 어마어마한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이러한 성적을 바탕으로 1라운드 2번으로 그는 드디어 NBA에 데뷔를 하게 되었지요. 데뷔 시즌 페이튼은 82경기에 출장, 평균 27.4분을 소화하며 평균 7.2득점, 6.4어시스트, 3.0리바운드, 2.0스틸을 기록하며 성공적으로 리그에 안착하였습니다. 그리고 91-92시즌에도 81경기에 출장, 평균 9.4득점, 6.2어시스트, 3.6리바운드, 1.8스틸을 기록하며 포인트 가드로서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지요(두 시즌 동안 그가 기록한 평균 실책수는 각각 2.2개와 2.15개에 불과하였습니다).

페이튼이 자신의 잠재력을 폭발시키기 시작한 시즌은 93-94시즌이었습니다. 이 시즌 페이튼은 전 경기에 선발로 출장하여 평균 45.1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50.4%, 평균 16.5득점, 6.0어시스트, 2.3스틸을 기록, 공수 양면에서 탑클래스급의 포인트 가드들이 보여줄 수 있는 성적을 올렸고, 94-95시즌에도 전경기에 선발 출장, 평균 36.8분을 소화, 필드골 성공률 50.9%, 3점슛 성공률 30.2%, 평균 20.6득점, 7.1어시스트, 3.4리바운드, 2.5스틸을 기록, 상대 포인트 가드가 공수 양면에서 가장 매치업하기 어려운 최고의 포인트 가드로 거듭나게 됩니다. 95-96시즌에는 평균 19.3득점, 7.5어시스트, 2.8스틸을 기록하며 팀을 파이널로 이끌었습니다(물론 파이널에서는 조던이 이끄는 불스에 가로막혀 2승 4패로 패배하였지요).

페이튼의 위대함은 이러한 성적이 한 두시즌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그는 90-91시즌부터 02-03시즌 후반 마이애미로 트레이드되기 전까지 시애틀에서 플레이하였습니다. 94-95시즌부터 02-03시즌 후반까지 그가 기록한 최소 득점은 평균 19.3득점이었고, 단축 시즌으로 치루어진 98-99시즌을 제외하면 그가 가장 80경기 미만을 출장한 시즌은 00-01시즌이 유일합니다(79경기). 그리고 데뷔 두번째 시즌이었던 91-92시즌을 제외하면 90-91시즌부터 98-99시즌까지 매시즌 평균 2.0개 이상의 스틸을, 그리고 94-95시즌부터 02-03시즌까지 +7.0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였습니다. 특히 99-00시즌에는 82경기에 모두 선발 출장하여 평균 41.8분을 소화하는 가운데 평균 24.2득점, 8.9어시스트, 6.5리바운드, 1.9스틸이라는 MVP 급 성적을 올렸었지요.

페이튼과 캠프가 함께 플레이한 90년대의 소닉스는 리그에서 가장 터프하면서도 스피디했었던 정말 매력적인 팀으로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속공 전개시 페이튼과 캠프가 보여준 화려한 플레이는 매주 리그 하이라이트 필름을 장식했었으니까요.

하지만 페이튼의 커리어 후반은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았습니다. 03-04시즌부터 페이튼은 염원의 챔피언 반지를 얻기 위한 반지 원정을 떠나게 됩니다. 03-04시즌, 페이튼은 코비 브라이언트-샤킬 오닐을 보유한 레이커스와 헐값에 계약을 맺게 됩니다(칼 말론도 마찬가지). 게리 페이튼, 코비 브라이언트, 칼 말론, 샤킬 오닐이 한 팀에서.....게임에서나 볼 수 있는 라인업이었지만 말론은 부상으로 많은 경기에 결장하였고, 페이튼 역시 트라이 앵글 오펜스를 중심으로 하는 필 잭슨의 농구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며 소닉스 시절의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말론과 달리 페이튼은 82경기에 모두 선발 출장하여 평균 14.6득점, 5.5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분투하였고 레이커스는 파이널에 진출하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최강의 조직력을 자랑하던 디트로이트를 넘어서지 못하며 1승 4패로 패배, 그의 반지 원정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04-05시즌에는 보스턴으로 팀을 옮겨 플레이하였고, 05-06시즌에는 드웨인 웨이드와 샤킬 오닐이 버티고 있던 마이애미 히트로 다시 팀을 옮기게 됩니다. 그리고 이 시즌부터 그는 팀의 주전 포인트 가드가 아닌 식스맨의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그는 81경기에 출장(선발 25경기), 데뷔 시즌을 제외하고는 처음으로 30분 미만의 플레이타임을 소화하였고(28.5분), 평균 11.3득점 6.1어시스트, 3.1 리바운드, 0.9스틸을 기록하며 마이애미의 파이널 진출에 공헌하였습니다. 그리고 염원의 파이널, 마이애미는 덕 노비츠키가 이끄는 댈러스 매버릭스를 4승 2패로 꺾고 우승을 차지하였습니다. 페이튼도 드디어 염원의 챔피언 반지를 획득하였지요.

06-07시즌, 마지막으로 마이애미에서 플레이한 페이튼은 자신의 커리어 마지막 시즌 평균 5.3득점, 3.0어시스트, 1.9리바운드를 기록하고 시즌 종료와 함께 17시즌의 커리어를 마감하였습니다.

제 기억 속의 페이튼은 가장 터프한 포인트 가드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90년대.....조던을 수비한 선수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 두명을 꼽아보라고 한다면 닉스의 존스탁스와 함께 게리 페이튼이 떠오릅니다. 조던을 수비하며 끊임없이 트래쉬 토킹을 날리며 그의 신경을 긁었고, 지치지 않는 근성으로 조던을 괴롭인 선수였지요. 그리고 시애틀 시절 그가 보여준 가로채기에 이은 속공 전개와 캠프와 펼친 화려한 2:2 플레이는 지금도 기억 속에서 잊혀지지 않습니다.

커리어 통산 성적은 17시즌 동안 1335경기에 출장, 평균 35.3분, 필드골 성공률 46.6%, 3점슛 성공률 31.7%, 평균 16.3득점(21813득점), 6.7어시스트(8966어시스트), 3.9리바운드(5269리바운드), 1.8스틸(2445스틸)입니다. 그외 90-91시즌 NBA All-Rookie Second Team에 선정되었고, All Defensive First Team 9회, All-NBA First Team 2회, All-NBA Second Team 5회, All-NBA Third Team에 2회 선정되었습니다. 95-96시즌에는 Defensive Player of the Year에 선정되기도 하였습니다. 이외에도 올스타전 9회 출장, 두번의 올림픽 금메달(96 애틀랜타 올림픽과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획득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커리어 통산 1335경기에 출장하였는데 이것은 리그 역사상 9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며, 그가 기록한 47117분의 플레이 타임 역시 리그 역사상 9위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2445개의 통산 스틸 숫자는 리그 역사상 3위에 해당하지요.

