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 추억의 선수 "The Human Highlight Film" 도미니크 윌킨스 스포츠

오랜만에 추억의 선수에 대한 포스팅을 하네요....가만히 생각해보니 80-90년대 NBA에서 득점력에 있어서 조던과 자웅을 겨루었던 위대한 플레이어에 대한 포스팅을 하지 않았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지금 현재 리그에서 활동하고 있는 선수들의 화려한 덩크슛 이전에 이미 80년대 수많은 고난이도의 덩크를 구사하며 "The Human Highlight Film."이라는 닉네임을 가지고 있었던 선수. 그 플레이의 화려함과 폭발적인 득점력은 결코 조던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던 위력적인 선수....네...오늘 포스팅에서 다룰 선수는 애틀랜타 호크스의 상징과도 같았던 도미니크 윌킨스입니다......

1960년...프랑스에서 태어난 윌킨스는 이후 미국으로 이주하여 생활하였고 미국 이주후 윌킨스는 본격적으로 농구 선수로서의 재능을 꽃피우게 됩니다....조지아 대학 시절 윌킨스는 폭발적인 득점력으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됩니다. 게다가 그의 플레이는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한 것이었지요. 203cm, 104kg의 사이즈는 3번 포지션으로는 너무나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1학년 시절 16경기에서 평균 18.6득점(필드골 성공률 52.5%), 6.5리바운드, 1.4어시스트, 2학년 시절에는 31경기에서 필드골 성공률 53.3% 평균 23.6득점 7.5리바운드 1.7어시스트를 기록하였고, 3학년 시절에도 31경기에서 필드골 성공률 52.9%, 평균 21.3득점, 8.1리바운드를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3학년을 마치고 1982년 드래프트에 나오게 됩니다. 1라운드 1번과 2번으로 제임스 위디와 테리 커밍스가 지명되었고 3번 지명권을 가지고 있었던 유타 재즈는 망설임없이 윌킨스를 지명하였습니다. 하지만 드래프트가 끝나고 몇개월이 지난 뒤 윌킨스는 유타에서 애틀랜타로 트레이드 되게 됩니다. 유타에서는 윌킨스를 애틀랜타로, 애틀랜타에서는 그 대가로 존 드류와 프리먼 윌리엄스를 유타로 보내는 2:1 트레이드였지요......

대학시절 그의 위력과 기대치를 생각한다면 데뷔 시즌을 치르기도 전에 트레이드를 겪는 사연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리고 1982-83시즌 그는 애틀랜타 호크스에서 데뷔 시즌을 맞이하게 됩니다. 루키 임에도 불구하고 윌킨스는 애틀랜타의 주전 라인업에 포함되었고 첫 시즌 82경기에 모두 선발 출장하여 필드골 성공률 49.3%, 평균 17.5득점, 5.8리바운드, 1.6어시스트, 1.0스틸이라는 준수한 기록을 올리며 성공적인 데뷔 시즌을 치루었습니다.

그리고 소포모어 시즌...2년차 징크스 이딴 것은 윌킨스에게 없었지요. 81경기에서 윌킨스는 필드골 성공률 47.9%, 평균 21.6득점, 7.2리바운드, 1.6어시스트, 1.4스틸, 1.1 블락슛을 기록하며 팀의 에이스 자리를 확고히 다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84-85시즌에는 평균 27.4득점(리그 6위), 6.9리바운드, 2.5어시스트, 1.7스틸로 공수 모두에서 최고 수준의 기량을 선보이며 리그를 대표하는 득점 기계로 인정받기 시작하지요.....

그리고 85-86시즌....윌킨스는 위력적인 공격력으로 상대편 코트를 맹폭하며 처음으로 +30득점 시즌을 만들어냅니다. 윌킨스는 78경기에서 필드골 성공률 46.8%, 평균 30.3득점, 7.9리바운드, 2.6어시스트, 1.8스틸을 기록하며 팀을 이끌었고, 평균 득점 부분에서 유타의 애드리언 댄틀리, 덴버의 알렉스 잉글리쉬와의 경쟁에서 승리하며 1위에 랭크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시즌 이후 윌킨스는 단 한번도 득점 랭킹 1위 자리에 오르지는 못합니다. 86-87시즌에도 윌킨스는 평균 29득점을 기록하며 폭발적인 공격력을 보여주었지만, 득점 랭킹 2위에 머물렀습니다. 1위 자리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공격력을 갖춘 선수였던 마이클 조던의 차지였지요. 조던은 86-87시즌 평균 37.1득점이라는 괴물같은 득점력으로 득점왕을 차지하였습니다. 이때부터 윌킨스의 자리는 조던에 가려진 2인자로 고정되기 시작합니다...

