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 추억의 선수 'The Rock'이라 불렸던 Mitch Richmond 스포츠

한 며칠 비가 추적거리면서 오더니 오늘은 비는 그쳤군요...대신 어제부터 다시 제법 쌀쌀해지는 날씨입니다....

운전면허 따위 쿨하게 스킵하고 지금까지 살아오다 이번 주 필기 시험 패스, 오늘 기능 교육 마무리...다음 주 월요일날 장내 기능 시험이 잡혀있네요....한방에 따서 2012년이 되기 전에 차를 끌고 다녀야.....

잡담은 여기까지....며칠 전 샤킬 오닐의 커리어를 정리하는 포스팅을 마무리하고 오늘 저녁에 시간 여유가 조금 생긴 김에 전부터 한번 포스팅으로 다루어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선수에 관한 글을 써볼까 하네요....

제목에서 이미 언급했듯이...오늘 포스팅 주제로 다룰 선수는 바로 이 선수입니다.

The Rock, 또는 Hammer라는 닉네임으로 불렸던 선수...80년대 후반, 90년대 리그를 호령하던 워낙 쟁쟁한 슈팅 가드들에 가려 조금 인지도가 떨어진다고 볼수도 있지만 196cm, 98kg의 탄탄한 체격을 바탕으로 디펜스에서는 매치업 상대를 곤혹스럽게 함과 동시에 정확한 3점슛과 준수한 돌파력으로 매시즌 +20득점 정도는 가볍게 성공시킬 수 있었던 팀의 스코어러.... 인디애나의 레지 밀러와 함께 90년대를 대표하는 3점 슈터로도 평가받았으며 조던 역시 그에 대해 글렌 라이스와 함께 리그에서 가장 위력적인 슈터라는 찬사를 했었던 미치 리치몬드.... 오늘 포스팅의 주인공은 바로 이 선수입니다.

90년대 NBA를 즐겨보신 분들이라면 그래도 상당히 익숙한 선수이지요.... 제가 이 선수를 처음 봤을 때 들었던 느낌은...조던이나 드렉슬러, 밀러 같은 선수들에 비하면 땅달막하네...뭐 이 정도였습니다. 그리 큰 관심이 없었던 것이죠...... 하지만 골든 스테이트에서 새크라멘토로 트레이든 된 후 킹스의 경기를 우연히 보게 되었고....그 경기에서부터 저는 이 선수의 팬이 되었지요.....

리치몬드는 대학 시절부터 위력적인 슈터로 주목을 받았던 선수였습니다. 캔자스 주립 대학 1학년 시절, 그는 총 30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32.1분을 소화하는 가운데 필드골 성공률 44.7%, 3점슛 성공률 36.1%, 평균 18.6득점, 5.7리바운드, 2.7스틸을 기록하며 1학년 생 답지 않은 공격력으로 팀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그리고 2학년 시절....1년 사이 그의 기량은 더욱 더 위력적으로 업그레이드되었지요....그는 34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35.3분, 필드골 성공률 51.4%, 3점슛 성공률 46.9%, 평균 22.6득점, 6.3리바운드, 3.7어시스트로 맹활약을 펼쳤습니다. 그 결과 그는 1988년 NCAA All-American Second Team에 선출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대학 2학년을 마치자마자 1988년 NBA 드래프트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예전 드래프트 관련 포스팅에서 언급했듯이 88년 드래프트는 80년대의 다른 드래프트에 비해서는 조금 임펙트가 덜한 드래프트였습니다....이 드래프트에서 리치몬드는 대니 매닝, 릭 스미츠, 찰스 스미스, 크리스 모리스에 뒤를 이어 1라운드 5번으로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에 지명되며 NBA에서의 그의 커리어를 시작하게 됩니다.

골든 스테이트는 87-88시즌 20승 62패라는 참담한 성적을 거두며 리그 하위권에서 헤매던 팀이었죠(물론 86-87시즌에는 플옵에도 올라갔지만 또 85-86시즌에는 30승인가 밖에 거두지 못했던....)

