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 추억의 선수-강력한 수비력으로 기억되는 포인트 가드 무키 블레이락 스포츠

야구 시즌이 끝나고 나니 확실히 농구 관련 글을 자주 올리게 되는군요.....

오늘도 갑작스럽게 한명의 선수가 떠올라 급하게 한번 포스팅을 작성해봅니다.....

오늘 살펴볼 추억의 NBA 선수는 90년대 애틀랜타 호크스의 주전 포인트 가드로 패스와 수비에서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작지만 단단했던 포인트 가드 무키 블레이락입니다....

아마 90년대 NBA 경기를 많이 보셨던 분들이라면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폭발적인 득점력이나 화려함을 갖춘 선수는 아니었지만 공수에서 항상 기복없이 꾸준함을 보여주었던 수준급 포인트 가드였지요..... 그러면 지금부터 이 선수의 커리어에 대해 간단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미들랜드 대학 출신으로 신장 183cm, 82kg의 신체조건을 갖춘 이 단단한 포인트 가드는 대학 시절 4년간 총 141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18.1득점, 4.1리바운드, 5.6어시스트를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대학 3, 4학년 2년 동안 74경기에서 281스틸(평균 3.8스틸)을 기록할 정도로 강력한 수비력을 자랑하는 선수였습니다.(자료를 찾아보니 1, 2학년 시절의 스틸 기록은 나와있지 않군요....)

신체 조건은 NBA에서 플레이하기에 조금 부족해보이기도 하였지만 그가 대학 무대에서 보여준 공수에 걸친 능력, 그리고 정확한 3점슛 능력은 많은 팀들이 탐낼만한 것이었습니다(3학년 시절 3점슛 성공률 38.8%, 4학년 시절 37.1%)... 그리고 필드골 성공률도 대학 4년간 49.5%를 기록하는 등 수비뿐 아니라 공격 능력에서도 뛰어난 기량을 갖춘 선수였지요.

이러한 대학 시절의 성과를 바탕으로 그는 1989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12번으로 뉴저지 네츠(현재 브루클린 네츠)의 지명을 받게 됩니다.(원래 1라운드 12번 픽은 포틀랜드가 가지고 있었는데, 1989년 7월 23일에 이루어진 포틀랜드와 뉴저지 사이의 트레이드 과정에서 포틀랜드는 뉴저지의 파워 포워드 벅 윌리엄스를 영입하며 센터 샘 보위와 89년 1라운드 픽을 뉴저지에 넘겨주었습니다...)

당시 뉴저지는 한 시즌 30승 달성도 버거울만큼 동부 컨퍼런스의 대표적인 약팀이었지요.....

블레이락은 89-90시즌, 뉴저지에서 루키 시즌을 맞이하게 됩니다. 첫시즌 블레이락은 50경기에 주로 교체 멤버로 출장하였습니다(선발 17경기). 평균 25.3분의 플레이 타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45.5%, 3점슛 성공률 22.5%, 평균 10.1득점, 2.8리바운드, 4.2어시스트, 1.6스틸을 기록하며 루키로서는 나쁘지 않은 활약을 펼쳤습니다(어시스트와 스틸은 팀내 2위의 기록).... 허나 팀은 17승 65패라는 처참한 성적을 기록하며 무너졌습니다.

90-91시즌, 뉴저지는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리그 최고의 파워 포워드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춘 데릭 콜먼을 데려오며 전력을 강화하였습니다. 동시에 무키 블레이락은 자신의 두번째 시즌부터 식스맨이 아닌 팀의 주전 포인트 가드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72경기 출장, 선발 70경기).....

첫 주전 시즌이었던 90-91시즌, 블레이락은 평균 35.9분을 소화하는 가운데. 필드골 성공률 41.6%, 평균 14.1득점, 3.5리바운드, 6.1어시스트, 2.3스틸을 기록하며 공수에서 팀을 이끌었습니다만 네츠는 전년도와 별 차이 없는 26승 56패의 낮은 승률로 플옵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고 시즌을 마무리하게 됩니다.

세번째 시즌인 91-92시즌, 네츠는 지난 두 시즌과는 달리 플옵 진출을 두고 경쟁을 펼치게 됩니다. 블레이락은 이 시즌 72경기에 출장(선발 67경기), 평균 35.4분을 소화하는 가운데 필드골 성공률 43.2%, 평균 13.8득점, 3.7리바운드, 6.8어시스트, 2.4스틸을 기록하며 꾸준히 제몫을 다하였고, 네츠는 평균 20.6득점을 기록하며 팀 공격을 이끈 페트로비치와 평균 19.8득점, 9.5리바운드로 골밑을 든든히 지킨 데릭 콜먼, 그리고 블레이락의 활약을 바탕으로 40승 42패를 기록, 드디어 플옵 1라운드에 진출하였습니다. 하지만 1라운드에서 클리블랜드에게 1승 3패로 밀리며 탈락.....

