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 추억의 선수-80~90년대 리그의 철인이었던 A.C. Green 스포츠

이제 본격적으로 점점 추워지며 겨울 느낌이 물씬 나는 하루 하루입니다....

대략 이번주까지는 비교적 한가해서 이래저래 휴식을 즐기고 있는데... 마냥 쉬자니 심심하기도 하고 해서.... 예전 NBA 농구 선수 관련 글이나 좀 끄적거려보자 싶어 누굴 쓸까 고민하는 중 이 선수가 떠오르더군요.....


아마 80-90년대 NBA를 보신 분들이라면 대부분 기억을 할 선수일 듯 합니다. 통산 성적이나 이런 부분들을 살펴보면 임펙트가 떠얼진다고 생각하실 분들도 있지만 코트에서 드러나는 기록 이상의 가치를 지녔던 선수.....

오늘 살펴볼 선수는 80-90년대 LA와 피닉스, 댈러스 등에서 활약을 펼치며 파포와 센터를 번같아 맡았던, 조용했지만 철인이었던 A.C. Green입니다....

오리건 주립 대학 출신으로 신장 206cm, 체중 100kg의 하드웨어를 가졌던 선수지요... 신장은 4번으로서는 적당하며 5번을 보기에는 좀 부족했으며, 신장에 비해 웨이트도 조금 부족했기에 첫인상을 왜소하고 좀 비리비리하다? 뭐 그런 느낌을 주었던 선수였습니다. 하지만 경기 중 그가 가지는 존재감과 기량은 그러한 첫느낌이 틀렸다는 것을 알려주었지요.....

NBA에서의 그의 이미지는 팀의 주 공격 옵션이라기 보다는 필요할 때의 득점 이외에 수비와 리바운드 등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블루 워커의 이미지가 강했습니다. 하지만 대학 시절의 그는 슈퍼스타였지요... NBA에서의 그의 커리어를 정리하기 전에 먼저 대학 시절 그의 기록을 정리해보도록 하죠...

1학년 시절이었던 81-82 시즌에 그는 30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29.8분, 필드골 성공률 61.5%, 평균 8.6득점, 5.3리바운드, 1.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신입생으로서 준한 활약을 펼쳤습니다. 허나 아주 임펙트있는 신입생은 아니었지요.... 대학 시절 그의 장점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기량이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였다는 점입니다.

2학년 시절에는 31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35.9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55.9%, 평균 14.0득점, 7.6리바운드, 1.7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대학 무대에서 수준급 빅맨임을 기량으로 증명하였습니다. 그리고 3학년 시절, 그는 NBA 구단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할 정도로 성장합니다. 3학년 시절 23경기에서 그가 기록한 성적은 평균 37.1분, 필드골 성공률 65.7%, 평균 17.8득점, 8.7리바운드, 1.7어시스트였으며, 4학년 시절에는 31경기에서 평균 38.4분, 필드골 성공률 59.9%, 평균 19.1득점, 9.2리바운드, 2.0어시스트를 기록하였습니다.

대학 4년간 115경기에 출장, 필드골 성공률 60.2%, 평균 14.7득점, 7.7리바운의 준수한 성적을 남겼습니다. 그가 4년간 기록한 1694득점은 오리곤 주립대학 농구부 역사상 역대 4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며, 880리바운드는 학교 역사상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지요....

그리고 4학년을 마치고 그는 1985년 드래프트를 통해 NBA에 입성하게 됩니다. 많은 분들이 알고 있다시피 85년 드래프트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던 선수는 조지 타운 대학 출신의 대학 최고의 센터였던 패트릭 유잉이었습니다. 예전 85년 드래프트 관련 글에서 한번 언급을 했지만 84년만큼은 아니지만 85년 드래프트에서도 좋은 선수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1라운드 1번으로 뉴욕에 지명된 패트릭 유잉을 필두로 자비에르 멕다니엘, 크리스 멀린, 데틀레프 슈렘프, 찰스 오클리, 칼 말론, 조 듀마스, 테리포터 같은 선수들이 85년 드랩을 통해 NBA에 입성, 이후 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선수들이지요.....

