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한국 프로야구 레전드 - 100완투의 전설 윤학길 스포츠


구기 중에서도 야구와 농구를 워낙에 좋아하는지라....어렸을적부터 야구와 농구라면 열일 제쳐놓고 경기를 지켜보곤 했었지요. 한동안 농구 관련 글 위주로만 포스팅을 했는데 야구 시즌에 즈음하여 이전 한국 프로야구에서 굵직한 족적 또는 강력한 임펙트를 보여준 선수들의 커리어를 정리해보는 포스팅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이 시리즈의 첫번째 선수로 누구를 다루어볼까.....제가 뭐 롯데팬인지라 롯데 시절 최동원 선수(이하 모든 선수들의 명칭은 선수로 고정하겠습니다)의 커리어를 정리해보려는 생각을 가장 많이 했었지요. 그리고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 최강의 투수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해태 시절의 선동열 선수(현 삼성 라이온즈 감독), 200승의 대기록을 세우고 은퇴한 송진우 선수, 롯데라는 팀에 근성과 투지를 불어넣어준 박정태 선수, OB베어스의 박철순 선수, LG의 김용수 선수, 최초의 타격 3관왕을 달성했던 이만수 선수 등등 수많은 선수들의 이름이 스쳐지나갔습니다.

그래도 롯데팬인지라 첫 포스팅은 롯데 출신 선수로 다루고 싶었고, 그때 제 머릿속에 불현듯 떠오른 이름이 윤학길 선수였습니다(현재 LG 투수코치이지요). 30대 이상의 나이인 롯데팬들의 머릿속에 가장 많이 각인되어 있는 선수는 아마 최동원 선수일 것입니다. 84년부터 3년간 그가 보여준 퍼포먼스는 너무나 강력한 것이었고, 그의 투구 스타일은 상당히 호쾌하면서도 위력적이었지요.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박정태 선수, 1992년 롯데 두번째 우승 당시 불꽃처럼 타올랐던 염종석 선수, 롯데 최초의 좌완 에이스였던 주형광 선수, 고 임수혁 선수, 그리고 지금도 현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손민한 선수 등도 많이 회자되는 선수들이지요.

하지만 80년대 중후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92년을 제외하면 매시즌 하위권을 전전하던 롯데 자이언츠의 마운드를 꿋꿋하게 지켜냈던 윤학길 선수의 이름은 왠지 위에서 언급한 선수들만큼의 임펙트가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시리즈의 첫번째 주인공으로 최동원 이후 롯데의 마운드를 책임졌던 윤학길 선수를 선택했습니다.

솔직히 윤학길 선수는 그리 강력한 임펙트를 보여준 선수는 아니었습니다. 엄청난 강속구를 가진 투수도 아니었고 아주 정교한 제구력을 항상 보여준 선수도 아니었지요. 잘 던진 경기도 많았지만 컨디션이 좋지 못한 날에는 1회부터 난타를 당한 경우도 많았던 선수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선수는 그 어떠한 선수도 달성하지 못한 기록과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선수였지요.

그의 별명은 '고독한 황태자'였습니다. 그가 전성기 시절을 보냈던 시기, 롯데라는 팀은 강력한 타선도 구축되지 못하였고, 지금과 마찬가지로 안습의 불펜 전력을 가진, 결코 강팀이라고는 볼 수 없는 선수였지요. 그렇기에 그는 등판만 하면 대부분 한 경기를 홀로 책임지며 마운드에서 상대 타자들과 사투를 벌였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그의 프로생활을 살펴보죠......

1984년 우승 이후 롯데 자이언츠는 85년에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86년 윤학길 선수는 연세대를 졸업하고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하였지요. 프로 첫시즌 윤학길 선수의 그리 특출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25경기에 등판하여 1승 2패 2세이브를 기록하였습니다. 86이닝을 투구하여 피안타 91, 피홈럼 6, 4사구 22, 삼진 40개에 34실점 27자책점을 기록하였습니다. 신인치고 나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주 눈에 띄는 성적은 아니었지요.......

