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 추억의 선수-타고난 재능을 나태함으로 날려먹은 데릭 콜먼.. 스포츠

오늘 살펴볼 선수는 90년대 초중반 리그를 대표하는 젊은 파워 포워드 중 한명이었던 뉴저지 네츠(지금은 브룩클린이지요)의 데릭 콜먼입니다....

네츠 시절 평균 +20득점, +10리바운드를 언제든지 기록할 수 있는 능력을 선보이며 포인트 가드인 케니 엔더슨과 함께 위력적인 원투 펀치로 시카고, 뉴욕 등의 동부 컨퍼런스의 대표적인 강호들과 경쟁하였던 능력있는 파워 포워드였지요... 하지만 이 선수는 자신의 타고난 재능을 부상과 나태함으로 날려먹은 안타까운 플레이어이기도 했습니다.

그럼 이 선수의 커리어에 대해 한번 살펴보도록 하지요.....

1967년 생인 데릭 콜먼은 이미 고등학교 시절부터 재능있는 빅맨으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그리고 그는 86년 시라큐스 대학으로 진학하여 NCAA 무대에서 자신의 존재를 어필하기 시작하지요.

1학년 시절 콜먼은 모두 38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30.6분을 소화하는 가운데 필드골 성공률 56%, 평균 11.9득점, 8.8리바운드, 1.2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신입생으로는 무난한 활약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2학년 시절에는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되어 35경기에서 필드골 성공률 58.7%, 평균 13.5득점, 11.0리바운드, 2.2어시스트로 더블-더블을 기록할 수 있는 빅맨으로 성장하였지요. 3학년 시절에는 37경기에서 필드골 성공률 57.5%, 평균 16.9득점, 11.4리바운드, 2.9어시스트를 기록하며 공수 양면에서 한층 더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4학년 시절, 콜먼은 33경기에서 필드골 성공률 55.1%, 3점슛 성공률 36.6%(41개 시도 15개 성공), 평균 17.9득점, 12.1리바운드, 2.9어시스트로 성공적인 활약을 펼쳤지요.

신장 208cm, 체중 104kg, 4번으로서 좋은 신체조건에 득점과 리바운드 능력을 두루 갖춘 선수를 마다할 팀이 리그에 어디에 있겠습니까.... 대학을 마친 콜먼은 1990년 드래프트에 나왔고, 당시까지 하위권을 전전하던 뉴저지 네츠는 자신들의 1라운드 1번 픽을 콜먼에게 행사하게 됩니다.

그의 NBA 입성과 관련하여 전문가들은 그의 능력을 당시 리그 최고의 엘리트 4번이었던 말론, 바클리와 비교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단, 그의 슈팅 범위가 좀 더 넓어질 수 있다는 전제하에서 말이죠....

또한 대학 시절부터 언쟁이나 소동을 자주 일으켰던 그의 행동 혹은 태도들에 대해서도 많은 지적들이 있었지요....

이러한 기대와 우려 속에서 그는 90-91시즌, 리그에 데뷔하며 루키 시즌을 소화하게 됩니다. 루키 시즌 그의 기록은 74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35.2분, 필드골 성공률 46.7%, 평균 18.4득점, 10.3리바운드, 2.2어시스트, 1.0스틸, 1.3블락슛이었습니다. 그는 데뷔하자 마자 더블-더블의 평균 기록을 작성하며 단숨에 엘리트 파워 포워드로서의 면모를 과시하였지요. 허나 당시 약체였던 네츠가 콜먼이라는 루키 플레이어 활약 하나 만으로 플옵에 진출하기는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콜먼의 두번째 시즌.... 팀은 플옵에 도전하기 위한 대대적인 전력 강화에 돌입하게 됩니다. 1991년 드래프트에서 네츠는 콜먼과 짝을 이룰 수 있는 능력있는 포인트 가드를 픽하는데 성공합니다. 1라운드 2번 지명권을 가지고 있었던 네츠는 케니 엔더슨을 지명, 이후 90년대 중반까지 콜먼과 함께 강력한 원투 펀치를 이룰 수 있는 조합을 구성하는데 성공한 것이지요. 동시에 이들과 함께 크리스 모리스, 무키 블레이락과 같은 패기 넘치는 선수들을 중심으로 베테랑이었던 드로이젠 패트로비치, 샘 보위, 테리 밀스, 크리스 더들리와 같은 선수들을 통해 경험의 약점을 커버하려 하였습니다.

