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 추억의 선수..기량에 비해 저평가된 포인트가드 Rod Strickland... 스포츠

오랜만에 NBA 추억의 선수 포스팅을 해보네요... 그간 개인적으로 이런 저런 준비할 것들도 있고, 또 특유의 귀차니즘과 게으름이 크리티컬로 작렬하며 블로그를 거의 방치 수준으로 내버려두었습니다....쩝...(원래 그리 포스팅을 자주 하는 스타일도 아니었거니와.....)

오늘은 일정도 한가하고 또 쉬는 날이기도 해서 집에서 뒹굴거리다 근처 커피 전문점 와서 커피 하나 시켜놓고 노닥거리다 갑자기 이 선수가 머리속을 스쳐지나가기에 그냥 하루 날잡아서 쓰자 싶은 생각이 들어 포스팅을 시작해봅니다....

네...오늘 포스팅의 주인공입니다.... Rod Strickland....90년대 초중반 NBA 팬이셨던 분들 중에는 아마 이 선수를 기억하는 분들도 꽤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90년대 초중반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했던 팀은 동부의 뉴욕과 서부의 포틀랜드였습니다. 물론 90년대 초반 포틀랜드가 두번의 준우승을 차지하며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에 그는 포틀랜드의 구성원은 아니었지만 92-93시즌부터 이후 네시즌 동안 그는 포틀랜드에서 플레이하였고 그런만큼 포틀랜드 시절 그의 플레이에 대한 기억은 비교적 제 기억 속에 많이 남아있는 편이거든요.....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가지고 있는 기량에 비해 이런 저런 부분들에서 조금은 약하게 평가를 받았던 선수 중 아니었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각설하고 지금부터 이 선수의 커리어에 대해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뉴욕 출신이었던 스트릭랜드는 드폴대학 3학년을 마치고 1988년 드래프트 1라운드 19번 픽으로 뉴욕 닉스에 지명되며 NBA 커리어를 시작하였습니다....

우선 그의 대학 시절 커리어를 간단히 정리해보면 1학년 시절 필드골 성공률 49.7%, 평균 14.1득점, 2.7리바운드, 2.7어시스트, 2학년 시절에는 필드골 성공률 58.2%, 평균 16.3득점, 3.8리바운드, 3.8어시스트, 그리고 3학년 시절 필드골 성공률 52.8%, 3점슛 성공률 44.4%, 평균 20.0득점, 3.8리바운드, 3.8어시스트를 기록하였습니다. 대학 3년간 그의 평균 기록은 필드골 성공률 53.4%, 평균 16.6득점, 3.4리바운드, 3.4어시스트입니다.

뉴욕은 191cm로 포인트 가드로 준수한 체격 조건을 갖춘 그를 당시 닉스의 주전 포인트 가드였던 마크 잭슨의 백업 멤버로 쓰기 위해 영입하였습니다.....

루키 시즌이었던 88-89시즌.... 그는 81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16.8분을 소화하였습니다. 루키 포인트 가드로서는 자신의 역량을 보여줄만한 충분한 플레이 타임이 부여되었고, 그는 이 플레이 타임 동안 필드골 성공률 46.7%, 3점슛 성공률 32.2%, 평균 8.9득점, 2.0리바운드, 3.9어시스트, 1.2스틸을 기록하며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였습니다. 그리고 시즌 종료 후 그는 All Rookie 1st Team에 선정되었습니다.

