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 추억의 선수-80년대 보스턴 셀틱스의 명센터 Robert Parish 스포츠

덥습니다...더워요.... 더운 주말 오후 집근처 커피 전문점에서 이것 저것 좀 하다가 더이상 할일도 없고 한 관계로 블로그에 접속해서 전부터 한번 다뤄봐야겠다싶은 선수의 자료를 좀 찾아보다가 생각난 김에 작성해야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 블로그에 로그인해서 끄적거리고 있는 중입니다. 지난 번 추억의 선수 포스팅에서 다루었던 선수가 80년대 보스턴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명포워드 케빈 멕헤일이었는데, 오늘은 그 시절 버드, 멕헤일과 함께 80년대 보스턴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당대의 명센터 로버트 패리쉬에 대해 끄적거려 보려 합니다.

신장 2m 13cm, 체중 104kg... 센터로서 좋은 신장이었지만 체중은 솔직히 가벼운 축에 속하던 선수였습니다. 딱 봐도 외형적으로 깡마른 체구에다가 파워풀한 느낌은 상당히 약해보이는 선수지요..... 하지만 그는 리그 역사상 손꼽히는 훌륭한 수비력을 갖춘 센터였으며, 동시에 장신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확률높은 점프슛으로 득점을 올릴 수 있는 그런 선수였습니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센터들이 압둘자바, 모제스 말론과 같은 역사적인 선수들인데, 패리쉬는 그들과 비교했을때 결코 떨어지는 선수가 아니었지요.....

Centenary College of Louisiana에서 대학 시절을 보낸 그는 1976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8번 픽으로 골든스테이츠 워리어스에 지명되어 NBA에서의 커리어를 시작하게 됩니다.

먼저 대학 시절 그의 경기 성적을 살펴보면, 1학년 시절 그는 27경기에서 필드골 성공률 57.9%, 평균 32.8분을 소화하며 23.0득점, 18.7리바운드, 0.9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2학년 시절에도 25경기에서 필드골 성공률 52.3%,, 평균 19.9득점, 15.3리바운드, 1.4어시스트로 맹활약하였지요. 3학년 시절에는 29경기에서 평균 31.0분, 필드골 성공률 56%, 평균 18.9득점, 15.4리바운드, 1.4어시스트 4학년 시절에는 27경기에서 평균 34.8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58.9%, 평균 24.8득점, 18.0리바운드, 1.8어시스트를 기록하였습니다. 대학 시절 4년간 그는 모두 108경기에 출장하여 필드골 성공률 56.4%, 평균 33.0분, 평균 득점 21.6득점, 평균 리바운드 16.9득점, 1.4어시스트라는 훌륭한 성적을 남겼습니다. 특히 4학년 시절이었던 75-76시즌에는 NCAA AP All-America 2nd에 뽑히기도 하였지요.

이러한 대학 시절의 활약을 바탕으로 그는 1라운드에 지명되어 76-77시즌 루키 시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는 루키임에도 불구하고 팀의 82경기 중 77경기에 투입되어, 평균 18분 정도의 플레이 타임을 소화하였습니다. 물론 주전은 아니었고 주로 식스맨으로 투입되었지요. 루키 시즌 그가 기록한 성적은 필드골성공률 50.3%, 9.1득점, 7.1리바운드, 1.0어시스트, 0.7스틸, 1.2블락슛이었습니다. 루키로는 부족함이 없었던 성적이었지만 그는 신인상을 수상하지도 못하였고, All Rookie Team에도 선정되지 못하였습니다. 이런 저런 아쉬움은 있었지만 그는 플옵 시리즈에서 정규시즌보다 더 많은 플레이 타임을 보장받으며 자신의 실력만큼은 리얼임을 팬들에게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76-77시즌 골든스테이트는 46승 36패를 기록하며 플옵 시리즈에 진출하였는데 1라운드 상대는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였습니다. 그들은 시리즈 전적 2승 1패로 디트로이트를 격파하고 컨퍼런스 세미 파이널에 진출, LA 레이커스와 컨퍼런스 파이널 진출을 두고 격돌하였지요. 당시 레이커스의 상대는 절정기를 구가하고 있었던 카림 압둘 자바였지요. 루키였던 패리쉬는 골밑에서 압둘 자바를 디펜스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역부족이었습니다. 예상과는 달리 릭베리를 중심으로 한 골든 스테이트는 레이커스와 치열한 승부를 펼쳤지만 결국 시리즈 전적 3승 4패로 컨퍼런스 파이널 진출에는 실패하게 됩니다.