또한 신임 감독으로 디트로이트 베드 보이즈를 이끌었던 척 데일리를 영입하였지요.....

91-92시즌, 콜먼은 잔부상 등으로 인해 65경기에 출장하는데 그쳤으나, 평균 34.0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50.4%, 평균 19.8득점, 9.5리바운드, 3.2어시스트, 1.5블락슛을 기록하며 소포모어 징크스에 대한 우려를 날려버릴 정도의 활약을 펼쳤습니다. 동시에 팀은 40승 42패를 기록하며 하위 시드로 플옵 1라운드에 진출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 마크 프라이스-브레드 도허티가 이끄는 클리블랜드와 맞붙은 뉴저지는 1승 3패로 결국 플옵에서 탈락하고 말지요.

하지만 만년 하위권 팀이었던 뉴저지의 입장에서 그들의 플옵 1라운드 진출만 해도 상당히 의미있는 결과물이었습니다.

데뷔 이후 첫 두 시즌을 성공적으로 보낸 콜먼은 92-93시즌, 이전 두 시즌에 비해 좀 더 좋은 모습과 기량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76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36.3분을 소화하는 가운데 필드골 성공률 46.0%, 평균 20.7득점, 11.2리바운드, 3.6어시스트, 1.2스틸, 1.7블락슛을 기록하며 데뷔 후 가장 건강하고 좋은 모습을 보여줌과 동시에 엘리트 파워 포워드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20득점, +10리바운드를 기록하였지요.

콜먼의 활약과 함께 팀은 43승 39패, +5할 승률에 성공하며 두 시즌 연속 플옵에 진출하였습니다. 1라운드 상대는 전 시즌과 동일하게 클리블랜드(당시 클리블랜드는 마사장이 이끄는 시카고 불스의 호구로 인식되는 경향이 크지만 매시즌 플옵 컨덴더의 위치를 놓치지 않는 강팀이었습니다...) 콜먼의 네츠는 클리블랜드와 5차전까지 가는 승부를 펼쳤지만 최종 전적 2승 3패로 결국 탈락하고 말지요.

93-94시즌, 콜먼은 77경기에 출장하며 계속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평균 36.1분을 플레이하며 필드골 성공률 44.7%, 3점슛 성공률 31.4%, 평균 20.2득점, 11.3리바운드, 3.4어시스트, 1.8블락슛으로 공수 양면에서 팀을 이끌었습니다. 동시에 두 시즌 연속 +20득점, +10리바운드의 기록을 이어갔지요. 이러한 콜먼의 활약을 바탕으로 팀은 45승 37패로 세시즌 연속 플옵 진출에 성공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번 1라운드 상대는 지역 라이벌이기도 했고 동시에 클리블랜드보다 더 강력했던 유잉의 뉴욕 닉스였지요. 결국 콜먼과 네츠는 닉스의 벽을 넘지 못하고 1승 3패로 세시즌 연속 1라운드에서 탈락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네츠와 콜먼의 좋은 시절은 93-94시즌이 마지막이었습니다. 94-95시즌 시작 전, 네츠는 팀 내부적으로 좋지 못한 악재들이 연달아 일어났습니다. 세시즌 동안 팀을 플옵 컨덴더로 키워낸 척 데일리 감독이 팀을 떠나며 그 자리는 신임 감독 버치 브레드가 대체하였습니다. 그리고 93년 여름, 베테랑이자 팀의 리더였던 슈팅 가드 페트로비치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으며, 많은 선수들이 트레이드, 혹은 프리에이전트 이적으로 팀을 떠나게 되었지요.....

