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 추억의 선수-90년대 성실한 빅맨이었던 케빈 윌리스 스포츠

작년 시즌부터 NBA도 챙겨보기 시작하며 다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제가 주로 NBA를 보았던 것이 9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정도까지.... 오랜만에 경기들을 챙겨보다보니 또 기분이 새롭더군요. 경기 자체도 상당히 재밌게 보고 있는 편이지만, 확실히 80-90년대에 비해 빅맨들의 어떤 끈끈함이랄까 그런 부분들은 좀 약해 보이는 느낌이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4대 센터(올라주원-오닐-로빈슨-유잉) 혹은 말론과 바클리, 로드맨 등으로 대표되는 파워포워드까지 올라갈 필요도 없이 80-90년대에는 이들 외에도 끈끈하고 터프한 빅맨들이 리그에 제법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중에 한 선수가 바로 이번 포스팅에서 다룰 케빈 윌리스입니다.

 

원체 커리어가 긴 선수인지라 금방 정리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참고로 케빈 윌리스는 44세까지 프로 생활을 지속하며 역대 최고령 NBA 선수라는 기록을 남긴 선수이니....).. 그럼 뭐 찬찬히 한번 이 선수에 대해 알아보죠.


바로 이 선수가 오늘 포스팅의 주제인 케빈 윌리스입니다. 신장 211cm, 111kg으로 빅맨으로서 좋은 신체 조건을 갖추고 있었고 NBA 데뷔 이후 주로 4번 포지션을 맡았지만 팀이 필요할 때에는 5번까지 맡아주었던 선수였지요. 올라주원, 조던, 바클리, 스탁턴 등 레전드들이 우루루 쏟아져 나왔던 1984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11번 픽으로 애틀랜타 호크스에 지명되며 커리어를 시작하게 됩니다.

 

LA에서 태어난 윌리스는 고등학교 졸업 후 잭슨 칼리지에 진학하여 1학년 시절을 보낸 후 미시간 주립 대학으로 학교를 옮겨 3년간 플레이를 하였습니다. 미시간 주립 대학에서의 첫 시즌이었던 81-82시즌에는 27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19.2분, 6.0득점, 4.2리바운드, 0.1어시스트를 기록하였습니다(필드골 성공률 47.4%), 82-83시즌에도 27경기에 출장, 평균 32.0분을 소화하며 13.3득점, 9.6리바운드, 0.3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한층 향상된 실력을 보여주었고, 83-84시즌에는 25경기에서 평균 29.5분, 11.0득점, 7.7리바운드, 0.3어시스트를 기록하였습니다. 미시간 주립 대학 3년간 그는 총 79경기에 출장하여 필드골 성공률 53.0%, 평균 26.8분, 10.1득점, 7.1리바운드, 0.2어시스트를 기록하였습니다.


기록 상으로 그리 특출나 보이지는 않지만 기본적으로 7풋의 빅맨으로서 근성도 있고 발전 가능성이 보였던 윌리스를 지명한 팀은 애틀랜타였습니다. 윌킨스의 입단 이전 81-82시즌과 82-83시즌,83-84시즌 모두 플옵에 진출했던 애틀랜타는 그러나 필라델피아와 보스턴, 밀워키에 각각 패배하며 1라운드에서 일찌감치 탈락하였습니다. 그나마 82년 드랩에서 이후 리그 최고의 득점 머신 중 한명이 되는 도미니크 윌킨스를 지명하였고 윌킨스는 루키 시즌 17.5득점을 기록하며 그 가능성을 보여주었지만 팀이 더 높은 곳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전력 보강이 필요하였지요.

 

특히 81-82시즌, 82-83시즌 플옵 1라운드에서의 탈락, 그리고 83-84시즌 플옵 진출 실패에는 애틀랜타의 허약한 포스트 진이 큰 문제 중 하나였습니다. 당시 애틀랜타의 주전 센터는 216cm, 107kg으로 좋은 하드웨어를 갖추고 있었으나 기량이나 근성에서 모두 부족한 모습이었습니다. 윌리스 입단 직전 시즌이었던 83-84시즌 롤린스는 77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30.5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51.8%를 기록하였으나 평균 8.6득점, 7.7리바운드를 기록하는데 그쳤습니다. 아주 엉망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강팀의 센터로서는 많이 부족한 편이었지요.