하지만 드러난 기록만큼 잭슨과 스트릭랜드의 활용이 아주 잘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결국 닉스는 89-90시즌 중반에 그를 샌안토니오로 트레이드 시켜버립니다(상대는 모리스 칙스).... 트레이드 되기 전 닉스에서 51경기에 모두 교체로 투입되어 평균 20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44%, 평균 8.4득점 4.3어시스트 2.5리바운드 1.5스틸을 기록한 그는 샌안토니오로 트레이드 되어 31경기를 소화하였습니다. 그는 31경기 중 24경기에 스타팅 멤버로 투입되었고, 플레이 타임 역시 36.2분으로 대폭 늘어났습니다. 그는 샌안토니오에서 플레이한 31경기 동안 필드골 성공률 46.8%, 평균 14.2득점, 8.0어시스트, 4.3리바운드, 1.8 스틸을 기록하며 맹활약하였고, 그가 스타팅으로 투입된 24경기에서 팀은 18승 6패를 기록하였지요. 이 시즌 샌안토니오는 56승 26패로 미드웨스트 디비젼 1위로 플옵에 진출하였고, 1라운드에서 덴버 너게츠를 3승 0패로 스윕하고 2라운드에서 포틀랜드와 상대하였습니다. 당시 포틀랜드는 클라이드 드렉슬러, 테리 포터, 제롬 커시, 벅 윌리엄스, 케빈 덕워스의 탄탄한 멤버를 중심으로 서부 최강의 전력을 자랑하던 팀이었지요. 결국 샌안토니오는 7차전까지 시리즈를 끌고 갔지만 3승 4패로 탈락하였습니다.

허나 팀은 2라운드에서 탈락하였지만 이 재능있는 2년차 포인트 가드는 플옵 10경기에서 평균 12.1득점, 11.2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맹활약을 펼쳤습니다.....

그는 89-90시즌 샌안토니오에서의 31경기 동안 그저 준수한 백업 포인트 가드에서 경쟁력있고 재능있는 포인트 가드로 자신의 레벨을 상승시키는데 성공하였습니다.

89-90시즌을 샌안토니오에서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그였지만 90-91시즌 초반 그의 모습은 코트에서 볼 수 없었습니다. 그는 발목 부상과 오른손 골절 등의 부상으로 인해 24경기에 결장하였습니다. 그로 인해 90-91시즌 그는 58경기에 출장하는데 그쳤지요. 허나 그 58경기 동안 그는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였습니다. 58경기 중 56경기에 스타팅으로 투입된 그는 평균 35.8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48.2%, 평균 13.8득점, 8.0어시스트, 3.8리바운드, 2.0스틸로 맹활약하며 팀의 주전 포인트 가드로서의 역할을 100% 완수하였습니다.

팀은 55승 27패를 기록하며 전시즌과 동일하게 미드웨스트 디비젼 1위로 플옵 시리즈에 진출하였지만 하위 시드였던 복병 골든스테이츠에 1승 3패로 당하며 탈락을 하고 맙니다. 하지만 시리즈 네 경기 동안 그는 엄청난 경기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플옵 1라운드 네 경기 동안 평균 42.0분을 소화하며 18.8득점, 8.8어시스트, 5.3리바운드, 2.3스틸을 기록하였습니다. 골든 스테이츠가 디펜스보다는 공격 중심의 농구를 하는 팀이었으나 분명 이 시리즈 네 경기에서 보여준 그의 모습은 리그의 특급 가드의 모습이었지요.

그리고 그의 커리어 네번째 시작인 91-92시즌이 시작됩니다. 허나 전 시즌과 마찬가지로 시즌 초반 스트릭랜드의 모습은 코트에서 볼 수 없었지요. 그는 계약 과정에서 구단과 충돌하였고, 그로 인해 시즌 초반 25경기에 결장하였습니다. 91년 12월 23일 극적으로 팀과 재계약을 한 그는 잔여 57경기에 출장하였습니다(스타팅으로 54경기 출장).. 그는 출장 경기에서 평균 36.0분을 소화하였고, 평균 13.8득점, 8.6어시스트, 4.6리바운드, 2.1 스틸을 기록하였습니다.

팀은 47승 35패를 기록하며 플옵 시리즈에 진출하였지만 이번에는 피닉스 선즈에게 0승 3패로 스윕을 당하며 역시 1라운드 탈락.... 그리고 이 시즌을 마지막으로 스트릭랜드는 샌안토니오를 떠나게 됩니다....

91-92시즌 종료와 함께 프리에이전트 자격을 획득한 그는 서부의 강호 포틀랜드와 계약을 하며 92-93시즌을 맞이하게 됩니다.