팀은 콜먼이 팀의 리더 역할을 해주기를 바랐지만, 콜먼은 그 역할을 해주지 못하였습니다. 오히려 신임 감독과 이런 저런 문제로 언쟁을 벌임과 동시에 주전 포인트 가드 케니 엔더슨과의 관계도 틀어지게 되면서 네츠는 네츠의 팀 분위기는 시즌 시작 전 부터 최악으로 치닫고 맙니다.

감독과의 불화와 부상까지 겹친 콜먼은 이 시즌 56경기 출장에 그쳤습니다. 물론 그의 개인 성적은 나무랄데 없었습니다. 콜먼은 56경기에서 평균 20.5득점, 10.6리바운드, 3.3어시스트, 1.7블락슛으로 세시즌 연속 +20득점, +10리바운드 시즌을 이어갔습니다. 허나 팀은 30승 52패로 무너지며 플옵 진출에 실패하며 다시 하위권으로 추락하게 됩니다.

그리고 시즌 종료 후 팀은 뛰어난 기량에도 불구하고 팀 케미스트리에 해악을 끼치는 그를 결국 트레이드 하기로 결정하게 됩니다.

95-96년 시즌 초반이었던 11월 30일, 콜먼과 션 히긴스, 렉스 월터스를 필라델피아로 보내고 필라델피아로부터 장신 센터 숀 브레들리와 그렉 그라함, 팀 페리를 데려오는 3:3 트레이드를 단행하였습니다. 허나 콜먼은 부상 등으로 인해 이 시즌 11경기 출장에 그쳤고, 평균 11.2득점, 6.5리바운드를 달랑 기록하며 데뷔 이후 최악의 시즌을 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96-97시즌 개막 전, 필라델피아의 팬들은 큰 기대에 부풀게 됩니다. 팀은 96년 드래프트에서 단신이지만 발군의 득점력과 센스를 갖춘 앨런 아이버슨을 영입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기존의 스택하우스와 위더스푼, 그리고 엘런 아이버슨에 더해 콜먼이 건강을 회복하여 네츠 시절 만큼의 모습만 보여준다면 플옵 진출도 가능할 정도의 전력을 갖춘 상황이 왔기 때문이지요.

이 시즌 콜먼은 여전히 부상을 달고 살며 57경기 출장에 그쳤지만 평균 36.9분을 소화하며 평균 18.1득점, 10.1리바운드, 3.4어시스트, 1.3 블락슛을 기록하며 외형적으로 네츠 시절에 근접한 개인 기록을 남겼습니다. 아이버슨은 루키 임에도 불구하고 76경기에서 평균 23.5득점, 4.1리바운드, 7.5어시스트, 2.1스틸로 올스타급 가드의 활약을 펼쳤고, 스택하우스 역시 81경기에서 20.7득점, 4.2리바운드, 3.1어시스트를, 위더스푼은 82경기에서 12.2득점, 8.3리바운드의 준수한 활약을 펼쳤지요.

하지만 팀은 22승 60패의 처참한 승률을 기록하며 최하위권에서 벗어나질 못했습니다. 동시에 콜먼은 계속해서 경기 내외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기에 바빴으며, 과도한 음주 등으로 인한 자기 관리 실패로 체중이 불어나며 네츠 시절 만큼의 파워와 운동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필라델피아는 97-98시즌, 명장 레리 브라운 감독을 영입하고 로스터에 변화를 주며 팀 체질 개선에 들어가게 됩니다. 콜먼은 아이버슨에 이어 팀의 제 2 공격 옵션을 맡았지만, 그의 부실한 자기 관리 능력으로 인해 여전히 부상을 달고 살며 팀에 큰 힘을 실어주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59경기에서 평균 17.6득점, 9.9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외형적인 기록은 괜찮게 유지하였지만, 이 시즌 그의 필드골 성공률 41.1%에 불과할 정도로 공격의 효율성 적인 측면에서는 최악이었습니다.