A.C. 그린은 분명 대학 시절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그의 하드웨어 자체는 거친 NBA의 골밑에서 어느 정도 경쟁력을 가질지에 대해 조금은 부정적인 평가도 있었습니다. 포스팅 서두에서 언급하였듯이 4번 혹은 5번을 맡기에는 신장과 웨이트 모두 조금은 부족한 면이 있었으니까요.....

결국 그는 1라운드 상위 픽에서는 지명받지 못했고 1라운드 23번 픽으로 LA 레이커스에 지명되며 그의 커리어를 시작하게 됩니다.

80년대 레이커스야 설명이 필요없는 강팀이었지요.... 매직 존슨과 제임스 워디, 그리고 카림 압둘 자바(자바 옹이야 그린의 루키 시즌 이미 38세의 노장이었지만 그는 85-86시즌 79경기에 모두 선발로 나와 평균 23.4득점 6.1리바운드 3.5어시스트 1.6블락슛을 기록하며 여전히 리그 정상급 센터의 포스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이 시즌 레이커스의 주전 라인업은 매직 존슨-제임스 워디-바이런 스캇-카림 압둘자바-커트 람비스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린에게 주어진 역할은 골밑 멤버인 자바와 람비스의 백업이었습니다.

루키 시즌 그린은 82경기에 모두 출장하였습니다(선발 1경기)....평균 18.8분을 소화하였고 필드골 성공률 53.9%, 평균 6.4득점, 4.6리바운드, 0.7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성공적인 루키 시즌을 시작하였지요. 주목할 점은 대부분의 루키 선수들이 해당 시즌 대학 시절에 비해 필드골 성공률이 대폭 낮아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린은 첫시즌부터 53.9%의 준수한 필드골 성공률을 보여주었다는 점입니다. 그가 경기당 시도한 필드골은 평균 4.7개였으며, 성공시킨 필드골은 2.5개였습니다. 많은 슛을 시도하진 않지만 그래도 확률높은 공격력을 보여주었지요.

레이커스는 압둘 자바와 제임스 워디가 +20득점을 기록하였고 매직 존슨이 평균 18.8득점, 12.6어시스트로 팀을 진두 지휘하며 정규 시즌을 62승 20패로 마무리... 여유있게 플옵 시리즈에 진출하며 84-85시즌에 이어 리그 2연패에 도전하게 됩니다.

1라운드에서 샌안토니오를 3승 무패 스윕으로 꺾은 그들은 2라운드에서 댈러스를 4승 2패로 제압하며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하였습니다. 상대는 하킴 올라주원과 랄프 샘슨의 트윈 타워가 버티던 휴스턴 로켓츠.... 대부분 레이커스의 우세를 점쳤지만 그들은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1승 4패로 휴스턴에 무너지며 파이널 진출에 실패하게 됩니다.

커리어 첫 플옵 무대는 그린에게 그리 즐겁지만은 않았습니다. 팀의 파이널 진출 실패도 실패이지만 그는 정규 시즌에 비해 플옵 시즌에서 제대로 기회를 보장받지 못했고, 플레이에서도 부진하였거든요. 그는 플옵 14경기 중 9경기에 투입되었고, 평균 플레이 타임도 11.8분으로 정규 시즌에 비해 줄어들었습니다. 필드골 성공률은 52.9%, 평균 2.4득점, 1.8리바운드를 기록하는데 그쳤고 어시스트는 단 하나도 기록하지 못했지요.

어쨌건 그린의 루키 시즌 자체는 나름 성공적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항상 풀시즌을 출장할 수 있는 몸상태를 루키답지 않게 꾸준히 유지하였습니다.(이 부분은 포스팅 마무리에서 다시 한번 언급하겠습니다. 그가 왜 철인이라 불리우는지...)

커리어 두번째 시즌이었던 86-87시즌, 그는 이전 시즌 팀의 주전 4번이었던 커트 람비스를 제치고 레이커스의 주전 파워 포워드로 기용되기 시작합니다. 이 시즌 그는 79경기에 출장하여(선발 72경기) 평균 28.4분, 필드골 성공률 53.8%, 평균 10.8득점, 7.8리바운드, 1.1어시스트, 0.9스틸, 1.0블락슛을 기록하며 리그 주전급 파포의 모습을 보여주며 팀의 승리에 공헌하였습니다...(이 시즌 레이커스 팀 데이터를 보니 한가지 재밌는 점이 있네요.... 주전 5명 중 바이런 스캇을 제외한 나머지 네명 - 매직, 자바, 워디, 그린-의 필드골 성공률이 모두 50%를 넘는군요... 바이런 스캇의 필드골 성공률은 48.9%, 그런데 그의 3점슛 성공률은 43.6%....)