샌안토니오에서 주로 주전 포인트 가드로 투입된 그는 포틀랜드로 이적한 첫 시즌 주로 교체 멤버로 투입되었습니다. 이 시즌 그는 포틀랜드에서 78경기에 출장하였는데 스타팅으로 나선 경기는 35경기였습니다. 허나 그의 플레이 타임은 31.7분으로 거의 주전급 선수로 경기를 소화하였지요. 테리 포터와 역할 분담을 하며 그는 78경기에서 필드골 성공률 48.5%, 평균 13.7득점, 7.2어시스트, 4.3리바운드, 1.7스틸을 기록하였습니다. 팀은 플옵 시리즈에 진출하였지만 1라운드 탈락....

93-94시즌...로드 스트릭랜드는 데뷔 이후 최고의 활약을 펼칩니다. 그는 82경기에 모두 출장하여(선발 58경기), 평균 35.2분을 소화하는 가운데 필드골 성공률 48.3%, 평균 17.2득점, 9.0어시스트, 4.5리바운드,, 1.8 스틸을 기록하며 공수 양면에서 팀을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이전 시즌부터 해서 포틀랜드는 팀 자체가 하락세로 접어드는 시점이었지요. 90년대 초반만 해도 서부를 대표하는 팀이었지만 에이스 드렉슬러의 부상으로 인한 기량 저하와 테리 포터의 예상치 못한 부진 등으로 포틀랜드는 평범한 플옵 컨텐더 정도의 레벨로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팀은 47승 35패를 기록하며 플옵 시리즈에 진출하였지만 하킴 올라주원이 버티는 휴스턴 로켓츠를 넘어서지 못하며 1승 3패로 탈락하였습니다.

94-95시즌... 스트릭랜드는 64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35.4분을 소화하는 가운데 필드골 성공률 46.6%, 평균 18.9득점, 8.8어시스트, 5.0리바운드, 1.9스틸을 기록하며 리그 정상급 PG로서의 면모를 계속해서 보여주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시즌 중반 팀은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됩니다. 포틀랜드는 팀의 에이스인 드렉슬러를 휴스턴으로 트레이드 한 것이지요.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예전만큼의 폭발적인 운동 능력이 어느 정도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이 트레드로 인해 포틀랜드의 전력은 분명 다소 약화된 것이 사실입니다.(물론 드렉슬러를 보낸 대가로 수준근 4번인 오티스 도프를 영입한 것이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이 트레이드 이후 로드 스트릭랜드의 팀 내 비중은 클리포드 로빈슨에 이은 팀의 제2공격 옵션이자 게임 조율까지 맡아야 하는 부분으로까지 확대되게 됩니다. 포틀랜드는 44승 38패를 기록하며 간신히 플옵 시리즈에 진출하였지만 피닉스 선즈에 힘한번 써보지 못하고 3연패로 탈락을 하고 맙니다....(드렉슬러는 휴스턴 이적 후 자신의 커리어 처음이자 마지막 우승을 달성하며 무관의 한을 풀었지요)

팀은 허무하게 탈락했지만 스트릭랜드는 플옵 1라운드 세 경기 동안 평균 42.0분을 소화하며 평균 23.3득점, 12.3어시스트, 4.0리바운드를 기록하는 놀라운 활약을 이어갔습니다. 허나 바클리, 케빈 존슨이 건재했던 선즈를 그 혼자 넘어서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95-96시즌.... 스트릭랜드는 이전 두 시즌의 활약 이상의 능력을 보이며 팀의 에이스 플레이어로 자신의 역할을 확실히 해주었습니다. 그는 이 시즌 67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37.7분을 소화하였고, 필드골 성공률 46%, 평균 18.7득점, 9.6어시스트, 4.4리바운드, 1.4스틸을 기록하며 팀을 이끌었지요.