90년대의 첫번째 드래프트에서 배출된 선수들 중 그는 유일하게 리그 역사상 커다란 족적을 남긴 레전드 플레이어라는 것은 절대로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3. 1라운드 3번 Chris Jackson(Mahmoud Abdul-Rauf)

1라운드 3번 지명권을 가지고 있었던 덴버는 루지애나 주립 대학 출신의 득점력 좋은 가드인 압둘-라우프를 지명하였습니다. 크리스 잭슨이라는 이름으로 나와 있어 순간 헷갈렸는데 아...기억이 나네요. 90년대 초중반 덴버 너게츠의 가드로 상당히 좋은 모습을 보여준 선수였습니다.

185cm, 73.5kg의 왜소한 사이즈의 선수였기에, 덴버의 지명이 조금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가 루지애나 주립대학에서 2년 동안 보여준 모습은 굉장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대학 2년간 총 64경기에 출장, 평균 37.2분을 소화하는 가운데, 필드골 성공률 47.4%, 3점슛 성공률 37.2%, 자유투 성공률 86.3%를 기록할 정도로 정교한 슈팅력을 갖춘 선수였습니다. 대학 2년간 평균 29.0득점, 3.0리바운드, 3.6 어시스트를 기록하였지요. 사이즈 자체의 한계가 있어 조금은 도박적인 선택이었습니다. 여섯시즌 동안 압둘-라우프가 덴버에서 보여준 모습을 기억한다면 그리 실패한 선택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데뷔 시즌이었던 90-91시즌 압둘-라우프는 67경기에 출장(선발 19경기), 평균 22.5분만을 소화하며, 14.1득점, 3.1어시스트, 1.8리바운드, 0.8 스틸을 기록하며 루키로서는 최고의 성적을 올렸습니다. 91-92시즌에도 주로 식스맨으로 출장, 평균 19.1분만을 소화하였지만 평균 10.3득점을 기록하며 팀에 공헌을 하였지요. 데뷔 이후 두 시즌 동안 주로 식스맨으로 플레이했던 그는 92-93시즌부터 팀의 주전 가드 자리를 꿰차게 됩니다. 이 시즌 그는 81경기에 출장(모두 선발), 평균 33.5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45.5%, 3점슛 성공률 35.5%, 자유투 성공률 93.5%, 평균 19.2득점, 4.2어시스트, 2.8어시스트, 1.0 스틸을 기록하며 팀의 에이스로 떠오르게 됩니다. 93-94시즌에도 압둘 라우프는 80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32.7분, 필드골 성공률 46.0%, 3점슛 성공률 31.6%, 자유투 성공률 95.6%, 평균 18.0득점, 4.5어시스트, 2.1리바운드, 1.0스틸을 기록하였습니다.

94-95시즌에는 73경기에 출장(선발 43경기), 평균 28.5분만을 소화하는 가운데 필드골 성공률 47.0%, 3점슛 성공률 38.6%, 평균 16.0득점, 3.6어시스트, 1.9리바운드를 기록하였고, 95-96시즌에는 57경기에 출장, 필드골 성공률 43.4%, 3점슛 성공률 39.2%, 자유투 성공률 93.0%, 평균 19.2득점, 6.8어시스트, 2.4리바운드, 1.1스틸을 기록하며, 비록 25경기에 결장하였지만 자신의 커리어에서 최고의 성적을 올렸습니다. 이 시즌을 마지막으로 그는 새크라멘토로 팀을 옮겼고, 96-97시즌에는 75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28.4분을 소화하는 동안 평균 13.7득점을 기록하는 능력을 보여주었지만  97-98시즌 31경기에만 교체로 출장하여 평균 7.3득점을 기록하는데 그쳤고, 시즌 종료 후 터키 리그로 활동 무대를 옮겼습니다. 그리고 00-01시즌 밴쿠버로 복귀하여 41경기에 교체로 출장하여 평균 11.9분을 소화하며, 평균 6.5득점, 1.9어시스트, 0.6리바운드의 기록을 남긴채 커리어를 마감하였습니다.

그가 플레이했던 90년대 초중반의 덴버 너게츠는 디켐베 무톰보를 중심으로 한 강력한 수비력으로 대변되는 팀이었습니다. 뒤집어본다면 상대적으로 팀의 공격력이나 공격 옵션은 턱없이 부족한 팀이었지요. 그런 상황에서 압둘 라우프의 공격력은 팀에 상당히 큰 힘이 되었습니다. 특히 93-94시즌, 1번 시드로 플옵에 진출한 시애틀을 상대로 보여준 8번 시드 덴버의 업셋 시리즈에서 그의 공격력은 빛을 발하기도 했었지요.

아홉 시즌이라는 짧은 커리어 동안 그가 남긴 통산 성적은 통산 586경기 출장, 평균 26.7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44.2%, 3점슛 성공률 35.4%, 자유투 성공률 90.5%, 평균 14.6득점(8553득점), 3.5어시스트(2079어시스트), 1.9리바운드(1087리바운드), 0.8스틸(487스틸)입니다.




4. 1라운드 4번 Dennis Scott
89년에 창단된 신생팀 올랜도 매직은 팀 창단 역사상 두번째 1라운드 픽으로 조지아 공대 출신의 스몰 포워드인 데니스 스캇을 선택하였습니다. 아.....이 선수는 90년대 초중반 샤크-페니-그랜트-닉 앤더슨과 함께 올랜도의 첫번째 전성기를 이끈 선수였지요. 신장 203cm, 체중 102kg의 괜찮은 사이즈와 정확한 외곽슛을 보유한 괜찮은 스몰 포워드였다는 기억이 납니다.

조지아 공대 시절 데니스 스캇은 3년 동안 총 99경기에 출장, 필드골 성공률 45.2%, 3점슛 성공률 42.2%(831개 시도 351개 성공), 평균 21.4득점, 5.3리바운드, 2.9어시스트를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데니스 스캇은 이 시즌에 125개의 3점슛을 성공시켰는데 이것은 NBA 역대 신인 한 시즌 최다 3점슛 기록에 해당합니다.

