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 추억의 선수-챔피언 반지 5개를 차지하였던 론 하퍼 스포츠

오랜만에 NBA 추억의 선수 관련 글을 올려봅니다.... 누구를 주인공으로 할까 생각하다가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 시카고 불스와 LA 레이커스에서 모두 다섯번의 우승을 차지하였던 론 하퍼가 문득 떠올라 이 선수를 주제로 포스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신장 198cm, 체중 84kg의 가드였지요. 커리어 초중반에는 클리블랜드와 LA 클리퍼스에서 슈팅 가드로 플레이하며 팀의 에이스이자 주득점원으로 활약하였고, 커리어 중반 이후 마지막까지는 시카고와 레이커스에서 플레이하며 슈팅 가드와 포인트 가드를 겸하는 가운데 득점보다는 볼배급과 상대 에이스 선수에 대한 강력한 수비를 보여주는 역할을 소화했습니다.

한마디로 공수 양면에서 모두 뛰어난 기량을 가졌던 선수였는데, 불스 시절에 3번, 레이커스 시절 2번 우승할 때 워낙에 해당팀들의 라인업이 막강하다보니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았었지요. 하지만 팀의 입장에서 봤을때 하퍼와 같은 선수의 활용도는 무척이나 클 수 밖에 없었으며, 또한 우승을 하는데 있어서 꼭 필요한 퍼즐에 해당하는 그런 선수였습니다.

그러면 이제 이 선수의 커리어를 한번 쭉 살펴보죠....

마이애미 대학 시절 하퍼는 공수 양면에서 모두 뛰어난 기량을 선보이며 많은 팀들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그는 1학년 시절 28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31.7분, 필드골 성공률 49.7%, 평균 12.9득점, 7.0리바운드, 2.2어시스트를 기록하였고, 2학년 때에는 16.3득점, 7.6리바운드, 2.1어시스트, 3학년 시절에는 필드골 성공률 54.1%, 평균 24.9득점, 10.7리바운드, 2.5어시스트를 기록하였습니다. 가드 포지션에서 31경깅 출장하여 득점-리바운드로 더블-더블을 기록하였다는 점이 놀랍네요. 그리고 4학년 시절에는 31경기에서 필드골 성공률 54.5%, 평균 24.4득점, 11.7리바운드, 4.3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패스에서도 재능을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대학 4년간 그는 총 120경기에 출장하여 필드골 성공률 54.4%, 평균 19.8득점, 9.3리바운드, 2.8어시스트를 기록하였습니다.

대학 무대에서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던 하퍼는 1986년 NBA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8번 픽으로 클리블랜드 캐버리어스에 지명되었습니다. 당시 클리블랜드는 플옵 진출은 생각할 수도 없었던 대표적인 약체였습니다. 하지만 86-87시즌 클리블랜드는 레니 윌킨스를 감독으로 영입하고 1라운드 1번으로 노스캘롤라이나 대학의 대형 센터 브래드 도허티를 픽하는데 성공하였고, 8번 픽으로 공수 양면에서 활용도가 큰 론 하퍼, 그리고 2라운드 1번픽(전체 25번)으로 단신에 운동 능력은 떨어지지만 발군의 슈팅력을 갖춘 포인트 가드인 마크 프라이스까지 지명하는데 성공하게 되었지요(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90년대 초반 클리블랜드가 꾸준히 플옵에 진출할 수 있었던 팀으로 업그레이드되는데 있어 도허티와 프라이스는 핵심적인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86-87시즌 개막과 함께 하퍼는 바로 팀의 주전 슈팅 가드로 기용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커리어 첫해 82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37.4분, 필드골 성공률 45.5%, 평균 22.9득점, 4.8리바운드, 4.8어시스트, 2.5스틸, 1.0블락슛을 기록하며 리그 에이스급 슈팅가드의 모습을 첫해부터 보여주는데 성공하였습니다. 허나 팀은 31승 51패를 기록하며 플옵 진출에는 실패하였지요....

하퍼의 기록은 충분히 올해의 신인에 선정될 정도로 훌륭했지만 올해의 신인에는 인디애나 페이서스의 척 퍼슨이 선정되었습니다. 하퍼는 All-Rookie 1st Team에 선정되는 것으로 만족해야만했지요.