시즌 시작 전 팀과 팬들은 포틀랜드에 상당히 기대를 걸고 있었습니다. 팀의 에이스인 스타플레이어 드렉슬러는 더 이상 없었지만 그들은 오매불망 기다리던 구소련 출신의 최고 센터 사보니스를 영입하는데 성공하였거든요. 물론 사보니스는 이미 31세였으며, 부상 등으로 인해 구소련 시절만큼의 위력을 보여줄 수는 없었지만 그는 데뷔 시즌부터 리그의 수준급 센터 이상의 기량을 선보이며 포틀랜드의 한 축을 담당하였습니다(루키 시즌 그의 성적은 73경기 출장 평균 27.9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54.5% 평균 14.5득점, 8.1리바운드, 1.8어시스트, 1.1블락슛이었습니다. 체력적인 문제로 주로 식스맨으로 출장하였지만 출장 시간 대비 활약은 최고였지요....사보니스의 기록을 주전 멤버의 평균 출장시간은 36분으로 환산하여 계산하면 평균 22.0득점 12.2리바운드, 2.7어시스트, 1.6블락슛입니다)

팀은 정규 시즌 전년도와 동일하게 44승 38패를 기록하며 플옵 시리즈에 진출하였습니다. 상대는 55승 27패를 기록한 전통의 강호 유타 재즈... 솔직히 전력상 포틀랜드가 열세에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포틀랜드와 유타의 플옵 1라운드 시리즈는 최종 5차전까지 가는 혈투였습니다. 하지만 최종 5차전 유타가 승리함으로 인해 포틀랜드는 또다시 1라운드에서 탈락하고 말지요.

스트릭랜드는 시리즈 5경기에서 평균 40.4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44.0%(게다가 약점으로 지적되었던 3점슛 성공률도 50%를 기록하였습니다. 12개 시도 6개 성공), 평균 20.6득점, 8.4어시스트, 6.2리바운드, 1.0스틸을 기록하며 리그 최고의 포인트 가드인 존 스탁턴에 밀리지 않는 플레이로 팀의 선전을 이끌었습니다.(솔직히 팀의 주득점원이었던 클리포드 로빈슨이 정규 시즌 정도의 활약을 보여주었다면 시리즈 향방은 알 수 없었습니다. 정규 시즌 78경기에서 필드골 성공률 42.3%, 3점슛 성공률 37.8%에 평균 21.1득점, 5.7리바운드, 2.4어시스트를 기록하였던 로빈슨은 플옵 1라운드 다섯 경기에서 필드골 성공률 34.4%, 3점슛 성공률 26.1% 평균 15.2득점, 3.6리바운드로 X맨에 가까운 삽질을 하였지요....)

1996년 7월 15일 포틀랜드는 지난 네시즌 동안 팀의 포인트 가드로서 훌륭한 기량을 펼친 스트릭랜드를 하비 그랜트와 함께 워싱턴으로 트레이드시킵니다.(8일 뒤인 7월 23일 샬럿 호네츠에서 프리에이전트로 풀린 뛰어난 포인트 가드인 케니 엔더슨을 영입합니다...)

동부 컨퍼런스에서 비교적 약체에 속했던 워싱턴이었지만 주완 하워드, 크리스 웨버 등 훌륭한 자원들이 많았던 워싱턴은 포틀랜드에서 리그 정상급 포인트 가드의 능력을 보여준 스트릭랜드를 영입하며 플옵 시리즈 진출에 도전을 하게 되지요.

하지만 시즌 시작 후 46경기 동안 워싱턴은 22승 24패로 고전하며 좀처럼 치고 올라가지를 못했습니다. 결국 시즌 도중 감독 교체 등의 내홍을 겪으며 이후 22승 14패를 기록, 44승 38패로 애틀랜틱 디비젼 4위로 플옵 시리즈에 진출하게 됩니다. 허나 1라운드 상대는 96-97시즌 69승 13패를 기록하며 압도적인 경기력을 선보인 조던의 시카고 불스.... 스트릭랜드, 하워드, 웨버가 버티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워싱턴은 플옵 1라운드에서 0승 3패로 허무하게 탈락하고 맙니다.