강력한 선수들을 바탕으로 레이커스는 정규 시즌 65승 17패의 압도적인 승률로 플옵 시리즈에 진출하였습니다(레이커스는 84-85시즌 62승 20패, 85-86시즌에도 62승 20패, 그리고 86-87시즌 67승을 기록하며 세시즌 연속 +60승을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플옵 시리즈에서 덴버, 골든 스테이트, 시애틀, 보스턴을 연파하며 파이널 우승을 차지하게 됩니다.

루키  시즌 플옵 시리즈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였던 그린은 자신의 커리어 두번째 플옵 무대에서는 자신의 기량을 아낌없이 보여주었습니다.

그린은 플옵 18경기에 모두 출장하며 평균 28.1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54.6%, 평균 11.5득점, 7.9리바운드를 기록하며 레이커스의 리그 우승에 공헌을 하였습니다....

커리어 두 시즌 만에 챔피언 반지를 차지하는데 성공한 그린은 다음 시즌부터 하나의 전설을 써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87-88시즌... 커리어 3년차를 맞이한 그린은 레이커스에서 이전 두 시즌에 비해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플레이어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린은 이 시즈느 82경기에 모두 출장하며(선발 64경기), 데뷔 후 처음으로 +30분 이상의 플레이 타임을 기록하였습니다(평균 32.1분). 필드골 성공률은 50.3%, 평균 11.4득점, 8.7리바운드, 1.1어시스트, 1.1스틸을 기록하며 40세의 나이로 이제는 하향세로 접어든 압둘 자바의 부담을 덜어주었지요.....

팀은 또다시 62승 20패를 기록하며 네시즌 연속 +60승의 대기록을 세우며 플옵 시리즈에 진출하였습니다.

리그 2연패에 도전하는 레이커스의 플옵 시리즈는 그리 녹녹치 않았습니다. 1라운드에서 샌안토니오를 3승 무패로 제압하며 가볍게 2라운드에 진출하였지만 2라운드에서는 유타와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4승 3패로 신승하며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 그리고 컨퍼런스 파이널에서도 댈러스와 7차전까지 가는 혈투를 벌이며 4승 3패로 간신히 파이널에 진출하였습니다. 상대는 80년대 가장 악명 높았던 질식 수비의 디트로이트(질식 수비라기보다는 육탄 수비 혹은 백병전 수비...)....

디트로이트는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레이커스의 라이벌이었던 샐틱스를 4승 2패로 제압하며 파이널에 진출하였습니다. 레이커스가 매직을 중심으로 화려하고 빠른 농구를 전개하는 팀이었다면, 디트로이트는 토마스, 듀마스, 빌레임비어, 로드맨 등 거칠고 끈끈한, 그러면서도 상대팀의 짜증 게이지를 극도로 끌어올리는 수비력의 팀이었지요...(물론 그들의 공격력이 약한건 결코 아니었습니다....)

시리즈는 7차전까지 이어졌고, 결국 최종 7차전을 레이커스가 잡아내며 리그 2연패에 성공하게 되지요.

그린은 플옵 시리즈 24경기에 모두 출장하며 평균 30.3분, 필드골 성공률 54.4%, 평균 10.0득점, 7.3리바운드(플옵 시리즈 리바운드에서 팀내 1위)를 기록하며 팀의 2연패에 공헌하였습니다.

커리어 3년차를 보내는 동안 챔피언 반지 2개를 얻은 그는 분명 운이 좋은 선수였습니다(그거 하나도 못끼고 은퇴한 레전드가 얼마인데....)

커리어 4년째인 88-89시즌... 그린은 강팀 레이커스의 확실한 주전 멤버로 정착합니다.