패리쉬는 플옵 시리즈에서 모두 10경기를 소화하며 평균 23.8분을 플레이했습니다. 정규시즌에 비해 5분 정도 플레이 타임이 늘어났지요. 필드골 성공률은 48.1%, 평균 12.3득점 10.1리바운드 1.1어시스트 1.1블락슛을 기록하였습니다. 플옵 열 경기에서는 더블-더블을 작성하였지요. 하지만 아직 자바와 맞상대할 정도라고 하기에는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이렇게 아쉬움 속에 루키 시즌을 패리쉬는 마무리하게 됩니다.

그의 소포모어 시즌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패리쉬의 골든 스테이트 입단 과정입니다. 그는 1973년과 1975년에 이미 당시 ABA 리그의 유타 스타즈와 스퍼스에 지명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들 팀에 입단하지 않고 76년 드래프트에서 골든 스테이트의 지명을 받고 계약서에 사인을 했지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골든 스테이트는 1975년 NBA 우승팀이었으니까요. 패리쉬는 우승팀에서 자신의 커리어를 보내고 싶었던 것입니다. 허나 골든 스테이트는 패리쉬의 루키 시즌 이후 80년까지 플옵 시리즈에 오르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패리쉬의 소포모어 시즌인 77-78시즌부터 그들은 서서히 몰락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77-78시즌 패리쉬는 82경기에 모두 출장하여 평균 24.0분을 소화하였습니다. 필드골 성공률은 47.2%, 평균 12.5득점, 8.3리바운드, 1.2어시스트, 1.5블락슛을 기록하며 루키 시즌보다 나은 활약을 펼쳤지요. 하지만 팀은 43승 39패를 기록하며 플옵 시리즈 진출에는 실패하게 됩니다.

그리고 78-79시즌, 드디어 그는 풀타임 주전 센터의 자리를 확보하면서 본격적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어필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이 시즌 76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31.7분을 소화하였습니다. 필드골 성공률은 49.9%, 평균 17.2득점, 12.1리바운드 1.5어시스트, 1.3스틸, 2.9 블락슛을 기록하며 리그를 대표하는 센터 중 한명으로 인정받게 되지요. 허나 팀은 38승 44패로 5할 승률에 실패하며 두 시즌 연속으로 플옵 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하였습니다.

79-80시즌...그의 커리어 4년차....골든 스테이트는 이제 쇠퇴가 아니라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공수 양면에서 팀은 완전히 밸런스를 상실하였고, 패리쉬 혼자서 팀을 끌어올리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지요. 이 시즌 팀이 기록한 성적은 24승 58패였습니다. 패리쉬 역시 잔부상 등으로 인해 72경기에 출장하면서 전시즌에 비해 플레이 타임도 줄어들었습니다. 그는 이 시즌 72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29.4분을 소화하였으며, 필드골 성공률 50.7%, 평균 17.0득점, 10.9리바운드, 1.7어시스트, 0.8스틸, 1.6블락슛을 기록하였습니다. 개인 성적으로는 두 시즌 연속 더블-더블을 작성하였으며, 그리 떨어지는 성적은 아니었지만 그의 활약만으로 막장으로 떨어진 팀을 어찌할 수는 없었지요.