 

83-84시즌 애틀랜타의 로스터가 그리 나쁜 것은 아니었습니다. 1번 자리에는 커리어 8년차인 조니 데이비스에 83년 드랩 2라운드 7번 픽으로 뽑은 닥 리버스가 성공적인 루키 시즌을 보내주었고, 2번 자리에는 에디 존슨이라는 수준급의 자원이 있었으며, 3번 자리에는 커리어 3년 째를 맞이하며 리그를 대표하는 득점원으로 성장하고 있었던 도미니크 윌킨스가 있었습니다. 문제는 포스트진... 물론 4번 자리에 댄 라운드필드라는 수준급의 선수가 있었습니다만(83-84시즌 30세였던 라운드필드는 73경기에서 평균 18.9득점, 9.9리바운드, 2.5어시스트를 기록하였습니다) 그는 83-84시즌 종료 후 디트로이트로 트레이드되었습니다(라운드필드를 데려가는 조건으로 디트로이트는 애틀랜타에게 안토니오 카와 클리프 리빙스턴에 86년과 87년 2라운드 드래프트 픽을 넘겨주었습니다)...그리고 동시에 시즌 종료 후 팀의 주전 포인트 가드였던 조니 데이비스도 클리블랜드로 트레이드시켜버립니다. 당시 애틀랜타 구단은 향후 팀을 도미니크 윌킨스를 중심으로 에디 존슨과 닥 리버스가 뒤를 받치는 형태로 재편하려고 했던게 아니었나 싶네요. 그리고 댄 라운드필드의 자리를 메우기 위한 그들의 선택은 케빈 윌리스였습니다.

 

케빈 윌리스는 루키 시즌이었던 83-85시즌 주로 트리 롤린스와 클리프 리빙스턴의 백업으로 기용되었습니다. 그는 82경기에 주로 교체 멤버로 출장(선발 19경기) 평균 21.8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46.7%, 평균 9.3득점, 6.4리바운드, 0.4어시스트, 0.4스틸, 0.6 블락슛을 기록하며 비교적 성공적인 루키 시즌을 보냈습니다. 허나 팀은 34-48패를 기록하며 플옵 진출에 실패하고 맙니다. 허나 윌리스는 데뷔 첫해 비교적 경쟁력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향후 시즌에 대한 기대치를 높였습니다. 라운드필드와 데이비스의 트레이드 후 팀의 리더가 된 윌킨스는 이 시즌 평균 27.4득점을 기록하였으며, 에디 존슨 역시 평균 16.3득점, 2.6리바운드, 7.8어시스트를 기록하였으며, 닥 리버스는 평균 14.1득점, 5.9어시스트, 3.1리바운드, 2.4스틸을 기록하며 2년차 징크스없이 팀의 주전 1번 자리를 차지하였습니다.

 

팀 재편 첫 시즌 플옵 시리즈 진출 실패를 맛본 애틀랜타였지만 85-86시즌 애틀랜타는 동부 컨퍼런스를 주도하는 강팀으로 떠오르게 됩니다. 팀의 중심이었던 도미니크 윌킨스는 이 시즌 평균 30.3득점, 7.9리바운드, 2.6어시스트로 득점 1위를 차지하며 팀을 이끌었고, 에디 존슨의 부상으로 주전 슈팅가드로 기용된 랜디 휘트만 역시 평균 12.9득점, 3.8어시스트, 2.1리바운드로 에디 존슨의 빈자리를 잘 메꾸어주었습니다. 그리고 닥 리버스는 부상으로 29경기에 결장하였으나 53경기에서 평균 11.5득점 8.4어시스트를 기록하였습니다. 케빈 윌리스는 클리프 리빙스턴과의 경쟁을 이겨내며 소포모어 시즌이었던 이 시즌부터 팀의 주전 4번으로 기용되며 82경기에서 평균 28.0분, 필드골 성공률 51.7%, 평균 12.3득점, 8.6리바운드를 기록하며 팀의 허약한 포스트를 사수하였습니다.

 

팀은 50승 32패를 기록하며 전 시즌의 부진을 씻고 플옵 1라운드에 진출하여 아이자이어 토마스와 빌 레임비어가 이끄는 디트로이트 피스톤스를 3승 1패로 일축하고 2라운드에 진출하게 됩니다. 허나 2라운드 상대인 보스턴 셀틱스는 당시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였습니다. 정규 시즌에서 67승 15패를 기록한 보스턴 셀틱스는 애틀랜타를 4승 1패로 압도하며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하였고, 최종적으로 파이널 우승을 차지하였습니다. 애틀랜타의 멤버도 물론 좋았으나 당시 보스턴의 버드-맥헤일-패리쉬로 이어지는 삼각 편대는 너무나도 강력했습니다.

 

윌리스는 자신의 커리어 첫 플레이오프 무대에서 9경기 모두 선발로 출장하며 평균 31.1분을 소화, 필드골 성공률 56.1%, 평균 13.9득점, 7.2리바운드로 분전하였습니다.

