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설]1988년 서울 올림픽 한국 남자 농구 대표팀 전적 및 주요 선수 기록... 스포츠

쉬는 날이라 커피 한잔 마시며 노닥거리다 그냥 옛날 생각도 나고 해서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 한국 남자 농구 대표팀의 전적 및 주요 선수들 경기 기록을 한번 쭉 찾아봤습니다.... 그냥 옛 추억도 생각나고 하니 ㅎㅎ

일단 88년 서울 올림픽 당시 남자 농구 대표팀 명단은 최철권, 한기범, 허재, 김현준, 김윤호, 김유택, 이충희, 이문규, 이원우, 오세웅, 박종천, 유재학으로 구성되었군요.....

최종 성적은 12개 참가국 중 9위를 기록했습니다. 한국은 호주, 소련, 유고슬라비아, 푸에르토리코, 중앙 아프리카 공화국과 함께 A조에 편성되어 예선전을 치루었습니다. 예선전 전적은 88년 9월 18일에 열린 중앙 아프리카 공화국과의 첫 경기에서 73:70으로 패배, 그리고 9월 20일 열린 예선 2차전에서 푸에르토리코에게 79:74로 패배, 9월 21일에 열린 예선 3차전에서 유고슬라비아에게 104:92로 패전, 9월 23일에 열린 소련과의 예선 4차전에서도 110:73으로 패배, 그리고 88년 9월 24일 마지막 예선 5차전 경기에서도 호주에게 95:75로 패배하며 예선 전적 5패로 8강 진출에 실패하며 9~12위 결정전으로 밀렸습니다. 9~12위 결정전에서 먼저 중국을 93:90으로 이긴 대표팀은 이집트를 꺾고 9~10위 결정전에 진출한 중앙 아프리카 공화국에게 89:81로 승리를 거두며 최종 순위 9위를 기록하였습니다.

당시 대표팀의 센터진은 한기범, 김유택, 김윤호, 이문규, 박종천, 오세웅 등으로 구성되었고, 가드 및 포워드 진은 이충희, 김현준, 허재, 이원우, 최철권, 유재학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뭐 그야 말로 농구 대잔치 시절 전설들이었지요....

선수 구성을 보면 알수 있지만 당시 대표팀의 강점은 강력한 슈터들이 즐비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개인 기록에서도 빅맨들보다는 가드-포워드 진의 선수들의 활약이 눈에 띄네요.....

당시 대표팀의 에이스이자 한국 최고의 슈터였던 이충희 선수의 기록을 살펴보면.....

예선 첫 경기였던 중앙 아프리카 공화국과의 경기에서 12득점 2리바운드, 1어시스트, 1스틸을 기록하였고, 두번째 경기인 푸에르토리코 전에서는 23득점 1리바운드 2어시스트, 그리고 동유럽의 강호 유고슬라비아 전에서는 38득점 1리바운드 2어시스트를 기록하였습니다..(이 경기의 하이라이트 필름은 니튜브에서도 뒤져보니 나오더군요....), 소련과의 경기에서는 14득점 1리바운드, 1스틸, 예선 마지막 경기였던 호주전에서는 22득점 1어시스트를 기록하였습니다.

9~12위 순위 결정전 첫경기였던 중국전에서는 20득점 2리바운드 1어시스트 2스틸을 기록하였고, 9-10위 결정전이었던 중앙 아프리카 공화국 전에서는 31득점 5리바운드 2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89:81 승리에 기여하였습니다. 총 8경기에서 이충희의 평균 성적은 22.9득점. 1.7리바운드, 1.3어시스트였습니다.