이 시즌 종료와 함께 패리쉬는 자신의 커리어에서 일대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79년 드래프트에서 레리 버드라는 걸출한 스몰 포워드를 얻는데 성공한 보스턴 셀틱스는 팀 전력 강화를 위해 센터 영입을 추진 중이었고 그 대상이 바로 패리쉬였던 것이지요. 셀틱스는 그를 영입하기 위해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80년 1라운드 1번 드래프트 픽에 한장의 1라운드 드래프트 픽을 더해 골든 스테이트에 내주고 골든 스테이트에서 패리쉬와 1980년 1라운드 3번 픽을 받아오게 됩니다.(보스턴은 이 드래프트 픽으로 1980년 드래프트에서 케빈 멕헤일을 얻게 됩니다.... 80년대 보스턴의 상징이었던 3인방이 탄생한 것이지요)

80-81시즌...보스턴에서의 첫시즌부터 패리쉬는 팀의 주전 센터이자 레리 버드에 이은 팀의 제2공격 옵션으로 활약하게 됩니다. 그는 이 시즌 82경기에 출장(선발 78경기), 평균 28.0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54.5%, 평균 18.9득점, 9.5리바운드, 1.8어시스트, 1.0스틸, 2.6블락슛으로 맹활약하였습니다. 레리 버드에 패리쉬, 그리고 세드릭 멕스웰에 루키 식스맨인 케빈 멕헤일까지 가세한 셀틱스는 정규 시즌 62승 20패를 기록하며 여유있게 플옵 시리즈에 진출하게 됩니다. 팀은 1라운드에서 시카고를 4승 0패,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필라델피아를 4승 3패로 꺾고 리그 파이널에 진출, 모제스 말론이 이끄는 휴스턴 로켓츠와 맞서게 됩니다. 그리고 4승 2패로 휴스턴을 제압하며 80년대 팀의 첫 우승을 차지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패리쉬는 플옵 17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28.9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49.3%, 평균 15.0득점, 8.6리바운드, 1.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골밑을 든든히 지켰습니다. 패리쉬 개인으로는 커리어 5년째에 염원의 챔피언 반지를 차지하게 된 것이지요.

당시 버드-맥스웰-패리쉬에 식스맨인 멕헤일이 버티는 셀틱스의 프론트 코트 진은 그야 말로 강력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위력은 81-82시즌에도 이어지게 되지요. 셀틱스는 81-82시즌에도 63승 19패를 기록하며 3년 연속 +60승 시즌을 작성하였습니다.