데니스 스캇은 데뷔 시즌인 90-91시즌에 82경기에 출장(선발 73경기), 평균 28.5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42.5%, 3점슛 성공률 37.4%, 평균 15.7득점, 2.9리바운드, 1.6어시스트, 0.8 스틸을 기록하였습니다. 물론 1라운드 1번으로 지명된 데릭 콜먼이 워낙에 괴물과 같은 성적을 거두었기 때문에 신인상을 수상하지는 못하였지만 그는 성공적으로 리그에 안착하며 All-Rookie First Team에 선정되었습니다.

두번째 시즌에는 부상으로 인해 18경기에 출장하는데 그쳤습니다. 92-93시즌에는 54경기에 출장하여 필드골 성공률 43.1%, 3점슛 성공률 40.3%, 평균 15.9득점, 3.4리바운드, 2.5어시스틀 기록하였고 93-94시즌에는 평균 12.8드점, 2.7리바운드, 2.6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올랜도의 외곽을 책임졌습니다.

그리고 94-95시즌, 이미 완성된 페니 하더웨이와 샤킬 오닐의 조합에 불스에서 세차례 우승을 경험한 그랜트의 합류로 올랜도는 드디어 파이널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하게 됩니다. 이 시즌 그는 62경기에 주로 교체 출장하여 평균 24.2분을 소화하는 가운데 필드골 성공률 43.9%, 3점슛 성공률 42.6%, 평균 12.9득점, 2.4리바운드, 2.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파이널 진출에 힘을 보탰습니다(하지만 하킴과 드렉슬러의 콤비는 너무나 강했지요).

95-96시즌은 데니스 스캇의 커리어 하이 시즌이었씁니다. 82경기에 모두 선발로 출장하며 평균 37.1분을 소화한 그는 필드골 성공률 44.0%, 3점슛 성공률 42.5%, 평균 17.5득점, 3.8리바운드, 3.0어시스트를 기록하였습니다. 그는 이 시즌 전년도 파이널 5차전부터해서 78경기 연속 3점슛 기록을 세웠습니다(팀 기록).

데니스 스캇은 96-97시즌을 마지막으로 올랜도를 떠나 이후 댈러스, 피닉스, 뉴욕, 미네소타에서 커리어를 이어갔고, 99-00시즌 밴쿠버에서의 선수 생활을 마지막으로 커리어를 마감하였습니다.

사이즈에 비해 리바운드 능력은 취약했고 디펜스가 그리 강한 선수는 아니었지만 그는 상당히 정확한 3점 슈터였습니다. 그는 95-96시즌 모두 267개의 3점슛을 성공시켰는데 이것은 리그 역사상 한시즌 최다 3점슛 기록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96년에는 레이커스와의 대결에서 11개의 3점슛을 성공시켜 당시까지 리그 역사상 한 경기 최다 3점슛 성공 기록을 달성하기도 하였습니다.

통산 성적은 10시즌 동안 총 629경기에 출장, 평균 28.6분, 필드골 성공률 41.7%, 3점슛 성공률 39.7%, 평균 12.9득점(8094득점), 2.9리바운드(1774리바운드), 2.1어시스트(1296어시스트)를 기록하였습니다. 커리어 통산 1214개의 3점슛을 성공시켰는데 이것은 역대 통산 30위에 해당하는 기록이군요.


5. 1라운드 5번 Kendall Gill

아 벌써 지치네요....아무래도 이 포스팅은 며칠 걸릴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머릿속을 스칩니다......다음으로 살펴볼 선수는 이 선수입니다.....

90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5번으로 지명된 선수는 일리노이 대학 출신의 슈팅 가드 켄달 길입니다......대학 1, 2학년 시절은 주로 백업 역할을 하다가 3학년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낸 이 선수는 4학년 시절 29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20.0득점, 4.9리바운드, 3.0 어시스트, 필드골 성공률 50.1%, 3점슛 성공률 37.4%를 기록하며 자신의 진가를 드러냈고, 신생팀이었던 샬럿은 1라운드 5번 픽으로 그를 선택하였습니다.

196cm, 98kg의 사이즈를 가진 이 슈팅 가드는 득점력 뿐 아니라 빠른 움직임을 통한 스틸에서도 발군의 능력을 보여주었고, NCAA 슬램덩크 콘테스트에서 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출중한 운동 능력을 보여준 선수였습니다. 길은 NBA에서 14시즌이라는 긴 커리어를 보내며 나름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냈지만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는 못하였습니다. 그 이유에는 소속팀마다 굴지의 에이스 플레이어들이 득실거렸었고 또한 부상으로 인한 공백 등이 있었습니다.

90-91시즌, 샬럿에서 데뷔 시즌을 치른 길은 주로 렉스 채프먼의 백업으로 출전하였습니다. 이 시즌 그는 82경기에 출장(선발 36경기), 평균 23.7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45.0%, 3점슛 성공률 14.3%(14개 시도 2개 성공), 평균 11.0득점, 3.2리바운드, 3.7어시스트, 1.3 스틸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데뷔 시즌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91-92시즌, 팀은 1라운드 1번 픽으로 레리 존슨을 획득하였습니다. 그리고 91-92시즌 렉스 채프먼의 부상 및 트레이드를 통해 주전자리를 확보한 길은 79경기에 모두 선발로 출장하여 평균 36.8분, 필드골 성공률 46.7%, 3점슛 성공률 24.0%, 평균 20.5득점, 5.1 리바운드, 4.2어시스트, 2.0스틸의 전천후 활약을 펼치며 레리 존슨과 함께 샬럿의 공격을 이끌었습니다.

샬럿은 92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3번으로 알론조 모닝을 획득, 먹시 보그스, 레리 존슨, 켄달 길, 알론조 모닝으로 이루어진 강력한 라인업을 꾸리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이 시즌 길은 레리 존슨과 알론조 모닝에 이은 팀의 제 3공격 옵션으로 69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35.2분, 필드골 성공률 44.9%, 3점슛 성공률 27.4%, 평균 16.9득점, 4.9리바운드, 3.9어시스트, 1.4 스틸을 기록, 팀의 플옵 진출에 기여하였습니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프라이드가 강했던 길은 모닝과 레리 존슨으로 인해 줄어든 자신의 팀 입지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팀에 공개적인 트레이드를 요구, 시즌 종료 후 시애틀로 팀을 옮기게 됩니다.