하지만 이듬해인 87년 최동원 선수가 14승을 기록하며 하향세를 보이는 무렵(그 이전 3년 동안 최동원 선수는 66승을 기록하였습니다) 윤학길 선수는 선발 투수로 자리를 잡으며 롯데 선발의 한축을 담당하게 됩니다. 이 시즌 윤학길 선수는 31경기에 등판하여 200이닝을 투구했습니다, 피안타는 191개, 피홈런은 4개, 4사구는 65개를 허용했고 삼진은 84개를 잡았습니다. 평균 자책점은 2.57, 13승 10패에, 이중 13경기를 완투하였고 완봉승 2회도 기록했네요. 하지만 최동원 선수가 14승으로 무너지며 롯데는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하였습니다.

88년 시즌은 윤학길 커리어에서 개인적으로는 최고의 시즌이었습니다. 이 시즌 윤학길 선수는 35경기에 등판하여 평균 자책점 3.15, 18승 10패, 3세이브를 기록하며 다승왕 타이틀을 차지하였지고 123개의 삼진으로 탈삼진 부분 1위를 동시에 기록하였습니다. 투구이닝은 234이닝, 35경기 중 완투 경기는 17경기였으며 완봉승도 3회를 기록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시즌에도 롯데는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하였지요. 전반기에 부상과 계약 문제 등으로 최동원 선수가 합류를 하지 못하였고(물론 최동원 선수는 후반기에 합류하여 16경기에서 7승 3패 3세이브 평균 자책점 2.05를 기록하였지만), 윤학길 선수의 최고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팀의 성적은 하위권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89시즌에도 그의 활약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선수노조 사건과 팀과의 불화로 인해 최동원 선수는 89시즌 트레이드를 통해 삼성으로 이적하였고(이 시즌 롯데와 삼성은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두건의 대형 트레이드를 단행합니다. 1차 트레이드는 롯데의 최동원, 오명록, 김성현과 삼성의 김시진, 전용권, 허규옥, 오대석이 유니폼을 바꾸어 입었고, 2차 트레이드에서는 삼성의 장효조, 장태수 그리고 롯데의 김용철, 이문한이 유니폼을 바꿔 입었습니다.

이런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 롯데는 48승 67패 5무 승률 0.421로 리그 꼴찌를 기록하였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윤학길은 이 시즌 38경기에 출장하여 250이닝을 투구하였고, 16승 11패 2세이브 평균 자책점 2.70 탈삼진 141개, 피안타 221개, 피홈런 9개, 4사구 56개로 88시즌에 이어 최고의 활약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87시즌부터 3년 동안 684이닝을 투구한 윤학길 선수의 어깨는 지칠대로 지쳐버리게 됩니다.(문제가 안 생기는 것이 이상하겠죠.....)

홀로 고군분투를 하던 윤학길에게 1990년 시즌 개막 전 기쁜 소식 하나가 알려집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당시 아마추어 최고의 에이스 박동희가 롯데에 입단하게 된 것이었지요. 박동희에 대한 기대감과 윤학길 선수에 대한 믿음 등으로 90년 시즌 전 롯데팬들의 기대는 엄청났었습니다. 박동희는 이 시즌 10승 7패 7세이브 평균 자책점 3.04로 신인으로서는 훌륭한 성적을 거두었습니다(물론 팬들의 기대치는 더 컸었지만.....). 문제는 윤학길이 3년 간의 혹사로 인해 주저앉아 버렸다는 것이었지요. 90년 시즌 윤학길은 26경기에 출장, 143 2/3이닝을 투구하며 평균 자책점 4.07 3승 12패로 데뷔 이후 최악의 시즌을 보내게 됩니다(재밌는 것은 3승 중 2승은 또 완봉승이군요....흠).

하지만 91시즌....윤학길은 다시 예전 철완의 모습으로 돌아와 팀의 에이스 역할을 충실히 수행합니다. 이 시즌 윤학길은 34경기에 출장하여 205이닝을 투구하였고, 평균 자책점 3.25, 피인타 182개, 피홈런 8개, 4사구 62개, 탈삼진 99개를 기록하며 17승 12패를 기록하였습니다. 완투 경기는 11회였고, 완봉승 3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박동희 역시 루키 시즌에 비해서는 향상된 기량을 선보이며 30경기에서 14승 9패 3세이브 평균 자책점 2.47로 분전하였지요. 전 시즌 6위에 그쳤던 롯데는 이 시즌 윤학길, 박동희 원투펀치를 앞세워 61승 62패 3무 승률 0.496으로 삼성에 이어 정규 시즌 4위를 기록하며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가 한계였지요. 3위와 4위의 차이였지만 삼성의 정규 시즌 성적은 70승 55패 1무 승률 0.560이었습니다. 롯데와는 여덟 경기 차이를 내며 압도적인 3위를 기록하였지요. 그리고 준플레이오프 개막......정규 시즌 전력으로만 놓고 보면 삼성의 스윕 시리즈도 예상되었지만 의외로 시리즈는 치열하게 전개되었습니다. 두 팀은 준플레이오프 사상 초유의 무승부를 기록하며 4차전까지 시리즈를 이어갔지요. 최종 전적은 2승 1무 1패로 삼성의 시리즈 승리.....였습니다.