 

아쉬웠던 소포모어 시즌을 뒤로 하고 윌리스는 그의 커리어 3년째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의 세번째 시즌이었던 86-87시즌, 윌리스는 팀의 주전 4번 자리를 완전히 굳히게 됩니다. 그는 이 시즌 81경기에 출장(모두 선발 출장), 평균 32.4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53.6%, 평균 16.1득점, 10.5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자신의 첫 더블-더블 시즌을 만들었습니다. 리바운드는 당연히 팀내 1위였으며, 득점은 평균 29.0득점을 기록한 도미니크 윌킨스에 이어 팀 내 2위를 기록하였습니다. 애틀랜타는 에이스 도미니크 윌킨스가 29.0득점, 6.3리바운드, 3.3어시스트, 1.5스틸을 기록하며 팀을 이끄는 가운데 윌리스와 함께 커리어 4년째를 맞이한 닥 리버스가 평균 12.8득점, 10.0어시스트, 2.1스틸을 기록하는 활약을 바탕으로 57승 25패를 기록하며 센트럴 디비젼 1위로 플옵 시리즈에 진출하였습니다. 1라운드에서 인대애나 페이서스를 3승 1패로 격파하며 2라운드에 진출하는데 성공하였지만 2라운드에서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에 시리즈 스코어 1승 4패로 참패를 당하며 컨퍼런스 파이널 진출에는 실패하였습니다.

 

87-88시즌, 윌리스는 이전 시즌 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진 못하였습니다. 윌리스는 잔부상 등으로 17경기에 결장하며 75경기 출장, 평균 27.9분, 필드골 성공률 51.8%, 평균 11.6득점, 7.3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이전 시즌까지의 상승세를 정규시즌에는 이어가지 못하였습니다. 허나 팀은 50승 32패를 기록하며 3년 연속 +50승을 기록하며 센트럴 디비젼 3위로 플옵에 진출하였습니다. 1라운드에서 격전끝에 밀워키를 3승 2패로 제친 애틀랜타는 2라운드에서 보스턴과 다시 한번 맞서게 됩니다. 시리즈는 7차전까지 진행되었지만 결국 애틀랜타가 넘어서기에는 보스턴이 너무 강했습니다. 보스턴은 시리즈 전적 4승 3패를 기록하며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하였고 애틀랜타는 전 시즌에 이어 다시 2라운드 탈락...

 

허나 윌리스는 정규시즌의 부진을 플옵에서 어느 정도 만회하였습니다. 윌리스는 플옵 시리즈 12경기에 모두 선발로 출장하며 평균 38.5분을 소화하며 애틀랜타의 골밑을 지켰습니다. 필드골 성공률은 58.0%, 평균 16.2득점, 9.0리바운를 기록하며 정규 시즌의 부진을 어느 정도 씻어냈지요.

 

허나 이러한 좋은 상황도 잠시...그는 88-89시즌 무릎 부상으로 시즌 아웃 당하게 됩니다.

 

89-90시즌... 부상에서 회복한 윌리스는 다시 호크스의 로스터에 복귀합니다. 그는 88-89시즌 개막 전 호크스가 비제한적 자유 계약 선수로 영입한 전설적인 센터 모제스 말론과 함께 호크스의 페인트 존을 지켰습니다. 윌리스는 89-90시즌 81경기에 출장(이 중 선발 51경기), 평균 28.1분, 필드골 성공률 51.9%, 12.4득점, 8.0리바운드를 기록하며 34세의 노장임에도 불구하고 81경기에 모두 선발 출장하여 평균 33.8분을 소화한 모제스 말론을 든든히 지원하였습니다(말론은 이 시즌 81경기에서 필드골 성공률 48.0%, 평균 18.9득점, 10.0리바운드, 1.6어시스트 기록). 허나 팀은 41승 41패를 기록하며 88-89시즌까지 이어오던 네 시즌 연속 +50승을 이어가지 못함과 동시에 플옵 시리즈 진출에도 실패하고 맙니다.

 

90-91시즌, 무릎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한 윌리스는 80경기에 모두 선발 출장하며 이전 시즌에 비해 팀에 대한 기여도를 높였습니다. 윌리스는 이 시즌 80경기에서 평균 29.7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50.4%, 평균 13.1득점, 8.8리바운드, 1.2어시스트를 기록하며 꾸준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이전 시즌 부상으로 많은 경기를 결장한 포인트 가드 닥 리버스가 79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15.2득점, 8.8어시스트, 에이스 도미니크 윌킨스가 평균 25.9득점, 9.0리바운드, 3.3어시스트, 1.3스틸의 활약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들의 활약을 바탕으로 호크스는 43승 39패를 기록하며 플옵 시리즈에 다시 진출하였으나, 1라운드에서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에 2승 3패로 아쉽게 무너지며 2라운드 진출에는 실패하였습니다. 디트로이트는 88-89시즌과 89-90시즌 연속으로 리그 파이널을 우승한 리그의 손꼽히는 강팀이었지요. 윌리스는 빌레임비어와 데니스 로드맨으로 이어지는 막강한 디트로이트의 포스트 진을 상대로 다섯 경기에서 평균 31.8분을 소화하며 15.4득점, 9.0리바운드를 기록하며 분투하였습니다. 허나 정규 시즌에서 평균 50%를 계속 상회하였던 그의 필드골 성공률은 디트로이트의 거칠고 강한 수비의 영향으로 플옵 시리즈 다섯 경기에서 40.3%로 낮아진 점은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91-92시즌 개막.... 윌리스도 커리어 8년 째에 접어들게 됩니다(물론 88-89시즌은 부상으로 통째로 날렸지만)..팀의 입장에서 이 시즌은 정말 어려운 시즌이었습니다. 애틀랜타는 시즌 40경기까지 21승 19패로 간신히 5할+승률을 기록하며 그래도 분투하고 있었습니다. 허나 1992년 1월 29일 밀워키와의 경기 중 에이스 도미니크 윌킨스가 아킬레스 건 부상으로 완전히 시즌 아웃 당하며 이후 힘들어졌습니다. 이 날 경기에서 윌킨스는 15분 동안 플레이하며 8득점 4리바운드 3어시스트의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었으나 경기 중 아킬레스건 부상을 당하며 코트에 쓰러졌습니다. 이 날 경기에서 윌리스는 18득점 18리바운드 6어시스트 1스틸 1블락슛으로 110:109로 팀이 에이스의 부재 속에서도 승리를 거두는데 큰 역할을 했지만 이후 시즌 운영에 있어 팀은 치명타를 맞고 말았지요.