87-88시즌에도 윌킨스는 78경기에서 평균 37.8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46.4%, 평균 30.7득점, 6.4리바운드, 2.9어시스트, 1.3스틸로 MVP급 활약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커리어에서 두번째로 +30득점 시즌을 작성하였지요. 하지만 시카고의 조던은 평균 35득점을 기록하며 득점왕 자리를 놓치지 않았습니다.....이후 윌킨스는 90-91시즌까지 매시즌 80경기 가까이를 꾸준히 소화하며 +25득점을 꾸준히 기록하며 뛰어난 공격을 유지하였습니다.

하지만 90-91시즌...윌킨스는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데뷔 후 처음으로 40경기에 결장하였고, 이후 서서히 내리막길에 들어서게 됩니다. 부상 이후 그의 폭발적인 운동 능력은 눈에 띄게 떨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물론 92-93시즌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와 71경기에서 평균 37.3분을 소화하며 평균 29.9득점 6.8리바운드 3.2어시스트 1.2스틸로 건재를 과시하였지만 그의 플레이 스타일은 확연히 변화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93-94시즌 도중 윌킨스는 데뷔 후 11시즌 동안 자신이 플레이한 애틀랜타에서 리그 최악의 팀 중 하나인 LA 클리퍼스로 트레이드되게 됩니다. 애틀랜타는 클리퍼스의 데니 매닝을 데려오며 1라운드 지명권과 윌킨스를 클리퍼스에 넘겼지요. 클리퍼스에서 25경기를 소화하며 평균 29.1득점을 기록하면서 여전한 기량을 과시하였지만 그는 확실히 쇠퇴기였습니다. 시즌 후 제한적 FA로 보스턴에 둥지를 튼 윌킨스는 자신의 커리어 역사상 최악의 시즌을 보내게 됩니다. 데뷔 후 12시즌 동안 루키 시즌과 소포모어 시즌을 제외하면 +25득점을 기록하던 그였지만 보스턴에서 플레이한 94-95시즌, 77경기에서 평균 17.8득점, 5.2리바운드, 2.2어시스트로 부진에 빠지게 되었지요. 그는 이제 노장이었고, 아킬레스건 부상 이후 상실한 폭발적인 운동 능력은 더 이상 되돌아오지 않았습니다. 94-95시즌 종료 후 윌킨스는 소속팀을 구하지 못하게 되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리그를 대표하던 득점 기계는 유럽으로 떠나 그리스 리그의 Panathinaikos에서 한 시즌을 플레이하게 되는 수모를 당하게 됩니다. 하지만 딱 1년 동안 플레이했던 그리스에서 그는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이며 리그를 평정하였지요. 그는 팀을 1996년 그리스컵 챔피언으로 이끌었고, 당연히 그리스컵 MVP를 수상하였습니다. 그리고 소속팀은 1996년 유로리그 챔피언에 올랐고, 윌킨스는 유로 리그 파이널4 MVP에 선정되며 건재함을 과시하였습니다.

96-97시즌, 데이비드 로빈슨이 버티고 있던 샌안토니오 스퍼스가 그를 프리에이전트로 영입하며 그는 한 시즌 만에 NBA에 복귀하게 됩니다. 윌킨스는 이 시즌 주로 63경기에서 교체로 출장하며 평균 18,2득점, 6.24리바운드, 1.9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노장 선수로서는 좋은 활약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이 시즌 샌안토니오는 팀의 기둥인 로빈슨이 등부상으로 여섯 경기만에 시즌 아웃되며 한없이 무너졌습니다(19승 63패). 그리고 윌킨스는 +18득점을 올렸지만 필드골 성공률 41.7%, 3점슛 성공률은 29.3%에 그칠 정도로 그리 정확한 공격력을 보여주지 못하였지요.

