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한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앨런 아이버슨의 은퇴..... 스포츠

고등학교 시절부터 nba 중계를 접하면서 처음 받았던 충격은 그들의 사이즈였습니다......

농구대잔치 시절.....190cm만 넘어가면 센터를 보았던 한국 농구의 현실을 생각하면 2m를 전후한 엄청난 덩치들이 폭발적인 스피드와 유연한 움직임을 통해 마치 춤을 추듯 볼을 림 위에 올려놓는 모습을 보며 "아....세상에 저런 농구도 있었구나"라는 생각 이상의 큰 충격을 받았었지요.....

하지만 그런 엄청난 덩치들 사이에서도 단신의 선수들이 코트를 누비며 그 엄청난 사이즈의 선수들과 경쟁을 하는 모습은 또다른 하나의 감동이자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보통....그런 단신의 선수들은 주로 가드 포지션.....그 중에서도 포인트 가드 포지션에서 많이 보이더군요......(여기서의 단신 기준은 185CM입니다.....물론 nba의 사이즈를 생각하면 195cm 이하도 단신에 속하지만 어렸을때 생각했던 기준은 185cm였기에.....)

그런데 대학 시절.....한 선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183cm(신발 벗으면 180이 안된다는)의 조그마한 흑인 선수가 볼 배급이 아닌 엄청난 득점력으로 경기를 지배하였지요......그는 수비에서의 미스 매치 상황에서도 빠른 움직임과 손놀림을 통해 스틸을 노렸고, 공격에서는 외곽과 돌파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장신들이 우글거리는 코트를 압도하였습니다.......

네...바로 며칠전에 은퇴를 선언한 90년대 중반 이후 NBA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던 이선수......
네....바로 앨런 아이버슨입니다.....

아이버슨에 대한 첫 기억은 96년 12월 어느날 쯤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나는데, 아마 시카고와 필라델피아와의 경기였을 것입니다.(좀 전에 게임 기록들을 뒤져보니 12월이 맞네요....정확히 12월 21일 경기였습니다....) 말로만 듣던 아이버슨의 플레이를 제가 직접 지켜본 첫 경기였습니다.....결과는 조던이 이끄는 불스가 111:105로 승리하였습니다. 조던은 31득점을 기록하며 팀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제 눈을 사로잡은 선수는 시카고의 조던이 아니라 필라델피아의 단신 루키 가드였습니다. 아이버슨은 이 경기에서 3점슛 4개 포함, 32득점을 기록하며 조던과 대등한 수준의 경기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깨끗한 폼으로 불스의 수비를 제치며 3점슛을 꽂아넣었고, 화려한 드리블과 빠른 스피드로 조던을 제치며 돌파에 이은 골밑 슛을 성공시키는 등 득점에 관한한 모든 루트를 통한 엄청난 득점력을 선보였습니다......

그 경기를 지켜본 뒤 제 머릿 속에 떠오른 생각은 "뭐...저런 선수가 다 있나"라는 놀라움이었지요......

그렇게 이 선수는 제 머릿 속에 각인되었습니다......며칠 전 이 선수의 공식 은퇴문을 접하고.....과거에 비해 많이 퇴색되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정상급 수준의 기량과 가치를 지닌 선수가 34세라는 그리 많지 않은 나이에 은퇴를 발표했을까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대답은 간단하지요.....많은 분들이 언급했듯이 신체적으로 엄청난 핸디캡을 안고 있었던 그가 10년 넘게 정상급의 커리어를 유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인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을 것이라고 저도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서 더 아쉽습니다.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제가 기억하는 위대한 선수들이 코트 위에서 하나 둘 씩 사라지는 것이야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아이버슨은......물론 지난 시즌이 끝나고 이번 시즌 개막 전까지 팀을 구하지 못하고 고전하는 모습을 보며 설마라는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급작스럽게 그가 코트를 떠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흡사....무톰보 옹이 플옵 경기 중 부상으로 급작스럽게 선수 생활을 마감하였던 순간에 느낀 당혹감과 허무함 정도일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 위대한 가드의 커리어를 정리해보려 합니다.......

앨런 아이버슨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명센터들의 산실인 조지 타운 대학 출신입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잘 기억이 안나지만 아마 그는 조지 타운 대학 입학 당시 SAT 최저 점수를 받지 못하였고 그로 인해 정식 입학 및 농구부로서의 활동에 문제가 있었지요. 당시 조지타운 대학의 감독은 NCAA 측과 담판을 지었고 NCAA의 관계자가 그의 플레이 모습을 직접 보고 특례 입학으로 간신히 입학을 허가하게 됩니다......

NBA에서의 아이버슨은 1번보다는 2번으로 볼 수 있겠지요. 하지만 대학 시절 아이버슨은 1번이었습니다. 하지만 전통적인 1번의 개념과는 거리가 먼 선수였지요. 슈팅 보다는 패스를 염두에 두며 게임 전체를 조립하고 팀원들에게 찬스를 제공해주는 역할을 담당하는 전통적인 1번과는 달리(아아....스탁턴 옹) 그는 슈팅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공격적인 1번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플레이 스타일의 포인트 가드를 보기에는 그의 체격은 너무나 왜소하였지요. 그는 신장 183cm, 체중 81.6kg의.....미국 농구에서 플레이하기에는 너무나도 작은 선수였습니다. 하지만 이 작은 선수는......거구들이 우글대는 코트 안에서 게임을 지배하며 엄청난 득점력을 선보이며 센세이션을 일으켰지요......