하지만 이적한 시애틀 역시 만만치 않았지요. 당시 시애틀은 그의 드래프트 동기로 이후 레전드 플레이어로 성장하게 될 게리 페이튼, 괴물같은 운동 능력을 바탕으로 득점과 리바운드를 주도했던 숀 캠프, 그리고 원조 독일 병정 데틀렘프 슈렘프의 강력한 라인업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길은 결국 시애틀에서도 팀의 에이스가 될 수 없었지요. 시애틀에서 길은 93-94시즌과 94-95시즌을 보냈습니다. 시애틀에서의 길의 비중은 샬럿에 있을때보다 더욱 축소되었습니다. 그는 이 두시즌 동안 30분 정도의 출장시간 속에서 평균 14.0득점, 3.5리바운드, 3.0어시스트, 1.7 스틸 정도를 기록하였습니다.

95-96시즌....친정팀인 샬럿으로 다시 복귀하였지만 시즌 중 다시 뉴저지로 트레이드되어 팀을 옮기게 됩니다. 자아....어쩌면 촉망받던 유망주가 결국 커리어 중반 이후 자리를 잡지 못하고 결국 저니맨으로 전락하는구나.....뭐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길은 자신의 커리어 동안 뉴저지에서 가장 긴 시간을 보내며 자신의 존재 가치를 조금이지만 보여주었습니다.

95-96시즌, 샬럿에서 36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12.9득점을 기록하였던 길은 뉴저지로 트레이드 된 후 11경기에서 평균 17.5득점을 기록하며(3.9리바운드, 3.2어시스트, 2.0스틸) 샬럿 시절보다는 향상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96-97시즌....길은 드디어 자신의 커리어 하이 시즌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 시즌 길은 82경기에 출장(선발 81경기), 평균 39.0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44.3%, 3점슛 성공률 33.6%, 평균 21.8득점, 6.1리바운드, 4.0어시스트, 1.9 스틸의 올스타급 활약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길의 이러한 활약에도 불구하고 네츠는 하위권을 전전할 뿐이었습니다.


케리 키틀스와 강력한 리바운더인 제이슨 윌리암스를 축으로, 97년 드래프트에서 지명한 키스 밴 혼 역시 첫 시즌부터 평균 20득점에 육박하는 공격력을 선보였었죠. 그리고 수준급 포인트 가드인 샘 커셀 등으로 강력한 라인업을 구성하였습니다. 결국 이러한 멤버 구성상 길은 또다시 팀 주역의 자리에서 물러날 수 밖에 없었지요.


이후 00-01시즌까지 뉴저지에서 플레이를 하였지만 그의 평균 득점은 13.4득점-11.8득점-13.1득점-9.1 득점으로 계속해서 낮아졌고, 특히 00-01시즌에는 또다시 부상 등으로 인해 51경기에 결장하였습니다. 이후 길은 네 시즌 동안 마이애미, 미네소타, 시카고, 밀워키 등에서 백업 슈팅 가드로 플레이를 하다가 04-05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하였습니다.

36세에 커리어를 마감한 길은 한때 복싱 선수 생활을 하기 위해 훈련을 받았었고 또한 2007년인가에는 복귀 의사를 밝혔던 적도 있었지습니다만 성공하지는 못하였습니다.

통산 성적은 커리어 14시즌 동안 966경기 출장, 평균 30.5분, 필드골 성공률 43.4%, 3점슛 성공률 30.0%, 평균 13.4득점(12914득점), 4.1리바운드(4002리바운드), 3.0어시스트(2945리바운드), 1.6스틸(1519스틸)입니다. 커리어 통산 1500개 이상의 스틸을 기록했다는 점을 제외하면 그리 눈에 띄는 성적은 아닙니다. 하지만 글쎄요......그저 아쉬운 선수이지요. 좋은 재능과 능력을 보유한 선수였지만 에이스가 되기에는 뭔가 부족한 부분이 많이 보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6. 1라운드 7번 Lionel Simmons

다음으로 살펴볼 선수 역시 안타까운 선수입니다.

지금부터 살펴볼 선수는 1라운드 7번으로 새크라멘토에 지명된 라살 대학 출신의 스몰 포워드 라이오넬 시몬스입니다. 203cm, 99.3kg으로 스몰 포워드로서 이상적인 사이즈를 갖춘 이 선수는 대학 시절부터 폭발적인 득점력과 강력한 리바운드 능력으로 많은 팀들의 주목을 받았던 선수였습니다. 대학 4년 간 시몬스는 131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24.6득점, 10.9리바운드, 2.7 어시스트를 기록하였습니다. 그가 대학 4년간 기록한 총 득점은 3217득점. NCAA Division I 역사상 통산 3000득점 이상을 기록한 선수는 단 일곱명에 불과합니다.

시몬스는 데뷔 시즌이었던 90-91시즌부터 그의 능력을 폭발시켰습니다. 90-91시즌 그는 79경기에 출장(모두 선발 출장), 평균 37.7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42.2%, 3점슛 성공률 27.3%, 평균 18.0득점, 8.8리바운드, 4.0어시스트, 1.4스틸, 1.1 블락슛을 기록하며 데뷔 시즌부터 올스타급의 성적을 올렸고, 시즌 내내 데릭 콜먼과 함께 신인왕 레이스를 펼쳤습니다.

데뷔 시즌부터 강력한 임펙트를 보여주었던 시몬스는 91-92시즌에도 78경기에 모두 선발로 출장하여 평균 37.1분, 필드골 성공률 45.4%, 3점슛 성공률 20.0%, 평균 17.1득점, 8.1리바운드, 4.3어시스트, 1.7스틸, 1.7 블락슛을 기록하며 공수 양면에서 새크라멘토를 이끌어갈 에이스 플레이어로서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었습니다.

92-93시즌 역시, 그는 꾸준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69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17.9득점, 7.2리바운드, 4.5어시스트, 1.4스틸을 기록하였고 93-94시즌에도 75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15.1득점, 7.5리바운드, 4.1 어시스트, 1.4스틸을 기록하면서 리그의 엘리트 스몰 포워드로서의 자리를 확고히 하는가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대학 시절부터 달고 살았던 고질적인 크고 작은 부상으로 인해 급속하게 무너지게 됩니다. 94-95시즌 부상으로 24경기에 결장하며 58경기에 출장하였지만 선발 출장 경기수는 3경기에 불과하였고 플레이 타임은 18.3분으로 줄어들었습니다. 그와 함께 그의 개인 기록 역시 평균 5.6득점, 3.4리바운드, 1.5어시스트. 0.5스틸로 낮아졌지요.