그리고 이충희와 쌍벽을 이루었던 전자슈터 고 김현준 선수의 기록도 훌륭하군요. 그는 예선 1차전 12득점을 부진했던 이충희를 대신해 팀의 득점을 이끌며 30득점 2어시스트 1스틸을 기록하였습니다. 이어서 벌어진 푸에르토리코 전에서는 15득점 2리바운드 4어시스트, 유고슬라비아 전에서는 14득점 2어시스트, 소련전에서는 18득점 2어시스트를 기록하였고 호주전에서는 2득점 2리바운드 1어시스트를 기록하였습니다. 순위 결정전 첫경기였던 중국전에서는 24득점 1리바운드 2어시스트, 9-10위 결정전이었던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전에서는 23득점 1리바운드 6어시스트 2스틸로 맹활약을 펼쳤네요. 평균 기록은 평균 18득점, 0.9리바운드, 2.7어시스트였습니다.

참고로 88년 올림픽 당시에는 아마 삼점슛 룰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삼점 슛 룰이 있었다면 대표팀의 성적이 조금 더 오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드네요....(물론 그렇다고 8강에 진출한다던지 그런 것은 아니었을테지만요....)

그리고 당시 농구 천재 소리를 들으며 이충희 김현준 양강 체제를 뒤흔들어놓았던 올라운드 플레이어 허재 역시 훌륭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허재는 예선전 중앙 아프리카 전에서 9득점 6리바운드 3스틸을 기록하였고, 푸에르토리코 전에서는 16득점 4리바운드 4어시스트 2스틸을, 그리고 유고슬라비아 전에서는 23득점 2어시스트 그리고 무려 7개의 스틸을 기록하며 대표팀이 유고슬라비아와 12점 차이의 접전(?) 펼치는데 크게 공헌하였습니다. 소련전에서는 10득점 1리바운드 2어시스트 3스틸을 기록하였고, 예선 마지막 경기였던 호주전에서는 21득점 4리바운드 1스틸을 기록하였습니다. 중국과의 순위 결정전 첫 경기에서는 21득점 2리바운드 1어시스트 2스틸, 중앙 아프리카 공화국과의 9-10위 결정전에서는 20득점 7리바운드 1어시스트 5스틸을 기록했군요.

서울 올림픽 7경기 동안 허재의 기록은 평균 17.1득점, 3.4리바운드, 1.4어시스트, 3.3스틸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한국에서 코트의 여우로 불리우며 영리한 플레이의 대명사로 일컫어졌던 고 이원우는 일곱 경기에서 3.6득점, 1.1리바운드로 많이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었군요....

일단 가드-포워드 진에 속한 선수들 중 이충희, 허재, 그리고 고 김현준은 올림픽 무대에서 세계적인 강호들을 상대로 나름 자신들의 실력을 확실히 보여주며 맹활약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당시 대표팀 빅맨의 양대축이었던 김유택과 한기범 선수의 활약을 기록으로 살펴보면.....(한기범 선수의 당시 하드웨어는 신장 207cm로 국내 최장신 빅맨이었습니다....허나 웨이트가 85kg...어쩔...ㅠㅠ)

한기범은 올림픽 7경기에 모두 출장하여 평균 2.9득점, 2.0리바운드를 기록하였습니다. 아쉬운 점은 최장신 센터임에도 불구하고 일곱 경기 중 세 경기에서 단 한개의 리바운드도 기록하지 못했다는 부분이군요.

그리고 당대 최고의 빅맨으로 일컫어졌던 김유택 선수는 비교적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당시 A조에 속한 팀들 중 팀의 평균 신장 및 빅맨진의 사이즈에서 가장 떨어졌던 팀이 한국팀이라는 사실은 주지의 사실이었습니다. 김유택 선수의 신장은 197cm, 체중은 78kg으로 하드웨어적으로 도저히 상대 빅맨들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지만 그는 유연한 스탭과 테크닉으로 경쟁력있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김유택 선수는 예선전에서 중앙 아프리카전 4득점 3리바운드 1어시스트 2스틸을 기록하였고, 푸에르토리코 전에서는 11득점 6리바운드 1어시스트 2블락슛, 그리고 유고슬라비아 전에서는 10득점 7리바운드 1어시스트 1블락슛을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당대 최고의 센터인 사보니스가 버틴 소련과의 경기에서는 6득점 10리바운드 1스틸을 기록하였으며 호주전에서는 13득점 9리바운드 3스틸로 선전하였습니다.