신입생 시절 아이버슨은 NCAA에서 총 30경기를 플레이하였습니다. 신입생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평균 플레이 타임은 32.2분으로 명문 조지 타운 대학의 주전 1번이었지요. 30경기 동안 그는 평균 20.4득점, 평균 4.5어시스트, 3.3리바운드, 3.0 스틸을 기록하였습니다. 하지만 신입생으로 뛰어난 성적을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비난을 들었습니다. 득점력은 높았지만 그의 필드골 성공률은 평균 39.0%에 불과하였고, 3점슛 성공률 역시 23.2%, 자유투 성공률은 68.8%에 불과하였습니다. 그가 30경기 동안 시도한 총 필드골은 520개였고, 이 중 203개만이 성공될 정도로 정확도 높은 공격을 구사하는 선수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대학 2학년 시절.....그는 신입생 시절에 비해 진화하게 됩니다. 그는 총 37경기에 출장, 평균 32.8분을 소화하는 가운데 필드골 성공률 48.0%, 3점슛 성공률 36.6%, 평균 25.0득점, 4.7어시스트, 3.8리바운드, 3.4 스틸을 기록하며 공수 지표 모두에서 신입생 시기에 비해 일취월장한 모습을 보여주었지요. 2학년 시절의 활약은 많은 NBA 팀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하였습니다. 그리고 아이버슨은 대학을 그만두고 96년 드래프트에서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1996년 드래프트는 90년대 드래프트 중 최고 클래스의 드래프트가 아니었나 싶습니다.....이 드래프트에서 지명된 선수를 살펴보면.

마커스 캠비, 샤리프 압둘라힘, 스태판 매버리, 레이 알렌, 앤투완 워커, 케리 키틀스, 에릭 뎀피어, 코비 브라이언트, 스티브 내쉬, 저메인 오닐, 데릭 피셔, 일거스커스 등....지금 현재 리그에서 레전드로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선수들과 또한 각 팀에서 중요 멤버로 일정 역할을 하고 있는 훌륭한 선수들이 쏟아져나왔습니다(흥미로운 점이 드래프트 명단을 확인하다보니 예전 KBL에서 엄청난 임펙트를 주었던 단테 존스가 1라운드 21번으로 뉴욕에 지명되었네요).

이 엄청난 선수들이 쏟아져 나왔던 1996년 앨런 아이버슨은 이들 모두를 뒤로 하고 1라운드 1번으로 필라델피아에 지명되며 자신의 커리어를 시작하게 됩니다. 역대 최단신 1라운드 1번 픽 선수가 탄생하는 순간이었지요.

90년대의 필라델피아는 상당히 암울한 팀이었습니다. 80년대 그들의 영광의 시대를 이끌었던 모제스 말론과 줄리어스 어빙은 이미 팀에서 모습을 감추었고, 84년에 드래프트되어 팀을 이끌었던 바클리 역시 92-93시즌 직전 피닉스로 팀을 옮긴 상태였지요. 95-96시즌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출신의 제리 스택하우스를 1라운드 3번으로 영입하였고, 96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1번 픽을 확보한 그들은 팀의 재건을 위해 단신이라는 핸디캡이 있지만 폭발적인 득점력으로 팀을 이끌 수 있는 앨런 아이버슨을 영입하였습니다.

그리고 필라델피아는 아이버슨-스택하우스-데릭 콜먼-웨더스푼으로 이어지는 강력한 멤버를 보유하며 96-97시즌에 대해 큰 기대를 하였지요.

결론부터 말해서 이들의 기대는 실현되지 못하였습니다. 아이버슨이 입단하기 직전의 95-96 시즌, 18승 64패로 애틀랜틱 디비전 꼴찌, 그리고 리그 전체에서는 벤쿠버 그리즐스가 받쳐주는 바람에(15승 67패), 29팀 중 28위의 참담한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버슨, 콜먼, 스택하우스에 웨더스푼이 뒤를 받치는 강한 라인업으로 맞이한 96-97시즌에도 그들은 22승 60패로 애틀랜틱 디비젼 6위, 리그 전체에서 26위를 기록, 전년도에 비해 별반 나아지지 않은 암울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무리하였지요.

하지만 이 와중에도 그들은 하나의 희망을 보았습니다.

루키 시즌의 아이버슨은 엄청난 위력을 선보이며 NBA 팬들을 열광시켰고 매료시켰습니다.

아이버슨은 76경기에 출장, 평균 40.1분을 소화하는 가운데, 필드골 성공률 41.6%, 3점슛 성공률 34.1%, 평균 23.5득점, 7.5어시스트, 4.1 리바운드, 2.1 스틸을 기록하며, 팀내 득점, 3점슛 성공수, 스틸, 어시스트 부분에서 1위를 기록합니다. 루키로서 엄청난 성적을 올린 아이버슨은 당연히 시즌 종료 후 올해의 신인으로 선정되었고 동시에 NBA All-Rookie first Team에 선정되었습니다.

문제는 팀 성적이었지요. 당시 필라델피아의 삼각 편대로 기대를 모았던 아이버슨-스택하우스-콜먼은 평균 23.5득점, 20.7득점, 18.1득점을 기록하며 팀내 평균 득점 1, 2, 3위를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들 세명은 경기당 60점 정도를 합작하며 기록상으로는 상당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팀 성적은 리그 26위......