87-88시즌, 클리블랜드는 꾸준히 8위권의 성적에서 시즌 중반까지 버텨내며 플옵 진출을 노리게 됩니다. 브래드 도허티와 론 하퍼는 1년차 시즌부터 당장 리그의 탑클래스 선수들과 견주어 공수 전반에서 밀리지 않는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이들과 함께 입단했던 마크 프라이스는 이전 시즌 주로 식스맨으로 기용되다 87-88시즌부터 주전 포인트 가드로 중용되며 위력적인 외곽슛과 공격적인 경기 운영으로 팀에 활력을 불어넣었지요. 결국 팀은 플옵 진출을 노리며 시즌 후반 피닉스 선즈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평균 20득점 정도를 올려줄 수 있는 득점원인 레리 낸스를 영입합니다.

레리 낸스는 트레이드 이후 27경기에서 평균 16.2득점, 7.9리바운드, 3.1어시스트, 2.3블락슛을 기록하며 아직 경험이 부족하였던 브래드 도허티를 골밑에서 잘 받쳐주며 팀의 플옵 진출에 힘을 보탰습니다.

당시 브래드 도허티-마크 프라이스-론 하퍼로 이어지는 젊은 선수들에 레리 낸스의 경험이 +되며 팀은 상당히 탄탄해졌지요. 결국 클리블랜드는 42승 40패를 기록하며 80년대 들어 처음으로 플옵 진출에 성공하게 됩니다.

팀의 기둥이었던 브래드 도허티는 18.7득점, 8.4리바운드, 4.2어시스트를 기록하며 공수 양면에서 맹활약하였고, 레리 낸스 역시 조금 전에 언급했던 것처럼 좋은 활약을 펼쳤습니다. 첫 주전 포인트 가드 시즌을 보낸 프라이스는 평균 32.8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50.6%, 3점슛 성공률 48.6%을 기록하며 평균 16.0득점, 2.3리바운드, 6.0어시스트, 1.2스틸을 기록하며 공격적 성향의 포인ㅌ트 가드로서 최고의 활약을 펼쳤습니다. 팀의 공격 옵션이 늘어났기에 이 시즌 하퍼의 기록은 수치상 루키 시즌에 비해서는 떨어졌습니다. 게다가 부상까지 겹치며 25경기에 결장하였습니다. 하퍼는 57경기에서 출장하여 평균 32.1분, 필드골 성공률 46.4%, 평균 15.4득점, 3.9리바운드, 4.9어시스트, 2.1스틸을 기록하였지요.... 득점과 리바운드 수치는 떨어졌지만 스틸을 바탕으로 한 그의 수비력은 여전히 팀에 큰 공헌을 하였고, 동시에 경기당 5개에 육박하는 어시스트 수치와 +15득점을 기록할 정도의 공격력도 여전했습니다.

플옵에 진출하여 1라운드에서 하퍼와 클리블랜드가 만났던 팀은 마이클 조던이 이끌던 시카고 불스였습니다. 클리블랜드는 접전을 펼치며 시리즈를 5차전까지 끌고 갔지만 결국 최종 5차전에서 패하며 2승 3패로 1라운드에서 무너지게 되었지요. 허나 80년대 들어 암흑기를 보내던 팀에 있어서 플옵에 진출하여 선전을 하였던 87-88시즌은 실망보다는 앞으로 펼쳐질 팀의 미래에 희망을 던져주었던 시즌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퍼 개인으로서는 자신의 첫 플옵 무대에서 4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33.5분, 필드골 성공률 47.6%, 평균 17.8득점, 5.0리바운드, 3.8어시스트, 2.8스틸, 1.0블락슛을 기록하며 맹활약을 펼쳤습니다. 그의 매치업 상대가 조던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의 활약은 너무나도 훌륭한 것이었지요.