이 시즌 패리쉬는 80경기에 출장(선발 78경기), 평균 31.7분, 필드골 성공률 54.2%, 평균 19.9득점, 10.8리바운드, 1.8어시스트, 0.9스틸, 2.4블락슛으로 변함없는 활약을 이어갔습니다. 플옵 시리즈에서 패리쉬와 셀틱스는 워싱턴을 4승 1패로 제압하고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하였습니다. 상대는 80년대 동부 컨퍼런스에서 보스턴과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던 필라델피아..... 양팀의 시리즈는 치열하게 전개되었습니다. 그리고 시리즈 전적 3승 4패로 셀틱스는 파이널 진출에 실패하며 리그 2연패에 실패하게 됩니다. 패리쉬로서는 아쉬운 플옵 시리즈였습니다. 그는 플옵 12경기에서 평균 35.5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48.8%, 평균 21.3득점 11.3리바운드 1.5어시스트 4.0블락슛으로 맹활약하였지만 마지막 순간 필라델피아에게 패배하며 2년 연속 챔피언의 꿈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82-83시즌... 보스턴에서의 세번째 시즌, 그리고 그의 커리어에서는 일곱번째 시즌.... 그의 나이도 이제 29세.... 하지만 그는 이전 시즌처럼 항상 꾸준한 활약을 펼치며 팀의 중심을 잡는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 시즌 그는 78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31.5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55.0%, 평균 19.3득점, 10.6리바운드, 1.8어시스트, 1.0스틸, 1.9블락슛을 기록하였습니다. 팀은 이전 세시즌에 비해서는 비교적(?) 부진한 56승 26패로 시즌을 마무리하며 플옵 시리즈에 진출하였으나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밀워키 벅스에게 스윕을 당하며 또다시 파이널 진출에는 실패하게 됩니다. 패리쉬는 플옵 7경기에서 필드골 성공률 48.3%, 평균 14.7득점, 10.6리바운드로 정규시즌에 비해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83-84시즌, 패리쉬는 80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35.8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54.6%, 평균 19.0득점, 10.7리바운드, 1.7어시스트, 0.7스틸, 1.5블락슛을 기록하며 딱 그다운 기록을 남겼습니다. 팀은 62승 20패로 +60승 시즌을 작성하며 1번 시드로 플옵에 진출하였고, 워싱턴, 뉴욕, 밀워키를 차례대로 격파하며 파이널 시리즈에 진출, 숙적 LA 레이커스와 맞붙게 됩니다. 당시 레이커스에는 커리어 말년을 보내고 있었던 압둘 자바가 있었지요. 특히 압둘 자바는 패리쉬의 루키 시즌 플옵 무대에서 그를 농락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라이벌답게 두 팀의 시리즈는 7차전까지 전개되었고, 셀틱스가 마지막 7차전을 잡아내며 80년대 들어 두번째 우승을 차지하였습니다. 패리쉬는 플옵 시리즈 23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37.8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47.8%, 평균 14.9득점, 10.8리바운드, 1.2어시스트, 1.8블락슛으로 멕헤일과 함께 보스턴의 골밑을 지켜내며 활약하였습니다.

84-85시즌.... 패리쉬는 팀내 제2공격 옵션에서 제3 공격 옵션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패리쉬의 기량은 변함없었으나 당시 보스턴의 멕헤일이 절정기를 구가하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었지요. 그리고 이러한 변화를 그는 담담히 받아들이며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습니다. 그는 이 시즌 79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36.1분, 필드골 성공률 54.2%, 평균 17.6득점, 10.6리바운드, 1.6어시스트, 0.7스틸, 1.3블락슛을 기록하였습니다. 네시즌 연속 더블-더블을 작성하기도 하였군요. 팀은 63승 19패를 기록하며 이전 다섯 시즌 포함 여섯 시즌 중 다섯 시즌에서 +60승을 기록할 정도의 상승세를 이어갔습니다. 플옵 시리즈에서도 무난하게 파이널 시리즈까지 진출, 2년 연속으로 레이커스와 챔피언 자리를 다투게 되었지요. 하지만 이번에는 레이커스의 벽을 넘지 못하고 준우승에 머물고 맙니다. 그는 플옵 시리즈 21경기에서 평균 38.2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49.3%, 평균 17.1득점, 10.4리바운드, 1.5어시스트를 기록하였습니다. 정규 시즌에 비해 그는 플옵에서는 거의 대부분 조금씩 부진한 모습을 보이곤 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지요.

80년대 이미 두차례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던 보스턴....하지만 그들은 리그 연패에는 항상 실패하는 모습이었습니다. 84-85시즌 연패 도전에 실패하였지만 여전히 그들이 동부 최강의 팀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지요. 그들은 영원한 파이널 컨텐더였습니다.....

85-86시즌, 케빈 멕헤일이 부상으로 14경기에 결장하였지만 80년대 보스턴의 빅3는 여전히 위력적이었습니다. 팀의 에이스였던 레리 버드는 82경기에 모두 출장하여 평균 25.8득점, 9.8리바운드, 6.8어시스트, 2.0 스틸로 리그 최고 선수다운 활약으로 팀을 이끌었고, 케빈 멕헤일 역시 14경기에 결장하였지만 68경기에서 21.3득점, 8.1리바운드, 2.0 블락슛을 기록하며 버드의 뒤를 받쳐주었습니다. 그리고 2인자의 자리를 멕헤일에게 내어준 패리쉬는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81경기에서 평균 31.7분을 소화하는 가운데, 필드골 성공률 54.9%, 평균 16.1득점, 9.5리바운드, 1.4블락슛으로 팀의 골밑을 든든히 사수하였지요.(안타까운 것은 네 시즌 연속 이어오던 더블-더블 시즌이 종료되었다는 것).....