 

윌킨스는 이날 경기에서 쓰러지기 전까지 평균 28.1득점, 7.0리바운드, 3.8어시스트, 1.2스틸을 기록하며 여전히 리그에서 가장 위력적인 득점원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이러한 그의 존재가 사라졌다는 것은 5할+ 승률에서 악전고투하던 호크스에게는 그야 말로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이후 40경기에서 16승 24패로 무너지며 플옵 진출에 실패하고 맙니다.

 

팀으로서는 좋지 못한 시즌이었지만 이 시즌 윌리스는 그의 커리어에서 가장 화려한 시즌을 보냈습니다. 닥리버스와 모제스 말론은 이미 팀을 떠났고 팀의 에이스인 윌킨스가 부상으로 시즌 아웃된 상황에서 윌리스는 호크스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ㄱ그는 이 시즌 80경기에서 평균 36.6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50.4%, 평균 18.3득점, 15.5리바운드, 2.1어시스트, 0.9스틸, 0.7 블락슛을 기록하였습니다. 종합적으로 보았을때 이 시즌이 그의 커리어 하이 시즌이라고 보면 될 것입니다. 그는 80경기에서 1258 리바운드를 잡아냈습니다. 이는 1530개를 잡아낸 로드맨에 이어 리그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었으며, 평균 15.5리바운드 역시 평균 18.7개를 잡아낸 로드맨에 이어 리그 2위의 기록이었습니다. 이 시즌 리그 전체에서 1000개 이상의 리바운드를 걷어낸 선수는 로드맨과 윌리스로 유이했습니다. 게다가 윌리스는 이 시즌 12경기에서 +20득점-+20리바운드를 기록하며 리그 통산 기록을 세우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그는 1992년 올스타전에 출장하였으며, 91-92시즌 All-NBA 3rd Team에 선정되며 개인적으로는 최고의 한 시즌을 보냈습니다.(이 시즌 서드 팀에는 케빈 존슨-마크 프라이스-케빈 윌리스-데니스 로드맨-브래드 도허티가 선정되었습니다...그러고보니 3번 포지션이 없군요 ㅎ)

 

92-93시즌...그도 이제 서른 살이 되었습니다. 전 시즌 중반 부상으로 시즌 아웃된 윌킨스는 부상을 회복하고 92-93시즌 정상적으로 팀 로스터에 복귀하였고, 트레이드를 통해 뉴저지에서 포인트 가드 무키 블레이락을 영입하며 팀 역시 전력이 이전 시즌에 비해 강화되었습니다.

 

91-92시즌 커리어 최고의 시즌을 보낸 윌리스는 그 상승세를 92-93시즌에도 이어갔습니다. 윌리스는 80경기에 모두 선발로 출장하여 평균 36.0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50.6%, 평균 17.9득점, 12.9리바운드, 2.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골밑을 든든히 지켰습니다. 부상 이후 복귀한 윌킨스는 운동 능력은 부상 이전에 비해 떨어졌으나 여전한 득점력으로 71경기에서 평균 29.9득점 6.8리바운드 3.2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에이스의 면모를 뽐냈으며 트레이드로 이적한 무키 블레이락 역시 평균 13.4득점 8.4어시스트 2.5스틸을 기록하며 공수에서 팀에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팀은 43승 39패를 기록하며 7번 시드로 플옵에 진출하였습니다. 허나 1라운드 상대는 90년대 최강의 팀이었던 그분의 시카고 불스....

 

결국 1라운드에서 불스에게 0승 3패로 스윕을 당하며 윌리스와 호크스는 또다시 1라운드에서 탈락하였습니다.