그리고 하퍼의 커리어 세번째 시즌이었던 88-89시즌 하퍼와 팀은 함께 아주 성공적인 시즌을 보내게 됩니다. 이 시즌 하퍼는 브래드 도허티, 마크 프라이스와 함께 강력한 삼각 편대를 구성하며 공수에서 맹활약을 펼쳤습니다. 그는 82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34.8분, 필드골 성공률 51.1%, 평균 18.6득점, 5.0리바운드, 5.3어시스트, 2.3스틸, 0.9블락슛의 전천후 플레이를 펼치며 이 시즌 팀의 쾌속 항진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 시즌 클리블랜드는 엄청나게 무서운 팀이었습니다. 팀의 주력 4인방의 성적을 보면 도허티가 평균 18.9득점, 9.2리바운드, 3.7어시스트를 기록하였고, 프라이스는 44.1%의 성공률을 자랑하는 3점슛을 바탕으로 평균 18.9득점, 3.0리바운드, 8.4어시스트, 1.5스틸, 하퍼가 평균 18.6득점, 5.0리바운드, 5.3어시스트, 2.3스틸, 그리고 베테랑 레리 낸스도 평균 17.2득점, 8.0리바운드, 2.2어시스트, 2.8블락슛을 기록하였지요. 주전 다섯 명 중 네 명이 동시에 +17득점을 기록하였으며, 이들의 필드골 성공률은 모두 50%대였습니다. 평균 25득점 이상을 기록하는 에이스는 없었지만 모든 선수가 득점력과 정확도를 갖추었기에 상당히 위력적이고 재밌는 농구를 구사할 수 있었지요....

클리블랜드는 57승 25패라는 훌륭한 성적으로 센트럴 디비젼 2위(1위는 디트로이트 피스톤스가 63승 19패로 차지하였고요), 전체 3번 시드로 플옵에 진출하는데 성공하게 됩니다. 공교롭게도 1라운드 상대는 이전 시즌 플옵 1라운드에서 클리블랜드를 탈락시킨 마이클 조던의 시카고 불스.... 시카고는 정규 시즌 47승 35패를 기록하며 6번 시드로 플옵에 진출하였지요. 클리블랜드는 자신감도 넘쳤고 많은 사람들은 클리블랜드와 시카고의 매치업에서 클리블랜드가 유리하다고 평가하였습니다.

허나 이번에도 클리블랜드는 또다시 불스라는 산을 넘는데 실패하게 됩니다. 1차전 클리블랜드는 홈에서 95:88로 패배하였습니다. 87년 드래프트에서 불스가 지명했던 호레이스 그랜트와 스카티 피펜이 완전히 자리잡기 시작한 시카고 불스는 더 이상 조던의 원맨팀이 아니었고, 강력한 조력자들의 도움을 받은 조던의 위력은 1차전부터 강력했습니다.

조던은 1차전에서 필드골 성공률 57.1%, 31득점 5리바운드 11어시스트 4스틸 1블락슛으로 클리블랜드를 유린하였고, 스카티 피펜은 3점슛 네개 포함(성공률 100%), 필드골 성공률 63.6% 22득점 6리바운드 2어시스트, 호레이스 그랜트는 13득점 13리바운드 3어시스트 2스틸 1블락슛을 기록하며 클리블랜드의 골밑을 압박했습니다.

클리블랜드에서는 많은 분들이 조던의 전담 수비수로 기억하는 크레이그 이로가 19득점, 레리 낸스가 18득점, 5리바운드, 5어시스트로 활약했지만 팀의 주전 포인트 가드인 프라이스가 시즌 말미에 당한 부상으로 1차전에 결장한데다 믿었던 센터 브래드 도허티가 시카고의 그랜트와 빌 카트라이트에 밀리며 9점 7리바운드로 부진했던 것이 뼈아팠습니다. 하퍼는 이 경기에서 필드골 성공률 60%, 14득점을 기록하였지만 리바운드를 단 하나도 잡아내지 못했고, 어시스트도 1개 밖에 기록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6반칙으로 파울 아웃까지 당하며 25분 밖에 플레이를 하지 못하며 1차전 패배의 원인을 제공하였습니다.

1차전의 패배는 클리블랜드에게 상당히 좋지 못한 결과였지만 2차전에서 그들은 시리즈를 원점으로 되돌리는데 성공하게 됩니다. 마크 프라이스가 복귀한 2차전, 클리블랜드는 1차전과는 완전히 다른 팀으로 변모하게 되지요. 2차전에서 프라이스는 15득점, 5리바운드, 4어시스트, 1스틸로 팀을 조율하였고, 레리 낸스는 16득점 9리바운드 5어시스트 2스틸 4블락슛으로 호레이스 그랜트에 밀리지 않는 활약을 펼쳤습니다.

허나 2차전 승리의 주역은 1차전 패배의 빌미를 제공했던 하퍼였습니다. 하퍼는 조던과 매치업을 이루며 필드골 성공률 63.2%, 31득점 11리바운드 4어시스트 5스틸이라는 괴물같은 활약을 펼치며 조던에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마이클 조던 역시 30득점 5리바운드 10어시스트 2스틸을 기록하며 클리블랜드를 괴롭혔으며 피펜이 18득점, 8리바운드, 5어시스트, 그랜트가 12득점 14리바운드를 기록하며 분전하였지만 하퍼의 맹활약에 가려버렸지요..... 어쨌건 홈에서 간신히 1승 1패를 맞춘 클리블랜드는 시카고로의 원정 시리즈를 위해 이동하게 됩니다.