문제는 이 세명의 선수 모두가 자신보다 동료를 먼저 생각하는 마인드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스택 하우스는 2, 3번 포지션을 번갈아 보았고, 아이버슨은 1, 2번 포지션을 번갈아 맡았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코트에서 함께 플레이할 때의 시너지 효과는 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뉴저지 시절부터 팀 케미스트리에 많은 문제를 일으켰던 콜먼은 18.1득점, 10.1리바운드의 더블-더블의 성적을 올렸지만 부상으로 25경기에 결장하였고, 4번 포지션으로는 낙제점인 43.5%의 필드골을 기록하였을 뿐이었지요.

교통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었지만 팀은 한 시즌을 더 기다리기로 합니다. 물론 필라델피아 프론트가 그냥 손놓고 기다렸던 것은 아닙니다. 선수들의 교통 정리 시점을 뒤로 미룬 대신 그들은 96-97시즌부터 팀을 맡았던 조니 데이베스 감독을 한 시즌 만에 해임하고 리그의 명장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레리 브라운 감독을 영입하여 팀을 강화시키려고 하였습니다. 동시에 세시즌 동안 댈러스에서 좋은 득점력을 보여주었던 짐 잭슨을 영입하여 전력 강화를 도모하기도 하였지요.

레리 브라운은 팀을 맡자 마자 공격보다는 수비 쪽에 좀더 방점을 찍으며 팀을 만들어가기 시작합니다. 그 결과 이전 시즌에 평균 106.7점을 실점하며 리그에서 두번째로 많은 실점을 하였던 필라델피아는 97-98시즌, 평균 95.7실점으로 29개팀 중 15위로 실점을 어느 정도 낮추는데 성공하였습니다. 하지만 짐 잭슨의 영입이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였고(시즌 중반 골든 스테이트로 트레이드), 아이버슨과 스텍하우스의 사이가 계속 벌어지며 공격력이 이전 시즌들에 비해 크게 약화되었습니다. 전시즌에 22승을 거두었던 필라델피아는 31승 51패를 기록하며 역시 플옵과는 거리가 먼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하였습니다.

아이버슨은 97-98시즌 80경기에 모두 주전으로 출장하여 평균 39.4분, 필드골 성공률 46.1%, 3점슛 성공률 29.8%, 평균 22.0득점, 6.2어시스트, 2.2스틸, 3.7리바운드를 기록하며 96-97시즌에 이어 득점-어시스트-스틸 부분에서 팀내 1위를 기록하였습니다.

기대가 컸지만 두 시즌 연속 기대와는 먼 성과를 거둔 필라델피아는 97-98시즌 종료와 동시에 결단을 내리게 됩니다.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했던 아이버슨과 스택하우스 둘 중에 한명을 정리하려고 작정했던 필라델피아는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출신으로 95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3번 픽으로 건져올린....한때 조던의 후계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평가를 받았던 스택하우스를 디트로이트로 트레이드시켜버리며 팀의 중심을 아이버슨으로 세우겠다는 의지를 보여줍니다.(디트로이트로 트레이드된 직후 스택하우스는 "내게 패스를 해줄 동료들이 있는 팀으로 와서 행복하다"는 소감을 밝혔습니다. 스택하우스와 아이버슨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였다면 이들은 꽤 매력적인 콤비가 될수도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종종 들기도 합니다). 동시에 부족한 자기 관리와 이기적 성격으로 팀에 좋지 못한 영향을 주었던 데릭 콜먼도 정리해버립니다.

필라델피아는 일부 팬들과 전문가들에게 팀을 생각하지 않고 지나치게 이기적이라는 비난을 듣고 있었던 아이버슨을 팀의 중심이자 리더로 세우며 아이버슨을 중심으로한 팀을 만들기로 결정을 한 것이지요.

98-99시즌....앨런 아이버슨을 중심으로 한 필라델피아가 첫선을 보이게 됩니다(다들 아시겠지만 이 시즌은 노조의 파업으로 단축 시즌으로 운영되었습니다).

스택하우스와 콜먼을 대신하여 매트 가이거, 테오 래틀리프가 아이버슨을 뒷받침하였고, 이외에 레리 휴즈, 에릭 스노우, 타이론 힐, 조지 린치, 애론 맥키와 같은 선수들이 스택하우스와 콜먼의 빈자리를 대신하였습니다. 데뷔 이후 아이버슨에 대해 이기적이다 팀 플레이를 하지 않는다는 둥의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98-99시즌, 그는 자신이 팀의 중심이 되어 자신의 능력으로 팀을 이끌었을때 그가 얼마나 엄청난 능력을 보여주는지를 사람들에게 증명하기 시작합니다.

98-99시즌 아이버슨은 48경기에 출장, 평균 41.5분을 소화하는 가운데 필드골 성공률 41.2%, 3점슛 성공률 29.1%, 평균 26.8득점, 4.6어시스트, 4.9리바운드, 2.3스틸을 기록하며 팀을 이끌었고, 아이버슨의 활약을 바탕으로 필라델피아는 애틀랜틱 디비젼 3위로 드디어 염원의 플옵에 진출하게 됩니다. 물론 이 시즌의 아이버슨은 26점이 넘는 평균 득점을 기록하였지만, 필드골 성공률이 40% 초반, 3점슛 성공률이 30%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점에서 그가 지나치게 팀의 공격을 혼자 해결하며 많은 슛을 난사한 결과라고 이 시즌 그의 성과를 폄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시즌 필라델피아는 50경기에서 28승 22패를 기록, 애틀랜틱 디비젼 3위로 플옵에 진출하는데 성공하게 됩니다. 아이버슨 입단 3년 만이네요. 플옵 1라운드에서 상대한 팀은 올랜도 매직이었습니다. 샤킬 오닐과 페니 하더웨이 듀오가 건재한 올랜도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하더웨이-닉 앤더슨-대럴 암스트롱-호레이스 그랜트로 이어지는 라인업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었지요.