시즌 종료 후 윌킨스는 다시 소속팀을 구하지 못하였고 97-98시즌에는 이탈리아 리그의 Fortitudo Bologna에서 플레이하였습니다. 98-99시즌 올랜도 매직은 윌킨스를 영입하였습니다. 그에게 바란 것은 롤플레이어와 백업 멤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지요. 이미 39세의 노장이었던 윌킨스는 27경기에서 주로 백업으로 출장, 평균 9.3분, 필드골 성공률 37.9%, 평균 5.0득점, 2.6리바운드, 0.6어시스트로 부진하였고, 결국 시즌 중이었던 99년 6월 14일 올랜도에서 방출되었고, 그것을 마지막으로 자신의 커리어를 마감하였습니다.

우승 반지도 없었고, 득점왕 1회를 제외하면 항상 조던에 가려 그 가공할 득점력과 운동 능력은 만년 2인자로 평가받았던 선수였지만 그의 통산 성적은 위대하다고 표현하기에 한치의 모자람도 없습니다. 윌킨스는 커리어 15시즌 동안 1074경기에 출장, 평균 35.5분을 소화하였고, 필드골 성공률 46.1%, 3점슛 성공률 31.9%, 평균 24.8득점(26668득점), 6.7리바운드(7169리바운드), 2.5어시스트(2677어시스트), 1.3스틸(1378스틸)을 기록하였습니다.....커리어 15시즌 중 아홉 시즌에서 그는 득점 랭킹 10위 안에 꾸준히 자리를 잡았었고(득점 2위 3회), 그가 기록한 평균 24.8득점은 리그 역사상 13위, 26668점의 통산 득점은 리그 12위에 해당하는 기록입니다. 그외 82-83시즌 NBA All Rookie 1st Team에 선정되었고, All-NBA 1st team 1회, 2nd Team 4회, 3rd Team 2회에 선정되었고, 올스타전에는 9번 출장하였습니다. 그리고 1994년 캐나다에서 열린 세계 선수권 대회에 드림팀 2의 멤버로 출전하여 금메달을 획득하였습니다....2006년 드디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습니다.....

그가 가장 오랫동안 커리어를 보냈던 애틀랜타는 최강팀이라 불릴 정도의 팀은 아니었기에 파이널에 진출하여 우승을 다투지는 못했지만 그의 기량은 동시대를 플레이한 조던, 드렉슬러, 피펜, 레지 밀러와 같은 2번, 3번 플레이어들에 비해 결코 떨어지지 않았으며 "The Human Highlight Film." 이라는 그의 닉네임에서 알수 있듯이 폭발력과 화려함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멋진 플레이를 많이 보여준 선수였지요.....뭐....이 시대에 반지 없이 은퇴한 무관의 제왕들이 제법 있기에 유독 그가 더 쓸쓸하게 보일 이유는 없지만 그래도 커리어 말년 두 시즌이나 유럽 무대까지 가서 선수 생활을 이어나간 부분에서는 조금 가슴이 아프기도 합니다......

올스타전 덩크슛 컨테스트에서 조던과 자웅을 겨루었던 그의 파워풀하고도 화려한 덩크가 새삼 그리워집니다......





덧글

  • 오드아이 2010/12/15 10:43 # 삭제 답글

    윌킨스옹이 작년에 팀 하더웨이와 d리그 선수들과 함께 왔었던 기억이 나네요.
    운동능력은 이제 나이가 있으니만치 바랄수 없지만 그래도 탄탄한 기본기가 꽤나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걸 보면 윌킨스도 휴먼하일라이트 필름이라는 별명에서 그간 운동능력과 화려함이 부각되긴 하지만
    이런 레전드가 되려면 단지 그게 다가 아니라는걸 다시금 느끼게 됩니다 ㅎㅎ.
  • 울프우드 2010/12/15 12:44 #

    조던과 동시대 같은 컨퍼런스에서 플레이하다보니 그의 위대함이 종종 과소평가되는 것 같아 아쉬울때가 많아요 운동능력과 덩크만으로 평가할 수 없는 선수인데 말이죠
  • 터프한 허스키 2012/10/21 06:02 # 답글

    항상 포스팅 잘보고 있습니다 울프우드님!
    근데 마지막 커리어 정리 부분에서 2nd팀 3회 3rd팀 3회로 적혀있는데, 저도 따로 찾아보니 2nd팀 4회 3rd팀 2회이네요.
  • 울프우드 2012/10/30 15:47 #

    부족한 글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 잘 들어오질 않다보니 덧글 확인이 늦었네요. 저도 방금 확인해보니까 제가 잘못 작성한 부분이네요... 좋은 지적 감사드리며 2nd팀 4회 3rd팀 2회로 수정하였습니다....

    날씨가 추워지는데 감기 조심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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