하지만 롯데팬들의 입장에서는 박동희 선수의 기량 향상과 윤학길의 부활만으로도 기뻤던 시즌이었고, 다음 시즌에 대한 기대감으로 부풀기에는 충분했었습니다. 하지만 92시즌 직전, 박동희 선수가 부상(이라기 보다는 간염이었던 것으로 기억이.....)으로 전반기에 출장을 하지 못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불안한 기운이 감돌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불안감은 92시즌 시작과 함께 혜성처럼 등장한 고졸 루키 염종석 선수의 활약으로 바로 사라졌었지요. 염종석 선수는 루키 시즌 35경기에 등판하여 204 2/3이닝을 투구하며 17승 9패 6세이브, 평균 자책점 2.33, 피안타 171개, 피홈런 6개, 4사구 43개, 탈삼진 127개를 기록하며 단숨에 롯데팬들의 구세주로 등장하였습니다(이 시절 롯데의 감독은 강병철 감독이었지요. 신인에게 35경기 등판이라, 그리고 200이닝일 넘는 투구.....정말 조금만 관리를 해주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봅니다.....)

언론과 팬들의 관심이 염종석에게만 집중되었지만 윤학길은 여전히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주었습니다. 이 시즌 윤학길은 30경기에 등판하여 212이닝을 투구하였고, 17승 5패 2세이브, 평균 자책점 3.61을 기록하며 여전히 롯데의 든든한 에이스 역할을 수행해주었지요. 팀은 윤학길과 염종석이 17승씩을 거두고 후반기에 복귀한 박동희가 7승으로 선전해주어 71승 55패 승률 0.563으로 리그 3위로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됩니다. 준플레이오프 상대는 전년도와 동일하게 삼성이었지요. 롯데는 1차전에서 염종석, 2차전에서 박동희를 앞세워 두 경기 연속 완봉승으로 삼성을 압도하며 플옵에 진출하였고 해태와의 플옵 시리즈에서도 3승 2패로 승리, 84년 이후 처음으로 코리안 시리즈에 진출하게 됩니다. 그리고 당시 81승 43패 2무라는 압도적인 승률로 리그 1위를 기록한 빙그레 이글스마저도 누르며 팀 통산 두번째 우승을 달성하는데 성공하게 되지요. 코리안 시리즈 MVP는 시리즈에서 2승 2세이브를 기록한 박동희에게 돌아갔습니다.

윤학길은 늘 그러했듯이 염종석과 박동희라는 후배들에 가려져 우승의 3등 공신 정도로 기억될 뿐이었지요. 하지만 84년 우승 이후 긴 암흑기를 홀로 지탱하며 팀을 이끌어온 그의 공로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우승의 기쁨도 잠시 롯데는 93년부터 다시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루키 시즌 엄청난 혹사로 인해 염종석은 93시즌 10승 10패를 기록하며 무너졌고, 박동희 역시 6승 11패로 부진에서 헤어나지 못하였습니다. 윤학길 선수는 다시 고군분투 모드로 돌입하였습니다. 윤학길은 28경기에 등판하여 203이닝을 투구하며 평균 자책점 3.01을 기록하였습니다. 하지만 타선과 수비, 불펜의 도움을 받지 못해서 12승 12패를 기록하는데 그쳤습니다(완투 12회, 완봉승 4회). 롯데의 최종 순위는 6위. 우승 후 다음 시즌 하위권 추락이라는 공식이 만들어지는 순간이었지요.

