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 오랜만에 추억의 선수..90년대 초중반 피닉스의 돌격 대장 케빈 존슨 스포츠

포인트 가드의 역할은 팀 공격을 조율하며 공격시 팀 플레이를 조립하는 역할일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전통적인 포인트 가드의 이미지는 비교적 단신에 재빠른 움직임과 동시에 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한 패스 중심의 플레이에 능한 그런 모습이지요. 아마 이러한 전통적인 포인트 가드의 전형을 보여준 선수는 아마 존 스탁턴일 것입니다.....

하지만 수많은 팀과 또한 다양한 성향의 선수들이 플레이하는 NBA에서는 포인트 가드 포지션에서 플레이함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이미지와는 동떨어진 개성적인 플레이를 펼친 선수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70년대 후반~80년대 레이커스 왕조를 이끌었던 매직 존슨은 포인트 가드=단신이라는 공식을 깨며 교과서적인 패스가 아닌 수많은 창조적 패스와 플레이로 팬들의 환호를 끌어냈었고, 포인트 가드임에도 불구하고 타고난 하드웨어를 앞세워 센터 플레이까지 거침없이 소화하는 다재다능함을 보여주었지요. 존 스탁턴은 포인트 가드의 교과서적인 플레이를 가장 잘 보여준 선수였으며, 같은 백인 단신 포인트 가드로 비슷한 이미지로 오해받곤 했던 클리블랜드의 마크 프라이스는 폭발적인 슈팅 능력으로 단신 포인트 가드는 패싱 게임에 집중한다는 고정 관념을 부숴버렸습니다. 아이자이어 토마스나 팀 하더웨이 같은 선수들은 화려한 드리블 스킬로 돌파를 즐겨하며 패싱과 득점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지요. 그리고 이들만큼 임펙트가 있지는 못했지만 90년대 불스의 첫 3연패 시절 핵심 멤버로 플레이했던 B.J. 암스트롱의 경우에는 득점력이나 어시스트 능력은 그리 눈에 띄지 않았지만 확률높은 외곽슛과 실책이 적은 단단한 플레이로 안정적인 팀 운영에 기여하는 견실한 포인트 가드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다룰 선수는 90년대 초중반 피닉스 선즈의 돌격 대장으로 폭발적인 스피드로 코트를 휘저은 케빈 존슨입니다.
 
<빠른 드리블로 상대 수비를 제치고 림으로 돌진하여 득점을 올리거나 패스를 찔러주는 것은 KJ의 전매특허였지요>

단신 가드들은 일반적으로 중장거리 슛팅 능력이 뛰어났는데, KJ는 단신임에도 불구하고 폭발적인 스피드를 이용한 돌파와 드라이브 인으로 포인트를 올렸던 독특한 포인트 가드였습니다. 동시에 패싱 센스 역시 뛰어났으며 상대 1, 2번을 강력하게 압박하는 수비력도 보여준 선수였지요......

단신 선수로서 외곽슛 능력은 떨어졌지만 드리블을 통한 돌파로 좋은 득점력을 보여준 선수였으며 한때 20득점-10어시스트를 기록할 정도로 리그를 대표하는 탑 클래스의 포인트 가드였던 선수였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케빈 존슨에 대해서 가장 많이 기억하고 있는 시점은 90년대 초반 바클리와 함께 피닉스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시절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그러면 지금부터 팀의 돌격대장으로 거침없이 코트를 휘젓고 다녔던 이 뛰어난 포인트 가드의 커리어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대학시절부터 KJ는 팀의 포인트 가드로서 좋은 활약을 선보였던 선수였습니다. 캘리포니아 대학 1학년 시절 KJ는 28경기에서 평균 27.6분을 소화하였고 필드골 성공률 51%, 평균 9.7득점, 3.0 리바운드, 2.3 어시스트로 준수한 활약을 펼쳤습니다. 이후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KJ는 더욱더 위력적인 선수로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2학년 시절에는 27경기에서 평균 33.4분을 소화하며 평균 12.9득점, 3.9리바운드, 4.1어시스트를 기록하였고, 3학년 시절에는 29경기에서 평균 15.6득점 3.6리바운드, 6.0어시스트, 4학년 시절에는 34경기에서 평균 32.8분, 평균 17.2득점, 3.9리바운드, 5.0어시스트를 기록하였습니다.