허나 팀의 입장에서는 만년 하위권을 전전하다 스트릭랜드 영입 이후 플옵 시리즈 진출에 성공하며 나름 성공적인 시즌을 치루었습니다. 스트릭랜드는 팀과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며 정규 시즌 82경기에 모두 출장하여 평균 36.5분을 플레이하는 가운데 필드골 성공률 46.6%, 평균 17.2득점 8.9어시스트, 4.1리바운드, 1.7스틸을 기록하며 맹활약을 하였고, 플옵 시리즈 세경기에서도 평균 41.3분을 소화하며 평균 19.7득점, 8.3어시스트, 6.0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제역할을 다하였습니다.(득점은 팀내 1위, 리바운드는 팀내 2위, 어시스트는 팀내 1위였지요....)

97-98시즌... 스트릭랜드는 기쁨과 실망이 교차한 시즌이었습니다. 기쁨의 순간은 그가 커리어 중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어시스트 부분 타이틀 홀더가 되었다는 것이지요. 이시즌 스트릭랜드는 76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39.7분을 소화하는 가운데 평균 17.8둑점 10,5어시스트, 5.3리바운드, 1.7스틸을 기록하였습니다. 그가 76경기에서 기록한 총 어시스트는 숫자는 801개, 그는 총 어시스트와 평균 어시스트 부분에서 모두 피닉스의 제이슨 키드를 제치고 1위를 기록하였지요.

허나 42승 40패를 기록한 팀은, 43승 39패를 기록한 뉴저지 네츠에 아깝게 밀리며 플옵 시리즈 진출에 실패하였습니다.

노조의 파업으로 단축 시즌으로 치루어진 98-99시즌.... 워싱턴은 중대한 결단을 내리게 됩니다. 팀의 에이스인 크리스 웨버를 새크라멘토로 트레이드시키고 세크라멘토로부터 미치 리치몬드와 오티스 도프를 받아오는 트레이드를 단행한 것이지요....

웨버의 빈자리는 기존의 하워드와 블루워커 스타일의 오티스 도프로 메움과 동시에 스트릭랜드와 리치몬드로 짝을 이룬 파괴력있는 앞선의 공격력을 중심으로 팀컬러를 변화시킨 것입니다. 스트릭랜드는 44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15.7득점, 9.9어시스트, 4.8리바운드, 1.7 스틸을 기록하였는데 이전 시즌에 비해 득점력, 특히 필드골 성공률에서 하락세를 보이게 됩니다. 허나 그의 시즌 기록 자체가 대부진이라고 표현할만큼은 아니었지요.

허나 워싱턴은 팀 구성에 비해 확실히 조직적으로 문제가 많은 팀이었습니다(평균 득점 91.2득점으로 리그 17위, 평균 실점은 93.4득점으로 리그 20위).... 결국 공수 밸런스를 찾는데 실패한 팀은 18승 32패로 5할 미만의 승률을 기록한채 플옵 시리즈 진출에 실패하고 맙니다.....

99-00시즌.... 33세에 접어든 스트릭랜드는 급격한 하향세를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전 시즌까지 꾸준히 +15득점, +8.5어시스트를 기록하였던 스트릭랜드는 99-00시즌 69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31.7분을 소화하며(90-91시즌 이후 최소 플레이 타임), 필드골 성공률 42.9%, 평균 12.6득점, 7.5어시스트, 3.8리바운드, 1.4 스틸의 부진한 기록을 남깁니다...(물론 단순 수치 자체가 포인트 가드로서 폭망이라 볼수는 없지만 이 시즌 그의 연봉이 1천만 달러였다는 것이 문제지요....)

팀은 29승 53패의 재앙과 같은 성적을 올리며 최하위권으로 추락하고 맙니다.....