 

93-94시즌에도 윌리스는 변함없이 꾸준한 모습으로 호크스의 골밑에서 활약하였습니다. 이 시즌 그는 80경기에서 평균 35.8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49.9%, 평균 19.1득점(커리어 하이), 12.0리바운드, 1.9어시스트, 1.0스틸, 0.5블락슛을 기록하며 세 시즌 연속 +15득점, +10리바운드를 기록하며 리그의 엘리트 파워 포워드로서의 입지를 굳건히 지켰습니다.

 

특히 이 시즌 호크스는 감독을 레니 윌킨스로 교체하며 팀 전력의 변화를 꾀하게 됩니다. 1994년 2월, 호크스는 팀의 상징과도 같았던 도미니크 윌킨스를 트레이드하면서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하였습니다. 94년 2월 24일, 호크스는 윌킨스를 클리퍼스로 보내고 대신 클리퍼스의 에이스였던 대니 매닝에 94년 1라운드 드래프트 픽을 넘겨받았습니다. 윌킨스는 애틀랜타의 상징과도 같은 선수였지만 당시 이미 34세의 노장이었고 고질적인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전성기 만큼의 위력적인 득점력이 많이 줄어든 상태였지요. 대니 매닝은 88년 드래프트 1라운드 1번 픽으로 클리퍼스에 입단한 이후 꾸준히 성장하고 있었던 27세의 젊은 파워 포워드였습니다.

 

매닝의 포지션이 4번이었던 관계로 윌킨스와 겹치는 부분이 있었지만 이 부분은 윌킨스를 5번으로 돌리는 것으로 간단히 끝날 문제였지요. 결국 이 시즌 애틀랜타는 57승 25패의 뛰어난 성적을 거두며 동부 컨퍼런스 1번 시드로 플옵에 진출하였습니다. 1라운드에서 마이애미를 3승 2패로 따돌리며 2라운드에 진출한 애틀이었지만, 2라운드에서 레지 밀러의 인디애나 페이서스에 2승 4패로 무너지며 컨퍼런스 파이널 진출에는 실패하게 됩니다. 윌리스는 플옵 11경기에서 평균 32.9분을 소화하며 평균 12.2득점, 10.8리바운드를 기록하였습니다. 정규 시즌에 비해 부진한 모습이 아쉬웠지요.

 

그리고 94-95시즌 초반이었던 94년 11월 7일 윌리스는 자신의 트레이드 소식을 듣게 됩니다. 윌리스는 94-95시즌 개막 직후 두 경기에서 평균 21.0득점, 18.0리바운드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허나 팀은 윌리스에 백업 포인트 가드였던 빔보 콜스를 마이애미로 보내고 대신 올스타 슈팅 가드였던 스티브 스미스와 그랜트 롱 ,그리고 96년 2라운드 드래프트 픽을 받아오는 트레이드를 단행하였습니다.

 

이 시기부터 윌리스는 저니맨의 신세가 되고 맙니다. 트레이드 이후 윌리스는 94-95시즌 마이애미에서 65경기에서 평균 35.4분, 필드골 성공률 46.9%, 평균 17.1득점, 10.7리바운드, 1.3어시스트로 새로운 팀에서도 그 활약을 이어갔습니다. 당시 마이애미에는 리그를 대표하는 슈터인 글렌 라이스가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전력 자체가 강한 팀은 아니었습니다. 이적 이후 윌리스가 활약을 하였지만 팀은 32승 50패의 성적으로 플옵 진출에는 실패하였습니다.

 

95-96시즌, 윌리스는 마이애미에서 다시 골든스테이츠 워리어스로 트레이드 되게 됩니다. 95-96시즌 마이애미는 90년대 초반 뉴욕 닉스를 강팀으로 올려둔 명장 팻 라일리를 감독으로 영입하였고 샬럿 호네츠와의 3:3 트레이드를 통해 올스타 센터 알론조 모닝을 영입하며 팀 전력을 강화하였습니다. 또한 시즌 중이었던 96년 2월 22일 골든 스테이츠와의 2:2 트레이드를 통해 역시 올스타 포인트 가드였던 팀 하더웨이를 영입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윌리스는 골든 스테이츠로 팀을 옮기게 된 것이지요.

 

이 시즌 윌리스는 애틀랜타에서 47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28.9분, 평균 10.2득점, 8.9리바운드를 기록하였고, 골든 스테이츠 이적 후에는 28경기 출장, 평균 27.8분, 평균 11.3득점에 7.8리바운드를 기록하였습니다. 시즌 평균은 75경기 출장, 평균 28.5분, 필드골 성공률 45.6%, 평균 10.6득점, 8.5리바운드를 기록하였습니다. 94-95시즌까지 네 시즌 연속으로 이어져 오던 +15득점-+10리바운드의 기록도 95-96시즌을 기점으로 끊어졌고, 윌리스의 기량과 기록도 이 시즌 이후부터는 뚜렷한 하향세를 보이게 됩니다.