리치몬드가 팀에 합류하는 시점에서 골든 스테이트의 에이스는 왼손잡이 백인 슈터였던 크리스 멀린이었습니다. 그는 스몰 포워드 포지션에서 상당히 정확한 3점 슛을 통해 득점을 올려줄 수 있는 선수였으며(드림팀 1의 멤버로 나중에 선발되기도 하죠), 패싱에도 능한 훌륭한 포워드였습니다. 여기에 대학 시절 최고의 슈터로 평가받았던 리치몬드가 2번 자리에 보강됨에 따라 골든 스테이트는 외곽 공격력에서는 리그 상위 클래스의 전력을 갖추게 됩니다.

당시 하위권 전력이었던 골든 스테이트의 전력 상 리치몬드는 루키 시즌이었던 88-89시즌부터 팀의 주전 슈팅 가드로 기용되게 됩니다. 루키 시즌 그는 79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34.4분의 플레이 타임을 기록하였습니다. 필드골 성공률은 46.8%, 3점슛 성공률은 36.7%, 평균 22.0득점, 5.9리바운드, 4.2어시스트, 1.0스틸을 기록하며 데뷔 시즌부터 리그 엘리트 슈팅 가드급에 해당하는 성적을 올리게 됩니다. 이러한 리치몬드의 활약과 함께 원래 팀의 에이스였던 크리스 멀린 역시 82경기에 모두 출장하며 평균 26.5득점, 5.9리바운드, 5.1어시스트, 2.1스틸로 활약하였습니다. 멀린과 리치몬드의 쌍포가 동시에 터지면서 전 시즌 20승 62패로 침몰했던 팀은 43승 39패를 기록하며 플옵에 진출하여 1라운드에서 유타 재즈를 3승 0패로 스윕하는 이변을 일으키며 2라운드에 진출하였습니다. 하지만 2라운드에서는 피닉스 선즈에게 1승 4패로 무너지며 탈락....

리치몬드는 루키임에도 불구하고 데뷔 첫 시즌, 플옵 무대 8경기에서 평균 20.1득점, 7.3리바운드 4.4어시스트로 좋은 활약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에이스 멀린 역시 29.4득점, 5.9리바운드, 4.5어시스트로 활약하였지요....팀의 주득점원들이 이렇게 좋은 활약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골든스테이트가 2라운드에서 1승 4패로 탈락한 데에는 또 이유가 있었습니다....잠시 이야기가 옆길로 새는데...90년대 골든 스테이는 리그에서 가장 화끈한 농구를 선보이던 팀 중 하나였습니다. 그들의 농구는 말그대로 공격 농구...오로지 공격 또 공격...수비 따위 신경 안쓰고 상대팀과의 득점 경쟁을 즐겨하는 스타일의 팀이었지요. 정규 시즌 골든 스테이트는 평균 116.6득점을 기록하며 리그 25개 팀 중 4위를 기록하였습니다. 평균 실점은? 경기당 116.9실점을 하였지요...이 기록은 25개팀 중 꼴찌에 해당하는 기록이었습니다.....극단적인 공격 성향의 팀....공격력은 확실하나 수비력은 바닥 수준....

이러한 팀의 특성은 플옵에서도 그대로 드러났지요.....

골든 스테이트는 플옵 1라운드에서 유타를 스윕하였는데 1차전 123:119, 2차전 99:91, 3차전 120:106으로 유타에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두 경기에서 +120득점을 기록하였지요. 그리고 선즈와의 플옵 2라운드....1차전에서 골든 스테이트는 130:102로 패하였습니다. 2차전에서는 127:122로 승리, 3차전 113:104로 패배, 4차전 135:99로 패배....5차전 116:104로 패배...여덟 경기 중 무려 다섯 경기에서 110점 이상을 실점하였습니다.....이런 수비력으로 더 높은 곳을 노린다는 것이 넌센스이지요.....