하지만 생애 첫 플옵 무대에서의 아이버슨은 엄청난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이버슨은 2차전에서 13점으로 부진하였지만 나머지 1, 3, 4차전에서 모두 +30득점을 기록하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고, 그 결과 필라델피아는 올랜도를 3승 1패로 압도하며 플옵 2라운드에 진출을 하게 됩니다. 2라운드의 상대는 90년대 후반 동부 컨퍼런스의 강호로 군림하고 있었던 레지 밀러의 인디애나 페이서스였지요.

아이버슨은 전력을 다해 페이서스에 맞섰지만 마크 잭슨-레지 밀러-크리스 멀린-데일 데이비스-릭 스미츠의 스타팅 라인업에 안토니오 데이비스와 데릭 맥키와 같은 뛰어난 벤치 멤버를 보유한 페이서스는 당시 아이버슨의 혼자 힘으로 뛰어넘기에는 어려웠습니다. 결국 아이버슨과 필라델피아는 플옵 2라운드에서 인디애나 페이서스에게 0승 4패로 허무하게 무너지며 시즌을 마감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이버슨은 플옵 여덟 경기에서 평균 44.8분을 소화하며 평균 28.5득점, 4.1리바운드, 4.9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에이스로 최고의 활약을 선보였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필라델피아는 너무나 약했고(특히 이 시즌 필라델피아는 정규 시즌 50경기에서 게임당 평균 89.7득점을 기록하였는데 이는 29개팀 중 21위에 해당할 정도로 취약한 공격력이었습다), 조던이 커리어 초반에 겪었듯이 한명의 뛰어난 선수에 의존하는 원맨팀은 플옵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겠죠.

그리고 99-00시즌. 시즌 중반 시카고에서 3연패를 경험하였던 토니 쿠코치를 영비하며 플옵 진출에 강한 의지를 보였고, 결국 팀은 49승 33패를 기록하며 애틀랜틱 디비젼 3위로 정규 시즌을 마감하였고, 전 시즌에 이어 두 시즌 연속 플옵에 진출하는데 성공하게 됩니다. 이 시즌에도 아이버슨은 70경기에 출장, 필드골 성공률 42.1%, 3점슛 성공률 34.1%, 평균 28.4득점, 3.8리바운드, 4.7어시스트, 2.1스틸을 기록, MVP급의 활약을 펼쳤습니다.

플옵 1라운드부터 아이버슨은 엄청난 위력을 선보입니다. 그는 45분을 플레이하며 40득점, 5리바운드, 3어시스트, 3스틸을 기록하며 필라델피아의 승리를 견인하였습니다. 샬럿에서는 한때 아이버슨의 동료였던 데릭 콜먼이 23득점 16리바운드로 활약하였지만 아이버슨은 콜먼과 샬럿을 찍어눌러버린 것이지요. 아이버슨은 2차전에서는 부진하였지만 나머지 경기에서 24득점 이상을 기록하며 팀을 이끌었고, 필라델피아는 3승 1패로 무난하게 1라운드를 통과하였습니다. 2라운드의 상대는 전 시즌과 동일하게 역시 인디애나 페이서스. 1년 전 4패로 허무하게 물러났던 아이버슨과 필라델피아는 1, 2, 3차전을 모두 패배하며 전년도의 악몽을 되풀이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4차전에서 팀원들의 고른 활약을 바탕으로 92:90으로 극적인 승리를 거두었고, 5차전에서는 아이버슨이 37득점으로 인디애나를 맹폭, 3연패 뒤 2연승으로 자신들의 저력을 팬들에게 각인시킵니다. 하지만 6차전 아이버슨을 포함한 스타팅 멤버 전원이 +10득점을 기록하며 인디애나에 맞섰지만 레지 밀러와 잘렌 로즈, 릭 스미치에게 많은 득점을 허용하며 결국 106:90으로 패배. 두 시즌 연속 플옵 2라운드에서 탈락하였지요.

이쯤되니 사람들은 아이버슨에 대해 약체팀의 고독한 에이스라는 평가를 내리게 되고, 동시에 지나치게 슛을 많이 던지고 동료들을 살리는 플레이를 하지 못한다는 혹평마저 듣게 됩니다.

하지만 00-01시즌. 아이버슨은 자신에 대한 이러한 부정적인 시각을 단숨에 사라지게 하는 엄청난 위력을 뿜어내기 시작합니다.

이 시즌 필라델피아는 56승 26패로 애틀랜틱 디비젼 1위로 시즌을 마감하였고, 평균 94.7득점, 평균 실점 90.4득점의 공수 균형을 맞추는데도 성공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이전 시즌에 비해 특별한 선수 보강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요. 시즌 후반 애틀랜타로부터 최고의 수비형 센터인 무톰보를 영입하여 포스트를 강화한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아이버슨은 별반 나아진 것도 없는 팀에서 이런 저런 불평을 하기보다는 자신이 직접 해답을 제시하며 팀을 정규 시즌 디비젼 1위, 그리고 파이널에까지 진출시키는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주었습니다.