빅3의 활약을 바탕으로 보스턴은 정규 시즌을 67승 15패라는 엄청난 승률로 마치며 플옵 시리즈에 올랐습니다. 1라운드에서 시카고를 3승 0패, 2라운드에서 애틀랜타를 4승 1패, 컨퍼런스 파이널에서는 밀워키 벅스를 4승 무패로 제압, 동부 컨퍼런스 플레이 오프 시리즈를 11승 1패로 돌파한 그들은 파이널에서 레이커스를 꺾고 올라온 파란의 팀 휴스턴 로켓츠와 맞서게 됩니다. 파란의 팀이라고는 하나 당시 휴스턴의 골밑은 랄프 샘슨과 커리어 2년째를 맞이한 하킴 올라주원이 버티는 철옹성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부담은 팀의 주전 센터인 패리쉬에게 주어졌지요. 동부 컨퍼런스 플옵 시리즈에서 공수 양면에서 안정된 모습을 보여주었던 패리쉬였지만 파이널 시리즈에서는 득점 면에서 많이 떨어진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파이널 시리즈 여섯 경기 동안 계속 주전으로 출장한 패리쉬는 여섯 경기 중 두 경기에서 한자릿수 득점을 기록하며 부진하였지요. 하지만 수비와 리바운드에서 꾸준한 활약을 해주면서 멕헤일과 함께 휴스턴의 트윈 타워를 효과적으로 제압하였습니다.

패리쉬는 이 시즌 플옵 시리즈 18경기에 모두 선발로 출장하여 평균 32.8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56.7%, 평균 15.0득점, 8.8리바운드, 1.4 어시스트, 1.7블락슛으로 80년대 팀의 세번째 우승에 기여하였습니다.

86-87시즌, 그의 나이 33세... 이제 슬슬 하향세를 타는 시점에 왔다고 볼수도 있지만 코트 위에서의 그의 모습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패리쉬는 이 시즌 보스턴 셀틱스의 빅 3중 유일하게 80경기에 출장(버드 74경기, 멕헤일 77경기), 평균 37.4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55.6%, 평균 17.5득점, 10.6리바운드, 2.2어시스트, 1.8 블락슛으로 여전한 활약을 펼쳤습니다. 팀 역시 59승 23패의 좋은 성적으로 플옵 시리즈에 진출하였으며, 영원한 파이널 컨덴더라는 평가답게 시카고(3승 무패)와 밀워키(4승 3패), 디트로이트(4승 3패)를 연파하며 파이널 시리즈에 진출하였습니다. 그리고 파이널에서 그들은 숙적 레이커스와 다시 맞붙었지요. 하지만 이전 시즌과 달리 플옵 시리즈에서 두번 연속으로 7차전을 치룬 보스턴의 상태는 그리 좋지 못했고, 결국 패리쉬와 팀은 또다시 연패에는 실패하며 레이커스에게 시리즈 스코어 2승 4패, 왕좌를 넘겨주게 되었습니다.

패리쉬는 플옵 시리즈 23경기 중 21경기에 출장, 평균 35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56.7%, 평균 18.0득점, 9.4리바운드로 매경기 더블-더블급의 활약을 펼쳤지만 챔피언 반지를 차지하는데 실패하였지요....