하지만 어쨌건 리치몬드는 루키 시즌부터 성공적으로 리그에 안착하였고, 루키 답지 않은 기록을 남기며 생애 단 한번 뿐이라는 ROY를 수상하게 됩니다.....

그리고 소포모어 시즌인 89-90시즌에도 그의 활약은 소포모어 징크스 따위는 없어라고 말하듯이 이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팬들은 성적과 상관없이 골든 스테이트의 공격 농구의 매력을 더 강하게 느끼게 됩니다. 89년 드래프트에서 골든 스테이트는 1라운드 14번 픽으로 팀 하더웨이를 지명하였습니다....네....성적과 상관없이 가장 공격적인 농구를 선보였던 TMC 트리오가 바로 89-90시즌부터 탄생하게 된 것이지요....

하더웨이라는 걸출한 공격형 포인트 가드의 지원은 멀린과 리치몬드에게 있어서 공격 측면에서의 부담을 덜어주는 효과가 있었고, 동시에 이 선수의 득점력과 스피드는 승패를 떠나 상대팀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그저 신나게 달릴 뿐....리치몬드는 소포모어 시즌 78경기에서 필드골 성공률 49.7%, 3점슛 성공률 35.8%, 평균 22.1득점, 4.6리바운드, 2.9어시스트, 1.3스틸을 기록하며 루키 시즌 그의 활약이 우연이 아닌 실력임을 제대로 입증하였습니다.

하지만 공수 밸런스가 너무나도 맞지 않았던 팀은(평균 득점 116.3점으로 리그 1위, 평균 실점 119.4점으로 리그 꼴찌) 37승 45패를 기록하며 플옵 진출에 실패하게 됩니다.

그리고 90-91시즌 개막... 돈 넬슨 감독은 여전히 수비력 보강 보다는 득점 경쟁을 벌이는 공격적이고 빠른 팀 컬러를 유지하였습니다. 이 시즌 골든 스테이트는 게임 당 평균 116.6득점의 가공할 화력을 유지하였지요. 하지만 실점은 경기당 115.0점.... 전년도에는 플옵 진출에 실패하였지만 90-91시즌 팀은 44승 38패를 기록하며 플옵에 진출하는데 성공하게 됩니다.

정규 시즌에서 리치몬드는 77경기에 출장하여 필드골 성공률 49.4%, 3점슛 성공률 34.8%, 평균 23.9득점, 5.9리바운드, 3.1어시스트, 1.6 스틸로 공수에서 맹활약을 펼치며 팀의 플옵 진출에 앞장섰습니다. 그리고 이 시즌...골든 스테이트는 제대로 된 Run TMC를 선보였지요. 멀린은 평균 25.7득점을, 팀 하더웨이는 평균 22.9득점 9.7어시스트로 맹활약을 펼쳤습니다....이들이 코트에서 보여준 미칠듯한 스피드와 폭발적인 슛은 지금까지도 NBA 팬들에게 회자되기도 합니다.

화끈한 농구로 플옵에 진출한 골든 스테이트는 1라운드에서 해군 제독 로빈슨이 이끄는 샌안토니오 스퍼스와 맞서게 됩니다. 결과는 3승 1패로 골든 스테이트의 2라운드 진출....하지만 2라운드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바로 레이커스였습니다. 80년대 압둘 자바와 매직 존슨의 원투 펀치로 리그를 압도했던 전통의 강호....이제 압둘은 없었지만 리그 역사상 가장 위대한 포인트 가드로 평가받는 매직 존슨과 다이내믹한 포워드 제이슴 워디, 그리고 유럽 출신의 빅맨 디바치로 이어지는 레이커스의 라인업은 여전히 강력하였습니다.