특히 이제 41세가 되며 체력적으로 많은 플레이 타임을 소화하는데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던 카림 압둘 자바의 골밑 파트너로서 그린의 역할을 더욱 커지게 되었지요. 그는 이러한 팀 사정상 4번과 5번을 번갈아가며 맡았었고, 이에 대해 단 한마디의 불평없이 자신의 임무를 묵묵히 수행하였습니다(레이커스처럼 화려하고 개성 강한 팀에서 그린과 같은 존재는 정말 소중하지요...)

그린은 이 시즌 82경기에 모두 선발 출장하며 평균 30.6분, 필드골 성공률 52.9%, 평균 13.3득점, 9.0리바운드, 1.3어시스트, 1.1스틸로 이전 세시즌에 비해 더욱 향상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팀은 57승을 기록하는데 그치며(?) 다섯 시즌 연속 +60승에는 실패하였지만 퍼시픽 디비젼 1위로 플옵 시리즈에 진출하였고, 1라운드에서 포틀랜드, 2라운드에서 시애틀, 컨퍼런스 파이널에서는 피닉스 선즈를 모두 스윕으로 제압하며 파이널까지 순항하였습니다.....

플옵 시리즈에서 11연승을 기록하며 파이널에 진출한 레이커스는 3연패에 도전하였고, 그들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전시즌 파이널에서 레이커스와 혈투를 벌였던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였지요....

허나 파이널 시리즈의 결과는 허무하게 나왔습니다.... 디트로이트는 레이커스를 4승 0패로 가볍게 제압하며 새로운 패자의 등장을 알렸지요....

이미 너무나 노쇠했던 카림 압둘 자바는 파이널에서 디트로이트의 거칠다는 표현도 부족한 강력한 수비에 막혀 고전하였고, 빌레임비어와 로드맨으로 이어지는 디트로이트의 골밑을 그린과 노쇠한 자바로 공략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그린은 플옵 시리즈 15경기에서 평균 33.5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41.2%, 평균 10.1득점, 9.1리바운드로 정규 시즌에 비해 부진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89-90시즌...레이커스에는 큰 변화가 생기게 됩니다... 팀의 상징과도 같았던 카림 압둘 자바가 88-89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하게 되었지요... 이에 레이커스는 유고 출신의 백인 센터 디바치를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하였고, 그린은 자바를 대신해 팀의 주전 센터로 기용되기 시작합니다.

자바가 은퇴하였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레이커스의 팀 구성은 강력하였습니다. 매직 존슨-제임스 워디-바이런 스캇-그린을 축으로 압둘 자바의 빈자리는 루키 디바치와 올랜도 울드리지가 메꾸어주었지요....

그린의 비중은 자바 은퇴 이후 레이커스 골밑의 중심으로까지 격상되었습니다. 그는 이 시즌 82경기에 모두 선발로 출장하여 필드골 성공률 47.8%, 평균 12.9득점, 8.7리바운드, 1.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자바가 빠진 레이커스의 골밑을 최선을 다해 지켜냈습니다(한가지 안타까운 점은 데뷔 이후 네 시즌 연속 +50%를 상회하였던 필드골 성공률으 50% 아래로 떨어진 점)....

자바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팀은 63승을 기록하며 한 시즌 만에 +60승을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플옵 1라운드에서 휴스턴을 3승 1패로 꺾고 2라운드에 진출하였지만 톰 챔벌스, 케빈 존슨, 제프 호너섹이 버티는 피닉스 선즈에게 1승 4패로 무너지며 시즌을 마무리하게 됩니다.

그리고 90-91시즌...그린도 어느덧 커리어 6년차를 맞이하게 되는 중고참 선수가 되었습니다. 지난 두 시즌 동안 팀의 주전 멤버로 플레이한 그린은 90-91시즌, 커리어 초반 그가 맡았던 보직인 식스맨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89-90시즌, 플옵 2라운드에서의 탈락으로 팀은 골밑 파워를 보강해야 한다는 판단 하에 디바치를 주전 센터로 기용하였고, 댈러스 매버릭스 소속으로 플레이하던 샘 퍼킨스를 비제한적 FA로 영입하며 골밑 높이를 보강하였지요. 퍼킨스와 그린은 신장은 동일하였지만, 퍼킨스에게는 그린에게 부족하였던 슈팅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구단은 팻 라일리를 대신해 마이클 던리비를 신임 감독으로 영입하며 팀 컬러에서도 변화를 모색하기 시작하지요.