첫 플옵 무대여서 그랬는지 블레이락은 시리즈 4경기에서 평균 37.0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30.9%, 평균 9.5득점, 4.0리바운드, 7.8어시스트, 3.8스틸로 부진하였습니다. 어시스트와 스틸은 정규 시즌 보다 나았지만 문제는 공격력에서 심각할 정도로 부진하였다는 것이지요.

뉴저지 구단은 이 시즌이 끝나자마자 과감한 결정을 내립니다. 이미 팀에는 1991년 1라운드 2번 픽으로 데려온 케니 앤더슨이라는 젊고 뛰어난 잠재력을 갖춘 포인트 가드가 있었지요. 블레이락 역시 준수한 PG였습니다만 결국 케니 엔더슨과의 포지션 충돌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 결과 1992년 11월 3일, 뉴저지는 블레이락을 애틀랜타 호크스로 트레이드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이 트레이드는 블레이락 입장에서는 좋은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의 전성기 시절이 바로 애틀랜타 시절부터 시작되기 때문이지요.....

조던 시대 이전 리그 최고의 득점 머신이자 화려한 플레이의 대명사였던 도미니크 윌킨스를 중심으로 하고 있었던 호크스는 뉴저지에 비해 팀 전력이나 분위기가 훨씬 더 좋은 팀이었습니다.

블레이락은은 트레이드 후 맞이한 첫 시즌인 92-93시즌, 애틀랜타의 주전 포인트 가드로 기용되었습니다. 이 시즌 그는 80경기에 출장, 평균 35.3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42.9%, 3점슛 성공률 37.5%, 평균 13.4득점, 8.4어시스트, 3.5리바운드, 2.5스틸을 기록하며 호크스의 공수에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호크스는 43승 39패를 기록하며 플옵에 진출하였지만 그분의 시카고 불스에게 0승 3패로 스윕당하며 2라운드 진출에는 실패하게 됩니다. 블레이락 역시 전 시즌 플옵 무대와 마찬가지로 시리즈 세 경기에서 정규 시즌에 비해 많이 부진한 모습을 이어갔습니다. 그는 시리즈 세경기 동안 평균 33.0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36.0%, 3점슛 성공률 33.3%, 평균 9.0득점, 4.3리바운드, 4.3어시스트, 1.3스틸만을 기록하며 부진하였습니다.

93-94시즌, 블레이락은 81경기에 모두 선발로 출장하여 평균 36.0분을 소화하였습니다. 필드골 성공률 41.1%, 3점슛 성공률 33.4%, 평균 13.8득점, 9.7어시스트, 5.2리바운드, 2.6스틸을 기록하였는데, 득점을 제외한 나머지 기록들은 모두 데뷔 후 최고의 기록들이었습니다.

애틀랜타는 57승 25패라는 좋은 성적으로 플옵에 진출, 1라운드에서 마이애미 히트를 3승 2패로 꺾고 2라운드에 진출하는데 성공하게 됩니다. 하지만 2라운드에서 레지 밀러의 인디애나 페이서스에 2승 4패로 무너지며 시즌을 마감하게 되지요....

블레이락은 이전 세번의 플옵 시리즈에 비해서는 좋은 활약을 펼쳤습니다. 그는 플레이오프 11경기에 출장, 평균 37.7분을 소화하며 평균 13.0득점, 5.0리바운드, 8.9어시스트, 2.2스틸을 기록하며 플옵 무대에서는 항상 약하다는 그에 대한 평가를 일정부분 걷어내는데 성공하였습니다.

94-95시즌, 블레이락은 공격적인 측면에서 이전에 비해 한단계 올라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는 이 시즌 80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38.4분, 필드골 성공률 42.5%, 3점슛 성공률 35.9%, 평균 17.2득점, 7.7어시스트, 4.9리바운드, 2.5스틸을 기록하였습니다. +15득점을 기록한 것은 데뷔 이후 처음이었지요.

팀은 42승 40패로 간신히 플옵에 진출하였지만, 인디애나에게 0승 3패로 스윕을 당하며 일찌감치 탈락하고 맙니다. 블레이락은 시리즈 세경기에서 평균 18.0득점, 4.3리바운드, 5.7어시스트, 1.3스틸로 분전하였지만 팀의 탈락을 막지는 못하였습니다.