시리즈는 5차전까지 엄청난 난타전으로 전개되었지만 결국 팀은 1승 4패로 레이커스에게 무너지며 플옵 2라운드에서 탈락을 하게 됩니다. 리치몬드는 자신의 생애 두번째 플옵 무대에서 9경기 동안 평균 22.3득점, 5.2리바운드, 2.4어시스트로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취약한 팀의 수비력은 거기까지가 한계였었습니다.

시즌 종료 후 팀은 새크라멘토로부터 빌리 오웬스를 받아오며 그를 킹스로 트레이드시켜버립니다. 그는 데뷔 이후 세시즌 동안 +22득점을 기록할 정도로 위력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결국 팀을 떠나게 되었지요. 골든스테이트는 간혹 플옵 무대에 진출할 수 있을 정도의 전력이었지만 새크라멘토는 팀 전력에서 오히려 골든스테이트보다 더 처지는 팀이었습니다. 90-91시즌 새크라멘토는 29승 53패를 기록하는데 그쳤던 팀이었으며 이러한 팀의 상황은 91-92시즌에도 그닥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데뷔 4년차를 맞이하며 리그를 대표하는 스코어러인 리치몬드가 가세하였지만 세크라멘토는 공수 밸런스가 전혀 맞지 않은 상황에서 이기는 날보다 지는 날이 더 많았지요. 91-92시즌 팀은 29승 53패라는 처참한 성적으로 하위권을 전전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새크라멘토 팬들의 유이한 즐거움은 최단신 포인트 가드인 스퍼드 웹의 화려한 플레이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20점 이상을 꾸준히 득점해주는 리치몬드의 존재였을 것입니다. 리치몬드는  환경의 변화에 굴하지 않고 80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38.7분을 소화하는 가운데 필드골 성공률 46.8%, 3점슛 성공률 384%, 평균 22.5득점, 4.0리바운드, 5.1어시스트, 1.2스틸로 이적 첫해부터 킹스의 공수 핵심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하지만 킹스의 전력은 너무나 약했지요....92-93시즌에도 킹스는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이 시즌 킹스의 성적은 25승 57패....팀 명칭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성적이었지요. 게다가 리치몬드 역시 데뷔 이후 처음으로 부상으로 인해 37경기에 결장하며 많은 경기를 소화하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45경기에 출장하는 동안 필드골 성공률 47.4%, 3점슛 성공률 36.9%, 평균 21.9득점, 3.4리바운드, 4.9어시스트로 분전하였지요.... 그의 기량은 동포지션의 선수들에 비해 결코 떨어지지 않았지만 그는 골든스테이트에서부터 새크라멘토까지 강력한 팀에서 플레이하지 못한....불운한 에이스 정도로 인식되기 시작합니다.

데부 후 첫 세시즌 중 그래도 두 시즌에서 플옵 무대를 밟았던 그였지만 새크라멘토에서 그는 그리 행복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그의 성적은 항상 변함이 없었지만 그 혼자만의 힘으로 팀을 끌어올리기에는 팀 자체가 너무나 막장이었던 것이지요....거의 측은하다 싶은 생각마저도 들었습니다.

93-94시즌에도 팀은 28승 54패에 그쳤습니다. 전 시즌 37경기에 결장했던 리치몬드는 이 시즌 78경기에 출장하며 홀로 팀을 지탱하며 분전하였습니다.그는 평균 37.1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44.5%, 3점슛 성공률 40.7%, 평균 23.4득점, 3.7리바운드, 4.0어시스트로 공격과 수비 양쪽 모두에서 이 허약한 팀을 받쳐주었습니다. 88-89시즌 데뷔 후 여섯번째 시즌을 맞이하는 동안 그의 평균 득점이 평균 21득점 밑으로 내려간 시즌은 단 한번도 없었으며 92-93시즌을 제회하고 그는 항상 +78경기 이상을 출장하며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경쟁자들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팀의 에이스였던 그는 외로울 수 밖에 없었지요.