그리고 94년 윤학길 선수는 89시즌에 이어 두번째로 추락을 경험하게 됩니다. 91시즌부터 93시즌까지 620이닝을 투구한 여파로 인해 94년 윤학길은 18경기에 등판해 4승 7패를 기록하며 부진했습니다. 112 2/3이닝을 던졌고 피안타 141개 피홈런 15개를 기록하였으며 평균 자책점은 커리어 최악인 5.35를 기록하였지요.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제 윤학길도 끝났다는 평가를 내린 시점이기도 하였습니다. 나이도 30대에 접어들었고 선발투수 혹사로 유명한 롯데 자이언츠에서 그토록 고생을 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평가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95년.....윤학길은 다시 한번 부활을 합니다. 선발진에는 고졸 2년차인 주형광이 200 1/3이닝을 소화하며 10승 7패로 분전하였고 윤학길 역시 전년도의 부진을 털고 24경기에서 159 3/1이닝을 투구하며 12승 8패 평균 자책점 3.28을 기록하며 팀을 이끌었습니다(이 시즌에도 윤학길 선수는 24경기 중 여섯 경기를 완투하였고 완봉승 1회 기록하였습니다).

정규 시즌 3위를 기록한 롯데 자이언츠는 4위 해태와의 준플옵없이 바로 플옵에 직행, 당시 OB 베어스에게 반 게임차로 2위를 기록한 LG와 플레이오프를 치르게 됩니다....플레이오프에서 주형광의 활약(특히 시리즈를 결정지은 6차전에서 주형광 선수는 1안타 완봉승을 기록)을 앞세운 롯데는 LG를 4승 2패로 제압하고 코리안 시리즈에 안착, 리그 1위였던 OB베어스와 맞서게 되지요

당시 OB베어스는 김상진 권명철 쌍두마차와 신인이었지만 강력한 구위를 선보인 진필중 등이 버티는 강력한 투수진에, 타선의 짜임새도 좋았던 강팀이었습니다......

잠실에서 열린 시리즈 1차전, 롯데 김용희 감독은 그 시즌 7승 7패로 부진했던 염종석을 선발로 올렸고, OB는 예상대로 팀의 에이스인 김상진을 선발 등판시켰습니다. 하지만 경기 결과는 예상과 달리 롯데의 4:2 승리.....시즌 3위로 코리안 시리즈에 진출하여 우승을 했던 92년의 기억이 되살아나기 시작했지요.......2차전은 OB의 승리......

윤학길은 3차전에 등판하여 9이닝을 책임지며 최선을 다했지만 팀은 연장 10회까지 가는 혈투 끝에 5:2로 패배하였습니다......

4차전, 5차전을 롯데가 가지고 가며 시리즈 전적은 3승 2패로 롯데가 앞서갔습니다. 그리고 6차전.....OB는 신인 진필중을 깜짝 선발로 내세웠고 진필중은 엄청난 피칭으로 롯데 타선을 틀어막으며 OB가 승리를 했지요.....

그리고 최종 7차전......롯데는 팀 최다승 투수로서 오랫동안 롯데의 에이스 역할을 한 윤학길을 선발 등판시켰고, OB 역시 에이스 김상진을 올렸습니다......하지만 윤학길은 기대와 달리 아웃 카운트 하나 잡지 못하고 1회부터 난타를 당하며 강판당했고, 결국 게임은 4:2로 베어스의 승리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롯데의 세번째 우승 기회는 이렇게 사라졌고, 7차전 패배의 원흉으로 윤학길은 많은 비난을 감수하여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96년....윤학길 선수는 더 이상 구위를 회복하지 못하고 15경기에서 3승 5패(완투 2회) 평균 자책점 4.58을 기록하였고, 이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하게 됩니다.......마지막 시즌....그는 2번의 완투 경기를 작성하며 통산 100완투를 정확하게 채웠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마지막으로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팀의 마운드를 홀로 지탱한 철완의 에이스는 그라운드를 떠났지요.......

그가 12년이라는 커리어 기간 동안 보여준 모습은 꾸준함과 외로움이이었습니다......그가 보낸 12년의 커리어 기간 중 롯데 자이언츠가 비교적 강했던 적은 91년과 92년, 95년 정도였습니다..... 그 세시즌을 제외하면 매년 하위권을 전전한 것이 롯데였고, 그러한 팀에서 그는 타선의 지원도 불펜의 지원도 받지 못하며 홀로 그렇게 마운드를 지키며 게임을 책임졌습니다.......

