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한국 프로야구 레전드 - 최초의 마무리 권영호 스포츠

지금이야 한국 프로야구도 선발 로테이션이 정착되어 있고, 또한 중간 계투진 역시 롱릴리프, 미들맨, 원포인트 릴리프, 셋업, 마무리 등으로 보직이 세분화 되어 정착되어 있지만, 82년 이후 80년대가 지나갈 때까지 제대로된 투수진의 분업화라는 개념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었습니다......

당시 프로야구의 투수진 운영은 가장 믿을만한 투수가 최대한 긴 이닝을 책임지고, 그 다음으로 실력있는 투수가 이어받는 식이거나 또는 바람잡이 선발들이 등판하여 초반을 버티다가 승기를 잡으면 에이스가 등판해서 경기를 책임지는 두 가지 형태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요......(이런 식이었기에 고 장명부의 한 시즌 30승과 427이닝, 최동원의 정규시즌 27승과 코리안 시리즈 4승이라는 초유의 기록이 만들어질 수 있었겠지요.....)

어찌보면 당연한 운영이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프로야구 출범 이전까지 한국에서의 야구판은 토너먼트 방식으로 치루어지는 고교야구와 대학 야구, 그리고 풀리그로 팀당 한 두바퀴 정도 돌아가던 실업야구가 전부였고, 이런 식의 리그에서는 솔직히 선발 로테이션이나 투수진의 분업이라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도 볼 수 있을테니까요.

하지만 프로야구 출범 이후 장기간 이어지는 패넌트레이스 속에서 토너먼트 식의 투수진의 운영은 당시 투수들에게는, 특히 에이스급 투수들을 너무나 가혹하게 혹사시켰고, 그 결과 수 많은 선수들이 30대 이후 급속도로 쇠퇴하며 안타까운 은퇴를 하게 되는 최악의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이러한 한국 프로야구 초창기의 악순환 속에서 80년대 극강의 전력임에도 불구하고 85년 통합 우승 이외에는 특별한 타이틀이 없었던 삼성 라이온즈의 권영호는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초의 제대로된 마무리 투수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80년대의 삼성은 한국 시리즈 우승은 하지 못했지만 항상 우승 후보로 꼽힐 정도의 압도적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던 팀이었습니다. 김시진, 김일융으로 이어지는 최강의 원투 펀치에 장효조, 이만수가 중심을 잡는 타선은 타팀에게는 그 자체로 공포의 대상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삼성의 그러한 극강의 전력 이면에는 권영호라는 마무리 투수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82년 프로 원년에 데뷔한 권영호 역시 처음에는 선발 투수였습니다. 그는 1982년, 32경기에 등판하여 178 2/3이닝을 투구하며 15승 5패 2세이브(완투 경기는 6, 완봉승은 3회), 평균 자책점 2.37을 기록하며 다승 2위에 랭크되었습니다. 하지만 83년과 84년에는 고질적인 허리 부상으로 인해 공의 위력이 눈에 띄게 약해지며 두 시즌 연속 6승을 올리는데 그쳤지요. 그리고 85년....삼성은 권영호를 마무리 투수로 낙점하며 불펜의 핵으로 돌리게 됩니다.......

물론 당시의 고정관념은 '잘하는 선수=선발', '못하는 투수=마무리'라는 공식이었기에 권영호의 입장에서는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팀의 결정일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82년 개막전과 최종전에서 이선희라는 에이스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가 통한의 만루 홈런으로 패배를 맛보았고, 84년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도 김일융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가 롯데의 유두열에게 통한의 쓰리런 홈런을 맞고 우승의 꿈을 이루지 못한 삼성에게 있어서 제대로된 마무리 투수의 존재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권영호는 팀의 결정을 받아들이며 85년 시즌부터 프로야구 최초의 전업 마무리 투수로 플레이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결정은 이후 한국 프로야구의 고정관념에 커다란 고민과 변화를 일으키게 되는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삼성 팬들이라면 2002년 이승엽과 마해영의 동점 및 역전 홈런으로 최초의 코리안 시리즈를 제패했던 시기를 가장 기억에 남아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이전 85시즌의 삼성은 그야 말로 리얼이었지요. 원투펀치였던 김일융과 김시진은 84시즌에 이어 85시즌에도 극강의 위력으로 상대팀을 초토화시켰습니다. 김일융은 이해 34경기에 등파하여 226이닝을 투구하며 25승 6패(완투 11회, 완봉승 3회), 평균 자책점 2.79를 기록하였고, 김시진은 47경기에 등판하여 269 2/3이닝을 투구하며 25승 5패 10세이브(완투 10회, 완봉승 2회), 평균 자책점 2.00을 기록하였습니다. 타선에서는 이만수가 103경기에서 타율 0.322, 22홈런 87타점, 장효조가 107경기에서 타율 0.373, 11홈런, 65타점을 기록하였습니다(참고로 장효조 선수는 이 시즌 107경기에서 총 129안타를 기록하였습니다).