90-91시즌 그린은 82경기에 주로 교체 멤버로 투입되어(선발은 21경기), 평균 26.4분을 소화하는 가운데 필드골 성공률 47.6%, 평균 9.1득점, 6.3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소화했습니다.

팀은 58승 24패를 기록하며 플옵 시리즈에 진출하며 휴스턴-골든스테이트-포틀랜드를 연파하며 다시 파이널 시리즈에 진출, 챔피언 자리를 노릴 기회를 얻게 됩니다.

상대는 마이클 조던이 이끄는 시카고 불스.... 조던 입단 이후 동부 컨퍼런스에서 꾸준히 플옵에 진출하였던 불스는 이전까지 번번히 디트로이트에 가로막혀 파이널 진출에 실패하였습니다. 하지만 90-91시즌, 그들은 드디어 디트로이트를 넘어 파이널 시리즈에 진출하였지요.

조던-피펜-그랜트를 축으로 하는 불스는 강했습니다. 레이커스는 불스에 제대로 저항한번 못해보고 1승 4패로 무너지며 조던에게 우승컵을 넘겨주었지요...(다들 아시겠지만 불스 왕조의 시작이었습니다...)

91-92시즌...레이커스는 커다란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팀의 에이스이자 리그 최고의 포인트 가드였던 매직 존슨의 에이즈 보균 사실이 알려지며 은퇴를 하게 된 것이지요.

하루 아침에 팀의 중심을 상실한 팀은 리그를 대표하는 강팀에서 그저 그런 평범한 팀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게다가 팀의 주전센터였던 디바치마저 46경기에 결장하며 팀 전력에는 커다란 공백이 생겼지요.... 퍼킨스 역시 잔부상에 시달리며 19경기에 결장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공백을 메꾸기 위해 던리비 감독은 그린을 다시 주전 멤버로 투입하게 됩니다.

이 시즌 그린은 82경기에 출장(선발 53경기), 평균 35.4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47.6%, 평균 13.6득점, 9.3리바운드, 1.4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기대에 부응하였습니다. 허나 레이커스는 존슨, 디바치의 공백으로 고전하였고 43승 39패로 간신히 플옵 시리즈에 진출하였습니다. 허나 드렉슬러가 이끄는 포틀랜드에 1승 3패로 무너지며 탈락...(포틀랜드는 이 시즌 파이널까지 진출하였으나 조던의 불스에 가로막히며 우승에는 실패)

92-93시즌... 레이커스는 이전 시즌에 비해 더 큰 부진에 빠지게 됩니다. 팀은 39승 43패로 +5할 승률에 실패하였습니다. 퍼시픽 디비젼 5위로 간신히 플옵에 턱걸이 하며 진출하였지만, 92-93시즌 MVP이자 당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던 바클리의 피닉스 선즈에게 2승 3패로 석패하며 1라운드에서 탈락하게 되었지요.....

그린은 이 시즌에도 82경기에 모두 출장하였습니다....(지금 몇 시즌 연속 전 경기 출장이죠?) 평균 34.4분, 필드골 성공률 53.7%, 평균 12.8득점, 8.7리바운드를 기록하며 변함없는 활약을 펼쳤습니다만 팀의 추락을 막지는 못했지요.....

그리고 이 시즌을 마지막으로 그는 자신의 커리어를 시작했던 레이커스를 떠나게 됩니다.

1993년 9월 28일 그린은 비제한적 프리에이전트로 피닉스 선즈와 계약을 하며, 자신의 커리어에서 두번째 소속팀을 구하게 됩니다...

92-93시즌 리그 준우승팀이었던 피닉스는 케빈 존슨-댄 멀리-찰스 바클리라는 확실한 축을 가지고 있었던 팀이었지만, 마크 웨스트-올리버 밀러- 조 클라인으로 이어지는 센터진은 높이와 기량 모두에서 부족하였습니다. 동시에 고질적인 허리 부상을 안고 있었던 바클리의 백업 멤버도 없었지요.... 이러한 팀의 약점을 메우기 위해 구단이 선택한 대안이 바로 그린이었습니다. 4번과 5번 자리에서 모두 꾸준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그라면 피닉스의 약점을 메움과 동시에 팀이 챔피언 자리를 노리는 것도 가능하다고 판단했던 것이지요.