 

95-96시즌 종료 후 윌리스는 골든스테이츠 워리어스로부터 방출되었으나 96년 8월 19일 프리에이전트 자격으로 휴스턴 로케츠와 계약을 맺으며 그의 커리어를 이어갔습니다. 휴스턴은 92-93시즌 우승을 마지막으로 조던이 은퇴한 후 93-94시즌과, 94-95시즌 연속으로 NBA 파이널 우승을 따냈던 팀이었습니다. 허나 95-96시즌에는 플옵 2라운드에서 시애틀 슈퍼소닉스에 0승 4패로 스윕을 당하며 3연패에는 실패하였지요.

 

95-96시즌 종료 후 휴스턴은 다시 우승에 도전하기 위해 전력을 강화하기 시작합니다. 96년 8월 19일 농구 팬들을 깜짝 놀라게하는 트레이드 소식이 전해집니다. 피닉스 선즈와 휴스턴이 대규모 트레이드를 단행하였다는 소식이었지요. 피닉스는 팀의 에이스이자 리그 정상급 파워 포워드인 찰스 바클리에 1999년 2라운드 드래프트 픽을 휴스턴으로 넘기고 대신 휴스턴으로부터 처키 브라운, 마크 브라이언트, 샘 커셀, 로버트 오리를 받아왔습니다.

 

바클리의 영입으로 휴스턴은 드렉슬러-바클리-올라주원으로 이어지는 강력한 트리오를 구성하여 다시금 대권에 도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윌리스의 영입은 올라주원과 바클리의 백업 목적이었지 싶습니다. 윌리스는 휴스턴 입단 첫 시즌이었던 96-97시즌 75경기에 출장(선발 32경기), 평균 26.2분을 소화하며 평균 11.2득점, 7.5리바운드를 기록하며 팀의 요구를 100% 충족시켰습니다. 바클리는 고질적인 허리 부상으로 29경기에 결장하였지만 평균 19.2득점, 13.5리바운드, 4.7리바운드, 1.3스틸을 기록하였고, 드렉슬러 역시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20경기에 결장하였지만 평균 18.0득점, 6.0리바운드, 5.7어시스트, 1.9스틸을, 올라주원은 78경기에서 평균 23.2득점 9.2리바운드를 기록하였습니다. 팀은 57승 25패를 기록하며 플옵에 진출, 1라운드에서 미네소타를 3승 0패로 스윕하며 2라운드에 진출하였고, 2라운드에서는 시애틀에 4승 3패를 기록하며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하였습니다. 허나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유타에 2승 4패로 무너지며 파이널 진출에는 실패하였지요(6차전에서 경기 종료 직전 스탁턴의 역전 3점슛 하아...)

 

윌리스는 플옵 시리즈 16경기에 모두 교체로 출장하여 평균 18.4분을 소화하며 평균 6.4득점, 4.7리바운드를 기록하였습니다.

 

97-98시즌...윌리스는 자신의 커리어에서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게 됩니다. 원래 휴스턴은 윌리스를 식스맨으로 활용하기 위해 영입하였지만 97-98시즌에 윌리스는 식스맨이 아닌 팀의 주전으로 흔들리는 팀의 중심을 잡아주었습니다. 휴스턴은 분명 드렉슬러-바클리-올라주원으로 이어지는 레전드급 라인업을 구성하고 있었지만, 문제는 이들의 나이와 몸상태였습니다. 드렉슬러의 무릎 상태와 바클리의 허리 상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 폭탄같은 것이었지요. 여기에 팀의 기둥인 올라주원이 심장 이상으로 인해 기량이 급락하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이 시즌 드렉슬러는 12경기에, 바클리는 14경기에 결장하였습니다. 게다가 바클리는 출장한 68경기 중 주전으로는 41경기에 출장하였으며, 올라주원은 심장 이상으로 인해 45경기에 결장하였습니다. 이들의 나이는 드렉슬러와 올라주원이 당시 35세, 바클리가 34세였지요.

 

이러한 상황에서 역시 35세의 노장이었던 윌리스는 81경기에 출장(이 중 선발 74경기), 평균 31.2분을 소화하며 필드골 성공률 51.0%, 평균 16.1득점, 8.4리바운드를 기록하였습니다. 출장 경기 수는 팀내 1위였으며, 득점은 팀내 2위, 리바운드는 팀내 3위였지요. 핵심 전력들의 부상과 노쇠화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휴스턴은 그나마 드렉슬러가 70경기에 모두 선발 출장하였고, 윌리스가 기대 이상의 활약을 해주며 41승 41패를 기록하며 간신히 플옵에 진출하게 됩니다. 하지만 1라운으에서 유타 재즈에 2승 3패로 아쉽게 패하며 상위 라운드 진출에는 실패하고 맙니다.

 

그리고 98년 6월 9일...윌리스는 다시 한번 팀을 옮기게 됩니다. 휴스턴은 윌리스를 토론토 랩터스로 보내고 토론토로부터 로이 로저스와 98년 1라운드 드래프트 픽 두장을 받아오는 트레이드를 단행하였습니다.