대학시절의 활약을 바탕으로 그는 87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7번으로 클리블랜드에 지명되었습니다. 하지만 클리블랜드에는 이미 팀의 상징과도 같았던 뛰어난 포인트 가드 마크 프라이스가 있었지요. KJ는 루키 시즌 클리블랜드에서 프라이스의 백업으로 출전하며 52경기에서(스타팅 3경기) 평균 플레이 타임 20.1분, 필드골 성공률 46%, 3점슛 성공률 22.2%, 평균 7.3득점, 1.4리바운드, 3.7어시스트, 1.2 스틸을 기록하며 루키로서는 만족스러운 활약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계속 클리블랜드에 있었다면 아마 그는 프라이스의 백업 가드 역할을 생각보다 오래 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시즌이 끝나기 직전 KJ는 자신의 커리어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트레이드를 경험하게 됩니다. 88년 2월 25일 클리블랜드와 피닉스는 대형 트레이드에 합의하게 됩니다. PG 쪽에 약점이 있었던 피닉스와 득점력있는 선수에 대한 필요성이 컸던 클리블랜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였지요. 그 결과 클리블랜드는 피닉스에 케빈 존슨과 타이론 코빈, 마크 웨스트와 함께 88년 1라운드와 2라운드의 드래프트 픽을 피닉스에 내주고, 대신에 레리 낸스와 마이크 샌더스, 그리고 88년 1라운드 드래프트 픽을 받아오는 트레이드를 성사시키게 됩니다.

데뷔 첫해 시즌을 마치기도 전에 KJ는 유니폼을 갈아입은 것이지요. 그리고 KJ는 피닉스로 트레이드 되자마자 팀의 주전 포인트 가드로 기용되기 시작했습니다. 87-88시즌 피닉스에서 28경기를 소화한 KJ는 그 중 25경기에 스타팅으로 투입되었고, 평균 플레이타임은 30.1분으로 늘어났습니다. 필드골 성공률 46.4%, 평균 12.6득점, 8.7어시스트, 4.3리바운드, 1.5스틸을 기록하며 클리블랜드에서보다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모습을 보이며 단번에 팀의 주축 선수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그리고 소포모어 시즌인 88-89시즌. KJ는 소포모어 징크스 따위는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린듯 엄청난 활약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 시즌 81경기에서 모두 선발로 출장한 KJ는 평균 39.2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 50.5%, 평균 20.4득점, 12.2어시스트, 4.2리바운드, 1.7스틸을 기록하며 공수 양면에서 팀의 에이스로 거듭나게 됩니다. 동시에 데뷔 두번째 시즌만에 특급 포인트 가드의 척도라고 할 수 있는 +20득점-+10어시스트를 달성하는데 성공하게 되죠. KJ는 All-NBA 2nd Team에 선정되었습니다. 동시에 팀은 당시 에이스였던 톰 쳄벌스와 KJ, 그리고 에디 존슨 세명이 동시에 +20득점을 기록하며 55승 27패의 호성적으로 플옵에 진출 1라운드와 2라운드에서 덴버 너게츠와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를 각각 3승 무패, 4승 1패로 일축하며 컨퍼런스 파이널까지 진격하였습니다. 하지만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레이커스에 4연패로 허무하게 무너지며 파이널 진출에는 실패하였지요. 팀은 파이널 진출에 실패하였지만 KJ는 플옵에서 더욱 더 위력적인 모습을 보이며 팀의 에이스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됩니다. 이 시즌 플옵 12경기에서 KJ는 평균 41.2분을 소화하는 투혼을 보이며 평균 23.8득점, 12.3어시스트, 4.3리바운드로 맹활약하였습니다. KJ 개인적으로는 소포모어 시즌에 별다른 징크스없이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시즌이었고 동시에 팀 역시 좋은 성적을 거두었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데뷔 이후 세번째 시즌인 89-90시즌 KJ는 74경기에서 평균 39.2분을 소화하는 꾸준함을 유지하였고, 필드골 성공률 49.9%, 평균 22.5득점, 11.4어시스트, 1.3스틸, 3.6리바운드를 기록하며 두 시즌 연속 20-10에 성공하게 됩니다. 이제 그의 활약을 반짝 활약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되었지요.

팀은 다시 54승 28패로 플옵에 진출하였고, 1라운드에서 유타 재즈를 혈투 끝에 3승 2패로 누르고 2라운드에서는 전년도 굴욕을 안겨주었던 레이커스를 4승 1패로 일축하며 다시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하게 됩니다. 그리고 컨퍼런스 파이널....하지만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피닉스를 기다렸던 팀은 당시 가장 다이내믹한 팀 중 하나였던 포틀랜드 였습니다. 결국 피닉스와 KJ는 포틀랜드에게 2승 4패로 무너지며 두 시즌 연속 파이널 직전에서 좌절을 맛보게 되지요.