피닉스에서의 첫시즌이었던 93-94시즌.... 그린은 82경기에 모두 출장하며(선발 55경기), 평균 34.5분을 소화하는 가운데 필드골 성공률 50.2%, 평균 14.7득점, 9.2리바운드, 1.7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데뷔 이후 최고의 활약을 펼쳤습니다. 피닉스는 바클리-존슨-세발로스-멀리-그린으로 이어지는 강력한 라인업을 축으로 평균 111.7득점이라는 가공할 화력을 바탕으로 56승 26패를 기록, 플옵 시리즈에 진출하며 다시 한번 파이널 진출을 도모하게 됩니다.

게다가 93-94시즌은 조던의 첫번째 은퇴로 인해 그에 가로막힌 수많은 위대한 선수들이 챔피언 반지를 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지요. 1라운드에서 골든 스테이트를 3승 0패로 스윕한 피닉스...허나 2라운드에서 당시 최고의 기량을 보여주었던 올라주원의 벽을 넘지 못하고 휴스턴에게 3승 4패로 아쉽게 무너지며 파이널 진출에 실패하게 됩니다.

94-95시즌... 팀은 다시 한 번 우승에 도전하기 위해 애틀랜타에서 비제한적 FA로 풀린 데니 매닝을 영입하는 등 전력 강화를 위해 노력하였습니다(허나 매닝의 영입은 결국 실패...그는 이 시즌 부상으로 36경기에 결장하였습니다...)

그린이야 뭐 데뷔 이후 늘상 그랬듯이 이 시즌에도 82경기에 출장하였습니다. 평균 32.8분, 필드골 성공률 50.4%, 평균 11.2득점, 8.2리바운드, 1.5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에 소금과 같은 역할을 변함없이 수행하였지요....

팀은 59승 23패를 기록하며 플옵에 나갔고, 1라운드에서 포틀랜드를 3승 0패로 손쉽게 제압하고 2라운드에 진출하였지만 전 시즌과 동일하게 또다시 휴스턴에게 3승 4패로 무너지며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95-96시즌... 그린은 다시 주로 식스맨으로 투입되기 시작합니다.

그는 82경기에 출장(36경기 선발), 평균 25.8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48.4%,  평균 7.5득점, 6.8리바운드를 기록하였습니다. 팀은 플옵 시리즈에 진출하였지만, 1라운드에서 데이비드 로빈슨이 이끄는 샌안토니오에게 1승 3패로 탈락하고 맙니다.

그리고 시즌 종료 후 팀은 팀의 중심인 바클리를 트레이드 시장에 내놓으며 팀 체질 개선에 들어가게 됩니다. 96년 8월 19일 휴스턴과 피닉스 사이에 대규모 트레이드가 단행됩니다. 피닉스는 여전히 좋은 기량을 유지하고 있지만 고질적인 허리 부상으로 풀시즌 소화가 힘들었던 바클리에 99년도 2라운드 드래프트 픽을 휴스턴에 넘겼고, 휴스턴은 피닉스에 처키 브라운, 마크 브라이언트, 샘카셀, 그리고 로버트 오리를 보냈습니다.(당시 챔피언 반지에 목말랐던 바클리 역시 이 트레이드를 원했습니다. 이미 리그 2연패에 성공한 휴스턴에는 올라주원과 드렉슬러가 버티고 있었고 그 멤버에 자신이 가세한다면 바로 우승이라고 생각했을테지요...)