00-01시즌... 스트릭랜드의 부진은 계속되었습니다..... 1천만달러의 연봉을 받는 그가 33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12.2득점, 7.0어시스트, 3.2리바운드의 기록을 올리는데 그쳤고, 팀역시 최하위권에서 벗어나질 못했지요. 이로 인해 그는 언론과 팬의 강한 비난을 받게 됩니다....

결국 2001년 3월 1일, 시즌 도중에 그는 워싱턴에서 방출되는 수모를 당하게 됩니다. 2001년 3월 5일 그는 프리에이전트 자격으로 자신의 전성기의 시작을 알렸던 포틀랜드와 계약을 하게 되지요....

당시 포틀랜드는 라시드 월라스, 스티브 스미스, 데이먼 스타더마이어, 스카티 피펜, 본지 웰스, 사보니스, 숀 캠프(물론 이미 맛이 가버렸던) 등등 올스타급 라인업을 구성하며 우승에 도전하고 있었지요. 스트릭랜드에게 부여된 역할은 주전 포인트 가드인 데이먼 스타더마이어의 백업이었습니다. 그는 포틀랜드에서 21경기에 모두 교체로 출장하여, 평균 16.7분을 소화하였습니다. 필드골 성공률은 41.8%, 평균 4.6득점, 3.4어시스트, 1.7리바운드로 평균 수준의 백업 가드 정도의 능력을 보여주었지요....

팀은 50승 32패를 기록하며 플옵 시리즈에 진출하였지만 코비 브라이언트, 샤킬 오닐, 호레이스 그랜트, 로버트 오리가 버티는 레이커스에게 힘한번 써보지 못하고 스윕으로 탈락하고 맙니다....

시리즈 세 경기에서 스트릭랜드는 평균 9.5분을 소화하는데 그쳤고, 필드골 성공률 33.3%, 평균 4.0득점, 1.0어시스트, 2.0리바운드를 기록하며 부진하였습니다....

시즌 종료 후 그는 포틀랜드와의 재계약에 실패하며 이번에는 마이에미 히트로 이적하게 됩니다.

팻 라일리 감독이 팀을 책임지고 있었던 당시 마이애미의 핵심 전력은 에디 존스와 알론조 모닝이었지요.... 지난 몇 시즌간 대부진을 경험했던 스트릭랜드였지만 마이애미에서 그는 다시 주전 포인트 가드로 중용되게 됩니다... 그는 01-02시즌 마이애미에서 76경기 출장(선발 64경기), 평균 30.2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44.3%, 평균 10.4득점, 6.1어시스트, 3.1리바운드, 1.1스틸을 기록하며 마지막 불꽃을 태웠습니다...(이 시즌 그의 나이 벌써 35세.....)

허나 팀은 36승 46패로 무너지며 플옵 시리즈에 진출하는데 실패하였지요(이 시즌 마이애미의 가장 큰 문제는 공격력이었습니다... 마이애미는 평균 87.4득점을 실점하며 최소 실점 1위를 기록하였지만, 평균 득점은 87.2득점으로 리그 최하위인 29위를 기록하였습니다....)

시즌 종료 후 마이애미와의 재계약에 실패한 그는 케빈 가넷이 버티고 있는 미네소타로 다시 팀을 옮기게 됩니다....

허나 그는 이런 저런 부상등으로 고전하며 정규 시즌 47경기에 주로 교체로 출장하는데 그쳤고, 평균 플레이 타임은 20.3분, 필드골 성공률 43.2%, 평균 6.8득점, 4.6어시스트, 2.0리바운드를 기록하며 부진하였습니다.

미네소타와의 재계약에 실패한 그는 2003년 11월 25일 올랜도 매직과 88만달러 정도의 연봉에 계약을 체결하며 소속팀을 구하는데는 성공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제 37세가 된 그의 기량은 더이상 경쟁력이 없었습니다. 올랜도에서 46경기에 주로 교체로 출장했던 스트릭랜드는 평균 19.9분을 소화하며 6.8득점, 4.0어시스트, 2.6리바운드의 평범한 기록을 올렸고, 결국 시즌 중반 남은 계약을 승계한 토론토로 소속팀을 옮기게 됩니다. 토론토에서도 그리 뛰어난 활약을 펼치지 못했던 그는 시즌 종료 후 휴스턴과 계약을 체결하였지만 16경기 동안 1.8득점, 2.4어시스트라는 초라한 기록을 남긴채 은퇴를 선언하게 되지요.....