87-88시즌... 34세가 된 패리쉬는 이전 시즌과는 달리 정규 시즌에서 조금은 부진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는 74경기에 출장(데뷔 이후 87-88시즌까지 그가 +75경기를 출장하지 못한 유이한 시즌), 평균 31.2분을 소화하며 평균 플레이 타임이 전 시즌에 비해 6분 정도 줄어들었습니다. 필드골 성공률은 58.9%, 평균 14.3득점, 8.5리바운드, 1.1블락슛을 기록하였습니다. 루키 시즌이었던 76-77시즌과, 2번째 시즌이었던 77-78시즌을 제외하고 그가 +15득점을 기록하지 못한 시즌은 이전까지 없었지요. 팀은 57승 25패의 부진한(솔직히 부진한 것 까지는 아니지만 당시 보스턴은 +60승을 쉽게 하던 팀이 되다 보니) 성적으로 플옵 시리즈에 진출하였습니다. 1라운드에서 유잉이 이끄는 닉스를 3승 1패로 쉽게 제압하고, 2라운드에 진출하였지만, 2라운드에서는 도미니크 윌킨스의 애틀랜타에 고전하며 4승 3패로 간신히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하였습니다. 그리고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80년대 후반을 지배하게될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에 2승 4패로 패배하며 파이널 진출에 실패하고 말지요. 참고로 이 시즌부터 꽤나 오랫동안 보스턴은 파이널 무대를 밟지 못합니다.

88-89시즌...어찌보면 보스턴 셀틱스가 본격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한 시점이 아닌가 합니다. 팀의 기둥이었던 레리 버드는 허리 부상으로 인해 한 시즌을 통째로 날렸습니다. 또한 이전 시즌까지 보스턴을 리그 최강팀으로 조율하였던 헤드 코치 K.C Jones가 은퇴하고 새로운 헤드 코치로 지미 로저스가 부임하며 팀 자체의 혼란도 있었지요.

이런 악재 속에서도 케빈 멕헤일과 로버트 패리쉬, 그리고 신예 레지 루이스의 활약을 바탕으로 42승 40패를 기록한 보스턴은 간신히 플옵 시리즈에 진출하였지만 1라운드에서 디트로이트에게 0승 3패로 스윕을 당하며 광탈을 하고 맙니다.

특히 이 시즌 로버트 패리쉬의 활약은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이미 87-88시즌 많은 사람들로부터 이제 내리막길을 타기 시작했다는 평가를 들었던 그였지만 35세였던 88-89시즌 그는 회춘 모드를 발동시킵니다. 그는 이 시즌 80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35.5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57%, 18.6득점, 12.5리바운드(커리어 하이), 2.2어시스트, 1.5블락슛으로 무너지는 팀을 떠받치기 위해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그리고 89-90시즌....보스턴은 다시 한번 힘을 내면서 정규 시즌에서 좋은 모습을 보입니다. 건강을 어느 정도 회복한 레리 버드의 복귀로 팀은 상승세를 타기 시작하였고, 52승 30패를 기록하며 플옵 시리즈에 무난하게 진출하였지요. 패리쉬는 36세의 노장....그리고 그는 팀의 제3옵션 자리를 레지 루이스에게 넘겨주고 롤 플레이어의 역할을 하기 시작합니다(라고 하기에는 이 시즌 그의 성적 역시 훌륭합니다....)

패리쉬는 이 시즌 79경기에 출장, 평균 30.3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58.0%, 평균 15.7득점, 10.1리바운드, 1.3어시스트, 0.9 블락슛으로 전 시즌에 이어 2년 연속 더블-더블 시즌을 기록하며 건재함을 과시하였습니다.

플옵 1라운드에서 그들이 상대한 팀은 유잉의 뉴욕 닉스....디트로이트만큼은 아니더라도 이들 역시 리그를 대표하는 터프한 팀이었지요. 그리고 절정기를 구가하고 있었던 패트릭 유잉은 당시 리그 최고의 빅맨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전문가들과 팬들은 버드-멕헤일-루이스-패리쉬로 이어지는 라인업을 보유한 전통의 강호 보스턴이 뉴역에 비해 우세할 것이라고 예상하였고, 보스턴 홈에서 열린 1, 2차전을 모두 보스턴이 승리로 가져가며 시리즈 스코어 2승 0패로 앞서나갈때까지만 하더라도 보스턴이 시리즈 스윕으로 무난하게 2라운드에 진출하는 모양새였습니다.