90-91시즌에도 KJ의 활약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는 77경기에서 평균 36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51.6%, 평균 22.2득점 10.1어시스트 3.5리바운드 2.1스틸을 기록하며 세시즌 연속 20-10을 달성하는데 성공하게 됩니다. 그리고 팀 역시 55승 27패를 기록하며 다시 플옵에 나서게 되지요. 하지만 플옵에서 유타 재즈에게 1승 3패로 무너지며 1라운드에서 탈락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91-92시즌..KJ는 변함없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78경기에서 평균 37.2분, 필드골 성공률 51.6%, 평균 19.7득점, 10.7어시스트, 3.7리바운드, 1.5스틸로 여전히 위력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네 시즌 연속 20-10에는 실패하였지만 여전히 그는 리그 최고의 공격력을 보유한 포인트 가드임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92-93시즌 피닉스는 파이널을 차지하기 위한 승부스를 던지게 됩니다. 빈약한 인사이드를 보강함과 동시에 팀의 확실한 에이스 부재를 해결하기 위한 카드로 팀은 필라델피아에서 찰스 바클리를 데려오는데 성공하게 되지요. 네시즌 동안 계속 팀의 중심으로서 강행군을 펼쳐왔던 KJ의 부담이 드디어 경감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시즌부터 KJ는 서서히 하향세로 돌아서게 됩니다. 92-93시즌 KJ는 부상으로 시즌 전반을 결장하였습니다. 시즌 중반에 복귀한 그는 이 시즌 데뷔 후 처음으로 +70경기를 소화하지 못하였죠(49경기 출장). 하지만 복귀 후 그의 활약은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KJ는 복귀 이후 16.1득점, 7.8어시스트, 2.1리바운드, 1.7스틸을 기록하며 팀의 주전 포인트 가드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였습니다. 물론 득점-어시스트 수치는 루키 시즌을 제외하면 가장 떨어지는 것이었지만 이제 팀에는 KJ가 아니더라도 확실하게 점수를 올려줄 수 있는 바클리가 있었고, 외곽에는 최고의 폭발력을 자랑하였던 댄 멀리가 버티고 있었기에 수치의 하락은 당연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클리-멀리-KJ로 이어지는 트리오의 폭발력을 바탕으로 피닉스는 이 시즌 62승 20패를 기록, 양대 컨퍼런스 최고 승률을 기록하며 플옵에 진출하게 됩니다.

하지만 플옵에서의 피닉스는 악전고투를 하게 되지요. 1라운드에서 레이커스와 5차전까지 가는 혈투 끝에 간신히 3승 2패로 2라운드에 진출하였고, 2라운드에서는 데이비드 로빈슨이 이끄는 샌안토니오와 역스 6차전까지 갔습니다. 그리고 컨퍼런스 파이널에서는 숀 캠프와 게리 페이튼이 버틴 시애틀과 7차전까지 가는 혈투 끝에 간신히 파이널에 진출하는데 성공하게 됩니다.

그리고 파이널 상대는 90년대 최고의 팀이었던 시카고 불스.....바클리의 팔꿈치 부상 등 여러가지 악재들이 있었지만 피닉스는 시카고를 끈질기게 괴롭혔습니다. KJ 역시 파이널 1차전에서 자신보다 훨씬 큰 조던을 디펜스 하며 그를 20점대로 묶는 등 좋은 활약을 펼쳤지요. 하지만 팀은 6차전....존 팩슨에게 기적같은 버저비터를 얻어맞으며 침몰하며 준우승에 만족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플옵 시리즈에서 피닉스 팬들은 KJ의 부진에 대해 많은 비난을 퍼부었지만 팀의 에이스였던 바클리가 그를 보호해주었고(그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피닉스의 팬으로서 자격이 없다. 그가 없었다면 우리는 이 무대에 설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KJ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라..고 일갈하셨지요...아! 찰스 옹....)