이 시즌 아이버슨의 성적은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그는 71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42.0분을 소화하는 가운데, 필드골 성공률 42.0%, 3점슛 성공률 32.0%, 평균 31.1득점, 3.8리바운드, 4.6어시스트, 2.5스틸을 기록하였습니다. 평균득점 1위, 평균 스틸에서 1위를 기록하였고, All-NBA 1st Team에 선정됨과 동시에 2년 연속 올스타에 선정되었고 올스타전에서 21분 동안 25득점 5어시스트 4스틸을 기록하여 올스타전 MVP에 선정되었습니다. 그리고 커리어 최초로 MVP를 차지하며 최고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플옵에서 아이버슨은 정규시즌보다 더 굉장한 위력을 선보입니다. 그는 플옵 22경기에서 평균 46.2분을 소화하며, 평균 32.9득점, 4.7리바운드, 6.1어시스트, 2.4 스틸을 기록하며 상대팀들을 압도하였습니다. 필라델피아는 플옵 1라운드에서 2년 동안 자신들을 울렸던 밀러의 페이서스를 3승 1패로 일축하며 2라운드에 진출하였고, 2라운드에서는 빈스 카터가 이끄는 토론토와 7차전까지 가는 혈투 끝에 4승 3패로 시리즈를 마감,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하게 됩니다. 컨퍼런스 파이널의 상대는 레이 앨런과 글렌 로빈슨을 중심으로 하는 밀워키 벅스. 플옵 2라운드에 이어 컨퍼런스 파이널에서도 아이버슨과 필라델피아는 7차전까지 가는 혈투를 펼쳤고, 결국 4승 3패로 시리즈를 마감하며 대망의 파이널에 진출하는데 성공하게 됩니다. 결승전의 상대는 명장 필 잭슨이 이끌며, 샤킬 오닐과 코비 브라이언트라는 사기 유닛을 동시에 보유한 LA 레이커스.

천신만고 끝에 파이널에 진출한 필라델피아와 달리 레이커스는 플옵에서 모든 시리즈를 스윕으로 마감하며 파이널에 진출하였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사람들은 레이커스가 플옵 전승으로 파이널 우승을 차지할 것이라는 말까지 하였지요. 네. 이 시리즈. 전력차가 나도 너무 났었던 시리즈였습니다.

하지만 아이버슨의 자존심은 레이커스의 플옵 전승 우승을 인정할 수 없다는 듯 1차전에서 코비와 샤킬의 레이커스를 상대로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줍니다. 그는 4쿼터 막판과 연장에서 결정적인 공격을 성공시키는 가운데 52분 동안 3점슛 3개 포함 48득점, 5리바운드, 6어시스트, 5스틸의 전천후 활약을 펼치며 107:101로 팀의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제 기억 속에 아이버슨이 가장 빛났던 순간은 바로 이 경기였습니다.

하지만 아이버슨 혼자서는 샤킬과 브라이언트를 뛰어넘는다는 것은 불가능하였습니다. 1차전에서의 대폭발 후유증으로 아이버슨은 2차전에서 23득점(필드골 29개 시도 10개 성공)으로 부진하였고 반대로 레이커스의 원투 펀치인 코비와 오닐은 각각 31득점과 28득점을 기록하며 필라델피아를 압박하였습니다. 특히 오닐은 28득점 20리바운 9어시스트 8 블락슛이라는 괴물과 같은 활약으로 노장 무톰보가 버티는 필라델피아의 골밑을 초토화시켰습니다(물론 우리의 무톰보 옹. 이 와중에 16득점 13리바운드로 최선을 다했지만 역부족이었지요).

3차전 아이버슨은 35득점으로 분전하였고, 무톰보 역시 23득점 12리바운드로 그를 도왔지만 코비 브라이언트가 32득점, 오닐이 30득점을 기록한 레이커스를 뛰어넘지는 못하였습니다. 역시 패배. 4차전. 아이버슨은 35득점으로 변함없이 레이커스의 림을 쉴새없이 공격하였지만 샤킬 오닐이 34득점 14리바운드로 골밑을 제압하며 역시 레이커스가 승리하게 됩니다. 드디어 마지막 5차전. 아이버슨은 37득점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고, 무톰보와 타이론 힐은 13득점 11리바운드와 18득점 13리바운드로 포스트에서 샤킬 오닐에게 대항하였습니다. 하지만 레이커스에서 오닐과 브라이언트 외에 릭 폭스와 데릭 피셔가 20득점과 18득점을 기록하는 대활약을 펼쳤고 결국 5차전 역시 108:96으로 레이커스가 승리하며 시리즈는 마감되었습니다.

저 역시 00-01시즌 이전까지의 아이버슨에 대해 대단하다고 인정은 하였지만 그의 이기적 플레이를 맘에 들어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저 사이즈로 저 짐승들이 날뛰는 코트에서 많은 득점을 하는구나 정도의 감탄에 불과하였지요. 하지만 00-01시즌, 정규 시즌과 플옵에서 보여준 아이버슨의 퍼포먼스는 이기적이다 아니다의 문제로 논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능력만으로, 그 폭발적인 공격력 하나 만으로 팀이 필요한 순간에 해답을 제시하며 파이널 컨텐더까지의 전력은 아니었던 필라델피아를 자신의 힘만으로 파이널로 끌어올렸고, 서부 최강인 레이커스를 상대로도 엄청난 체력 부담에도 불구하고 승리를 위해 쉼없이 상대 진영으로 돌진해 들어갔습니다. 비록 파이널에서는 패배하였지만 이 시즌 아이버슨은 NBA에서 가장 화려하게 빛난 별이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01-02시즌. 아이버슨은 전 시즌의 후유증으로 22경기에 결장하며 60경기에 출장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60경기만으로는 아이버슨은 자신의 능력을 맘껏 펼쳤습니다. 평균 31.4득점으로 두 시즌 연속 득점 부분 1위에 올랐고, 3시즌 연속 올스타에 선정되었지요. 그리고 All-NBA 2nd Team에 선정되었으며, 2.8개의 평균 스틸을 기록하며 이 부분에서도 리그 1위를 기록하였습니다.