하지만 뉴욕은 자신들의 홈에서 열린 3, 4차전에서 연승을 거두며 시리즈 스코어 타이를 만들었고, 보스턴에서 열린 마지막 5차전 마저 승리하며 보스턴을 탈락시켜버렸지요. 닉스의 기둥이자 에이스였던 패트릭 유잉은 시리즈 5경기 동안 평균 31.6득점, 11.8리바운드로 보스턴의 골밑을 맹폭하며 패리쉬를 힘들게 하였습니다. 패리쉬 역시 시리즈 다섯 경기에서 15.8득점, 10.0리바운드로 분전하였지만 이미 36세로 운동 능력이 많이 떨어진 그가 절정기의 유잉을 커버하는 것은 힘든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90-91시즌...그의 나이 37세....이제 은퇴를 생각하여야 할 시점이었지만 그는 이 시즌에도 변함없이 보스턴을 지켰습니다. 그는 81경기에 모두 선발 출장하여 평균 30.1분을 소화하는 가운데, 필드골 성공률 59.8%, 평균 14.9득점, 10.6리바운드로 세시즌 연속 더블-더블 시즌을 기록하며 팀의 플옵 진출에 기여하였습니다. 하지만 보스턴은 이 시즌에도 플옵 2라운드에서 디트로이트에게 패배하며 탈락.....

이후 패리쉬는 40세가 되었던 93-94시즌까지 보스턴의 주전 센터로 플레이하였습니다.91-92시즌~93-94시즌까지 그는 많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79경기-79경기-74경기에 출장하며 평균 +26분을 플레이 타임을 소화하는 강인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세시즌 동안 매시즌 +11득점, +7.0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준수한 빅맨으로서, 그리고 팀의 롤플레이어로서 팀을 위해 헌신하였지요.

91-92시즌과 92-93시즌까지 보스턴은 그래도 플옵 컨덴더로서 평범한 강팀으로서의 위치는 고수하였지만 93-94시즌부터 보스턴은 본격적으로 추락하였습니다(32승 50패)....그리고 이 시즌을 마지막으로 그는 보스턴을 떠나게 됩니다....

그는 93-94시즌 종료 후 비제한 프리에이전트로 당시 레리 존슨과 알론조 모닝을 중심으로 하는 젊은 팀이었던 샬럿 호네츠로 이적하였습니다. 당시 샬럿은 젊음과 패기를 무기로 동부 컨퍼런스의 신흥 강호로 꾸준히 플옵 무대에 진출하였으나 전통의 강호인 뉴욕 닉스, 인디애나 페이서스, 시카고 불스와 같은 팀들에게 중요한 순간 번번히 발목을 붙잡혔지요. 그리고 모닝의 체력을 세이브시켜줄 백업 센터도 필요했습니다. 나이는 많았지만 보스턴에서의 수많은 경험과 10분 미만 정도의 시간동안은 제 역할을 해줄 수 있는 패리쉬는 그러한 샬럿의 필요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좋은 카드였습니다.

패리쉬는 팀의 기대에 부응하며 94-95시즌 81경기에 주로 교체로 출장, 평균 16.7분을 소화하였습니다. 필드골 성공률은 42.7%, 평균 4.8득점, 4.3 리바운드로 모닝의 휴식 시간을 어느 정도 제공해주었지요.

95-96시즌에도 그는 74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14.7분을 소화하는 가운데, 필드골 성공률 49.8%, 평균 3.9득점, 4.1리바운드로 눈에 띄지는 않지만 노장 식스맨으로서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시즌을 끝으로 샬럿을 떠난 그는 프리 에이전트 계약으로 시카고 불스에 입단하게 됩니다.