시카고에서의 3차전... 1, 2차전에서 부진했던 도허티가 17득점으로 살아나고, 레리 낸스는 20득점 9리바운드로 계속 꾸준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홈에서의 시카고는 1쿼터에서만 35득점을 퍼부으며 클리블랜드를 압박했습니다. 결국 2차전 대활약을 펼쳤던 하퍼는 14득점 6리바운드 2어시스트 1스틸 3블락슛으로 부진하다고 하기에는 뭐하지만 조금은 부족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3차전에서 마크 프라이스가 35분간 단 2득점으로 묶인 것이 결정적인 패인이었고요....

시리즈 2차전에서 공수 양면에서 하퍼에 뒤졌던 조던은 3차전, 자신이 왜 리그 최고의 공격 머신인지를 똑똑히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39분간 필드골 성공률 52.9%, 44득점 7리바운드 10어시스트 5스틸 1블락슛으로 신들린 활약을 펼쳤고, 피펜은 7득점으로 부진했으나 11리바운드 6어시스트로 조던의 활약을 뒷받침하였습니다. 그랜트 역시 8득점 밖에 기록하지 못했지만 17리바운드와 5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피펜과 함께 조던을 잘 보좌하였지요....

결국 3차전은 시카고가 101:94로 승리를 거두며 시리즈 전적 2승 1패로 다시 앞서나가기 시작합니다.

벼랑끝에 몰린 클리블랜드와 하퍼는 어떻게 해서든 시리즈를 홈에서 열리는 최종 5차전으로 끌고 가기 위해 4차전에서 혼신의 힘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경기는 시종 일관 팽팽하게 진행되었고, 결국 연장까지 치루었지요....

결과는 108:105로 클리블랜드 승리....그들은 시리즈를 홈에서 열리는 최종 5차전으로 끌고가는데 성공하며 2라운드 진출을 노릴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4차전에서 2득점으로 부진하며 패배의 원인을 제공했던 프라이스는 이날 경기에서 48분간 3점슛 2개 포함(2개 시도) 필드고 성공률 61.5%, 24득점 3리바운드 7어시스트로 맹활약하며 승리의 주역이 되었고, 레리 낸스 역시 27득점 9리바운드 3어시스트로 베테랑답게 꾸준한 모습으로 팀의 중심을 잡았습니다. 도허티는 15득점 17리바운드를 기록하며 플옵 시리즈 들어 처음으로 그다운 모습을 보이며 골밑을 장악하였습니다. 하퍼는 17득점 5리바운드 4어시스트 2스틸을 기록하며 팀 승리에 공헌하였지요.

시카고의 마이클 조던은 3차전에 이어 4차전에서도 43분간 필드골 성공률 50%, 50득점 3리바운드 4어시스트 3스틸로 괴물같은 활약을 이어갔지만 팀으로 똘똘 뭉친 클리블랜드 선수들을 제압하는데는 실패하였습니다.

그리고 최종 5차전...클리블랜드는 3쿼터까지 시카고에게 6점차로 리드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조던의 맹활약으로 경기는 4쿼터 막판에 결국 뒤집어지게 됩니다. 종료 직전까지 2점차 리드를 잡고 있었던 클리블랜드는 결국 조던에게 통한의 결승골을 허용하며 2라운드 진출 바로 코앞에서 탈락을 하게 되었지요..

솔직히 이 경기에서 클리블랜드 선수들은 2라운드 진출에 부족하지 않은 모습들을 보여주었습니다. 하퍼는 22득점 2리바운드 6어시스트 2스틸 2블락슛을 기록하였고, 마크 프라이스는 3점슛 3개 포함 23득점 7어시스트를, 레리 낸스 역시 16득점 7리바운드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지요...그리고 벤치 멤버로 출장하여 주로 조던을 마크하였던 크레이그 이로는 이날 27분을 소화하며 3점슛 네개 포함 24득점 2리바운드 4어시스트로 최고의 활약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불스에는 조던이 있었고, 클리블랜드에는 그런 존재가 없다는 것이 결정적인 차이였습니다. 조던은 44분간 필드골 성공률 53.1% 44득점 9리바운드 6어시스트로 클리블랜드를 압도하였고, 여기에 피펜이 13득점 10리바운드, 크레이그 호지스가 10득점, 빌 카트라이트가 16득점 5리바운드, 그랜트가 12득점 5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주전 5명 전원이 두자릿수 득점을 기록하였습니다. 정말 한끗 차이였지만 결국 탈락은 탈락인 것이죠....