95-96시즌에도 54경기 출장에 그쳤고 평균 득점은 4.6득점으로 더욱 낮아졌습니다. 그리고 96-97시즌 41경기에 교체로 출장하여 3.4득점, 2.4리바운드, 1.4 어시스트라는 초라한 성적만을 남긴채 일곱 시즌 만에 자신의 커리어를 마감하였습니다.

데뷔 이후 네 시즌 동안 그가 보여준 플레이는 너무나도 멋지고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만약 그가 건강한 모습으로 정상적인 커리어를 이어갔다면 새크라멘토에 웨버가 합류한 98-99시즌부터 한동안 제이슨 윌리엄스-라이오넬 시몬스-크리스 웨버-블레이드 디박으로 이어지는 매력적인 팀을 볼 수 있었을텐데라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습니다.

커리어 통산 성적은 일곱시즌 동안 총 454경기에 출장, 평균 29.7분, 필드골 성공률 43.3%, 3점슛 성공률 30.5%, 평균 12.8득점(5833득점), 6.2리바운드(2833리바운드), 3.3 어시스트(1498어시스트), 1.1 스틸(514스틸), 0.8 블락슛(361블락슛)입니다.

7. 1라운드 11번 Tyrone Hill
이번에 살펴볼 선수는 해골을 연상시키는 외모가 인상적인 수비형 빅맨 타이론 힐입니다......사비에르 대학 출신의 파워 포워드로서 206cm, 114kg의 괜찮은 사이즈와 함께 수비력과 리바운드 능력에 있어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었지요. 바클리나 말론처럼 득점을 주로 하는 4번들과는 달리 전형적인 블루워커 인사이더 부류의 선수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대학 시절에는 득점력도 괜찮은 선수였습니다. 1학년 때 8.8득점, 8.4리바운드를 기록하는데 그쳤지만 2학년 때는 15.3득점, 10.5리바운드, 3학년 시절에는 18.9득점에 12.2리바운드, 4학년 때는 20.2득점에 12.6리바운드를 기록했습니다. 4학년 때의 모습만 본다면 조금 많이 뒤로 밀려서 지명이 된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네요. 어찌되었건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는 타이론 힐을 지명하며 자신들의 1라운드 지명권을 사용하였습니다.

데뷔 시즌에서의 힐의 모습은 그리 두드러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로 식스맨으로 출장하여(74경기), 평균 16.1분, 필드골 성공률 49.2%, 평균 5.3득점, 5.2리바운드의 평범한 성적을 올렸지요. 하지만 이후 힐은 큰 폭은 아니지만 점진적으로 서서히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91-92시즌에는 82경기에 출장(선발 75경기), 평균 23.0분, 필드골 성공률 52.2%, 8.2득점, 7.2리바운드를 기록하며 평균 수준의 4번으로서의 활약을 펼쳤고, 92-93시즌에는 74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28.0분, 필드골 성공률 50.8%, 평균 8.6득점, 10.2리바운드를 기록, 두번째 시즌에 비해서도 조금 더 향상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즌을 마지막으로 힐은 클리블랜드로 팀을 옮기게 됩니다. 힐에 대한 기억은 여기서부터 납니다. 93-94시즌 힐은 57경기에서 주로 식스맨으로 활약, 평균 25.4분, 필드골 성공률 54.3%, 평균 10.6득점, 8.8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출장 시간 대비 상당히 괜찮은 활약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94-95시즌에는 주로 주전으로 출장 70경기 출장(67경기 선발), 평균 34.2분을 소화하는 가운데 필드골 성공률 50.4%, 평균 13.8득점, 10.9리바운드의 더블-더블 시즌을 보냈고, 1995년 올스타에 선정되기도 하며 커리어에서 최고의 시즌을 보내게 됩니다.
 
95-96시즌에는 부상으로 인해 48경기에 결장하며 제대로 활약을 못하였고, 96-97시즌에는 비교적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와 74경기에 출장, 평균 12.9득점 9.9리바운드를 기록하며 더블-더블에 근접한 활약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97-98시즌부터 98-99시즌 중반까지 밀워키에서 플레이한 힐은 98-99시즌 중반 필라델피아로 소속팀을 옮기게 됩니다. 힐은 00-01시즌까지 필라델피아에서 플레이했습니다. 특히 00-01시즌에는 디켐베 무톰보와 테오 레틀리프와 함께 식서스의 골밑을 지키며(9.6득점, 9.0리바운드) 팀이 파이널에 진출하는데 나름 공헌을 했습니다. 하지만 파이널 무대에서 코비와 샤킬의 원투 펀치에 식서스는 제대로 힘 한번 쓰지 못하고 패퇴, 준우승에 그쳤습니다. 이 시즌을 마지막으로 힐은 다시 친정팀인 클리블랜드, 다시 필라델피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이애미에서 세시즌을 더 보냈지만 정상적인 몸상태가 아니었고 동시에 기량마저 쇠퇴하며 제대로된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한채 03-04시즌 유니폼을 벗었습니다.

통산 성적은 커리어 14시즌 동안 801경기 출장, 평균 28.0분, 필드골 성공률 50.2%, 평균 9.4득점(7532득점), 8.6리바운드(6854리바운드)입니다. 통산 성적만 놓고 보면 패스해도 무방한 선수이지만 이상하게 기억 속에 각인되어 있는 선수이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골밑에서 근성있게 버텨주는 플레이 스타일을 좋아하는지라 간략하게 커리어를 정리해보았습니다.

8. 1라운드 19번 Dee Brown
다음으로 살펴볼 선수는 90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19번으로 보스턴 셀틱스에 지명된 디 브라운입니다. 아주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폴피어스가 등장하기 이전 그래도 보스턴의 암흑기 시절 많은 팬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포인트 가드이지요. 특히 1991년 슬램덩크 콘테스트에서 우승할 때 보여준 오른팔도 눈가리고 날아서 왼손으로 원핸드 덩크......이 장면은 저 역시 아직 기억이 납니다.

188cm, 93kg의 포인트 가드인 디 브라운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던 잭스노빌 대학 3학년 시절 이후부터입니다. 1, 2학년 시절 별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던 브라운은 3학년 시절부터 대폭발을 하게 됩니다. 그는 3학년 때 30경기에 출장하여 필드골 성공률 49%, 3점슛 성공률 42.6%, 평균 19.6득점, 7.6리바운드, 3.7 어시스트를 기록하였고, 4학년 시절에는 29경기에 출장하여 필드골 성공률 49.6%, 3점슛 성공률 37.5%, 평균 19.3득점, 6.6리바운드, 5.2어시스트를 기록하며 공격형 포인트 가드로 대성할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루키 시즌이었던 90-91시즌 82경깅에 출장(선발 5경기)하여 주로 식스맨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이 시즌 브라운은 평균 23.7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46.4%, 평균 8.7득점, 2.2리바운드, 4.2어시스트, 1.0스틸을 기록하며 All-Rookie First Tean에 선정되었습니다.