96-97시즌.... 새롭게 출발한 피닉스는 시즌 내내 많은 변화를 겪으며 내홍을 겪었습니다.... 멤버 자체가 약한 것은 아니었지만 교통 정리가 잘 되지 않은 여파로 팀은 둘쑥날쑥한 경기력을 보여주었지요.... 피닉스에는 이미 리그 정상급의 포인트 가드인 케빈 존슨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휴스턴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샘 카셀을 트레이드로 데리고 왔으며 96년 드랩에서는 스티브 내쉬를 지명하였지요.... PG만 세명이 있는 피닉스였지만 그들은 시즌 중 댈러스에서 제이슨 키드를 트레이드로 영입하며 PG만 네명을 보유하게 됩니다. 문제는 이 네명의 교통 정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팀의 혼란 속에 그린 역시 부진하였습니다. 그는 이 시즌 초반 27경기에서 평균 20.3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47.7%, 평균 5.7득점, 5.1리바운드로 데뷔 후 가장 부진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결국 팀은 1996년 12월 26일 피닉스는 댈러스와 트레이드를 단행하게 됩니다. 그 내용은 피닉스가 그린, 카셀, 핀리+98년 2라운드 드래프트 픽을 댈러스에 넘기고, 댈러스는 제이슨 키드, 토니 듀마스 등을 피닉스로 넘기는 것이었지요.

그린은 트레이드 후 댈러스에서 56경기에 주로 스타팅 멤버로 투입되며 평균 34.7분, 필드골 성공률 48.6%, 평균 7.9득점, 9.3리바운드로 피닉스에서보다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허나 당시 댈러스는 리그를 대표하는 하위팀이었기에 플옵 시리즈에는 데뷔 후 처음으로 진출하지 못하게 되지요...

97-98시즌과 98-99시즌까지 그는 댈러스에서 플레이하였습니다. 이미 30대 중반에 접어든 그였지만 그는 두 시즌 동안 한경기에도 결장하지 않고 출장하며 약팀의 주전 빅맨으로 최선을 다했습니다.(이 두시즌 동안 그는 평균 +8득점, +9리바운드를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99년 9월 1일, 댈러스는 그를 레이커스로 보내고 레이커스로부터 션 락스와 2000년 2라운드 드래프트 픽을 받아오는 트레이드를 단행하였습니다. 멀고 먼 길을 돌아 그는 다시 자신의 데뷔팀인 레이커스로 돌아왔습니다.

코비 브라이언트, 샤킬 오닐, 글렌 라이스로 이어지는 강력한 라인업을 구성하고 있었던 레이커스였지만 번번히 우승에는 실패하자 팀은 불스 왕조를 지휘하였던 필 잭슨을 99-00시즌 새로운 감독으로 영입하였고, 문제아 데니스 로드맨을 붙잡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샤킬 오닐의 골밑 파트너로 그린을 영입한 것이지요....

이미 36세의 노장이었던 그린은 레이커스에서 82경기에 모두 선발로 출장하며 평균 23.5분을 소화하는 가운데 필드골 성공률 44.7%, 평균 5.0득점 5.9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오닐을 보좌하였습니다(이 시즌 오닐의 기록은 평균 29.7득점, 13.6리바운드, 3.8어시스트, 3.0블락슛....인간이냐...)

팀은 67승 15패를 기록하며 플옵에 진출하였고, 새크라멘토(3승 2패), 피닉스(4승 1패), 포틀랜드(4승 3패)를 연파하며 파이널에 진출하여 레지 밀러가 이끄는 인디애나 페이서스를 4승 2패로 제압하며 챔피언에 등극하게 됩니다. 그린은 개인적으로 자신의 세번째 챔피언 반지를 획득하였지요.....

허나 시즌 종료와 함께 그는 레이커스를 떠나 프리에이전트로 마이애미 히트와 계약을 하게 됩니다.

자신의 커리어 초반 레이커스의 감독이었던 팻 라일리와 재회하였지요....

37세의 노장 빅맨 그린은 82경기에 주로 식스맨으로 투입되며 평균 17.2분, 4.5득점, 3.8리바운드를 기록하였습니다.

그린의 통산 기록은 다른 레전드들과 비교하면 초라하기까지 합니다. 그는 커리어 16시즌 통산 1278경기를 소화하였고(이 중 선발은 832경기), 평균 플레이 타음인 28.6분, 필드골 성공률은 49.4%, 평균 9.6득점(12331득점), 7.4리바운드(9473리바운드), 1.1어시스트(1400어시스트), 0.8스틸(1033스틸), 0.4블락슛(546블락슛)입니다..... 단 한번도 더블-더블 시즌을 기록한 적도, +20득점 시즌이 아니라 +15득점 시즌을 기록한 적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리그 역사상 가장 꾸준하며 동시에 자기 관리에 충실한 선수였습니다. 그의 위대함은 여기에 있습니다. 그가 커리어 16시즌 동안 결장한 경기는 소포모어 시즌이었던 86-87시즌이 유일하였습니다(세 경기 결장)....