 

노조의 파업으로 단축 시즌으로 진행된 98-99시즌 윌리스는 42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29.0분, 평균 12.0득점, 8.3리바운드, 1.6어시스트를 기록하였습니다. 팀은 23승 27패로 플옵 진출 실패....이 시즌 윌리스는 데뷔 이후 처음으로 파워 포워드가 아닌 센터로 시즌을 보냈습니다.

 

99-00시즌...윌리스의 나이는 37세가 되었습니다. 이제 그의 역할은 팀의 주전 빅맨이 아니라 식스맨이자 롤플레이어 정도였지요. 윌리스는 안토니오 데이비스와 찰스 오클리의 백업으로 79경기에 출장하였습니다. 평균 출장 시간은 21.3분, 필드골 성공률은 41.5%, 평균 7.6득점, 6.1리바운드를 기록하였습니다. 루키 시즌을 제외하고 윌리스가 평균 10득점 이상을 기록하지 못한 시즌은 이 시즌이 처음이었습니다. 야투 성공률 41.5%도 그의 커리어에서 가장 낮은 수치였지요.

 

그리고 2001년 1월 21일 윌리스는 또다시 트레이드를 통해 덴버 너게츠로 팀을 옮기게 됩니다. 트레이드 전까지 그는 토론토에서 35경기에 주로 식스맨으로 출장하여 평균 22.0분, 필드골 성공률 46.1%, 평균 8.8득점, 6.4리바운드를 기록하였고, 트레이드 이후 덴버에서는 43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24.6분, 필드골 성공률 42.8%, 평균 9.6득점, 7.2리바운드를 기록하며 교체 멤버로서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01-02시즌 개막 직전에 그는 트레이드를 통해 덴버 너게츠에서 밀워키 벅스로 팀을 옮겼고, 그날 바로 밀워키는 윌리스를 휴스턴으로 트레이드시킵니다.

 

9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강팀이었던 휴스턴이었지만 이 당시 휴스턴은 커티노 모블리와 스티브 프랜시스, 케니 토마스와 같은 젊은 선수들을 중심으로 팀을 재정비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39세의 나이로 다시 휴스턴으로 돌아온 윌리스는 52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16.6분, 필드골 성공률 39.6%, 평균 6.1득점, 5.8리바운드를 기록하였습니다. 과거 전성기 시절 보여주었던 근성과 파워, 보드 장악력은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든 상태였지요.

 

시즌 종료 후 윌리스는 휴스턴과 재계약을 맺지 못하며 프리에이전트 자격을 얻게 됩니다. 2002년 8월 26일, 윌리스는 팀 던컨의 등장 이후 서부 컨퍼런스의 강팀으로 올라선 샌안토니오 스퍼스와 계약을 맺으며 40세에 새로운 시즌을 맞이하게 됩니다. 샌안토니오에서 윌리스의 역할을 팀 던컨과 데이비드 로빈슨의 백업이었습니다. 40세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윌리스는 71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11.8분을 소화하는 가운데 필드골 성공률 47.9%, 평균 4.2득점, 3.2리바운드(공격 리바운드 평균 1.2개)를 기록하며 던컨과 로빈스의 휴식 시간에 괜찮은 역할을 소화하였습니다.

 