당시의 불스야 무적함대였지요... 마이클 조단-스카티 피펜-토니 쿠코치-론하퍼-데니스 로드맨으로 이어지는 불스의 라인업은 센터 포지션의 룩 롱리가 조금(?) 떨어진다는 점을 제외하면 거의 완벽한 팀이었습니다..... 패리쉬는 이 시즌 시카고에서 백업 센터 임무를 담당하였습니다만, 43세의 그는 더 이상 이전과 같은 활약을 펼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는 시카고에서 43경기에 출장, 평균 9.4분을 소화하는 가운데, 필드골 성공률 49.0%, 평균 3.7득점, 2.1리바운드를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시즌이 그의 길고도 긴 커리어의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래도 행운이라면 강팀에서 마지막을 장식하며 그는 커리어 마지막 시즌에 그의 네번째 챔피언 반지를 획득한 점 정도가 아닐까 싶군요......

그의 커리어는 21시즌입니다.... 센터로서 아주 긴 커리어를 보냈지요.....그만큼 자기 관리에 있어서 철저한, 그리고 동시에 운동 능력이 떨어진 커리어 후반부에도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줄 아는 영리함을 지닌 센터였습니다..... 그의 통산 성적은 21시즌 1611경기에서 평균 14.5득점(23334득점), 9.1리바운드(14715리바운드), 1.4어시스트(2180 어시스트), 1.5블락슛(2361 블락슛)입니다....

커리어 기간 중 4번의 NBA 챔피언, 세컨드 팀 1회, 서드 팀 1회, 9차례 올스타에 선정되었습니다. 동시에 은퇴 후 그의 등번호인 00번은 보스턴에서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지요. 그리고 2003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1996년에는 보스턴의 전성기를 함께 했던 레리 버드, 케빈 멕헤일과 함께 NBA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50인에도 선정되었습니다......

패리쉬는 분명히 90년대의 4대 센터들 혹은 80년대를 호령했던 압둘 자바나 모제스 말론과 같은 아주 강렬한 임펙트를 주는 플레어이는 아니었습니다. 허나 그의 플레이는 항상 한결같았으며, 철저한 몸 관리를 통해 언제나 많은 경기를 책임져주는 견실한 센터였습니다. 또한 2m13cm라는 높이를 충분히 활용할 줄 아는 선수였으며, 속공에 가담해 속공을 마무리할 정도의 뛰어난 스피드를 잘 활용하였지요, 동시에 페인트 존과 미들 라인 모두에서 득점을 할 수 있는 능력도 가지고 있었던 훌륭한 빅맨이었습니다. 포틀랜드의 전설적인 센터였던 빌 월튼은 그에 대해 이렇게 평가하기도 하였습니다. "리그 전체에서 가장 위대한 슈팅 빅맨"....

지난 번 케빈 멕헤일에 이어 이번에는 80년대 보스턴의 빅 3중 센터인 로버트 패리쉬의 커리어에 대해 간략히(?) 다뤄봤습니다. 이제 레리 버드만 정리하면 뭐 얼추 마무리되겠네요....그런데 레리 버드의 커리어에 대한 포스팅이야 워낙에 많은지라....귀차니즘이 발동되면 스킵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그의 하이라이트 영상 하나 붙이면서 길고도 지루한 포스팅 마무리합니다....









덧글

  • pds: 2015/06/26 02:14 # 삭제 답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90년대 nba 정말 화려한 시절이었죠.. 패리쉬 선수는 끝물에 샬롯에서 뛰던게 생각 나네요 예전에 보스턴에서 대단했던 선수라는 말은 그 당시에도 들었지만 이제서야 님 덕분에 상세히 알게 됐네요.. 친구들과 땡볓에서 하루종일 농구하고 화질 구린 afkn보고 루키 사모으고 ㅎㅎ다시 돌아가고 싶은 시절입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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