91-92시즌, 부상으로 51경기에 결장하며 부진을 겪었던 브라운은 92-93시즌 복귀하여 80경기에 출장, 평균 28.2분, 필드골 성공률 46.8%, 3점슛 성공률 31.7%, 평균 10.9득점, 2.5리바운드, 5.8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서서히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93-94시즌에는 77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37.2분, 필드골 성공률 48%, 3점슛 성공률 31.3%, 평균 15.5득점, 3.9리바운드, 4.5어시스트, 2.0 스틸을 기록하며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고, 다음 시즌에도 15,6득점, 3.2리바운드, 3.8어시스트, 1.4스틸로 꾸준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였습니다. 96-97시즌부터 그가 커리어를 마감한 01-02시즌까지 브라운은 보스턴과 토론토를 거치며 72경기를 출장한 97-98시즌을 제외하고는 단 한번도 50경기 이상을 출장하지 못하였습니다. 특히 그가 커리어의 마지막 2년을 보낸 올랜도에서는 2년간 14경기 출장에 그쳤습니다. 결국엔 부상이 원수인 것이죠.

부상없이 꾸준히 커리어를 이어갔다면 지금보다는 좀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선수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물론 1번으로 놓고 보기에는 어시스트 숫자도 많이 부족한 편이지만, 그래도 괜찮은 공격력을 보유한 가드로서 1번과 2번 자리를 번갈아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선수였기에 더 큰 아쉬움이 남네요.

통산 성적은 12시즌 동안 608경기에 출장(선발 267경기), 평균 27.7분, 필드골 성공률 43.6%, 3점슛 성공률 35.7%, 평균 11.1득점(6758득점), 2.6리바운드(1569리바운드), 3.7어시스트(2227어시스트), 1.3 스틸(800)입니다.




9. 1라운드 21번 Jayson Williams

이번에 살펴볼 선수는 90년대 중후반 뉴저지 네츠의 강력한 리바운드 머신, 제이슨 윌리엄스입니다. 아..... 이선수도 정말 기구한 팔자이지요. 208cm, 111kg의 괜찮은 사이즈로 4번과 5번을 동시에 소화한 선수입니다.

세인트 존스 대학 시절 괜찮은 골밑 파워를 보여주었던 윌리엄스를 선택한 구단은 피닉스 선즈였습니다.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포스트에서의 파워가 절대적으로 취약했던 선즈는 제이슨 윌리엄스가 로포스트를 든든히 받쳐주기를 기대하였지만 윌리엄스는 데뷔시즌이었던 90-91시즌, 52경기에서 평균 9.8분만을 소화하며 평균 3.5득점, 2.1리바운드를 기록하며 팀과 팬들에게 실망을 안겼지요. 그리고 91-92시즌에도 그는 50경기에서 평균 12.9분만을 소화하며 평균 4.1득점, 2.9리바운드로 전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못했습니다.

결국 선즈는 두 시즌만에 윌리엄스를 뉴저지로 트레이드 시키며 그를 포기하게 됩니다. 뉴저지로 트레이드 된 이후 두 시즌 동안 윌리엄스가 보여준 모습은 선즈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95-96시즌부터 서서히 그의 잠재력이 폭발하기 시작했지요. 95-96시즌 그는 데뷔 이후 처음으로 80경기에 출장, 평균 23.2분을 소화하며, 평균 9.0득점, 10.0리바운드를 기록하며 가능성을 뒤늦게 보여주게 됩니다. 96-97시즌에는 부상으로 인해 41경기에만 출장하였지만 그는 평균 34.9분, 평균 13.4득점, 13.5리바운드를 기록하며 다음 시즌을 기약하였지요.

97-98시즌, 그는 비교적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와서 65경기에 출장, 평균 12.9득점, 13.6리바운드를 기록, 리바운드 부분 리그 2위에 랭크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커리어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올스타에도 선정되었습니다.

데뷔 이후 여섯 시즌이 지난 시점부터 자신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 그리고 나이 서른이 되어서야 강력한 리바운드 능력을 인정받으며 제이슨 윌리엄스의 커리어는 그렇게 힘차게 전개되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꼬이려면 어디서든지 꼬이는게 사람 인생이지요.
97-98시즌, 제이슨 윌리엄스는 시즌 초반 30경기 동안, 평균 8.1득점, 12.0리바운드를 기록하며 팀의 기둥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고 네츠 역시 초반 높은 승률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는 이 시즌 초반 30경기 동안 게임 당 평균 2.0개의 블락슛을 작렬시키고 있었습니다(이전까지 그가 기록한 한 시즌 최다 블락슛은 게임당 0.9개).

시즌 중반이 넘어서면서 힘이 떨어지기 시작한 네츠는 스테판 마베리를 트레이드를 통해 영입, 부족한 공격력을 보강하며 다시 한번 힘을 내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애틀랜타와의 시합 도중 스테판 마베리와 충돌, 이 과정에서 제이슨의 오른쪽 다리가 산산조각이 나버렸습니다. 그는 이후 남은 시즌을 통째로 접고 수술과 재활에 몰두하였지만 결국 회복에 실패, 자신의 기량을 꽃피운지 2년만에 커리어를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제이슨 윌리엄스는 은퇴 총기 살인 사건에 연루되어 50년 형을 선고받을 뻔하다가 거듭된 항소 끝에 간신히 살아나오기도 했네요. 흐음......

통산 성적은 커리어 아홉 시즌 동안 475경기에 출장, 평균 7.3득점(3472득점), 7.5리바운드(3584리바운드)를 기록하였습니다. 네..워낙에 커리어 중반까지 별다른 기량을 보여주지 못한데다가 뒤늦게 기량이 만개하였지만 그 직후 부상으로 인한 은퇴로 인해 통산 기록은 별로 볼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가 커리어 통산 475경기를 뛰는 동안 잡아낸 오펜스 리바운드의 숫자는 무려 1587개(경기당 3.0개)입니다.