이 시즌을 마지막으로 KJ는 고질적인 부상의 영향으로 전성기 시절의 기량을 까먹기 시작합니다. 93-94시즌, KJ는 평균 20.0득점, 9.5어시스트로 뛰어난 활약을 펼쳤지만 부상으로 15경기에 결장하였습니다. 그리고 94-95시즌에는 35경기에 결장하며 47경기에만 모습을 드러냈고 평균 15.5득점, 7.7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부침을 겪었지요. 95-96시즌에도 56경기에 출장하는데 그쳤습니다. 성적은 18.7득점, 9.2어시스트로 준수하였지만 문제는 내구력이었지요. 그리고 이 시즌을 마지막으로 팀의 에이스였던 바클리는 반지를 얻기 위해 올라주원과 드렉슬러가 있는 휴스턴으로 이적을 하게 됩니다.

96-97시즌....KJ의 마지막 불꽃이 타오르게 됩니다. 만신창이가 되버린 팀의 중심으로 KJ는 다섯 시즌 만에 처음으로 70경기에 출장하며 평균 38분, 필드골 성공률 49.6%, 평균 20.1득점, 9.3어시스트, 3.6리바운드, 1.5스틸로 팀을 떠받쳤습니다. 하지만 이 시즌을 마지막으로 부상은 더욱 더 악화되었고, 결국 97-98시즌 50경기에서(스타팅 12경기), 평균 9.5득점, 4.9어시스트, 3.3리바운드로 부진을 경험하게 되었고, 이 시즌을 마지막으로 그는 미련없이 은퇴를 선언하며 코트를 떠나게 됩니다.

하지만 99-00시즌 그는 피닉스를 위해 한차례 복귀하기도 하였습니다. 제이슨 키드의 부상으로 포인트 가드진에 심각한 구멍이 났던 피닉스는 시즌 막판 그에게 복귀 의사를 타진하였고 케빈 존슨은 자신의 영광의 시기를 같이했던 팀을 위해 기꺼이 복귀하였습니다. 시즌 막판 KJ는 여섯 경기에 교체로 출장하여 평균 18.8분, 필드골 성공률 57.1%, 평균 6.7득점, 4.0어시스트, 2.7리바운드를 기록하며 키드의 공백을 훌륭히 메웠고, 플옵에서도 아홉 경기에 출장, 평균 14.3분을 소화하며 평균 3.2득점, 1.4리바운드, 2.6어시스트로 활약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시즌을 마지막으로 그는 정말로 코트와 영원히 이별을 하게 되지요.

거듭된 부상으로 인해 커리어 초반에 보여준 폭발적인 모습을 지속하지는 못하였지만 그는 분명 90년대 초반 코트를 지배하였던 위대한 포인트 가드였음에 분명합니다. 단신 포인트 가드로서 하킴 올라주원에게 인 유어 페이스 덩크를 날릴 정도로 엄청난 운동 능력을 보여주었던 선수였으며, 돌파에 의한 득점 능력과 포인트 가드로서 좋은 리바운드 능력, 그리고 어시스트 능력까지 그는 공격형 가드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능력을 다 보유한 선수였지요(3점슛 빼고....)

통산 성적은 11시즌 동안 735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34.1분을 소화하였고, 필드골 성공률 49.3%, 3점슛 성공률 30.5%, 평균 17.9득점(13,127득점), 9.1 어시스트(6711어시스트), 3.3리바운드(2404리바운드), 1.5 스틸(1082스틸)을 기록하였습니다. 평균 9.1어시스트는 리그 통산 9위, 6711어시스트는 리그 통산 17위에 해당하는 기록입니다. 89년 MIP를 수상하였고(기량 발전상), All-NBA 2nd 팀 4회, 3rd 팀에 1회, 올스타에 3회 선정되었으며, 1994년 세계 농구 선수권 대회에서 드림팀 2의 일원으로 참가하여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현재 피닉스에는 90년대 후반 제이슨 키드, 지금은 스티브 내쉬라는 위대한 포인트 가드들이 있어 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분명 KJ에 비해 훨씬 더 위대한 선수로 NBA의 역사에 남겠지요. 그것을 부정할 수 는 없습니다. 하지만 제 기억 속 피닉스의 영원한 돌격 대장은 90년대 초반 피닉스의 공격을 이끌었던 KJ네요.....은퇴 후 사회/정치 활동에 뛰어든 그는 2008년 새크라멘토 시장으로 당선되어 정치인으로서의 첫발을 성공적으로 내딛기도 하였습니다.