94-95시즌에도 그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는 이 시즌...데뷔 후 처음으로 82경기에 모두 출장하며 평균 22.8득점, 4.4리바운드, 3.8어시스트, 1.1스틸을 기록하며 에이스다운 모습으로 킹스를 이끌었습니다. 지난 몇년간 20승대를 벗어나지 못했던 킹스는 이 시즌 39승 43패를 기록하며 이전 시즌보다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플옵과는 거리가 멀었지요.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고 95-96시즌...그도 데뷔한지 8년째를 맞이하는 베테랑 선수가 되었고 나이도 어느 덧 30세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변함이 없었지요...그는 81경기에서 필드골 성공률 44.8%, 3점슛 성공률 43.7%, 평균 23.1득점, 3.3리바운드, 3.1어시스트, 1.5스틸로 여전하였지만 팀은 전시즌과 동일하게 39승 43패를 기록하였지만 기적적으로 플옵에 진출하게 됩니다. 이때가 킹스 소속으로 리치몬드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플옵에 진출한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1라운드 상대는 너무나 강하였지요. 바로 게리 페이튼과 숀 캠프가 이끌던 시애틀 슈퍼 소닉스....

캠프와 페이튼이라는 다이나믹 듀오가 버티는 시애틀을 상대로 리치몬드는 최선을 다했습니다....하지만 팀 자체의 클래스가 너무나도 달랐기에 시리즈를 승리하며 2라운드에 진출한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팀은 1승 3패로 무너지며 1라운드에서 탈락하게 됩니다. 플옵 4경기에서 리치몬드는 평균 21.0득점, 4.3리바운드, 3.0어시스트로 분전하였지만 결국 거기까지.....

하지만 킹스 소속으로 그는 처음으로 플옵 무대를 밟아보았으며 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드림팀 3의 일원으로 선발되어 88년 서울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하는데 그친 한을 풀며 금메달을 목에 걸기도 하였습니다. 아마 킹스 시절 전체를 통틀어 가장 행복한 시기가 아니었나 싶네요.

그리고 96-97시즌....그는 개인적으로는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내게 됩니다.

이 시즌 그는 81경기에 출장하여 필드골 성공률 45.4%, 3점슛 성공률 42.8%, 평균 25.9득점, 3.9리바운드, 4.2어시스트, 1.5스틸을 기록하며 엄청난 활약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팀은 34승 48패로 무너지며 플옵 탈락.....이쯤되면 리치몬드도 지칠 법 하지만 그는 97-98시즌에도 70경기에서 평균 23.2득점, 3.3리바운드, 4.0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엘리트 슈팅 가드로서의 면모를 잃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97-98시즌에 커리어 10년 째를 맞이하게 되는데 이 10년 동안 그의 평균 득점은 21.9득점 이상이었지요. 이 정도의 꾸준함을 보여주는 슈터는 찾아보기 힘들 것입니다(조던 이런 선수들이야 종자가 다른 양반들이고...)

그리고 이 시즌이 그가 킹스에 보낸 마지막 시즌이었습니다. 대대적인 전력 강화에 나섰던 킹스는 당시 리그 최고의 4번 중 한명이었던 크리스 웨버를 워싱턴에서 받아오는 조건으로 리치몬드와 오티스 도프를 워싱턴으로 트레이드시켜버렸지요....그리고 리치몬드는 이 시점부터 서서히 하락세를 겪게 됩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웨버의 영입 이후 킹스는 2000년대 초반까지 리그에서 가장 역동적인 팀으로 약팀이 아니라 강팀의 반열에 올라섰던 적도 있었지요. 리치몬드는 팀이 막장 테크를 탈때 죽어라 고생하다 결국에는 다른 팀 유니폼을 입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문제는 워싱턴 역시 그리 강팀은 아니었다는 것이지요.

98-99시즌 노조의 파업으로 시즌은 50경기 단축 시즌으로 치루어졌습니다. 워싱턴은 이 시즌 18승 32패를 기록하며 가볍게 플옵 탈락....