커리어 통산 성적은, 17시즌 동안 1094경기에 출장(선발 740경기), 평균 30.7분을 소화하였고, 필드골 성공률 45.4%, 3점슛 성공률 28.2%, 평균 13.2득점(14463득점), 7.3어시스트(7987어시스트), 3.7리바운드(4084리바운드), 1.5스틸(1616스틸)입니다.

지금까지도 스트릭랜드라는 선수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는 이유는 90년대 그의 전성기 시절 기량이 리그 탑클래스 급이었던 것에 비해 지나치게 저평가되었다는 점으로 인한 아쉬움 때문입니다. 그는 최소한 올스타 레벨급의 엘리트 포가였지만 커리어 기간 중 단 한차례도 올스타에 선정된 적이 없습니다.....

뛰어난 드리블 능력을 바탕으로 돌파에 이은 득점을 해내는 과정은 너무나 멋있었지요.... 특히 드리블링과 패싱력에 있어서는 당대의 레전드 급 포가들(스탁턴, 키드, 마크 잭슨과 같은)에 견주어 절대 뒤쳐지는 선수가 아니었습니다. 허나 가드 포지션의 선수 치고는 부정확한 외곽슛과 공격력에 비해 너무나 약했던 수비력이 문제라면 문제였던 선수지요.....

88-89 NBA All-Rookie 2nd Team에 뽑혔으며, 97-98시즌에는 어시스트 부분 리그 1위, All NBA 2nd Team에 선정된 정도가 그의 커리어 기간 중 내세울 수 있는 수상실적 정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커리어 기간 중 총 어시스트 부분 5위 안에 랭크된 시즌은 5차례였으며 평균 어시스트 수 5위 안에 랭크된 시즌은 6차례였습니다. 그가 기록한 통산 7987어시스트는 리그 통산 어시스트 기록 9위에 해당하며, 평균 7.3어시스트는 리그 통산 21위에 해당하는 기록입니다.

그가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가능성은 극히 낮을 것입니다. 하지만 90년대 소위 NBA의 전성기 시절 리그를 주름잡았던 탑클래스의 가드임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저평가되었기에 참 아쉬움이 큰 그런 선수.....

마지막으로 커리어 믹스 영상 하나 올리는걸로 해서 두서없고 길기만 포스팅을 마무리합니다....


덧글

  • teese 2012/11/04 21:24 # 답글

    그리운 이름이네요.
    실력에 비해 이상할정도로 스타취급을 못받았죠.
    밀러타임처럼 클러치능력이 좀 높았다면... 하는 생각도 듭니다.
  • 울프우드 2012/11/05 03:03 #

    그렇지요... 최소한 올스타 레벨은 되는 선수인데 올스타에도 한번 선정된 적이 없는....
    클러치 능력에 있어서 밀러와 비교하기에는 포지션과 플레이 성향의 차이가 있는지라^^;

  • DLIVE 2012/11/06 14:21 # 답글

    그리운 이름이네요.(2)
    어시스트 부문에 언제나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고
    간간히 화려한 플레이를 하는 선수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숫자로 보는 커리어는 장난이 아니네요..
    제이슨 키드와 존 스탁턴이랑 비등..아니 그 이상아닌가요??
    왜 주목받지 못했는지 이해가 안되는
    -..근데 그러면서 저도 주목안했었다는.. ㅜㅜ-
  • 울프우드 2012/11/06 16:53 #

    가지고 있던 기량에 비해 너무 주목을 받질 못해 암타까움이 큰 선수지요... 키드 스탁턴을 뛰어넘지는 못해도 전성기를 기준으로 그들과는 다른 개성적인 역량으로 훌륜한 1번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선수지요 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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