이러한 아이버슨의 활약을 바탕으로 전 시즌에 비해 전반적으로 부진했던 필라델피아는 43승 39패로 플옵 진출에는 성공하게 됩니다. 하지만 1라운드에서 보스톤 셀틱스와 5차전까지 가는 혈투를 펼쳤지만 결국 2승 3패로 탈락을 하며 시즌을 마감하게 됩니다.

이후 필라델피아가 01-02시즌처럼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준 적은 없습니다. 02-03시즌 팀은 48승 34패로 플옵에 진출하였지만 2라운드에서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에게 2승 4패로 패하며 탈락하였습니다. 아이버슨 역시 두 시즌 연속 +30득점의 평균 득점을 기록하던 기세가 꺾이며 평균 27.6득점, 5.5 어시스트의 기록을 남겼습니다(물론 이것도 훌륭한 기록입니다).

03-04시즌, 필라델피아는 애틀랜타에서 뛰던 빅독 글렌 로빈슨을 영입하며 전력 강화를 시도하였지만 로빈슨은 부상으로 40경기에 결장하였습니다. 아이버슨은 평균 26.4득점, 6.8어시스트, 3.7리바운드, 2.4스틸을 기록하며 고군분투하였지만 팀은 33승 49패로 무너지며 결국 플옵 진출에 실패하게 됩니다.

04-05시즌, 필라델피아의 프런트는 새로운 감독으로 짐 오브라이언을 선임하며 분위기 쇄신을 도모합니다. 그리고 지난 두 시즌 조금은 부진했던 아이버슨은 이 시즌.....다시 한번 불타오르기 시작합니다. 이 시즌 아이버슨은 75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30.7득점(리그 1위), 7.9어시스트(리그 5위), 4.0 리바운드, 2.4스틸을 기록하며 팀을 이끌었고, 이러한 아이버슨의 활약을 보며 팀은 시즌 막판 새크라멘토에서 A급 파워포워드인 크리스 웨버를 영입하며 아이버슨을 지원합니다. 팀은 43승 39패를 기록하며 플옵에 진출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하지만 1라운드의 상대는 2000년대 초반 극강의 조직력으로 엄청난 포스를 보여주고 있었던 디트로이트 피스톤스. 필라델피아와 아이버슨은 1승 4패로 무너지며 1라운드에서 허무하게 탈락하게 됩니다.

05-06 시즌에도 아이버슨은 평균 33.0득점(리그 2위, 1위는 코비 브라이언트 35.7득점), 평균 7.4어시스트의 변함없는 활약을 펼쳤지만 팀의 몰락을 막아내지 못합니다. 이 시즌 필라델피아는 38승 44패로 무너지며 플옵 진출에 실패하게 됩니다. 레리 브라운이 물러난 후 필라델피아는 수비 조직력에서 많은 문제점을 노출하였습니다. 이 시즌에도 필라델피아는 게임 당 99.4점을 득점하며 리그 8위를 기록하였지만, 게임 당 101.3점을 실점하며 수비에서는 리그 25위로 하위권을 형성하였습니다.

그리고 아이버슨은 여전히 출중한 기량을 보여주었지만 05-06시즌을 기점으로 30대에 접어들었고 단신 선수들의 노쇠화가 빠르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시점부터 필라델피아는 아이버슨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였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아이버슨은 공격에서는 확실하게 해답을 제시하는 선수였지만 매치업 측면에서의 불리함은 부정할 수 없는 것이었지요.

결국 06-07시즌 도중, 팀은 아이버슨을 덴버 너게츠로 트레이드 하게 됩니다. 필라델피아에서 15경기를 뛰는 동안 평균 31.2득점, 7.3어시스트 기록하며 여전한 공격력을 보여주었던 아이버슨은 덴버로 팀을 옮긴 후 50경기에서 평균 24.8득점으로 득점 수치가 낮아지게 됩니다. 필라델피아에서는 아이버슨이 거의 모든 슛을 마무리지었지만 덴버에는 차세대 스타로 각광받고 있었던 또다른 득점원인 카멜로가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덴버는 45승 37패를 기록하며 플옵에 진출하였지만 플옵 1라운드에서 던컨이 이끄는 샌안토니오에게 1승 4패로 무너지며 탈락하였습니다.

07-08시즌을 앞두고 팬들은 카멜로와 앤써의 조합이 어느 정도의 위력을 발휘할지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 두 명을 조합하는 것은 덴버를 강팀으로 끌어올리며 지도력을 인정받고 있었던 조지 칼 감독에게 가장 큰 숙제이기도 하였습니다. 표면적으로 이 두 선수의 조합은 상당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였습니다.