그리고 리치몬드는 데뷔 이후 처음으로 +20득점을 기록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50경기에 출장하여 필드골 성공률 41.2%, 3점슛 성공률 31.7%를 기록하며 루키 시즌 이후 가장 저조한 야투율을 기록하였지요. 평균 득점은 19.7득점...물론 이 정도도 충분히 훌륭한 수치지만 커리어 10시즌 동안 연속으로 이어왔던 +20득점의 평균 득점 기록 행진은 여기서 끝이 나게 됩니다.

99-00시즌...그는 74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17.4득점, 2.9리바운드, 2.5어시스트, 1.5스틸을 기록하였습니다. 기록 자체가 나쁘지 않지만 워싱턴에서의 그는 골든스테이트와 새크라멘토 시절의 리치몬드와는 분명히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는 킹스 시절 보여주었던 그 부드러운 슛터치를 워싱턴 시절에는 거의 보여주지 못하였고, 워싱턴으로 팀을 옮긴 후 구단과의 관계(연봉 문제 등)까지 악화되어버렸지요.

00-01시즌...팀과 리치몬드의 사이는 회복 불능 상태에 이르게 되면서 그는 37경기에 출장하는데 그치게 됩니다. 그의 나이 35세..체력도 떨어졌으며, 워싱턴에서의 시간 동안 그의 부드러운 슛터치도 사라져버렸지요. 37경기에 출장하는 동안 그는 평균 16.2득점, 2.9리바운드, 3.0어시스트를 기록하였습니다. 워싱턴에서의 세시즌 동안 그는 자신의 커리어 로우 시즌을 계속해서 바꾸어나간 것이지요.

결국 시즌 종료 후 팀은 그와의 재계약을 하지 않았고 그는 프리에이전트로 LA 레이커스로 팀을 옮기게 됩니다. 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롤은 더 이상 팀의 주전 멤버가 아닌 백업 슈팅 가드였지요. 그는 전성기로 접어들기 시작한 코비 브라이언트의 백업 멤버로 64경기에 출장하였고, 그가 소화한 플레이 타임은 11.1분에 불과하였습니다. 필드골 성공률은 40.5%, 3점슛 성공률은 29,0%, 평균 4.1득점, 1.5리바운드, 1.6어시스트.....

이미 이전 두 시즌에서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쥐었던 레이커스는 또다시 파이널 무대에 진출하여 우승을 했습니다. 하지만 팀이 치른 플레이오프 19경기에서 그는 단 2경기에 교체로 출장하였고, 두 경기 도합 4분 밖에 뛰지 못하였습니다. 평균 1.5득점, 0.5리바운드.....그는 레이커스에서 챔피언 반지를 손에 넣었지만 그것은 자신의 힘으로 쟁취한 것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나이 36세..... 워싱턴 시절부터 쭉쭉 떨어지던 그의 경기력은 나이를 감안했을때 더 이상 회복하기 힘든 것이었고, 결국 이 시즌을 마지막으로 그는 자신의 커리어를 마감하게 됩니다.

커리어 14시즌 동안 그는 976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35.2분을 소화하였고, 필드골 성공률 45.5%, 3점슛 성공률 38.8%, 평균 21.0득점(20497득점), 3.9리바운드(3801리바운드), 3.5어시스트(3398어시스트), 1.2 스틸(1211스틸)을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1989 NBA-Rookie of the year와 All Rookie 1st Team에 선정되었으며, 6번의 올스타, 3번의 All-NBA 2nd Team, 2번의 All-NBA 3rd Team, 1995년 올스타전 MVP에 선정되었습니다. 그리고 1988년 서울 올림픽 남자 농구 동메달,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남자 농구 금메달을 획득하였지요. 은퇴 후 새크라멘토는 그의 등번호 2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하여 팀이 어려웠을때 최선을 다했던 에이스 슈터에게 경의를 표했습니다.