그리고 이 시즌이 클리블랜드에서 하퍼가 보낸 마지막 시즌이었습니다. 1989년 11월 16일, 클리블랜드는 시즌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론 하퍼를 LA 클리퍼스로 트레이드 하게 됩니다. 클리블랜드는 하퍼에 더해서 1990년 1라운드 픽과 1991년 2라운드 픽, 그리고 1992년 1라운드 픽을 클리퍼스에 넘겨주고, 클리퍼스로부터 대니 페니와 레지 윌리엄스를 영입하였습니다. 

이 트레이드의 핵심은 대니 페리였습니다. 듀크 대학 시절 역사상 가장 위대한 NCAA 선수라는 평가를 들으며 많은 팀들의 관심을 받았던 패리는 1989년 드래프트 1라운드 2번 픽으로 클리퍼스에 지명되었지만 클리퍼스와의 계약을 거부하고 이탈리아 리그에서 1년을 플레이하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지요....이 선수에 대한 기대치는 정말 상당히 높았습니다. 하지만 결론은 대니 패리의 영입은 대실패였다는 것이지요....그는 분명 NCAA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일 수도 있습니다....하지만 어디까지는 딱 그 수준까지라는 것이지요....

졸지에 페리는 시즌 초반 클리퍼스로 팀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당시 클리퍼스의 전력은 플옵 진출을 노리기에는 많이 부족하였습니다. 게다가 하퍼는 팀을 옮긴 후 무릎 부상을 당하며 이 시즌 28경기 출장에 그쳤습니다. 게다가 이때 입었던 부상으로 그는 클리블랜드 시절 보여주었던 폭발적인 스피드와 점프력을 상당 부분 잃게 되지요....어쨌건 그는 클리퍼스에서 28경기에 출장, 필드골 성공률 48.1%, 평균 23.0득점, 5.6리바운드, 4.8어시스트, 2.4스틸, 1.1블락슛을 기록하며 출장 경기에서만큼은 공수 양면 모두에서 팀원들 중 가장 좋은 활약을 펼쳤습니다.

이 시즌 입었던 부상은 결국 다음 시즌까지 영향을 주며 그는 90-91시즌에도 39경기 출장에 그쳤습니다. 기록은 19.6득점, 4.8리바운드, 5.4어시스트, 1.7스틸이었습니다. 허나 이 시즌 출장 경기에서 그가 보여준 모습들 중 가장 우려되었던 부분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데뷔 이후 그의 필드골 성공률 수치가 가장 낮아졌다는 점입니다. 이 시즌 그가 기록한 필드골 성공률은 39.1%에 불과하였습니다. 득점 수치는 높으나 공격 효율에 있어서 상당히 좋지 않아졌다는 것이지요....

91-92시즌.... 이전 시즌들과는 달리 클리퍼스는 상당히 탄탄한 전력을 바탕으로 플옵 진출에 성공하게 됩니다. 하퍼는 2년 동안 그를 괴롭혔던 무릎 부상에서 회복하며 이 시즌 82경기에 모두 선발 출장하였습니다. 필드골 성공률은 44%를 기록하였고, 평균 18.2득점 5.5리바운드, 5.1어시스트, 1.9스틸을 기록하며 딱 그다운 성적을 올리며 클리퍼스의 승리에 많은 공헌을 하였습니다. 이 시즌 클리퍼스는 대니 매닝과 찰스 스미스 켄 노먼, 닥 리버스의 활약을 바탕으로 45승 37패를 기록하며 플옵에 진출하였지만 1라운드에서 유타 재즈에 2승 3패로 밀리며 더 위로 올라가는데는 실패하였습니다.

92-93시즌에도 하퍼는 80경기에서 평균 18.0득점, 5.3리바운드, 4.5어시스트, 2.2스틸을 기록하며 대니 매닝에 이은 팀의 제2 공격 옵션이자 수비의 중심으로 맹활약을 펼치며 2년 연속 팀의 플옵 진출에 힘을 보탰습니다.... 하지만 1라운드에서 하킴 올라주원의 휴스턴 로켓츠에 역시 2승 3패로 밀리며 탈락....