아쉬운 점은 그는 분명 뛰어나고, 또한 위대한 투수 중 한명이지만 결정적 순간에서의 실패에 대한 것들만을 사람들이 많이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91년 준플레이오프에서 롯데 팬들은 최종전에서 윤학길은 역전 투런 홈런을 허용하며 무너졌었습니다. 그리고 롯데는 그 게임을 패배하며 플옵 진출에 실패하였지요. 하지만 그 경기 3일 전에, 2차전 선발 투수로 등판하여 9이닝 2실점을 기록하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던 것은 윤학길이었습니다. 그리고 95년 한국 시리즈 7차전에서 아웃 카운트 하나 잡지못하고 강판당한 에이스에게 팬들은 많은 비난을 퍼부었지만 3차전에서 이미 9이닝 완투를 기록한(물론 팀은 연장전에서 패배하였지만 그는 3차전에서 완투를 하며 팀이 승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사실은 기억하지 못합니다.......

자이언츠 팬들이 자이언츠의 잘나가던 시절을 회상할때.....그의 이름은 잘 언급되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80년대에는 최동원이라는 불세출의 투수가, 90년대에는 염종석과 주형광이라는 두명의 투수들의 이름이 윤학길이라는 이름 앞에 놓여있지요......

아마.....항상 꾸준히.....항상 변함없이 마운드를 지켜주었던 것이 윤학길 선수였기에 팬들은 그의 가치를 잘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지 않나.....그런 생각을 해봅니다......90년대 후반 이후 자이언츠가 비밀 번호를 찍으며 하위권을 전전하며 꼴데라는 놀림을 받을때.....제 머릿속에서 가장 먼저 떠올랐던 이름은 윤학길이었습니다......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마운드에 올라 경기를 책임져 주었던 그 듬직한 투수 그래서 고독한 황태자라 불렸던......성격이 너무 온순하여 심판에게 어필 한번 제대로 해본적이 없어 팬들에게 병신이라는 놀림을 받았던 그 순한 인상이지만 철완을 가졌던 투수....3경기 중 한 경기 꼴로 완투를 했고 팀의 무리한 요구에도 싫은 소리 한번 하지 않고 마운드에 올랐으며, 결과가 좋지 못해 팬들에게 욕을 먹어도 그저 묵묵히 고개만 숙이고 있었던 투수......롯데 자이언츠에서 가장 많은 승리를 거둔 투수이며 가장 많은 이닝을 던졌던 투수가 가장 먼저 떠올랐었지요.......

그래서 한국 프로야구의 레전드라는 거창한 타이틀의 시리즈를 써보려고 맘먹고 가장 먼저 윤학길 투수를 되돌아본 것입니다....

통산 성적은

308경기 출장, 117승, 94패, 10세이브, 평균 자책점 3.33, 1863 2/3이닝 투구, 916삼진, 526 4사구, 103홈런 허용을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출장한 308경기 중 정확히 100경기에서 완투를 기록하였고, 그 중에서 74 완투승을 기록하였습니다(완봉은 20회).

최동원의 코리안 시리즈 4승, 선동렬의 0점대 방어율 등등 깨지기 쉽지 않은 위대한 기록들은 많이 있습니다.....그리고 윤학길 선수가 커리어 12년 동안 기록한 100완투 역시 앞으로 깨지기 힘든 기록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그는 그가 거둔 117승 중 74승을 홀로 책임졌습니다.....이것만 해도 엄청난 것이지요....그리고 그는 자신이 책임진 100경기 중에서 26번의 패배만을 기록하였습니다......선발 투수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덕목이지요........

어릴 때부터 롯데 자이언츠의 팬이었던 저 역시 롯데 자이언츠의 역대 선수들 중 최동원을 가장 좋아하지만......그만큼 소중한 이름 중에 하나가 또한 윤학길입니다......

요즘 롤러코스터를 타는(조정훈 선수는 제외) 롯데의 투수진을 보니 윤학길 선수가 더더욱 그리워지며 또 그가 얼마나 대단한 투수였는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지금은 LG 트윈스의 투수 코치로 있지만 예전처럼 다시 롯데 자이언츠의 투수 코치로 자이언츠의 유니폼을 입고 야구장에 있는 모습을 보고 싶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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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10/05/04 20:2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울프우드 2010/05/04 20:51 #

    정수君님 반갑습니다....