나무랄데없는 기록이지요. 1988년 드래프트 동기들 중 가장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낸 것과 그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커리어를 보냈던 팀들은 마지막 순간 레이커스를 제외하면 중하위권의 약팀들이었지요. 그가 90년대 초중반 조던으로부터 가장 위력적인 슈터라는 평가를 들었던 시절에도 그가 속한 팀은 공격력과 수비력에서 리그 하위권을 도맡아하였던 팀들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가 전성기를 보냈던 킹스..만약 그가 있었던 시절 2000년대 초반과 같은 킹스였다면 그는 좀더 행복한 커리어를 보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렇기에 그에 대한 기억은....안타까움과 아쉬움....그가 마지막 순간 레이커스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챔피언 반지를 손에 넣는 모습을 보았을때도 그리 기쁘지 않았습니다....그렇게 묻어가는 식으로 반지를 획득할 선수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리그 역사상 가장 뛰어난 3점 슈터가 누구냐...물론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아마 그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레지밀러를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맞습니다 밀러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위대한 슈터이지요....그에 비하면 리치몬드의 커리어는 많이 부족해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커리어 14년 동안 플옵 무대는 단 네번밖에 밟지 못했던 선수였고, 통산 3점슛 성공 개수와 성공률에서도 그는 밀러에 뒤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골든 스테이트 시절 팀 하더웨이와 크리스 멀린이라는 걸출한 동료들과 함께 한 시절을 제외한다면 그의 커리어 대부분은 외롭게 홀로 버티는 것이었고,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그는 데뷔 후 10시즌 동안 +20득점 이상을 매경기 기록해주는 선수였습니다. 그리고 비교적 작은 신장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체격과 파워를 바탕으로 딱 버티고 서서 매치업 상대를 압박하던 훌륭한 수비수이기도 했고요.....

오늘 뜬금없이 그에 대한 기억이 불현듯 떠올라 두서없이 리치몬드의 커리어를 되돌아보는 포스팅을 해버렸네요.... 그의 멋진 플레이는 예전 제가 농구에 미쳐 날뛰던 시절의 즐거운 기억의 하나의 부분입니다. 그의 선수 시절 모습을 추억하며 부족한 포스팅은 이쯤에서 후다닥 마무리합니다.




<미치 리치몬드의 믹스 동영상입니다>


<Run-TMC 의 하이라이트 영상>











덧글

  • 클리닝타임 2011/12/01 19:54 # 답글

    그래도 우승반지! 라는 느낌이랄까요. 좋은 글 잘 보고 있습니다.
  • 울프우드 2011/12/01 19:57 #

    그래도 우승반지!!일수도 있지만...(물론 말론 옹이라던지 유잉 옹, 바클리 옹, 스탁턴 옹 등은 결국 그 반지조차도 얻지 못하고 쓸쓸히)... 그냥 조금 기분이 그렇더라구요...정말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보여주고 그 역시 레이커스의 우승에 제대로 공헌을 하면서 반지를 획득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라는....

    부족한 글 잘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클리닝타임 님께서 올리시는 글들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 바른손 2011/12/06 15:17 # 답글

    -과소평가받는 수비수중의 1명이기도 하지요.
    -정말 그가 뛰는 순간, 팀 전력이 다 약세였던터라 말년의 우승반지가 좋은 선물이였으리라 생각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정말 꾸준했던, 실력에 비해 불운했던 네임벨류를 지닌 미치 리치먼드라 생각되네요.
  • 울프우드 2011/12/06 15:18 #

    네...그의 기량은 리그 탑클래스였지만 전성기 시절 그가 플레이했던 팀들의 전력이....너무 안습이었지요....말년의 우승 반지가 그의 불운했던 커리어에 좋은 선물이 될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지만....그래고 너무나 안습인 모습으로 마지막 시즌을 보냈던지라 당시 마음이 좀 좋지 못했던 기억도 나네요^^

    부족한 글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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