93-94시즌, 하퍼는 75경기에서 평균 20.1득점, 6,1리바운드, 4.6어시스트. 1.9스틸을 기록하며 변함없는 활약을 펼쳤지만 팀은 대니 매닝과 도미니크 윌킨스의 트레이드 등등으로 어수선한 분위기였고 결국 27승 55패를 기록하며 플옵 시리즈 진출에 실패하고 맙니다. 그리고 이 시즌을 마지막으로 FA 자격을 획득한 하퍼는 팀을 옮기기로 결정합니다.

90년대 초반 마이클 조던을 중심으로 리그 3연패에 성공한 불스였지만 92-93시즌 종료 후 마이클 조던의 급작스런 은퇴로 인해 전력이 크게 약화된 상황이었지요....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카티 피펜을 중심으로 토니 쿠코치가 중심을 잡으면서 플옵 컨텐더 정도의 전력은 유지하고 있었지요....

불스 이적과 함께 팀에서 부여받은 그의 롤은 이전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습니다. 클리블랜드와 클리퍼스 시절 항상 팀의 제1, 혹은 제2 공격 옵션 역할을 수행하며 공수에서 팀의 중심을 잡았던 그에게 불스의 필 잭슨 감독은 공격보다는 수비 쪽에 중심을 둔 플레이를 요구하였고, 주전보다는 식스맨으로 중용하는 경기도 많아지게 됩니다. 허나 그는 불평없이 자신에게 부여된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였습니다.

하퍼는 불스에서의 첫 시즌, 77경기에 출장(선발 53경기 출장), 출장 시간 평균 19.9분, 필드골 성공률 42.6%, 평균 6.9득점, 2.3리바운드, 2.0 어시스트, 1.3스틸을 기록하였습니다. 불스는 시즌 후반 마이클 조던의 복귀와 함께 다시 한번 우승에 도전하였지만 결국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올랜도 매직에 패하며 우승에는 실패하게 되지요.

그러나 95-96시즌, 불스는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로 거론되었습니다. 제대로 시즌을 준비한 마이클 조던에 그의 영원한 조력자였던 스카티 피펜, 유로 특급 토니 쿠코치, 여기에 리바운드 제왕인 데니스 로드맨까지 가세하게 되면서 불스는 막강한 멤버를 구축하였지요. 그리고 이 시즌, 불스는 72승 10패라는 말도 안되는 성적을 올리며 압도적인 시즌을 보내며 90년대 들어 네번째 리그 우승에 성공하게 됩니다.

하퍼는 이 시즌부터 슈팅 가드가 아니라 포인트 가드 보직을 수행하게 됩니다. 그는 80경기에서 평균 23.6분, 필드골 성공률 46.7%, 7.4득점, 2.7리바운드, 2.6어시스트, 1.3스틸을 기록하였습니다. 하지만 불스에서의 그의 역할을 기록 이상의 것이었지요. 조던-피펜-쿠코치-로드맨과 같은 선수들에 가려 그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사이즈와 스틸 능력을 바탕으로 상대 1번을 철저히 봉쇄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고, 필요한 경우에는 언제든지 득점에 가담할수도 있었으니까요.....

결국 이 시즌 불스는 파이널에서 시애틀을 4승 2패로 제압하며 우승하였습니다. 그리고 하퍼는 자신의 커리어에서 첫번째 챔피언 반지를 획득하는 기쁨을 누리게 되지요....

96-97시즌에도 불스는 69승 13패로 플옵에 진출하며 파이널에서 유타 재즈를 4승 2패로 제압, 90년대 들어 다섯번째 우승에 성공하게 됩니다.

하퍼는 76경기에서 평균 22.9분, 필드골 성공률 43.6%, 평균 6.3득점, 2.5리바운드, 2.5어시스트, 1.1스틸로 팀에 소금같은 역할을 수행하며 불스의 다섯번째 우승에 공헌하였습니다.

97-98시즌, 불스는 62승 20패를 기록하며 이전 두시즌에 비해 부진(?)하였지만 역시나 플옵에 진출, 90년대 두번째 3연패에 성공하게 됩니다.

하퍼는 82경기에 모두 출장하여 평균 27.9분, 필드골 성공률 44.1%, 평균 9.3득점, 3,5리바운드, 2.9어시스트, 1.3스틸을 기록하며 활약하였고, 자신의 세번째 챔피언 반지를 획득하였습니다.