삼성은 전기리그부터 승승장구하며 일찌감치 전기리그 우승을 확정지으며 한국 시리즈 행을 결정지었고, 후기 리그에는 2진급 선수들을 고루 기용하며 한국시리즈에 대비한 페이스 조절을 하는 여유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후기리그에는 별다른 의지를 보이지 못한 삼성에게 예상치 못한 기회가 찾아오게 되었지요. 85년 8월 6일....당시 4.5경기차로 앞서가고 있었던 후기리그 선두 롯데 자이언츠와의 5연전에서 삼성은 5연승을 거두며 반경기차 선두로 치고나갔고, 내친김에 후기리그까지 제패,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국 시리즈가 열리지 않는 시즌을 만들어버렸습니다. 이해 삼성이 110경기에서 올린 성적은 77승 1무 32패, 승률 0.706이었습니다......포스트 시즌을 제외하고 정규시즌에서 이정도의 압도적 모습을 보여준 팀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요.

그런데 85년 삼성의 이러한 질주 뒤에는 권영호라는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전업 마무리가 버티고 있었습니다. 김시진, 김일융, 이만수, 장효조 등에 가려 눈에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권영호는 전업 마무리로 맞이한 첫해인 85시즌, 팀이 치른 경기의 거의 절반에 이르는 54경기에 등판하여 평균 자책점 3.50, 6승 6패 26세이브를 기록하며, 최우수 구원 투수상을 받았고, 당시까지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한 시즌 최다 세이브 기록을 세웁니다. 물론 마무리 치고는 방어율이 조금 높은 거 아닌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겠지만, 이 시즌 그가 54경기에 등판하여 투구한 이닝은 왠만한 선발투수의 이닝과 맞먹는 174 2/3이닝이었습니다. 그리고 선발 투수에 구멍이 생기면 종종 선발 등판도 했었으니 그가 느낀 부담감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물론 권영호가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 자리를 지킨 시즌은 85시즌이 유일합니다. 86년, 당시 MBC 청룡의 2년차 투수였던 김용수가 전업 마무리 투수로 전향하며 권영호는 김용수에 이은 2인자로 밀려나게 되지요. 하지만 그는 그러한 상황에 불만을 느끼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대신 묵묵히 자신의 일을 수행하였습니다.

86시즌, 권영호는 38경기에 등판하여 146 1/3이닝을 투구하며 평균 자책점 2.77, 7승 7패 19세이브를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87시즌에도 32경기에 등판하여 89 2/3이닝, 평균 자책점 2.41, 5승 3패 18세이브를 기록하며 3년 연속 20세이브 포인트를 넘기는 투혼을 보여주었습니다. 85년 극강의 전성기를 보낸 삼성이었지만 86시즌부터 삼성은 조금씩 약해지고 있었습니다. 김일융은 한국에서 완벽히 부활하여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고, 김시진은 큰 경기에 약하다는 징크스에 시달리며 조금씩 위력을 상실하고 있었습니다(그러다 결국 롯데로 팀을 옮기게 되지요). 권영호와 함께 원년 15승을 올렸던 황규봉은 은퇴를 선언하였습니다. 그 위력적인 투수진이 해체되고 있었지만 권영호는 꿋꿋이 마무리 투수로서 팀의 승리를 매조지하였고, 종종 선발 투수가 부족하면 선발 등판도 마다하지 않으며 팀을 위해 헌신했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서른이 넘은 나이에 프로야구에 데뷔한 권영호에게는 부담이 너무 컸지요. 88시즌, 부상으로 권영호는 29경기에 등판하여 7승 5패 7세이브, 평균 자책점 3.63을 기록하며 하향곡선을 그리게 됩니다......