그 시즌을 제외한 나머지 15시즌에서 그는 단 한경기도 결장하지 않았습니다. 강팀에 있건, 약팀에 있건, 주전 멤버이건, 벤치 멤버이건 그는 항상 소속팀의 경기에서 코트를 지켰고, 자신에게 주어진 롤을 충실히 소화해낸 훌륭한 선수였습니다.....

빅맨으로서는 애매한 사이즈.... 그렇다고 압도적인 스피드 혹은 파워가 있는 선수도 아니었지만, 근성으로 리바운드를 따냈으며, 상대 빅맨들을 괴롭히며 끈질기게 디펜스를 해주었던 선수였습니다. 공격 시에는 개인기가 출중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골밑에서의 훼이크 동작 이후 잡아주어야 할 득점은 확실히 잡아주는 그런 선수였지요.....

예전에 제가 포스팅 주제로 다루었던 벅 윌리엄스라는 선수가 있었는데 그린 역시 그런 부류의 선수입니다. 벅윌리엄스 포스팅에도서도 언급하였지만 이런 선수는 팀에 없어서는 안될 소금과 같은 존재입니다.....팬에게 그리 강하게 어필하는 선수는 아니지만 감독과 구단의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필요한 그러한 캐릭터의 선수이지요.....

대학 시절 퍼시픽-10 컨퍼런스 올해의 선수에 1회 선정되었고(1984), 1983~85년까지 3년 연속 All-Pac-10 1st Team에 선정되었습니다.

16시즌의 커리어 기간 동안 그는 총 세번의 우승을 경험하였고, 올스타 1회(1990), NBA All-Defensive 2nd Team 1회(1989) 선정되었습니다. 통산 1278경기 출장은 NBA 기준 역대 16위, ABA와 NBA를 합쳐서는 역대 18위에 해당하는 기록입니다.

그러나 그가 남긴 기록 중 가장 위대한 기록은 연속 경기 출장 기록일 것입니다. 그는 1986년 11월 19일 샌안토니오와의 어웨이 경기부터 시작하여 2001년 4월 18일 올랜도와의 원정 겅기까지 1192경기에 연속으로 출장하였습니다 이는 NBA와 ABA를 통틀어 역대 1위에 해당하는 위대한 기록입니다..... 아쉬운 점은 00-01시즌 종료 후 FA로 풀린 그가 처음에는 은퇴 의사 없이 소속팀을 물색하며 연속 경기 출장 기록을 이어가려 했지만 많은 나이로 인한 기량 하락과 연속 경기 기록에 대한 구단들의 부담으로 인해 결국 소속팀을 구하지 못해 기록이 더 이상 이어지지 못한 것이지요.....

메이저 리그에 칼립켄 주니어가 철인으로 존재하였다면 NBA에서의 철인은 바로 A.C. Green일 것입니다. 아쉬운 점은 그의 이 위대한 기록이 크게 주목받지 못한다는 것이겠지요.....

쓰다보니 이번 포스팅도 길어졌네요.... 그린에 대한 이야기는 이것으로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덧글

  • 에라이 2012/11/13 21:47 # 답글

    동자공으로 유명한 AC그린...현대자동차 딜러도 했었죠. 그래서 한국 와서 경기도 보고 간 적도 있습니다
  • 울프우드 2012/11/14 01:02 #

    아...그랬었나요? ㅎㅎ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
  • 홍차도둑 2012/11/13 23:10 # 답글

    그러기에 이런 선수들은 다시 기록되는 영광을 누려야 하지만...

    언론이나 일차적인 팬들은 화려함만 찾을 뿐이죠.
  • 울프우드 2012/11/14 01:01 #

    옳으신 말씀입니다 허나 너무나도 가치있고 소중한 기록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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