95-96시즌, 그는 상대적으로 조금 부진한 시즌을 보내게 됩니다. 이 시즌 그는 81경기에 출장하여 필드골 성공률 40.5%, 3점슛 성공률 37.1%를 기록하며 평균 15.7득점, 4.1리바운드, 5.9어시스트, 2.6스틸을 기록하였습니다. 루키 시즌을 제외하면 매시즌 +6.1개 이상의 어시스트를 기록하였고, 또한 이전 시즌까지 세지즌 연속 +7.5어시스트를 기록한 그였지만 이 시즌 어시스트 숫자가 줄어들어버린 것이지요...... 허나 팀은 전년에 비해 향상된 46승 36패의 성적으로 플옵에 진출하였고, 1라운드에서 이전 플옵 무대에서 탈락의 아픔을 주었던 인디애나에게 3승 2패로 설욕하며 2라운드에 진출하는데 성공합니다. 허나 2라운드에서는 샤킬 오닐과 페니 하더웨이가 버티는 올랜도에 1승 4패로 무너지며 컨퍼런스 파이널 진출에는 실패하게 됩니다.

허나 블레이락은 플옵 시리즈 10경기에 모두 출장하여 평균 42.6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42.1%, 평균 17.1득점, 4.3리바운드, 6.4어시스트, 2.2 스틸, 0.8블락슛으로 자신의 역대 플옵 시리즈 플레이 중 최고의 활약을 펼쳤습니다.....

96-97시즌, 블레이락은 78경기에 출장하였습니다. 플레이 타임은 평균 39.2분이었으며(커리어 하이), 필드골 성공률은 43.2%로 역시 데뷔 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하였습니다. 3점슛 성공률은 36.6%. 평균 득점은 17.4득점이었으며, 5.3리바운드, 5.9리바운드, 2.7스틸을 기록하였습니다. 당시 그가 기록한 2.7스틸은 리그 1위의 기록이었지요. 그는 데뷔 후 처음으로 타이틀 홀더가 되는 기쁨도 누렸습니다.

게다가 이 시즌, 구단은 리그 최고의 센터인 무톰보를 영입하는데 성공하며 블레이락-스티브 스미스-레이트너-무톰보로 이어지는 탄탄한 라인업을 구성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그 결과 팀은 56승 26패의 우수한 성적으로 플옵 무대에 진출하였습니다.

1라운드에서 그랜트힐과 조 듀마스가 이끄는 디트로이트 피스톤스를 접전끝에 3승 2패로 물리치고 2라운드에 진출...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2라운드 상대가 좋지 못했습니다.....

2라운드 상대는 당시 역사상 최강의 팀이라고까지 불렸던 시카고 불스... 조던-피펜-토니 쿠코치-데니스 로드맨-론 하퍼로 이어지는 불스의 라인업은 당시 공포였습니다..... 결국 블레이락과 애틀랜타는 1승 4패로 불스에게 시리즈를 내주며 전시즌과 마찬가지로 2라운드에서 시즌을 마무리하게 됩니다.

블레이락은 플옵 시리즈 10경기에서 평균 44.1분, 필드골 성공률 39.6%, 3점슛 성공률 32.9%, 평균 16.4득점, 7.0리바운드, 6.5어시스트, 2.1스틸을 기록하였습니다.

97-98시즌... 블레이락도 30세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이 시즌부터 그의 공격력은 빠르게 무뎌지기 시작합니다. 그는 70경기에 출장, 평균 38.6분을 소화하며 평균 13.2득점, 6.7어시스트, 4.9리바운드, 2.6스틸(리그 1위)을 기록하였습니다. 두 시즌 연속 스틸 1위를 기록할 정도로 그의 수비력은 좋았습니다만 문제는 평균 득점이 전 시즌에 비해 4점 정도 낮아졌고, 필드골 성공률은 데뷔 2년째 시즌 이후를 기준으로 처음 30%대로 떨어졌습니다(37.9%)....

팀은 50승 32패를 기록하며 무난하게 플옵에 진출하였지만, 1라운드에서 샬럿 호네츠에게 1승 3패로 밀리며 탈락하였습니다. 블레이락은 플옵 시리즈 네경기에서 필드골 성공률 41.5%, 평균 14.8득점, 5.0리바운드, 8.3어시스트, 2.3스틸로 정규 시즌에 비해서는 향상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그뿐이었지요.... 팀은 탈락했으니....