그리고 89시즌......김상엽이라는 강력한 구위의 투수를 얻은 삼성은 그를 차기 마무리로 낙점하였고, 권영호는 은퇴를 준비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커리어 마지막 시즌 그는 42경기에 등판하여 86 2/3이닝을 투구하며 평균 자책점 3.63. 4승 5패 19세이브를 기록하며 정확히 통산 100세이브를 기록하게 됩니다. 90년대 이후 본격적인 투수 분업의 시작과 함께 각팀마다 전문 마무리 투수를 두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흐름 속에서 과거 해태의 선동렬, 태평양의 정명원, 한화의 송진우와 구대성, 두산의 진필중....그리고 2000년대에 들어서 삼성의 오승환, SK의 정대현 등 엄청난 마무리 투수들이 등장하여 통산 100세이브라는 기록이 그리 대단해보이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권영호가 기록한 통산 100세이브는 통산 세이브 부분 12위에 해당되는 대 기록입니다. 불같은 강속구는 없었지만 자신이 마음 먹은 곳으로 언제든지 공을 던질 수 있는 칼 같은 제구력과 동시에 직구와 같은 폼에서 동일한 궤적을 그리며 날아가는, 당시로서는 개념조차도 생소했던 체인지업을 앞세워 경기 막판 팀의 승리를 확실히 지켜주었지요.......권영호가 활동한 시기는 지금처럼 마무리 투수에게 1이닝만을 책임지며 투수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시기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85시즌, 권영호가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전문 마무리 투수로 자리매김하며 장기 패넌트레이스에서 투수진을 어떻게 운용하는지 개념 조차도 잡지 못하고 있었던 한국 야구계에서는 '못하는 투수=구원'이라는 고정 관념이 깨져나가기 시작합니다......

어찌보면 한국 프로야구의 투수 운용에서의 시스템의 변화는 권영호라는 마무리 투수의 출현으로 시작되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어린시절부터 롯데 팬이었지만 프로야구 8개 구단 모두에 애착이 가는 플레이어들이 많이 있고, 삼성 라이온즈의 경우에도(팀 자체를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제 기억 속에 뚜렷이 각인되어 있는 선수들이 몇몇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어린 시절 제가 야구 중계를 보곤 할때 경기 막판 등판하여 위기 상황을 이겨내고 팀의 승리를 확정지었던 권영호 선수의 모습은 아직까지도 또렷하게 남아있습니다........

2010시즌, 8개 구단 가운데 제대로 된 마무리 투수를 가지고 있는 구단은 SK, 두산, 기아, LG 정도라는 생각이 듭니다(삼성의 경우 오승환 선수가 아직 컨디션을 회복하지 못하며 롤러 코스터를 타고 있어서). 롯데, 삼성, 한화, 넥센은 마무리 투수가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며 매경기 힘든 승부를 펼치고 있고요. 확실한 마무리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그렇게 큰 것이겠지요.

지금 모든 팀들은 마무리 투수의 가치에 대해 너무나도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인식의 출발 선상에 바로 80년대 삼성의 뒷문을 책임졌던 권영호가 있었습니다.......그것만으로도 이 선수 역시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한페이지를 장식하고도 남을 충분히 위대한 선수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며, 허접한 포스팅 마무리 합니다......

아...통산 성적은 커리어 8시즌 동안 288경기에 등판하여 1020 2/3이닝 투구, 평균 자책점 3.06, 56승 49패 100세이브, 피안타 885, 피홈런 77개, 4사구 411, 탈삼진 421개를 기록하였습니다.....

덧글

  • AlexMahone 2010/05/10 18:57 # 답글

    최초의 마무리는... 84년에 OB의 윤석환 투수가 아닐까요?

    83년에 당시 김성근 투수코치가 황태환 선수를 중심으로 불펜운영을 하면서

    OB 사령탑을 맡은 84년부터 마무리 등 투수 분업시스템을 가동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아무튼 포크볼을 장착한 권영호의 후덜덜한 마무리가 기억나네요...

    이선희 선수와 더불어 당대 최고의 좌완이었죠..
  • 울프우드 2010/05/10 19:05 #

    AlexMahone님 반갑습니다....

    OB의 윤석환을 최초의 마무리로 잡는 의견도 있지요.....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권영호가 좀 더 전업 마무리에 가깝지 않나라는 생각을 해서요.....

    시기적으로 봤을때 84년에 입단한 윤석환이 그 시즌에 57경기에서 12승(10구원승) 8패 25세이브를 기록하였기 때문에 보는 관점에 따라 윤석환이 최초의 마무리라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하지만 윤석환의 경우 두 자리 이상의 세이브를 기록한 시즌이 84년과 88년(13승 14세이브)으로 한정되는 점에서 약간 한계가 있다는 생각에.....그래서 엄밀한 의미에서의 전업 마무리는 85년부터 89년까지 전업 마무리로 플레이한 권영호로 잡는게 낫지 않나 싶은 것이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80년대 최고 좌완 중 한명....맞는 말씀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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