특히 97-98시즌, 그는 평균 리바운드 13.6개로 이 부분 2위, 토탈 리바운드에서는 883개로 4위에 올랐습니다(그는 69경기에 출장했습니다). 이 시즌 그는 수비 리바운드보다 더 많은 공격 리바운드를 기록하였습니다. 그가 이 시즌에 기록한 공격 리바운드는 모두 443개였고, 수비 리바운드는 440개였습니다.

아마 그가 부상없이 좀 더 오래 커리어를 지속하였다면 최소한 리바운드 부분에서만큼은 리그 역사상 한획을 그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10. 1라운드 27번 Elden Campbell
90년 NBA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에 지명된 선수 중 마지막으로 살펴볼 선수는 1라운드 27번으로 레이커스에 지명된 엘든 켐벨입니다. 참고로 켐벨은 90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에 지명된 마지막 선수입니다. 213cm, 126.6kg의 강력한 하드웨어를 갖춘 클렘슨 대학 출신의 빅맨을 영입한 이유는 압둘 자바 이후 취약해지느 포스트의 강화가 그 이유였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대학 시절 그는 123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15.3득점, 6.8리바운드를 기록하였습니다. 그의 평균 출장 시간이 26분 임을 감안하면 출장시간 대비 상당히 괜찮은 효율을 보여준 선수이지요. 데뷔 이후 아홉 시즌을 레이커스에서 플레이하였고, 특히 93-94시즌부터 96-97시즌까지는 꾸준히 평균 +12득점, +7리바운드를 해주며 끈기있기 레이커스의 포스트를 지켰습니다.

98-99시즌 도중 레이커스에서 샬럿으로 팀을 옮겨 02-03시즌까지 호네츠에서 플레이하였고 이 기간 중에도 평균 +13득점, +8리바운드를 기록해준 건실한 센터였지요.

03-04시즌에는 디트로이트에서 백업 센터로 플레이하며 챔피언 반지를 획득하는데도 성공했던 선수입니다. 그리고 04-05시즌을 끝으로 커리어를 마감했지요.

90년대에는 워낙에 좋은 빅맨들이 득실거렸던 시절이라 엘든 켐벨은 그리 눈에 띄는 선수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공수를 겸비한 4대 센터들로 인해 팬들의 눈이 높아지다보니 그가 과소평가받았던 점도 없지 않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는 어찌 되었건 주어진 출장 시간 동안 포스트에서 끈기있게 버티며 리바운드를 걷어올렸고 득점을 착실하게 해준 괜찮은 센터였습니다.

통산 성적은 커리어 14시즌 동안 1044경기에 출장, 평균 24.7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46.0%, 평균 10.3득점(10805득점), 5.9리바운드(6116리바운드), 1.5블락슛(1602블락슛)을 기록하였습니다.

휴우....간신히 1라운드에서 살펴볼만한 선수들에 대한 정리가 끝났습니다.
90년 드래프트에서는 2라운드에 지명된 선수들 중에서는 눈에 띄는 선수들이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선수가 2라운드 2번(전체 29번)으로 시카고에 지명된 유로 매직 토니 쿠코치이지요. 쿠코치에 대해서는 별도의 포스팅을 작성한 적이 있으니 참고로 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http://kaga4467.egloos.com/1622032)

쿠코치 다음으로 리그에서 나름 제 역할을 하며 꾸준히 커리어를 이어간 선수로는 2라운드 18번(전체 45번)으로 인디애나 페이서스에 지명된 안토니오 데이비스가 있습니다. 안토니오 데이비스는 90년 드래프트에서 지명되었지만 유럽 리그에서 플레이 하다가 93-94시즌 NBA에 데뷔하였지요. 공격력이 뛰어난 선수는 아니었지만 근성과 파워로 골밑에서 버티며 페이서스의 주전 센터 릭 스미츠를 잘 보좌하였고 4번과 5번을 번갈아 볼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가진 선수였습니다.

커리어 13시즌 동안 903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28.9분을 소화하였고 평균 10.0득점(9041득점), 7.5리바운드(6755리바운드)를 기록하였습니다. 00-01시즌에는 올스타에 선정되기도 하였지요. 90년대, 릭 스미츠의 플레이 타임이 제한될 수 밖에 없었던 페이서스가 동부의 뉴욕, 샬럿(이후 마이애미), 올랜도와 같은 강력한 포스트 중심의 팀들과 대등하게 맞설 수 있었던 것은 안토니오 데이비스와 데일 데이비스 등과 같은 근성과 투지가 넘치는 4번들이 존재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선수는 2라운드 21번(전체 48번)으로 피닉스에 지명된 세드릭 세발로스입니다. 90년대 초반과 중반 상당히 뛰어난 공격력을 가진 스몰 포워드로서 지명 순위에 비해서는 훨씬 더 좋은 활약을 펼친 선수 중 한명이지요. 물론 단점은 꾸준하지 못했다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는 내외곽 어디에서도 득점을 올릴 수 있는 선수였습니다. 데뷔 세번째 시즌이었던 92-93시즌 평균 12.8득점을 기록하며 처음으로 두자리 수 득점을 기록한 그는 93-94시즌, 29경기에 결장하였지만 53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19.1득점, 6.5리바운드, 1.7 어시스트의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레이커스로 팀을 옮겨 두 시즌 동안 자신의 전성기를 보내게 됩니다. 94-95시즌, 레이커스에서 58경기에 출장하여 필드골 성공률 50.9%, 3점슛 성공률 39.8%, 평균 21.7득점, 8.0리바운드, 1.8 어시스트, 1.0 스틸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올렸고(올스타 선발), 95-96시즌에는 78경기에 출장하여 필드골 성공률 53.0%, 평균 21.2득점, 6.9 리바운드를 기록하였습니다.

하지만 이후 잦은 부상으로 인해 매 시즌 30경기 이상 씩을 결장하며 빠르게 쇠퇴하였고 결국 96-97시즌 이후 피닉스-댈러스-디트로이트-마이애미로 팀을 옮겨 다니다가 00-01시즌 커리어를 마감하였습니다.

전성기가 극히 짧았고 말년에는 저니맨 신세로 전락하였지만 그는 2라운드 전체 48번으로 지명된 선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리어 14시즌 동안 609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24.2분, 필드골 성공률 50.0%, 3점슛 성공률 30.9%, 평균 14.3득점(8693득점), 5.3리바운드(3258리바운드)의 통산 성적을 남겼다는 점은 충분히 훌륭하고도 남지요.