결국 시즌 종료와 함께 팀은 콜먼과의 재계약을 포기하였고, 그는 프리에이전트 자격을 획득하였지만 잦은 부상과 부실한 자기 관리, 잦은 돌출 행동으로 팀 케미스트리에 해악을 끼치는 그에게 선뜻 계약서를 내미는 팀은 없었습니다.

1999년 1월 21일, 시즌 중 그는 간신히 샬럿 호네츠와 계약을 하는데 성공하며 경기에 출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허나 그는 37경기에 출장하여 13.1득점, 8.9리바운드로 부진하며 호네츠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였습니다.

99-00시즌, 그는 오랜만에 건강을 회복하며 74경기에 출장하였습니다. 평균 기록은 16.7득점, 8.5리바운드.... 가지고 있는 재능이 있기에 준수한 기록은 남겼지만 네츠 시절 파워와 운동 능력을 앞세워 역동적인 플레이를 하던 리그 최고 레벨의 4번은 더 이상 없었습니다.

00-01시즌, 그는 시즌 내내 부상을 달고 살며 34경기에 출장하는데 그쳤고, 필드골 성공률 38.0%, 평균 8.1득점, 5.4리바운드만을 기록, 더 이상 팀에 필요없는 존재가 되고 맙니다. 호네츠는 그가 투입된 34경기에서 12승 22패로 부진하였고, 그가 빠진 경기에서는 34승 14패를 기록하였습니다. 이쯤되자 호네츠도 그에 대한 인내심에 한계를 보이며 그를 포기하게 됩니다.

2001년 10월 25일 샬럿 호네츠는 필라델피아와 골든 스테이트와 함께 삼각 트레이드를 단행하게 됩니다. 이 결과 콜먼은 자신의 두번째 팀이었던 필라델피아로 다시 돌아오게 되지요.

01-02시즌, 그는 비교적 건강을 되찾으며 58경기에 출장하여 15.1득점, 8.8리바운드로 마지막 불꽃을 태웠지만 여기까지였습니다.

02-03시즌, 그는 68경기에 출장하였지만 절반 이상의 경기에서 식스맨으로 투입되었고 평균 9.4득점, 7.0리바운드를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03-04시즌, 또다시 부상을 달고 살며 34경기 출장에 그쳤으며 평균 8.0득점, 5.6리바운드를 기록하는데 그쳤습니다.

2004년 8월 4일 필라델피아는 아말 멕카스킬(응?)과 콜먼을 디트로이트로 보내고 콜리스 윌리암슨을 받아오는 트레이드를 단행하였고, 콜먼은 04-05시즌 디트로이트에서 다섯 경기만을 소화한채 2005년 1월 5일 방출되며 그의 커리어를 마감하게 됩니다.

커리어 기간은 총 15시즌, 781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33.2분, 필드골 성공률 44.7%, 16.5득점(12884득점), 9.3리바운드(7232리바운드), 2.5어시스트(1985어시스트), 1.3블락슛(1051블락슛)의 통산 기록을 남겼습니다.

1991년 Rookie of the year, All Rookie 1st Team에 선정되었고, 올스타 1회(1994), 2번의 All NBA 3rd Team에 선정되었습니다. 그리고 1994년 드림팀 2의 일원으로 세계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여 금메달도 획득했습니다.

이 선수를 생각하면 늘상 아쉽습니다. 4번으로서는 이상적인 사이즈에 보드 장악력과 득점력도 모두 뛰어났으며, 패싱 센스도 있었습니다. 타고난 하드웨어와 포텐만으로 본다면 말론과 비견될 정도의 선수로 성장할 잠재력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었지만, 그놈의 성격 때문에 폭망한 대표적인 케이스의 선수이기 때문이지요.