이 시즌 샌안토니오는 60승 22패를 기록하며 서부 컨퍼런스 1번 시드로 플옵에 진출하였고, 피닉스 선즈, LA 레이커스, 댈러스 매버릭스, 뉴저지 네츠를 연파하며 파이널 우승에 성공하였습니다. 윌리스는 플옵 24경기 중 18경기에 교체로 출장하여 평균 5.1분, 필드골 성공률 52.5%, 평균 2.6득점, 1.7리바운드를 기록하였습니다. 윌리스의 존재가 샌안토니오의 우승에 큰 역할을 하였다고는 볼 수 없었으나 40세의 노장 센터는 자신의 역할을 최선을 다해 수행하였고, 그 결과 윌리스는 커리어 19시즌 만에 염원의 챔피언 반지를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윌리스는 03-04시즌에도 샌안토니오에서 계속 선수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그의 나이 41세.... 그는 48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7.8분을 소화하였고, 평균 3.4득점, 1.3리바운드의 기록을 남겼습니다. 시즌 종료 후 윌리스는 애틀랜타와 계약을 맺으며 42세에도 현역 생활을 이어갔습니다만 그 활약은 미약했습니다. 04-05시즌 윌리스는 29경기에 출장한데 그쳤고, 평균 11.9분, 필드골 성공률 38.9%, 평균 3.0득점, 2.6리바운드를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시즌을 끝으로 그는 은퇴를 선언하며 커리어를 마감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06-07시즌 막판 윌리스에 대한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그의 현역 복귀....댈러스는 이 시즌 67승 15패를 기록하며 최고의 한 해를 보냈으며 강력한 우승 후보 중 한팀이었습니다. 허나 시즌 막판 주전 센터였던 에릭 뎀피어가 부상을 당하는 악재를 겪게 되었지요. 당장 골밑이 약화되게 생긴 댈러스는 은퇴 후 꾸준히 몸관리를 하고 있었던 윌리스와 10일 계약을 체결하였습니다. 그의 나이 44세.....윌리스는 정규 시즌 막판 다섯 경기에 교체로 출장하여 평균 8.6분을 소호하며 평균 2.4득점, 1.6리바운드를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플옵 시리즈 로스터에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허나 댈러스는 예상과 달리 8번 시드였던 골든스테이츠 워리어스에 2승 4패로 업셋을 당하게 되면서 플옵 시리즈에 출장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댈러스의 플옵 시리즈 탈락과 함께 그 역시 자신의 커리어를 마감하였습니다. 그의 통산 성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커리어 22시즌 통산, 1424경기 출장, 평균 26.9분, 필드골 성공률 48.7%, 평균 12.1득점(17253득점), 8.4리바운드(11901리바운드), 0.9어시스트(1328어시스트), 0.7스틸(958스틸), 0.5 블락슛(750블락슛)을 기록하였으며 올스타 1회 선정(1992), 91-92 All NBA 3rd 팀에 선정되었습니다. 그가 기록한 통산 11901리바운드를 리그 통산 24위에 해당되는데, 주목해야할 것은 그의 공격리바운드 숫자입니다. 그는 통산 4132개의 공격리바운드를 잡아냈는데 이는 리그 통산 7위에 해당하는 기록입니다. 또한 44세였던 06-07시즌 막판 댈러스로 복귀하며 역대 최고령 선수 기록도 세우게 되지요(이전까지는 43세에 시카고 불스에서 뛰었던 로버트 패리쉬....)... 한 시즌 12경기에서 20득점-20리바운드를 기록하기도 하였습니다.

 

90년대 리그를 주름잡았던 4대 센터들과 알론조 모닝, 디켐베 무톰보, 브래드 도허티와 같은 명센터들이나 찰스 바클리, 칼 말론, 데니스 로드맨, 벅 윌리엄스와 같은 4번들에 견주어 케빈 윌리스의 커리어는 그리 특출날 것이 없어 보일지도 모릅니다. 허나 그는 전성기 시절 평균 15.0득점 이상을 언제든지 기록해주면서도 두자릿수 리바운드를 걷어내며 팀에 항상 공헌을 하는 꾸준한 플레이어였습니다. 물론 레전드급으로 평가되는 빅맨들과 비교한다면 득점력도 떨어지는 편이며 플레이도 투박하였지만 항상 팀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며 커리어 초반 시즌 아웃당할 정도의 부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자기 관리로 22시즌의 커리어를 이어갔다는 점에서 본다면 충분히 훌륭한 빅맨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오랜만에 커리어 정리글을 쓰려니 이거 글만 길어지고 힘도 들고 그러네요.... 마지막으로 케빈 윌리스의 믹스 영상 하나 링크하는걸로 중구난방 어수선한 포스팅 마무리하겠습니다.

 

케빈 윌리스 믹스 영상 : http://youtu.be/o84RivTdS2s

1993년 포틀랜드와의 경기에서 32득점 25리바운드 기록한 하이라이트 영상 : http://youtu.be/yfpuAUUkbDo


덧글

  • 곰돌군 2014/05/13 18:48 # 답글

    윌리스... 그래도 챔피언 링을 기어이 먹고 은퇴했으니 뭐. 말론, 스탁턴, 바클리, 유잉보다는 행복.. 했으려나.
  • 울프우드 2014/05/13 19:13 #

    그렇죠 그 반지 하나가 참... 긴 커리어에서 나름 인정도 받았고 반지도 얻었으니 말이죠 ㅎㅎ
  • 곰돌군 2014/05/13 19:18 #

    http://www.youtube.com/watch?v=vnaZBRumpg4

    그노무 링 땜에 ㅠㅠ 이런 부관참시도 당하심.
  • 울프우드 2014/05/13 19:54 #

    아 눈물이 ㅜㅜ
  • pds 2015/06/26 02:42 # 삭제 답글

    그당시 참 건실한 파포가 많았던 것 같아요. 오티스도프 찰스오클리 케빈 윌리스 두명의 데이비스 호레이스 그랜트 말그대로 블루워커들이죠 ㅋ 요새는 외각까지 갖춘 파포들 전성시대라지만 이전에 골밑에서 궂은일 해주던 빅맨들이 그립습니다 ㅎㅎ
  • 울프우드 2015/07/09 14:10 #

    답글이 늦었네요...말씀처럼 그 시절에는 블루 워커 스타일의 4번들이 무척 많았죠...포틀랜드의 벅윌리엄스도 있었고 말이죠.... 요즘은 거의 대부분이 소위 스트레치 4라 불리우는 빅맨들의 시대인데.... 솔직히 90년대 전쟁터와 같았던 골밑 다툼이 좀 그립기도 하고 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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