덧> 오랜만에 농구관련 포스팅을 해보네요. 몇달전에 쓰기 시작했던 포스팅인데 연말이 다되어서야 간신히 마무리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다보니 글이 조금은 어설퍼 보이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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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프우드의 농구, 야구, 그리고 잡다한 이야기들 : 2010년 내 이글루 결산 2010-12-31 14:29: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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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개산대부 2010/12/14 23:52 # 답글

    옛날 NBA를 보신 분이 또 있군요. 반갑네요.

    찰스옹의 광팬이었지만 극단적인 리딩형 PG를 좋아했기에 제 머릿속 KJ는 한템포 빠른 레이업과 닥돌로만 기억되어 있는게 아쉬울 뿐입니다^^;;
    뭐 92-93을 생각해보면... '덩어리 말고 센터만 하나 있었다면!!!!' 생각밖에 안나지만 말입니다.ㅎㅎㅎ
  • 울프우드 2010/12/15 03:05 #

    개산대부 님 반갑습니다...옛날 NBA를 보신 분이 또 있어서 저도 반갑네요^^ 케빈 존슨은 닥돌로만 기억되는 경우도 있지만 커리어 초반의 케빈 존슨은 분명 돌파력과 패싱 능력을 겸비한 뛰어난 공격형 가드였다고 저는 생각하네요^^

    92-93 시즌 파이널에서 덩어리 말고 센터....저도 동감합니다...올리버 밀러와 마크 웨스트말고 기본만 해줄 수 있는 센터만 버텨주었어도 아마 시리즈의 향방은 달라졌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오드아이 2010/12/15 10:38 # 삭제 답글

    아, 정말 오랜만에 올라오는 추억의 느바선수 글이군요. 멋진 리뷰 재밌게 잘 봤습니다 ^^.
    케빈존슨 하면 스피드,닥돌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그렇다고 1번으로서 리딩이 부족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스탯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어시숫자만 봐도 그렇고 단순히 득점력있는 1번=리딩이 부족한 듀얼식으로 이야기할
    선수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은퇴가 생각보다 일렀군요. 백업으로 좀더 가늘고 길게 선수생활을 유지해도 됬을법한데
    스스로 몸상태 생각해서 아니다 싶으니 그냥 은퇴하고 이후 프랜차이저로서 팀의 부탁에 응해준 모습도 보기좋네요.
    게다가 은퇴후 정치인 진출이라 이건 뭐 ㄷㄷㄷㄷ.

    그 외 당시 슬램덩크 열풍때 느바선수들과의 비교때 송태섭이 케빈존슨을 롤모델로 한 캐릭터다 라는 이야기도
    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스타일만 보면 확실히 유사하긴 합니다 ㅎㅎ.
  • 울프우드 2010/12/15 12:42 #

    오드아이님 반가워요^^ 스탯이 전부는 아니지만 커리어 통산 9.1어시스트를 기록했다는 점에서 KJ를 닥돌 가드라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저도 해요^^ 요즘 제가 호스팅을 거의 못하고 있어 급하게 쓰다보니 많이 부족한 글인데 잘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 홍차도둑 2010/12/15 19:49 # 답글

    고전게임의 명품 중의 하나인 레이커즈vs셀틱스 NBA playoff 에도 KJ는 등장하지요(이 게임 아시는 분이라면 나이가...ㄷㄷㄷ)

    투지넘치는 가드로 좋아했는데 우승기회를 놓쳐서 아쉬울 따름입니다.

    &

    슬램 덩크의 미야기 료타(송태섭)은 아무래도 KJ가 모델인거 같더군요 ^^
  • 울프우드 2010/12/15 20:02 #

    홍차도둑님 반갑습니다 송태섭의 모델은 먹시 보거스라는 설도 있으나 저 역시 KJ에 더 가깝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드네요^^ 말씀하신 게임은 기억이 날듯말듯 하네요^^;
  • crdai 2010/12/15 21:18 # 답글

    오랫만에 들러봅니다. 스피드 하나만으로 KJ는 코트를 지배했던 가드였지요. 개인적으로 역시 최고의 장면은 올라주원앞에 대놓고 인유어 페이스를 먹였던 장면...물론 경기는 졌지만 orz..

    개인적으로 92-93년의 피닉스 패인은 센터보다는 조던입니다 조던...얼마전에 경기를 다시볼 기회가 있어서 봤는데...데니 에인지와 댄 머저리(야..)군이 불쌍해서 눈물이 앞을 가...