98-99시즌, 단축 시즌으로 50경기로 진행된 이 시즌에서 그는 부상으로 인해 35경기 출장에 그쳤고, 평균 11.2득점, 5.1리바운드, 3.3어시스트, 1.7스틸을 기록하였습니다. 97-98시즌 두번째 3연패에 성공한 이후 시카고는 완전히 몰락하게 됩니다.조던은 두번째 은퇴를 선언하였고, 피펜과 로드맨, 그리고 필 잭슨 감독 역시 모두 팀을 떠났지요....

그리고 98-99시즌 종료와 함께 론하퍼 역시 팀에서 방출되었습니다.

그는 방출되었지만 1999년 10월 13일 프리에이전트 자격으로 LA 레이커스와 계약을 하게 됩니다. 90년대 두번째 3연패 기간 동안 그와 함께 했던 필잭슨 레이커스 감독이 우승에 필요한 퍼즐을 맞추며 그에게 콜을 보낸 것이지요....

36세의 노장이 되어버린 하퍼였지만 그는 99-00시즌, 80경기에 주로 선발로 출장하여 평균 25.5분, 평균 7.0득점, 4.2리바운드, 3.4어시스트, 1.1스틸로 샤킬 오닐, 코비 브라이언트, 글렌 라이스의 뒤에서 눈에 잘 보이지는 않으나 수비와 경기 운영에서 팀 승리에 공헌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시즌 레이커스는 67승 15패로 플옵에 진출, 파이널에서 인디애나 페이서스를 꺾고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하퍼는 자신의 네번째 챔피언 반지를 획득하였지요....

그리고 00-01시즌 하퍼는 부상으로 47경기에만 출장, 평균 24.2분, 평균 6.5득점, 3.5리바운드, 2.4어시스트, 0.8스틸을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시즌에도 레이커스는 챔피언에 자리에 올라 리그 2연패에 성공하였고, 하퍼는 다섯번째 챔피언 반지를 획득하였지요.

그리고 이 시즌을 마지막으로 그는 은퇴를 선언, 16시즌의 커리어를 마감하였습니다.....

포스팅 서두에 언급했듯이 하퍼는 커리어 중반까지는 클리블랜드와 클리퍼스에서 득점원으로서 활약을 했던 선수였습니다. 무릎 부상 이전까지 그가 보여준 스피드와 점프력은 폭발적이었으며, 무릎 부상 이후에도 그는 마음만 먹는다면 평균 20득점 언저리의 득점은 언제든지 올릴 수 있는 역량이 있었지요....

하지만 시카고 이적 이후 그는 팀에서 주문한 수비수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팀의 승리에 공헌을 하는 역할도 아무런 불평없이 성실히 수행하였습니다. 화려한 플레이로 많은 팬들의 주목을 받던 선수가 눈에 잘 띄지 않지만 팀 승리를 위해 공헌하는 역할을 수행하기는 쉽지가 않았을텐데도 말이지요.....

그리고 그의 그러한 능력이 결국엔 은퇴 시점에서 그가 챔피언 반지를 다섯 손가락에 낄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니었나 싶네요....

통산 성적은 16시즌 1009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30.9분을 소화하였으며 필드골 성공률 44.6%, 평균 13.8득점(13910득점), 4.3리바운드(4309리바운드), 3.9어시스트(3916어시스트), 1.7스틸(1716스틸), 0.7블락슛(729블락슛)을 기록하였습니다. 1716스틸은 리그 역사상 17위에 해당하며, 1.7개의 평균 스틸은 리그 역사상 28위에 해당합니다.....

그가 계속 공격적 성향의 스코어러 역할을 고집하며 플레이했다면 그래도 통산 20000득점 이상은 올릴 수 있었을 것이며 평균 득점도 +15득점 정도는 기록할 수 있었을텐데, 그가 가지고 있는 역량을 생각할 때 통산 성적이 조금 빈약해보이는 점은 아쉽기도 합니다.....허나 기록 이상의 가치와 역할을 하는 훌륭한 선수였기에 지금까지도 제 기억 속에 또렷이 남아있는 선수이기도 하고요....

그의 플레이가 다시 한번 생각나는 그런 날입니다.....

마지막으로 그의 플레이 영상 하나 올리면서 포스팅 마치겠습니다 ...