    윤학길 투수의 완투 능력은 아마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뛰어났다고 생각을 합니다.....시즌당 이닝 소화수와 완투 경기수만 보아도 알수 있지요......

    아....그리고 지적해주신 오타는 수정했어요......좋은 지적 감사해요^^

    부족한글 잘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 운석 2010/05/04 20:31 # 답글

    '고독한 황태자'......
    멋지다면 참 멋진 별명인데, 그 별명이 너무 잘 어울려서 서글펐던 이름 윤학길......

    그를 생각하면 '딱 2년만 어떻게 할 수 있었다면.' 이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2년만 빨리 태어났다면, 최동원과 함께 최고의 원투펀치가 되어 그 시대를 지배한 이름으로 길이 남았을지 모르고,
    2년만 늦게 태어났다면, 90년대 초/중반 롯데 전성기의 핵심으로, 통산 성적에 걸맞는 '팀의 레전드'로 누구보다 회자될 인물일 텐데......

    폭발적인 구위로 삼진을 많이 잡는 것도 아니었고, 정교한 제구력이나 다양한 변화구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묵직함이 느껴지는 구위로 한 타자, 한 타자 묵묵하게 상대하며 롯데 마운드를 성실히 지키던 그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좋은 글, 잘 봤습니다!
  • 울프우드 2010/05/04 20:53 #

    운석님 반갑습니다....
    정말 최동원 윤학길 원투 펀치는 실현된적은 없지만 롯데팬들에게는 로망으로 남아있는 부분이지요.....

    고독한 황태자라는 별명이 너무 잘어울려서.....그래서 서글펐던 이름 윤학길.....이라는 표현에 격하게 공감합니다.....

    그리고 부족한 글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오드아이 2010/05/06 09:58 # 삭제 답글

    오랜만에 들렸는데 좋은글 보고 가네요 ㅎㅎ.
    윤학길 선수의 이름은 가물가물 기억이 나지만 어떤 선수였는지는 기억이 안났는데 이 글을 보고나니 참 대단한 선수
    였구나 싶네요. 2000년대 롯데 암흑기 시절의 손민한 선수가 떠오르기도 하고...
    염종석의 불꽃투는 저도 아직 기억이 생생한데 결국 우승과 에이스 포텐셜 유망주를 맞바꾼 결과가 된 셈이라서...
  • 울프우드 2010/05/06 13:13 #

    롯데는 항상 우승할때 에이스의 어깨와 우승을 맞바꾸는 묘한 전통이....ㄷㄷ...

    오랜만에 방문해주셔서 부족한 글 재밌게 보셨다니 감사합니다^^

    홀로 모든 것을 다 짊어지고 책임져야했던 점에서 2000년대 초반 암흑기의 손민한과 비슷하기도 하지요....차이는 그래도 윤학길 선수는 92년에 우승을 한 번 했다는 것이겠지요^^
  • 롯데팬 2010/06/20 19:09 # 삭제 답글

    잘 보고 갑니다. 비록 저는 윤학길선수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자료를 보니 참 대단한 선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네요.
    그러고보니 최동원, 윤학길, 박동희, 주형광, 손민한 등등 롯데의 에이스들은 고독이란 단어와 친한 것 같습니다. 이게 또 롯데팬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 같기도 하구요ㅋ
  • 울프우드 2010/06/21 02:33 #

    롯데팬 님 반갑습니다. 역대의 롯데의 에이스들 앞에는 고독이란 단어가 잘 어울리지요....그 중에서도 최동원 선수와 윤학길 선수는 더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게다가 윤학길 선수는 전성기 시절 안습의 타선과 투수력으로 너무나 큰 부담을 짊어지고도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였지요.....

    다른 레전드 선수들만큼의 화려한 업적은 그의 기록 역시 당분간 께지기 힘든 엄청난 것임에는 틀리없습니다....

    방문해주셔서 감사하고요. 부족한 글 잘 읽어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 나우훼인 2010/10/21 17:05 # 삭제 답글

    잘 보고 갑니다.
    오늘 뉴스에 신임 코치로 윤학길 코치가 롯데로 오게 됐네요...
    감회가 새롭습니다. 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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