그리고 중국과의 순위 결정전에서는 17득점 12리바운드 2어시스트 1스틸 3블락슛을 기록하며 대표팀의 골밑을 든든히 지켜내며 중국전 승리를 뒷받침하였습니다. 일곱경기에서 김유택은 평균 9득점, 7.4리바운드, 1.1블락슛을 기록하며 허약한 대표팀의 골밑에서 기둥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한기범이 제역하을 못해주었던 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오히려 김유택과 함께 대표팀의 골밑을 사수했던 선수는 190cm의 단신 빅맨이었던 당시 현대 전자의 이문규였습니다. 이문규는 중앙 아프리카 전에서 5득점 9리바운드 1스틸, 푸에르토리코 전에서 3득점 4리바운드 3어시스트, 유고슬라비아 전에서는 4득점 5리바운드 1어시스트, 소련 전에서는 4득점 5리바운드 1스틸, 호주전에서도 2득점 4리바운드 1어시스트를 기록하였고, 순위 결정전 첫 경기였던 중국전에서는 5득점 7리바운드 1어시스트 3스틸을 기록하였으며, 9-10위 결정전이었던 중앙 아프리카 전에서는 9득점 11리바운드 1어시스트 1스틸 2블락슛으로 좋은 활약을 펼쳤습니다. 득점은 그리 많이 하지 못했지만 매 경기 평균적으로 다섯개 이상의 리바운드를 걷어내며 대표팀에 힘을 실어주었군요. 일곱 경기에서 평균 4.6득점, 6.4리바운드, 1.0어시스트로 나름 의미있는 활약을 펼쳤습니다. 리바운드는 당시 대표팀 선수들 중 김유택에 이은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군요.....

88년 대표팀은 물론 개최국 자격으로 본선에 진출하였다고는 하나 세계의 강호들을 상대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역량을 충분히 펼쳐보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당대 한국 농구의 에이스 플레이어들이었던 허재, 이충희, 고 김현준은 유럽과 아프리카 등의 장신 선수들을 상대로도 주눅들지 않고 멋지고 훌륭한 플레이를 선보이며 팬들을 즐겁게 해주었지요.....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한국 농구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올림픽   본선 무대에 진출하지 못하였습니다. 한때 중국에 이어 아시아 농구의 2인자를 자처하였던 한국이지만 2000년대 이후부터는 급성장한 중동세에 훅~하고 밀려버리며 이젠 아시아 농구에서도 2류 팀 정도로 전락한지 오래되었지요.....

많은 부분들에서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1997년 농구 역시 프로화를 거치며 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갈수록 한국 농구의 인기는 하락하고 있으며 국제 경쟁력에서도 갈수록 힘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80-90년대 농구와 2000년대 이후 농구에서 선수들의 모습을 비교해보면 확실히 하드웨어적으로는 훨씬 더 좋아졌지만 선수들의 개인 기량에서는 떨어지는 모습이 보이는 것 역시 사실이고요.....

국내 농구 판에서야 용병 박아두고 국내 선수들은 수비와 패턴 플레이에 의한 득점에만 치중하다보니 국제 무대에 나가 용병 없이, 또한 패턴 플레이도 멱혀들지 않는 상대들과 붙으면 득점을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 자체가 전무하다는 것은 현 한국 남자 농구 대표팀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 사람의 농구 팬으로서 한국 농구가 국내 리그에서는 좀 더 재밌고 흥미진진한 리그가 되었으면 좋겠고, 국제 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떠나 경쟁력있는 모습을 보이며 팬들에게 감동과 즐거움을 선사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이상 뜬금없이 주절주절 거린 두서없는 포스팅 마무리하겠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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