90년 드래프트의 경우 상당히 괜찮은 재능을 가진 선수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관리 실패와 멘탈적인 문제들, 혹은 부상 등으로 인해 그 재능을 제대로 꽃피우지 못하고 커리어를 마감한 선수들이 많아서 아쉬움이 큰 드래프트 중 하나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오랜만에 드래프트 관련 포스팅을 쓰니 확실히 힘드네요. 이틀 반 정도 걸린 것 같습니다. 2라운드에 지명된 선수들에 대해서도 좀 더 자세히 다루고 싶었는데 쓰다보니 지쳐서 간략하게 정리하고 넘어가는 수준에서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조만간 다시 여유가 생기면 91년 드래프트에 관한 글도 작성하도록 하겠습니다......하아~

덧1> 오늘 드디어 NBA가 개막했군요. 경기를 보지는 못했지만 강력한 우승후보로 손꼽히는 레이커스와 셀틱스가 개막전을 승리로 장식하며 상쾌하게 출발하였습니다. 특히 보스턴은 같은 컨퍼런스 라이벌인 클리블랜드를 꺾었다는 점에서 개막 초반 기세가 상당히 좋을 것이라는 기대도 해보네요. 확실히 가넷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큰 것 같습니다.

덧2> 포스팅을 마무리하고 글을 다시 살펴보니 1라운드에 지명된 선수들 중 로이 보우트와 테리 밀스에 대한 정리가 빠졌군요. 조만간 시간날 때 두 선수의 커리어에 대한 포스팅은 별도로 하도록 하겠습니다.

덧글

  • AlexMahone 2009/10/28 19:11 # 답글

    아.. 전 저 제임스 윌리암스가

    백인 포인트가드인 그 선수로 알았습니다.

    아식스 선전에서도 나왔던.. ㅋ


    게리페이튼의 그물망 수비.. 쩔었죠 ㅋ

    팀 이름 슈퍼소닉스에 참 잘 어울렸던 선수..

    길 교주의 워싱턴도 승리했다네요 ^&^
  • 울프우드 2009/10/28 19:22 #

    Alexmahone님 반갑습니다. 제이슨 윌리엄스라는 이름이 많다 보니 종종 헷갈리는 경우가 많지요. 백인 포인트 가드도 있습니다. ㅋ

    페이튼의 수비는 정말 역대 PG 중 최고 클래스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합니다......

    오~워싱턴도 승리했군요.....^^

    방문해주셔서 감사해요.
  • 오드아이 2009/11/02 16:52 # 삭제 답글

    오랜만에 올라온 드래프트글 잘봤습니다.
    진짜 공들이신 흔적이 글 구석구석마다 묻어나네요 ^^.
    페이튼이 이때 드랩됬었군요. 전 레이커스에 말론이랑 가서 반지원정대 실패한이후
    말론처럼 반지 못끼고 마감한줄 알았었는데 그래도 마지막에 반지하나 끼었으니
    확실히 성공적인 선수생활을 보냈다고 봐요 (적어도 비운의 레전드는 모면했으니).
    글러브라는 별명처럼 매치업상대를 쥐잡듯 잡았던게 문득 떠오르네요 ㅎㅎ.
  • 울프우드 2009/11/02 18:56 #

    페이튼의 수비력은 정말 포인트 가드 중에서는 역사상 최고 수준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드래프트 관련 글은 한번 쓸때마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또 힘이 들다 보니 자주 쓰지는 못하겠더라구요.....ㅋ

  • 바른손 2009/11/16 23:51 # 답글

    보 킴블도 이때 드래프티였군요.
    이 친구와 1명더 해서 영화로도 유명했는데 기억이 안나네요.약체 로욜라 대학에서 돌풍으로 이끌었던 2명의 선수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가 있는데 그 주인공일겁니다.

    그러나 프로에선 커리어가 극히 짧았고, 제 기억으론 둘 중 하난 사고로 일찍 죽은걸로 알고 있구요.이 드래프티에선 그 이름이 제일 눈에 밟힙니다.
  • 바른손 2009/11/16 23:52 # 답글

    이 드래프티에 낯익고 쏠쏠했던 선수들이 참 많네요.더 읽어 봐야겠어요.
  • 울프우드 2009/11/17 01:25 #

    보 킴블에 대해서는 저도 잘몰랐었는데....사연이 있었던 선수였네요.....

  • 바른손 2009/11/17 11:23 # 답글

    90년대를 이끌었던 결실한 포워들이 특히 많았네요.
    콜먼, 로이보트.타이론힐, 제이슨윌리엄스 같은 선수들이에요.한 명 한 명 소개를 통해 더 잘 알게 되었습니다.

    2라운드에도 케빈프리처드(현 명단장으로 통하죠)도 눈에 띄고, 쿠콕이나 부쉴러도 보이고 , 초창기 마이애미의 빔보콜스도 보이네요.참 이런글 너무 좋습니다 ^^
  • 울프우드 2009/11/17 11:44 #

    항상 부족한 글을 잘 읽어주셔서 너무나 감사해요.....
    바른손님 말씀처럼 이 드래프트에서는 레전드급이라 불릴만한 선수들은 잘 보이지 않지만 말 그대로 견실한 선수들이 많이 배출된 것 같아요.^^
  • crdai 2009/11/17 13:13 # 답글

    콜맨 - 앤더슨라인은 꽤나 좋아했던 라인이었는데 아쉬웠습니다. 마버리 - 가넷 라인이 나올때까지는 포스트 스탁턴&말론으로 평가를 받았는데 말입니다. 앤더슨은 몰라도 콜맨은 너무 자기 관리가 "허---"했지요..

    개인적으로 엘덴 캠벨을 참 좋아했지요. 뭔가 견실하고, 딱 평범한 한 선수가 성장해서 전성기를 보내고, 쇠퇴해서 은퇴하는...그 전형이 숫자로 표현되는 기준점이랄까. 외모는 카셀과 더불어 ET NO.2였지만..(그만)

    한때 레이커스의 ACE(...)였던 씨발로스(...)라던가 인디애나 데이비스형제중 한명인 안토니오도 보이는군요. 호옹
  • 울프우드 2009/11/17 13:47 #

    콜먼 앤더슨 라인은 전성기 시절 정말 멋진 모습을 보여준 훌륭한 원투 펀치였습니다. 하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했기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 조합이지요. 앤더슨도 앤더슨이지만 콜먼 쪽에 조금 더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그놈의 자기 관리 제대로만 했어도.....)

    엘덴 켐벨은 압도적인 센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인사이드에서 버텨줄 수 있었던 좋은 빅맨이라는 생각을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바른손님이 위에 써주신대로 정말 이 드래프트에서는 상당히 견실하고 질긴 선수들이 많이 배출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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