아이버슨은 1, 2번을 번갈아 플레이하며 82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26.4득점, 7.1어시스트, 2.0스틸을 기록하였고, 카멜로는 25.7득점, 7.4리바운드, 3.4어시스트, 1.3 스틸을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팀은 50승 32패의 준수한 성적으로 플옵에 진출하였습니다. 하지만 플옵 1라운드에서 브라이언트가 이끄는 레이커스에게 스윕당하며 허무하게 탈락을 하게 됩니다.

카멜로와 앤써의 조합은 표면적으로는 강력해보였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두 선수의 경쟁심은 팀에 독이 되었습니다. 아이버슨은 평균 +7개의 어시스트를 배달하며 패스에 신경을 쓰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의 공격적인 성향은 패스보다는 슛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플레이였고, 팀에서 그에게 원했던 1번으로서의 이상적인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네....팀은 아이버슨이 아니라 카멜로가 팀의 중심이 되기를 원했던 것이지요. 결국 이러한 상황에서 맞이한 08-09시즌, 팀은 아이버슨을 디트로이트로 트레이드하는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아이버슨에게 있어 이 결정은 엄청난 타격이었습니다. 아이버슨이 전성기를 보냈던 필라델피아는 객관적 전력에서 그리 강팀이 아니었고, 팀은 필요한 순간 아이버슨에게 해답을 원했습니다. 자존심이 강한 아이버슨에게 이러한 환경은 엄청난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었지요. 하지만 디트로이트는 전통적으로 에이스 플레이어 한명에게 의존하는 팀이 아닌 조직력으로 승부하는 팀이었습니다. 모든 선수들은 슛보다는 패스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며 게임을 만들어나갔고 이런 팀에서 슛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아이버슨은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었습니다. 아이버슨은 디트로이트에서 54경기를 출장하였습니다. 평균 17.4득점, 4.9어시스트, 1.6 스틸을 기록하였습니다. 데뷔 이후 그는 처음으로 +20득점을 기록하지 못하였습니다. 물론 디트로이트의 팀 컬러에 아이버슨이 녹아들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아이버슨은 이미 30대에 접어들며 20대 때와 같은 엄청난 스피드와 운동 능력을 상실하기 시작하였고 08-09시즌의 아이버슨은 단신으로서 준수한 공격력을 갖춘 선수였지만 그 공격력이라는 것이 매치업 상의 문제를 디펜스에서 유발시키는 치명적인 결함을 상쇄하기에는 부족할 만큼 약해졌다는 것이지요.

결국 시즌 종료와 함께 디트로이트는 아이버슨과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였고, 오프 시즌 내내 소속팀을 구하던 아이버슨은 간신히 멤피스와 1년 300만달러의 계약을 체결하는데 성공하게 됩니다. 이후의 이야기들은 모두 아시겠지요. 멤피스는 젊은 선수들로 구성된 팀에서 아이버슨이 에이스가 아닌 롤 플레이어로서의 역할을 해주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버슨은 여전히 자신이 해답이 되기를 원했지요.

멤피스에서 세 경기만을 소화한 아이버슨은 한동안 칩거하였고 결국 며칠 전 그는 전격적으로 은퇴를 선언하였습니다.

또 한명의 별이 무대 뒤로 퇴장하는 순간이었지요. 그의 은퇴문을 보며 많은 생각들이 교차하였습니다. 이제 서른 네살. 커리어를 마감하기에는 너무 이르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봅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그가 아름답게 커리어를 마감하는 모습이 보고 싶었기에 그가 롤플레이어의 역할을 받아들여 젊은 선수들의 성장을 도와주며 멤피스를 또다른 점에서 이끄는 모습이 보고 싶기도, 그리고 그러한 아이버슨의 모습이 궁금하기도 하였으니까요.

하지만 그는....커리어 기간의 대부분 동안 자신이 바로 팀의 해답이었고, 그러한 역할에 대한 자긍심과 자신에 대한 자존심이 너무나 강한 선수였기에 미련없이 은퇴를 선언하였습니다.

이런 저런 엇갈린 평가를 받는 선수이지만 커리어 14시즌 동안 그가 보여준 코트 위에서의 열정은 위대한 것이었습니다. 누군가가 언급하였듯이 그는 농구를 너무나 사랑하였지만 농구보다 그 자신을 더 사랑하였기에 아쉬워하는 팬들을 뒤로 하고 코트 위를 떠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커리어 통산 14시즌 동안 889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27.0득점(24020득점), 3.7리바운드(3319리바운드), 6.2어시스트(5522어시스트), 2.2 스틸(1985스틸)을 기록하였고 1051개의 3점슛을 성공시켰습니다. 그리고 올해의 신인에 선정되었고, 리그 MVP, 올스타전 MVP에 1회씩 선정되었으며, 퍼스트 팀 4회, 세컨드 팀 3회, 써드 팀 1회에 선정되었으며, 통산 네 차례 득점 랭킹 1위를 기록하였습니다. 그가 기록한 24020득점의 통산 득점은 리그 역사상 17위에 해당하며, 27.0득점의 평균 득점 수치는 리그 6위에 해당하는 대기록입니다.