    여담입니다만, KJ씨의 부인은 한인 2세인가 3세의 한국인 미셀 리씨로 현재 워싱턴 DC쪽 교육감을 하고 있다더군요. 좀 오래전일인지라 가물가물합니다만...
  • 울프우드 2010/12/15 22:38 #

    crdai님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시죠?

    KJ의 스피드는 전성기 기준으로 그야말로 발군이었지요. 님께서 말씀하신 올라주원에게 날렸던 인 유어 페이스 덩크는 정말 최고 중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KJ의 부인이 한인 2세, 또는 3세인 것은 처음 알게된 사실이네요^^

    저도 한동안 포스팅을 하지 못하다가 이번 달 들어 간신히 하나 마무리했습니다^^ 앞으로는 종종 글을 계속 쓸 생각이구요...crdai님도 종종 들러주세요^^
  • McGee 2010/12/16 02:52 # 답글

    추억돋습니다.

    http://www.bestoldgames.net/eng/old-games/nba-lakers-vs-celtics.php
    이겜임 말하신거 아닌가 싶네요...

    저는 A.하더웨이 팬이었습니다...
  • 울프우드 2010/12/16 11:39 #

    McGee님 반갑습니다. 워낙에 90년대 NBA를 즐겨봤던 시절이 있는지라 조금...아..말씀하신 게임이 맞네요^^ 그리고 페니는....정말 가장 안타까운 선수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 수액 2010/12/16 10:03 # 답글

    아 케빈존슨 간만에 보니 반갑네요. 단신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인유어페이스를 성공시키던... 올라주원 앞에두고 인유어 페이스 하던 모습은 아직도 제 기억에 남아 있네요 =)
    지금도 재밌지만 그래도 엔비에이에 빠지게 했던 인물중 하나였죠. 글 잘봤습니다.
  • 울프우드 2010/12/16 11:39 #

    수액님 반갑습니다. 올라주원을 앞에두고 시전한 인 유어 페이스 덩크는 정말 지금도 생각만 하면 전율이죠^^ 부족한 글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빼뽀네 2010/12/16 13:24 # 답글

    존 팩슨의 그 마지막 3점슛은 지금도 기억합니다. ㅠㅠ
    울프우드님의 글을 통해 그때 장면들이 다시 떠오르네요. 케빈 존슨 저도 좋아한 선수였는데, 덕분에 많은 정보를 알아가네요. ^^ 잘 보았습니다.
  • 울프우드 2010/12/16 14:09 #

    빼뽀네 님 반갑습니다^^ 저도 90년대 NBA에 대한 추억이 많아서 같은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분들을 보면 너무 반가워요 KJ는 너무나 매력적인 선수였지요 저도 아주 좋아했던 선수였습니다 부족한 글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세리카 2010/12/23 17:42 # 삭제 답글

    90년대 피닉스 팬으로써, 존 팩슨의 한방에 침울했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당시 친구들이 모두 MJ와 시카고를 응원할 때, 홀로 KJ와 피닉스를 응원하던 추억이...

    KJ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플레이어인지라, 이렇게 오랜만에 그를 떠올리게 되니 반갑네요.
    키드나 내쉬도 훌륭하지만 역시 피닉스는 KJ라고 아직까지 생각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 울프우드 2010/12/24 01:30 #

    저도 당시 피닉스를 응원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제가 가장 좋아했던 팀은 드렉슬러의 포틀랜드였지만....워낙에 강한 조던과 불스 때문에 시카고는 왠지 정이 안갔던^^ 그리고 저 역시 KJ-바클리-댄 멀리에 데니 에인지가 받쳐주는 피닉스의 라인업이 너무 좋았거든요^^

    많이 부족한 글인데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Kyrie 2014/08/01 12:47 # 삭제 답글

    죄송합니다만.. 피닉스 선즈 "케빈선수 사진좀" 써두 될까요?. 사진은 글쓴 이글루스 주소와 함께 첨부했습니다.
  • Kyrie 2014/08/01 12:48 # 삭제

    블로그 주소는 http://blog.naver.com/railgun13232
    에서 확인가능하십니다.
  • 피닉스 2017/11/24 03:38 # 삭제 답글

    92-93 패인은 플옵에서 너무 힘들게 올라온거.. 당시도 서부가 동부보다 강팀들이 훨씬 많아 이런 현상이 많았죠.. 그리고 그떄 항상 얘기가 되던 센터 부재.. 이 두가지였습니다.. 시카고에 조던이 있었다면 피닉스엔 바클리가 있었고.. 아쉬운 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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