 

덧글

  • 홍차도둑 2013/02/02 01:21 # 답글

    당시 저로선 론 하퍼를 '수비수가 강한 선수'로 기억할 수 밖에 없던 것이...역시 당대 최고의 득점 머신들과의 대결에서 지거나 그들의 뒤를 받친것 때문에 그렇게 기억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가끔가다 농구도 뛰곤 하였는데, 축구의 전술 폭을 더 넓게 이해하는데 있어 농구를 경험했다는게 크게 다가오더군요. 특히 수비의 영향이라던가 수비가 공격 나갔을 때 등의 빈 공간이나 퍼즐 맞추기 등은 농구나 축구나 다를 바가 없다는 것과 함께 당시 SBS의 해설자였던 분의 '좋은 가드는 팬들을 기쁘게 하지만 좋은 센터는 감독을 기쁘게 한다'라는 부분의 실제는 바로 '공격보다는 잘 안보이는 수비의 튼실함이 결정적인 순간에서는 절대적으로 다가온다'는 것으로 해석하고, 실전에서 자주 느끼게 되는지라...

    감독 입장에서는 론 하퍼 같은 선수는 정말 우승 도전을 위한다면 꼭 가지고 있어야 하는 퍼즐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조직력의 수비에서 개인의 그런 능력은 정말 중요하고 이해가 필요한데...
    '팬'이라는 입장에서는 수비에서도 화려함 보다는 체크마킹과 전환시의 빠른 팀의 전술이해라는 부분이 이른바 '초강팀'으로 불리는 팀과 '초강팀의 벽을 못넘는 강팀'과의 차이중 하나로 봅니다. 이런때 있어 론 하퍼라는 선수의 플레이에 촛점을 맞춘다면...팀의 승리를 위해 꼭 있어야 하는 선수가 종목을 떠나 '팀'경기 에서는 왜 필요한지를 보여준 선수였다고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네요
  • 울프우드 2013/02/02 01:33 #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댓글 마지막 단락에서 말씀하신 의견에 저도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초강팀과 일반적 강팀의 차이를 상당히 정확하게 말씀해주셨네요... 특히 모든 팀 스포츠에서 말씀하신 부분 '수비에서도 화려함보다는 체크 마킹과 전화시의 빠른 팀의 전술 이해' 이 부분은 저도 전부터 그리 생각했던 부분입니다....

    부족한 포스팅에 이리 훌륭한 댓글을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 홍차도둑 2013/02/02 01:55 #

    에이 지금 선수들과는 다른 팀의 '소금'같은 선수들이 많았던 1980-90년대를 두고 왜 '클래식 시대'인지 모르는 분들이 넘 많아서 말입니다.

    어떤 면에선 많은 스포츠종목들이 1980-90년대가 이른바 '21세기의 스포츠'를 위한 '반석의 단계' 였기 때문에 그런 클래식한 영웅들이 많이 나온 것이 아닌가 싶어요. 그때의 많은 선수들의 여러 종목에서의 플레이를 보면 지금도 느껴지는 감동과 철학, 그리고 그들만의 미학이 돋보입니다.

    만화 '이니셜 D'에서 나오는 어느 엔지니어와 레이서의 대화처럼
    "요즘 애들은 개성이 없고 재미가 없어요, 기계처럼 정확하게 승리만 추구해가죠"
    "너도 한때 그런 선수들을 만들던 사람이 아닌가?"
    하는 대화는 지금도 많은 종목에서 유효한거 같습니다. 심지어는 두뇌스포츠로 불리는 바둑이나 체스까지도. 그리고 스타크라프트1의 마지막 대회 전 즈음의 순간까지도...

    그래서인지 팬들은 지금도 '화끈함'을 요구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기에 그 '화끈함' 속에 숨어있는 허와 '고요함' 속에 있는 '치열한 싸움'을 알고 즐기기엔...너무 높은 이상을 제가 잡고 있는건지도 모르겠습니다.
  • 울프우드 2013/02/02 02:25 #

    80년대부터 2010년까지 농구와 야구를(아 전 축구는 잘 몰라서요..) 봐왔는데, 홍차도둑님 말씀처럼 8~90년대는 정말 모든 팀 스포츠에서 나올 수 있는 모든 기본적인 것들이 다 튀어나온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시절에 느꼈던 감정들과 생각들이 크다 보니 저도 주로 추억의 선수들에 관련된 부족한 글들을 블로그에 쓰는 것이고요... ㅎ

    그 시절이 그리운 것이지요...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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