98-99시즌, 단축 시즌으로 운영된 이 시즌에 그는 48경기에 출장, 평균 13.3득점, 4.7리바운드, 5.8어시스트, 2.1스틸로 애틀랜타에서 플레이한 이후 가장 부진한 시즌을 보내게 됩니다.

팀은 31승 19패로 플옵에 진출하였지만 2라운드에서 뉴욕 닉스에게 0승 4패로 스윕당하며 역시 탈락하고 맙니다...(이 시즌 플옵에서 뉴욕이 보여준 모습은 엄청났지요... 스프레웰과 휴스턴의 소위 트윈 테러에 줄줄이 상위 시드팀들이 박살났던....)

그리고 이 시즌을 마지막으로 그는 트레이드를 통해 애틀랜타를 떠나 골든 스테이트로 팀을 옮기게 됩니다.... 골든 스테이트 이적 첫시즌이었던 99-00시즌 그는 73경기에 출장, 평균 11.3득점, 3.7리바운드, 6.7어시스트, 2.0스틸을 기록하는데 그쳤고, 00-01시즌에는 69경기에서 평균 11.0득점, 3.9리바운드, 6.7어시스트, 2.4스틸을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01-02시즌 그는 35경기에 교체로만 출장하며 평균 3.4득점, 1.5리바운드, 3.3어시스트, 0.7스틸을 기록하며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그의 커리어는 01-02시즌을 마지막으로 끝나게 됩니다....

커리어 13년 동안 그가 남긴 기록은 889경기 출장, 평균 34.9분, 필드골 성공률 40.9%, 3점슛 성공률 33.6%, 평균 13.5득점(11962득점), 4.1리바운드(3659리바운드), 6.7어시스트(5972어시스트), 2.3스틸(2075스틸)입니다.

커리어가 생각보다 짧고, 다른 레전드급 포인트 가드들과 비교한다면 필드골 성공률, 득점, 어시스트 수치가 아주 눈에 확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요..... 하지만 그의 가치는 공격보다는 수비쪽에서 훨씬 더 컸습니다. 작은 체격에도 불구하고 그는 매치업 상대를 피곤하게 하며 계속 압박을 하였고, 동시에 빠른 손놀림을 통해 언제든지 상대의 공을 스틸할 수 있는 센스도 있었지요. 커리어 마지막 시즌을 제외하고 그는 항상 스틸 부분에서 리그 상위 10위 안에 랭크되었습니다. 그리고 92-93시즌부터 96-97시즌까지 다섯 시즌 연속 +200스틸을 기록하기도 하였습니다.....

그가 기록한 2075스틸은 리그 통산 12위에 해당하며, 평균 2.3개의 스틸은 리그 통산 5위에 해당하는 기록이지요....

통산 올스타에는 1회 선정되었습니다. 그리고 93-94시즌과 94-95시즌에는 NBA All-Defensive 1st 팀에 2년 연속 선정되었으며, 95-96시즌~98-99시즌까지 4년 연속으로 디펜시브 2nd 팀에 선정되기도 하였습니다....

덧> 90년대 초반 너바나와 함께 얼터너티브 락의 흥행을 이끌었던 펄잼의 원래 그룹명이 "Mookie Blaylock"이었습니다. 멤버들이 그의 팬이었거든요.... 데뷔할때는 펄잼이라는 이름으로 데뷔하였지만, 그들을 메이저 밴드로 만들어준 데뷔 앨범의 앨범명은 블레이락의 등번호였던 "Ten"이었습니다....



















덧글

  • 야구팬 2012/12/30 21:54 # 삭제 답글

    추억의 선수네요.
    '무키'라는 특이한 이름 때문에 관심을 가졌던 선수인데, 스틸 능력이 상당히 좋았죠.

    90년대 NBA 라이브 게임을 할 때는 아무 팀이나 골라서 올스타 라인업을 구성하고 시즌을 돌리곤 했는데, 다른 포지션의 선수구성은 쉬웠지만 PG에는 케빈 존슨, 게리 페이튼, 닉 밴 액셀, 팀 하더웨이, 로드 스트릭랜드, 케니 앤더슨, 무키 블레이락 등등 좋아하는 선수가 너무 많아서 행복한(?) 고민에 빠지곤 했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때 저는 바클리나 모닝 등 언더사이즈 인사이더를 좋아한다 생각했는데, 사실은 PG 쪽에 좋아하는 선수가 더 많았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울프우드 2012/12/31 18:10 #

    부족한 글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수비력에 있어서 무키는 상당히 뛰어난 포인트 가드였지요... 하지만 동시대에 워낙에 훌륭한 1번들이 많다보니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았다는 점이 좀 아쉽기도 합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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