커리어 기간 내내 그가 보여준 불성실한 태도와 팀 메이트 혹은 상대 선수들과 트러블, 감독들과의 불화, 동시에 클럽하우스 캔서라는 별명까지.....
뭐 그 누구의 책임도 아닙니다. 타고난 재능을 방탕한 생활과 태도로 소진한 그의 잘못이지요.....

은퇴 이후의 생활도 그리 순탄하지 못하였습니다. 커리어 15년 동안 연봉으로만 8700만 달러를 벌어들인 그였지만 은퇴 이후 거듭된 사업 실패와 방탕한 생활로 파산 선고까지 받으며 힘겹게 생활했더군요.....

타고난 재능도 중요하지만 그 재능을 유지하고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부단한 자기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 전형적인 선수가 아닌가 싶습니다.....(뭐 그런 선수 한둘이겠습니까마는....)

마지막으로 구린 화질의 믹스 영상 링크 하나 걸면서 포스팅 마무리합니다.

데릭콜먼 커리어 믹스 영상



덧글

  • BJH48 2012/12/16 02:41 # 답글

    앤써와 한솥밥 먹던 시절 플레이를 보면 볼 핸들링만 봐도 그래도 클래스를 엿볼 수 있던 선수였는데 말이죠. 그나저나 적잖은 돈을 벌어놓고도 파산이라니.. '영 말론'의 추락이군요.
  • 울프우드 2012/12/16 07:33 #

    그렇지요... 선수로서 가지고 있는 포텐셜과 기량 자체의 클래스는 훌륭했으나, 팀원들과 제대로 섞이지 못하며 항상 문제를 일으키며, 또한 자기 관리라는 개념 자체가 거의 없는 선수가 되다 보니 현역 시절에도, 은퇴 이후에도 결국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안타까운 선수지요...
  • 홍차도둑 2012/12/16 03:08 # 답글

    단체경기에서는 개인의 기량이 뛰어나더라도 팀에 잘 융화되고 팀 전체로서의 효율이 이야기 될 수 밖에 없는 부분이긴 한데...이런 선수들을 보게 되면 참...기분이 착찹해져요...
  • 울프우드 2012/12/16 07:34 #

    아쉽고 안타깝고 착찹하고 그렇지요 ㅠㅠ
  • 곰돌군 2012/12/17 11:25 # 답글

    데릭 콜먼.. 파워 포워드 인데도 슛 셀렉션이 상당히 부드러워서 인상적이었는데..

    위에서 엘런 아이버슨 이야가 나왔으니 말인데, 96시즌에 루키였던 아이버슨과

    그랜트 힐의 디트로이트 전 하이라트 영상이 마침 유튜브에 있어서 오늘 아주 재미있게

    봤네요. 두선수 모두 건강하고 팔팔하던 시절이라 아주 그냥 움직임이..(...)

    그거 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95-96 시카고 불스와 올랜도 매직의 경기도 보게 되고..(.....)

    정말 90년대 NBA 경기는 캐도캐도 노다지가 쏟아지는 광맥같습니다.

    슬램덩크에서 나왔던 강백호와 서태웅의 "너한텐 안줘" 패스 씬이 저 경기에서 데니스

    로드맨과 마이클 조던사이에 나왔던 실제 장면이란건 안 비밀.
  • 울프우드 2012/12/17 14:16 #

    참 좋은 재능을 가진 선수였는데 아까웠던 선수죠....

    곰돌군님 말씀처럼 90년대 NBA 경기들은 찾아보면 찾아볼수록 명경기들이 쏟아지는 광맥같은거죠 ㅎㅎ

    로드맨과 마이클 조던 사이에 나왔던 장면.... 안 비밀이죠 ㅋ
댓글 입력 영역



통계 위젯 (블랙)

04
28
2720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