그의 은퇴에 아쉬움을 토로하는 분들 중에서는 그의 키가 조금만 더 컸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표현하였습니다. 네....저도 그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 단신 선수들은 사이즈가 큰 선수들에 비해 커리어가 짧고 기량의 쇠퇴도 급속하게 온다고 생각을 합니다. 사이즈에서의 불리함을 극복하기 위해 그들은 다른 선수들에 비해 더빨리 뛰어야 하고 더 많은 움직을 보여주어야 했기에 그러한 부분들이 신체적으로는 엄청난 부담으로 축적될 수 밖에 없고, 결국 30대 이후에 그 부담들이 터져나오면서 급속도로 무너지기 시작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점에서 아이버슨의 사이즈는 확실히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저는 역으로 만약 그가 다른 슈팅 가드들처럼 좋은 신체적 조건을 타고났다면 과연 우리가 지금 아이버슨에게 느꼈던 그 많은 희열과 감동을 느낄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어찌되었건 그는 은퇴를 선언하였고, 이제 전설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하는 그 허약한 신체 사이즈로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수 많은 퍼포먼스를 보여주었고 동시에 위대한 기록들을 쌓았습니다. 급작스런 은퇴가 아쉬울 뿐이지요.

신인 시절....조던을 앞에 두고 크로스 오버 드리블로 그의 중심을 무너뜨리며 정면에서 성공시킨 점프 슛과 레이커스와의 파이널에서 경기 막판 오른쪽 베이스 라인 근처에서 성공시킨 점프 슛, 장신 선수들 사이에서 뛰어올라 풋백 덩크를 성공시킨 모습.....그의 플레이 하나 하나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갑니다.

그의 열성팬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의 플레이를 보고 감동을 받은 한 사람의 농구팬으로서 떠나는 그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며 조용히 박수를 쳐주고 싶습니다.

"The Answer"....수고하셨습니다.....그리고 감사합니다......





추가> 아이버슨이 필라델피아 쪽과 만났다는 기사가 떴네요.....설마라고 생각해보지만.....아 글쎄요......
       복귀를 위한 유리한 고지 점령을 위한 한편의 쇼는 아니었길 바랄 뿐입니다.....

핑백

덧글

  • 바른손 2009/11/30 19:45 # 답글

    그를 잘 기억하게 하는 글입니다.너무 좋은 글이라 제 글에 엮어두려 합니다.( _ _)*
  • 울프우드 2009/11/30 20:17 #

    아...바른손님....
    포스팅을 하면서도 지금 벌써 이 선수에 대한 커리어 정리글을 쓴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더라구요.

    최근 기사에서 필라델피아 복귀설이 솔솔 흘러나와서 조금 그런......

    부족한 글 잘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 에라이 2009/11/30 22:33 # 답글

    우울하네요. 아이버슨 관련 포스팅을 몇개째 보고 있는데 봐도봐도 우울...
  • 울프우드 2009/11/30 22:35 #

    그 정도의 존재감을 가지고 있는 선수이니까요.....

    스타 플레이어들이 하나 둘씩 사라질때마다 기분이 조금 그렇다지요.....
  • 우쓰우쓰 2009/12/01 10:27 # 답글

    와- 엄청 노력이 느껴지는 글이네요, 동작 하나하나가 떠올라서 뭉클합니다.

    아이버슨은 루저들(?)의 영웅이자 아이콘이었죠. 커리어내내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서 싸운 선수라는 생각이 들고 마침내 자신을 증명할 방법이 없자 은퇴를 결심한 것도 충분히 그 답습니다. 마인드가 거칠었을 지언정 그의 농구 기술은 아름다움의 극치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넋을 잃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트랙백하여 엮겠습니다.
  • 울프우드 2009/12/01 10:43 #

    우쓰우쓰님 반가워요^^
    우쓰우쓰님 말씀처럼 마인드 자체는 많이 거칠었지만 그는 농구에서 1차적으로 중요한 사이즈라는 큰 핸디캡을 극복하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고, 동시에 그 노력을 위대한 플레이로 행동에 옮긴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네....저도 아이버슨의 경기는 넋을 잃고 지켜봤던 적이 많습니다......

    부족한 글인데 잘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 농구계 2009/12/03 10:20 # 삭제 답글

    아이버슨은 이세계에서 최고의 가드라고 생각을 합니다.
    아이버슨 은퇴라니 ..........
    아이버슨이야말로 최고라고 생각을 하겠읍니다
  • 울프우드 2009/12/03 10:28 #

    농구계님 반갑습니다.

    좀 전에 기사를 보니 필라델파이로 복귀하는 것이 결정이 났네요....

    이거 조금 기분이.....하하
  • 오드아이 2009/12/03 16:47 # 삭제 답글

    멋진글 잘봤습니다.
    근데 댓글 다신것처럼 오늘 필리로 복귀선언. 대략 3일 은퇴한건가여 ㄷㄷㄷㄷ.
    '농구는 신장이 아닌 심장으로 한다'는 명언을 남기고 본문에 쓰신대로 그야말로 'the answer'였던 열정적인 단신슈가와 아역귀,
    극단적인 스탯찌질이라는 혹평의 사이에서 은퇴하나 싶었는데 이렇게 필리로 뛴다니 참 머랄까 한편의 쇼같기도 하고 아무튼
    재밌네요. 필리에서 과연 어떤 모습을 보일지 궁금합니다 ㅎㅎ.
  • 울프우드 2009/12/03 23:36 #

    오드아이님 잘 읽어주셨다니 감사합니다....

    뭐....설마설마했었는데 오늘 복귀했다는 기사를 보며.....여러가지 생각이 교차했습니다.....

    기왕 이렇게 된 거.....필라델피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커리어 마지막을 잘 보냈으면 하네요....^^
댓글 입력 영역



통계 위젯 (블랙)

513
82
2593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